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65
■ 64화. 폭풍전야 (2) □ ᓚᘏᗢ
원고와 내 편지가 담긴 우편물을 집으로 발송하고 열흘 정도가 흐르고 나서였다.
원래 편지를 보내면 일주일 정도가 지나야 답신이 돌아오는 편인데 어찌 된 일인지 이번에는 살짝 늦었다. 거기다 우편물 또한 두터웠다.
‘뭐가 들어있는거지?’
나는 전과 달리 두툼하게 채워진 우편물을 의아하게 바라보다가 윗부분을 뜯어 개봉했다.
개봉하고 나서 안을 들여다보니 꽤 많은 양의 편지들이 들어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어머니가 정리했는지 중구난방으로 어지러있지 않고 책처럼 하나하나 반듯하게 정리돼 있다.
‘이게 전부 다 팬레터인가?’
아무래도 그럴 가능성이 농후하다. 나는 차곡차곡 정돈있게 채워진 편지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그중 가장 눈에 띄는 편지를 집어들었다.
아무래도 이 편지만 유독 눈에 띄는 걸 보아 부모님의 편지인 것으로 추측되었다.
그리고 발신인을 확인하니 우리 부모님께서 보내주신 편지라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이에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꽉 닫혀있던 입구 부분을 뜯어 내용물을 꺼냈다.
[네가 부탁했던 팬레터 중 일부를 간추려서 보내마. 출판사에서도 너무 많아서 한꺼번에 보낼 수 없다고 하는구나. 나중에 차차 보내도록 하겠다.]맨 처음에는 아버지의 편지였다. 역시나 할 말만 하는 아버지답게 요점만 정확히 짚어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전달하셨다.
[참고로 출판사에서 네 휴재에 관한 이야기는 없었다. 아마 우리와 소통이 힘드니 포기한 거겠지. 그대신에 파장이 꽤 클 거야. 대비하고 있거라.]가족들에게는 모두 휴재 소식을 알린지 오래다. 게다가 이번 원고 마지막 페이지에 작가의 말을 넣었으니 출판사 측에서도 알아챘을 것이다.
단단이 대비하라는 말이 조금 신경쓰이긴 해도 문제될 건 없다. 설마 출판사 앞에서 책을 달라고 사람들이 우르르 모이기야 하겠어.
지금 나는 앞으로 학업에 집중하면 그만이다. 리나나 레오르트가 부디 한 권만 내달라고 해도 모조리 거절할 예정이다. 이때까지 빡세게 달려왔으니 주변을 둘러볼 겸 휴식이 필요하다.
‘어머니 편지는… 여기 있네.’
어머니는 늘 그랬듯이 장문의 편지를 보내셨다. 대부분 시험은 잘 쳤냐니, 아카데미 생활은 할 만하니 등등. 대부분 내 안부를 묻는 것밖에 없었다.
그래도 어머니가 걱정하시는만큼 내 마음이 힐링되는 기분이다. 이런 장문의 편지를 한 달마다 보내는 것도 귀찮으실텐데 꼬박꼬박 정성을 담아 보내주신다.
이러니 내가 더욱 효도하고 싶지. 나는 어머니의 편지를 한 번 두 번 반복해서 읽고는 우편물 안을 들여다보았다.
빽빽하게 채워져 있는 팬레터들이 한가득 담겨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게 일부라고?’
그것도 간추려서 보낸 거라고 했으니 대체 얼마나 쌓여있는 걸까. 이거 전부 읽는데만 며칠이 소요될 것 같다.
나는 팬레터를 뭉텅이 채로 꺼내어 책상 위에다 올려놓았다. 가지각색의 편지 봉투가 널부러졌다.
그중 무엇을 고를까 고민하다가 대충 아무거나 하나 선택했다. 특이하게도 분홍빛 봉투에다가 꽃 문양이 금박으로 박혀있어서 눈에 띄었다.
[체리 블라썸 로즈베리]미들네임까지 있는 걸 보면 귀족인 것 같지만 벛꽃향이 강하게 풍길 듯한 이름이다. 나는 로즈베리 가문이 누구인지 상기하다가 봉투부터 개방했다.
편지 봉투도 핑크색이었는데 편지조차 핑크색이다. 아무래도 이 색깔이 가문 고유의 색상인 듯싶었다.
[안녕하세요! 작가님! 저는 로즈베리 후작가의 장녀, 체리 블라썸 로즈베리라고 해요!]첫 인사부터 발랄하다는 인상이 강하게 느껴졌다. 마리와는 다른 의미의 활기참이라고 해야할까.
나는 페이지를 빼곡히 채운 팬레터를 꼼곰하게 읽어내렸다. 대부분 제논 일대기가 너무 재미있다니, 자신도 그런 소설을 쓰고 싶다는 이야기밖에 없었다.
[앞으로 2년 후면 헤일로 아카데미에 입학하게 돼요! 작가님처럼 지식이 많다면 언젠가 제논 일대기 같은 글을 쓸 수 있겠죠? 기회가 된다면 나중에 작가님을 직접 만나서 글을 어떻게 쓰는지 배우고 싶어요. 하지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걸 달가워하지 않으시니 참아야겠죠. 열심히 노력할게요!]“음?”
헤일로 아카데미에 입학한다는 말에 서둘러 발신 날짜를 확인했다. 놀랍게도 1달 전에 보낸 편지다.
그러므로 내가 3학년이 된다면 이 귀족 영애가 입학한다는 의미인데 인연이 닿으면 만날 수도 있겠다. 물론 만나봤자 내가 작가라는 건 입도 벙긋하지 않을테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네.’
누군가 나처럼 글을 쓰고 싶다는 말만큼 기분 좋은 말도 없다. 누군가 나를 존경하는 거니까.
나는 속에서 올라오는 뿌듯함을 감추지 못한 채 미소를 지으며 마지막까지 정독했다. 아카데미에 입학한다는 것과 나처럼 글을 쓰고 싶다는 말을 제외하면 딱히 거슬리는 건 없었다.
‘이런 건 간직해야지.’
이런 식으로 내 작품을 칭찬해주거나 응원해주는 팬레터는 소장하는 게 좋을 것 같다. 힘들 때마다 이런 팬레터를 본다면 기운이 솟아날 것이다.
나는 팬레터를 어떻게 보관할지 고민하다가 편지 봉투에 넣는 것으로 해결했다. 일단 편지 봉투는 따로 분류할 생각이니 책상 옆에 올려놓았다.
‘다음으로는…’
팬레터를 확인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평민이 보낸 거라면 밋밋하기 짝이 없었지만 귀족이 보낸 거라면 색과 더불어 고유의 문양이 박혀있다고.
게다가 귀족들이 보낸 팬레터보다 평민이 보내준 팬레터의 양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본래 소설은 평민보다 귀족들이 즐겨있는 편이었지만 제논 일대기는 신분을 가리지 않고 읽기 좋은 소설이다.
또한 귀족의 숫자는 전체 인구로 따졌을 때 약 1%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다보니 평민이 보낸 팬레터의 수가 더 많을 수밖에.
[안녕하시오. 내 이름은 길드 테스 힐러트 자작이라 하오. 그대의 책을 보고서 깊은 감명을 받았소. 그래서 하나 제안하고 싶더군. 우리 가문에 방문하여…]특히 귀족들 중에는 본인의 지위를 어필하면서 본인의 가문을 끌어들이려는 사람도 많았다. 그런 건 대충 읽고 말았다.
그래도 딴에는 자존심을 굽혀가면서 편지를 작성해줬으니 버리진 않을거다. 누가 보지 않아도 그게 최소한의 예의겠지.
아무튼 간에 평민이 보내준 팬레터는 나중에 읽는 편이 좋겠다. 다른 게 아니라 너무 많아서 오늘 다 읽는 건 절대 무리다.
[마리 하우젠 레킬리스]“… …”
그렇게 팬레터를 쭈욱 읽다보니 마리가 보내준 팬레터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눈을 깜빡거리며 새하얀 편지 봉투를 바라보다가 이내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과연 마리는 어떤 내용을 담아 편지를 보냈을까. 기대가 된다.
이윽고 편지를 펼쳐서 마리가 직접 손으로 적은 팬레터를 읽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존경하는 작가님. 저는 레킬리스 가문의 마리라고 해요. 작가님 작품은 정말 재미있게 읽고 있답니다.]의외로 담백한 문체였다. 내용 또한 내 작품을 칭찬하는 것밖에 없었다.
뭐, 그래도 상관없다. 진정한 목표는 따로 있었으니.
‘이걸 그대로 갖고 가서 낭독하면 어떻게 될까?’
어떻게 되긴.
“읽지 마! 읽지 말라고 했다?!”
“악! 때리지 마! 알았어! 안 읽을게!”
등짝 맞았다.
* * *
전에도 말했지만 몇몇 귀족들은 제논 일대기와 판권 계약을 맺은 출판사에게 뇌물을 주고 있다. 대부분 제논 일대기의 저자가 누구인지 알려달라거나 새로운 책이 나오면 몰래 달라는 부탁들이다.
물론 출판사는 제논 일대기의 저자가 누구인지 절대 알려주지 않고 최신에 발간된 것만 주는 편이다. 출판사 입장에서도 황금알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를 바에야 황금알을 미리 주는 편이 나았으니.
권위가 높은 귀족들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불평을 할지언정 불만은 가지지 않았다. 괜히 들쑤셨다가 제논 일대기의 저자가 잠적해버리기라도 한다면 본인들에게 큰 피해가 간다.
그래서 제논 일대기 저자를 찾는 건 뒷전으로 미루고 최신화가 나올 때마다 미리 건네받았다. 덕분에 치열한 경쟁을 치루지 않고 제논 일대기를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심지어 제논 일대기가 나온다는 소식이 공식적으로 발표되기 전에 말이다.
“흐응~ 흐흐흥~”
미네르바 제국의 황녀, 리나는 본인의 숙소에서 콧노래를 부르며 어떤 우편물을 정성스레 개봉하고 있었다.
콧노래를 부르는 걸 보면 알 수 있듯이 현재 그녀의 기분은 매우 좋았다. 평소 ‘가면’을 썼을 때와 달리 그녀의 미소는 진심이 뚝- 뚝- 묻어나왔으니.
그 이유는 바로 현재 그녀가 뜯고 있는 우편물에 담겨있다.
“짜잔~”
리나는 우편물 속에 든 책 한 권을 꺼내며 천장을 향해 번쩍 들었다. 숙소에 아무도 없었지만 보란듯이 과장스러운 행동이었다.
그만큼 그녀의 기분이 좋다는 걸 반증하고 있었으며 그럴만한 사유는 충분하다.
왜냐하면 리나가 번쩍 들고 있는 책의 정체는 제논 일대기 10권이었으니까. 출판사에서는 아직 공식적으로 발표하지도 않았다.
황실 측에서 출판사에게 로비를 하여 누구보다 빨리 받아낼 수 있던 것이다.
‘이럴 땐 권력이 좋다니까. 후후.’
누가 본다면 참 쓸데없는 곳에 권력을 낭비하는 중이라고 까겠지만 리나는 신경쓰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정치계에 입문한 그녀에게 권력을 이용하는 건 일종의 상식 수준으로 박혀있다.
그녀는 제논 일대기 10권을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천천히 내려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아이작이 정말 천재이긴 하구나.’
제논 일대기를 바라보니 자연스레 아이작도 떠올랐다. 그녀는 여전히 호크가 스토리를 알려주고 아이작이 글로 옮기고 있다 착각하는 중이지만, 그럼에도 아이작의 글솜씨가 뛰어나다는 건 변하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이런 문장력을 갖출 수 있는지 리나로서는 상상조차 하지 못 했다. 아무리 봐도 제 나이대에 어울리지 않는 능력이다.
‘반드시 제국에 붙잡아야지. 그 전에…’
일단 스토리부터 읽자. 리나는 싱글벙글 웃으며 책을 펼쳤다.
이번에는 어떤 스토리가 펼쳐져서 자신을 즐겁게 만들지 잔뜩 기대가 되었다.
‘우와. 인간과 엘프의 사랑? 이거 쉽지 않을텐데.’
그리고 그 기대를 배반하지 않은 스토리가 눈 앞에 펼쳐졌다. 인간과 엘프의 사랑 이야기라니. 이것 또한 세계적으로 파장을 일으킬만한 주제다. 특히 엘프 쪽에서 반응을 하지 않을까, 라는 예상이 자연스럽게 든다.
게다가 그림도 없이 글밖에 없는데 머릿속으로 상상이 되는 이 놀라운 가독성과 묘사는 언제 봐도 놀라웠다. 제논의 스승과 엘프 여왕 사이의 갈등과 고민이 생생하게 느껴질 정도로.
이것 뿐이랴. 스토리조차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방대하다. 흔히 ‘떡밥’이라 칭해지는 것들이 하나 하나 풀릴 때마다 감탄을 금치 못 했다.
‘아. 벌써 다 읽었네. 아쉬워라…’
그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다보니 어느새 끝까지 다 읽게 되었다. 하필이면 스승이 악마측 간부가 관리하는 지역에 잠입했던지라 더욱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스승과 엘프 여왕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분명히 잘 되겠지?’
중간중간 스승이 불안한 말을 남기긴 했지만 꿈과 희망을 위해서라면 서로 이어지는 게 좋다. 둘 중 한 명에게 무슨 일이 생기는 것만큼 비극적인 일도 없을테니.
하물며 스승은 엘프 여왕 한 명만을 바라본 희대의 순정남이다. 제논에게 가르침을 선사할 때는 그저 괴팍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었으나 오늘을 계기로 인식이 바뀌었다.
심지어 그가 강해지려는 이유도 수명을 조금이나마 늘리기 위해서라는, 정말로 눈물없이 볼 수 없는 이야기다. 종족의 한계를 뛰어넘어 사랑을 쟁취하려는 모습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될만하다.
‘잘 될 거야. 암. 잘 되고말고.’
그런데 마음 속에 들어있는 이 불안감은 무엇일까. 왠지 스승에게 안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리나는 그 감정을 억지로 누르며 다음 페이지로 넘겼다. 스토리는 모두 끝났지만 남은 게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일종의 버릇이다.
“응? 작가의 말?”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니 ‘작가의 말’이라는 새로운 장이 펼쳐졌다. 리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의문을 표하다가 작가의 말에 실려있는 글을 읽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순한 소개에 불과했다. 게다가 아이작이 ‘제논’이라는 필명을 쓰기 시작한 것부터 리나에게는 예상 밖이었다. 필명을 알려준 것부터가 세상과 소통하려는 의지가 있다는 의미니까.
하지만…
‘…어?’
얼마 지나지 않아 리나는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연중… 공지? 심적으로 힘들어?’
큰일났다는 걸.
‘그것도 2년이나…?’
머지않아 커다란 폭풍이 몰아친다는 것을.
“…어라?”
리나는 황망한 표정으로 작가의 말을 멍하니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