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661
■ 660화. 장판파 (2) □ ᓚᘏᗢ
지부상소(持斧上疏)
조선 시대 선비들이 임금에게 올리는 상소 중 가장 강력한 상소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자신의 말이 틀리다면 도끼로 머리를 쳐달라는, 그야말로 목숨을 건 상소.
임금도 목숨을 걸고 직언한 선비의 목숨을 취할 수는 없는지라 대부분 큰 효과를 자랑한다.
희대의 폭군이라 평가받는 연산군이라면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폭군이 아닌 이상 무시할 수 없다.
내가 행한 짓거리도 일종의 지부상소라 할 수 있다. 도끼를 들고 상대방에게 부탁을 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나는 직언이 아니라 일종의 ‘협박’이다. 내 말을 따르지 않는다면 그 즉시 목숨과도 같은 손을 자르겠다.
작가에게 손은 억만금을 줘도 포기할 수 없는 신체 부위다. 작가뿐만 아니라 예술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인생이나 다름없다.
“뭐······ 바, 방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내 폭탄선언에 케이트가 경악한 표정으로 질문한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입꼬리가 조금씩 파들거린다.
여태까지 경악한 그녀의 표정은 보지 못했다. 아마 놀랄 때 나오는 케이트만의 특징인 듯싶다.
“바, 방금 뭐라고 말씀하신 거지? 손목을 자르시겠다고?”
“왜? 스타비르크 민족은 성자 님을 해하려 했잖아.”
“어째서 감싸주시는 거지?”
비단 그녀뿐만 아니라 내 선언에 연합군들도 커다란 동요에 빠졌다. 대부분 이해가 안 된다는 반응들이다.
확실히 이들로서는 시대가 시대다보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어째서 자신을 해한 놈들을 감싸주는 거냐고.
나도 호구가 아니다. 과정을 보았을 때 스타비르크의 극단주의자는 언젠가 사고를 칠 운명이었다. 이건 확실하다.
하지만 ‘시끄러운 소수’만 바라보면서 ‘억울한 다수’를 제 손으로 없애는 것만큼은 막고 싶다. 아직 세상은 혼란스러웠으니까.
“많이 혼란스러우실 겁니다. 어째서 저를 해할 뻔한 스타비르크 민족을 감싸주는 건지 의문이 들겠죠. 하지만 저는 그들을 감싸주는 게 아닙니다. 그저 또다른 악마를 만드는 걸 막고 싶을 뿐.”
“또다른······ 악마라니요?”
“나치.”
단 한 마디로 설명이 가능하다. 현재 나치는 수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인간의 탈을 쓴 악마 집단’이라고 인식돼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윤리적으로 도저히 불가능한 ‘절멸’ 정책을 시행했으며 지구를 광기로 몰아넣었으니.
모라가 알려준 운명대로 흘러갔다면 나치에 준하는 집단이 탄생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당장 헬리움만 하더라도 파시즘에 물들기 쉬운 환경이었지 않았는가.
특유의 절제 문화가 그들을 안정시킨 것이다.
“제가 쓴 글을 보면 알다시피 나치는 원래부터 존재하던 악마가 아닙니다. 한 사람의 선동으로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냈죠. 악마는 태초부터 존재하던 게 아닙니다. 다양한 환경적 요소로 만들어지는 거지.”
“··· ···”
“제가 막지 않는다면 스타비르크에게 있어서 당신들은 악마가 될 겁니다. 그리고 스타비르크는 또다른 악마가 되어 평생동안 당신들을 괴롭히겠죠.”
“무슨 말씀인지 알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이작 님을 해한 자들마저 용서하실 겁니까?”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호구가 아니다.
확실하게 해야될 건 해야하는 법. 극단주의자들은 언젠가 사고를 칠 테니 없애는 편이 낫다.
“그건 아닙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광기에 빠지지 않도록 홀로 막은 겁니다. 극단주의자들이 스타비르크민인 건 맞지만, 모든 스타비르크민이 극단주의자인 건 아니니까요. 저는 용서가 아니라 자비를 베풀어달라 부탁하는 겁니다.”
“··· ···”
“미래에 다가올 악순환을 여기서 끊는 겁니다. 제가 아닌 여러분께서 자비를 베푸신다면 스타비르크도 조용히 지내겠죠.”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는군요. 억울한 자가 생기지 않도록 관용을 베푸시는 건 알겠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나치 같은 악마가 탄생할 거라 믿고 계시는 겁니까?”
정론이다. 성자라는 명성 때문에 호소력이 짙어졌을 뿐이지, 하나하나 살펴보면 뭔 개소리야? 라는 말이 나올 것이다.
현 상황으로 따지자면 스타비르크는 전쟁을 할 운명이다. 이건 확실하다.
어찌저찌 버티다가 세계 대전으로 겁화가 번질지, 아니면 연합군에게 가루가 되도록 털릴지의 차이다.
나에게 책임이 있다면 총의 발명을 앞당긴 것도 민족자결주의를 뿌린 것밖에 없다. 하지만 이건 나도 억울한 면이 약간이나마 있다.
따라서 온전히 스타비르크의 책임이며 그들이 짊어져야 할 업보라 봐야된다. 내가 직접 나서서 자비를 베풀어달라 호소할 게 아니라.
“케이트 추기경 님의 말씀이 맞는 거 같은데······”
“결국 스타비르크가 악마가 될 운명이라는 거 아닌가?”
“그건 아니지. 어떻게 그걸 알고 있냐가 문제잖아.”
케이트의 말에 뒤의 연합군도 수근거렸다. 군대라 그런지 대놓고 수근거리지는 않았지만 내 귀에는 다 들렸다.
저 반응이 정상이다. 나는 모라로부터 예정된 운명을 직접 들었기에 이리 나설 수 있다.
그러나 저들은? 저들은 시대 배경의 한계로 접근할 수 있는 정보가 지극히 적다.
선동이 쉽게 먹히는 시대며 집단 광기에 빠져들기 환경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을 설득시키기 위해 어떤 말을 해야하는 걸까. 이것도 미리 정했다.
나는 긴장감에 숨을 몰아쉰 뒤, 좌중을 둘러보았다. 내가 주위를 둘러보자 수근거림이 즉각적으로 멈췄다.
‘목소리에 마나를 좀 넣고······’
지난번 성자 커밍아웃(?) 이후 연습한 게 있다. 마나로 목소리를 키우는 것이다.
이리 된다면 조곤조곤한 음성으로도 저 뒤까지 퍼질 수 있겠지. 이에 나는 조용하지만 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그런 세상에서 왔다면, 모두 믿으시겠습니까?”
“······예?”
성자 커밍아웃에 이은 지구 커밍아웃. 케이트가 내 고백을 듣고 두 눈이 크게 떠졌다.
연합군들도 본인이 잘못 들었냐는 표정이다. 그도 그럴게 이들 모두 내가 신이 데려온 영혼이라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어디서’ 데려왔는지 전혀 모른다. 성자라는 거대한 존재감으로 인해 다른 것들이 전부 묻혀버린 것이다.
“대전쟁에서 패배한 독일이 나치에게 집어삼켜지고, 소련은 혁명으로 거대한 괴물이 되었죠. 미국의 대공황으로 전세계가 마비되고, 나치 독일은 그 틈을 타 정권을 완전히 지배했습니다. 그 후로 역사를 큰 축으로 뒤덮은 2차 대전쟁이 발생했죠.”
“··· ···”
“피와 강철이 판타지가 아니라 제가 살던 세계의 이야기라면, 모두들 믿겠습니까? 그 전쟁이 발생하지 않도록, 나치 독일 같은 괴물이 탄생하지 않도록 피와 강철을 집필했다면 여러분은 믿으시겠습니까?”
이런 말이 있다. 거짓말은 더 큰 거짓말로 뒤덮으면 그만이라고.
90%의 거짓과 10%의 진실을 섞는다면 아무도 못 알아차린다고 말이다.
여기서 반대로 90%의 진실과 10%의 거짓을 섞었다. 나는 2차 세계대전을 직접 경험하지 않고 역사로 봤다.
하지만 저들에게는 내가 2차 세계 대전을 직접 경험한 사람처럼 느껴질 것이다. 광기의 전쟁에서 꿋꿋이 살아남은 사람으로.
그리고 그 전쟁을 경고하기 위해 신들이 직접 데려온 영혼처럼 느껴지겠지. 전쟁의 신 루미너스가 이걸 보고 있다면 담배가 마려울 것이다.
“스타비르크는 저에게 큰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하지만 당신들은 제가 자비를 베풀어달라 부탁해도 강행할 생각이었죠. 그러면 여러분은 나치 독일보다 더한 존재가 됐을 수도 있습니다. 특히 세이비어는 머나먼 과거에 저질렀던 과오를 다시 한 번 반복할 뻔했죠.”
“··· ···”
“거듭 말씀드리지만 저를 해한 자들을 용서하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이 악마가 되는 걸 막기 위해 이곳에 찾아왔을 뿐입니다. 그러니······”
나는 어안이 벙벙해진 연합군을 두고 뒤로 서서히 물러났다. 10m로 벌어졌던 거리가 점점 더 멀어진다.
이윽고 간신히 내 목소리만 들릴 정도로 멀어졌을 때쯤, 자리에 털썩 앉았다. 오른손으로 쥐었던 도끼도 가지런히 내려놓았다.
“저는 여러분이 돌아가실 때까지 이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을 겁니다.”
“··· ···”
“만약 여러분이 저를 지나친다면 저는 그 즉시 손목을 자를 겁니다. 경고까지 했음에도 소용이 없다면, 이 손도 그 의미를 다 한 것일 테니.”
그 협박 아닌 협박을 끝으로 연합군 사이의 동요가 더욱 짙어졌다. 내 말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판별하는 모양이다.
“피와 강철이 실존하는 세계라고······? 그럼 제논 일대기는 어떻게 된 거지?”
“말도 안 돼. 그런 세계가 실존한다고? 우리는 적어도······”
“······제논께서 없으셨다면 했을지도 모르지. 당장 마키나를 봐. 기조만 바뀌어도 혁명으로 공산주의를 채택했잖아.”
세이비어 측 연합군의 분위기는 대략 저랬고.
“헬리움에 한때 파시즘이 유행할 뻔했어. 만약 성자께서 없으셨다면······”
“히틀러 같은 사람이 폐하를 끌어내렸을지도 몰라. 나도 한때마나 파시즘을 좋아했는데.”
“유대인 절멸 정책이 실존했다니······ 우리의 미래였을지도 모르겠네.”
헬리움 측 연합군의 분위기는 대략 저랬다. 대혼란의 시작이다.
가끔 가다가 그럼 제논 일대기는 뭐냐? 라는 반응도 간간이 존재했다. 지금까지 제논 일대기를 일종의 예언서라 취급했다.
하지만 제논 일대기가 아닌 피와 강철이 실화였다는 걸 알고 나서 앞뒤가 맞지 않는 느낌이 들 것이다.
“그런 전쟁을 직접 경험하셨으니 다양한 영웅들이 존재했을 거야. 그걸 모티브로 제논 일대기를 작성하셨을 테고.”
“마족에 대한 편견이 없던 것도 유대인 때문이었구나.”
“미래에 가까운 이야기를 쓰신 것도 그 영향 덕분이겠지.”
정말 고맙게도 자기들 알아서 해석하더라. 피와 강철마저 썼으니 제논 일대기는 어렵지 않다는 반응이다.
오히려 평가가 올라만 갔다. 진짜 예언서가 아닌 예언서에 가까운 책을 쓴 것이 더 놀랍다고.
뭐가 됐던 간에 제논 일대기가 예언서 취급 받는 건 변하지 않을 것 같다.
저벅- 저벅- 저벅-
연합군이 동요하는 사이 케이트가 말없이 내 앞으로 다가왔다. 그녀의 행동의 뒤의 사람들이 헛숨을 삼켰다.
나는 말없이 다가오는 케이트를 올려다봤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라도 무표정에 가까운 얼굴이다.
스윽-
이윽고 내 앞에서 조용히 무릎을 꿇는 케이트. 덕분에 그녀와 눈높이가 얼추 맞아떨어졌다.
케이트는 여러모로 복잡해 보이는 얼굴이다. 하기야 방금 전 그 발언을 듣는다면 누구라도 저렇겠지.
“마음을 정하셨습니까?”
“예. 마음은 정했습니다. 이 또한 신들의 뜻이겠지요.”
다행히도 마음을 정한 것 같다. 고민도 없이 너무 빨리 정한 게 아닌가 싶어 의문이 들긴 했다만.
뭐, 신앙심이 깊은 케이트니까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다. 그녀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짜고 쳤다는 의심이 들었을 터.
이에 속으로 안도하자 케이트가 특유의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
“허나 이것만으로 부족합니다. 스타비르크는 여전히 위험 요소가 많죠.”
“······알고 있습니다.”
“책임자를 지정해 회군시키겠습니다. 대신 아이작 님은 저와 함께 스타비르크 민족에게 부탁해주세요. 이런 일이 다시는 생기지 않도록, 설령 생기더라도 그 잘못을 저지른 소수만 처벌할 수 있도록.”
안 그래도 그러려고 했다. 아살라는 훌륭한 독립투사지만 안타깝게도 부족한 점이 딱 하나 있다.
그건 바로 쓸데없이 넓은 포용성. 쳐내야 할 건 딱 잘라 쳐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이번 일도 억울함만 강조했다가 실수로 잘못을 저지른 자마저 감싸주는 형태로 갔다.
‘시끄러운 소수’가 항상 문제이긴 해도, ‘평화로운 다수’에게 책임이 없는 건 아니다.
나치가 그런 식으로 광기에 휘말렸고, 서방 세력은 이슬람 세력을 극도로 경계하는 중이다.
“물론입니다. 저들의 잘못이 없는 건 아니니까요.”
내 확고한 대답에 케이트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언제 봐도 아름다운 미소.
뒤이어 그녀는 손을 뻗어 내 오른손을 살포시 잡아줬다. 소중하다는 듯이 쓰다듬는 건 덤.
“정말이지······ 아이작 님다운 행동이로군요. 감사합니다.”
“케이트 씨가 왜 감사하죠?”
“제 믿음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해주셨으니까요.”
“······?”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순간적으로 어마어마한 위화감이 들었지만 착각이겠지.
“제논께서 아뢰시되······”
“네?’
“아무것도 아닙니다.”
속내를 전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