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663
■ 662화. 목소리 (2) □ ᓚᘏᗢ
이러다가 진짜 성자가 되는 게 아닌지 두렵다.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스타비르크민들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나에게 유리한 상황과 적절한 거짓말을 섞어 그럴듯한 말을 지어낸 거지, 이처럼 ‘숭배’를 받을 정도는 아니다.
단신으로 군대를 막은 것도 맞고, 다른 세상에서 왔다는 것도 맞고, 나치 독일이 존재하던 세상에서 왔다는 것도 맞다.
하지만 이정도일 줄은 나조차 상상도 못했다. 심지어 나를 보호하겠다고 나섰던 케이트는 아예 자기가 먼저 무릎을 꿇었다.
“제 계획대로군요.”
“예?”
“제가 예상했던대로라고 말했습니다. 아이작 님이라면 이런 행동을 하실 거라고 굳게 믿었죠.”
방금 전에는 계획대로라고 하지 않았나. 나는 떨떠름한 마음으로 케이트를 쳐다봤다.
지구 출신 커밍아웃까지 한 이후, 그녀가 나를 바라보는 눈길은 더욱 강렬해졌다. 언뜻 광기가 엿보인달까.
분명 눈은 온화하고 맑기 그지 없는데 무서움이 느껴진다. 저런 게 맑은 눈의 광인이라 부르는 것인가.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나는 케이트와 함께 임시 정부 관저로 향하면서 주위를 둘러봤다. 스타비르크 사람들이 엎드려 절하고 있다.
담담한 표현이라 와닿지 않겠지만 진짜 엎드려 절하고 있다. 절이 아니라 신앙을 지닌 채 숭배하고 있는 모습.
하마터면 나라가 송두리째 날아갈 뻔한 걸 간신히 막아줬으니 이해는 한다. 하지만 이건 너무 부담스러웠다.
차라리 영웅처럼 꽃이라도 흩뿌려줬으면 좋겠다. 고요하다 못해 경건함마저 느껴지는 이 분위기가 내 숨을 턱 막히게 만들었다.
“목소리를 낼지어다······”
“침묵하지 말지어다······”
지나가면서 구절 아닌 구절을 읊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도대체 내 말을 어떤 식으로 해석한 건지 모르겠다.
그리하여 모세마냥 길을 터준 스타비르크 사람들 덕분에 관저까지 이동은 어렵지 않았다.
곧바로 복귀하기도 그렇고 시간도 시간인지라 하룻밤 정도는 머물어도 충분하다.
무엇보다 케이트가 옆에서 지켜줄 테니 안전에도 문제가 없다.
“케이트 씨.”
“네. 말씀하세요.”
“그······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암살범들은 용서할 생각은 없어요.”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어서 더 문제다. 과연 암살범들을 어떻게 처리할지 궁금해졌으니까.
과거, 악마 숭배자 암살자에게 하마터면 기습을 받을 뻔한 적이 있다. 그때 케이트가 아주 묵사발을 내놨지.
심지어 자결을 할 수 없도록 치아란 치아는 모두 박살냈다. 그것도 발차기 한 방으로 말이다.
이번에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터.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어떻게 하실 거죠?”
“피부를 전부 벗기고 소금에 절여버릴 겁니다.”
“··· ···”
너무 담담해서 순간 무슨 말을 했는지 헷갈렸다. 마실 나간다는 말투에 가까운데 내용은 살벌하다.
그러나 현재 여론을 보면 그것조차 부족할 가능성이 높다. 부디 암살 미수범들에게 명복을 빌어주자.
“그럼 동조한 사람들은요? 암살미수범은 그렇다 쳐도 다른 자들은 아니잖아요.”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벌레들은 벌레들답게 처리해야죠.”
“······처리라함은?”
“화형입니다.”
그래. 말을 말자.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이참에 극단주의자들도 모조리 박멸시킬 수 있을 테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야지.
다시 강조하지만 나는 호구가 아니다. 나를 해하려 한 사람들은 용서할 수 있어도 내 지인은 아니다.
암살미수범의 원래 목표도 리나였기에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것이다. 아니었으면 그냥 넘어갔겠지.
‘내가 넘어가도 다른 사람은 안 넘어갔겠지만.’
그리 생각하면서 걷다보니 어느새 관저에 도달할 수 있었다. 관저에는 이미 아살라가 도착했기에 수월히 들어갔다.
이미 내가 하룻밤 정도 머물고 간다는 걸 알고 있다. 내 예측이지만 성대한 환영을 펼치겠지.
“목소리를 낼지어다. 어서 오십시오, 제논 성자님.”
“··· ···”
성대한 환영이 아니라 경건한 환영이구나! 나는 알 수 없는 구절을 읊조리며 맞이한 아살라에 당황했다.
도대체 이들의 머릿속에 내 이미지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다. 설마 전생의 예수님이나 부처님급인 걸까.
정말 그런 거라면 양심이 찔리다 못해 터질 것이다. 그 분들에 비해서 내가 성자의 자격에 한참 모자라다는 걸 안다.
신이 될 수 있는 자격? 사실 그건 신앙이라기보다 ‘과학적인’ 방법에 더욱 가까워서 크게 와닿지 않는다.
여러모로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나는 초롱초롱한 눈빛의 아살라를 보며 어색히 입을 열었다.
“부담스러우니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닙니다. 반드시 그래야 합니다. 그래야 저희에게 기적을 하사한 성자님께 누가 되지 않겠죠.”
“··· ···”
틀렸구나. 나는 아살라의 말을 듣고 헛웃음을 흘릴 뻔했다.
여기에 더 압권인 건 케이트가 동조하듯이 고개를 끄덕였다는 것. 흡족한 미소가 악당처럼 느껴졌다.
더 무서운 건 둘 다 ‘진심’이라는 것. 점점 두려워진다.
“하룻밤 머물고 가신다고 하셨으니 최고의 대우를 해드리겠습니다. 케이트 추기경 님께서는······”
“안전을 위해서라도 아이작 님의 곁에 있을 예정입니다.”
“아. 그러시군요. 알겠습니다. 두 분이서 지낼 방에 안내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하기야 따로 자기에도 애매하다. 극단주의자들, 그러니까 하얀 손은 전부 체포했다만 만약이라는 게 있으니.
다만 남녀가 한 방, 그것도 서로에게 호감이 있는 사이라 무슨 일이 일어날까봐 걱정되었다.
물론 그녀가 싫다는 건 절대 아니다. 나는 그저 만약을 상정했을 뿐이다.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은혜는 체리와 함께 받을 예정이거든요.”
“그렇······ 잠깐만요. 체리요?”
내 생각을 읽었다는 건 신경 쓰지 않는다. 이상하게도 내게 호감이 있는 사람들은 내 표정만 보고 속마음을 읽더라.
하지만 체리는 아니다. 느닷없이 체리가 언급되니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네. 제가 은혜를 받을 때 체리도 도와준다고 했습니다. 듣자하니 체리는 이미 아이작 님께 은혜를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 ···”
“아닌가요?”
“그······ 네······”
도대체 어떤 대화가 오고 갔는지 짐작도 안 된다. 내가 음란마귀가 낀 건지, 아니면 체리가 거짓말을 한 건지 도통 알 수 없었다.
일단은 얼머부리며 넘어갔다. 오해는 천천히 풀어도 된다.
‘······아니면 뻔뻔하게 가?’
체리도 나에게 이성적인 호감이 있는 여인이다. 그것도 다른 여인들마저 안쓰러워할 정도로 불쌍한 여자.
무난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의미다. 물론 무턱대고 받는 게 아니라 상호합의 하에 이루어져야 될 것이다.
“아참. 성자님. 소개시켜드리고 싶은 분이 있는데 괜찮으신가요?”
하룻밤 정도 머물 방을 정했을 쯤이었다. 문득 생각난 게 있었는지 아살라가 나에게 권유했다.
소개시켜주고 싶은 사람이 있단다. 아살라 같은 지도자가 소개시켜준다니 약간 궁금해졌다.
“네. 상관없습니다. 위험한 분은 아니죠?”
“절대 아닙니다! 현자 님께서는 스타비르크를 여기까지 끌고 오신 분이라 해도 무방합니다. 저조차 그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정도죠.”
“흠?”
저 정도 반응이라니 더 궁금해지는데. 나는 한 쪽 눈을 치켜떴다.
“심지어 이번 암살마저 예측하신 분입니다. 그 분의 말씀을 들었다면 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겠죠.”
“암살미수를 예측하셨다고요?”
“네. 현자께서는 극단주의자들을 모두 처리해야 된다 하셨습니다. 저는 그 조언을 듣지 않았을 뿐.”
그 정도면 거진 예언 아닌가. 나야, 사라예보의 과정과 매우 비슷해서 예측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자라는 사람은 아니다. 도대체 무엇을 보고 그런 조언을 내렸던 건지.
“알겠습니다. 어디서 기다리면 되나요?”
“여기서 기다리시면 됩니다.”
“아살라 님. 잠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괜찮습니까?”
아살라가 현자를 부르기 위해 나가려던 찰나 케이트가 그를 잠깐 불러세웠다.
“아, 네. 상관없습니다. 현자님은 사람을 시켜서 부르면 되거든요.”
“좋군요. 그럼 잠깐 할 이야기가 있으니 자리를 만들어주세요.”
“예.”
아무래도 조국을 멸망시킬 뻔한 연합군의 사령관이어서 그럴까. 아살라는 껄끄러워하면서도 순순히 받아들였다.
군대가 물러난 이상 케이트는 총사령관이 아닌 추기경이었으니까. 그 점이 작용한 모양이다.
그리하여 아살라와 케이트가 방에서 떠나고 홀로 남게 됐다. 나는 의자에 앉아 조용히 기다렸다.
‘묘하네.’
아까 눈으로 봤던 현상이 진실인지 아직도 헷갈린다. 수많은 사람들이 내 앞에 무릎을 꿇고 경배하던 상황.
이런 말을 하기는 조금 그래도 사이비 교주가 된 느낌이다. 실제로 사이비 교주가 이랬겠지.
‘사이비라고 하기에도 애매하지?’
나는 신들이 대놓고 밀어주는 상황이다. 사이비라 한다면 도리어 그 사람들이 욕을 시원하게 퍼붓겠지.
진정한 의미의 신앙이 생긴다는 뜻이다. 그것이 부담스럽다.
똑똑똑-
상념에 잠겨 궁상만 떨고 있을 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생각보다 빨리 데리고 온 모양이다.
“들어오세요.”
덜컥-
내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문이 열린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들어온 사람을 바라봤다.
누가 봐도 ‘현자’라 칭할만한 노인이 문 앞에 당당히 서 있었다.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간달프와 비슷한 인상.
이 세상은 노인이 우대받는 경향이 강하다. 시대가 시대인지라 오래 사는 사람이 생각보다 몇 없기 때문이다.
“안녕하세요. 성함이······”
“편하게 현자라 칭하면 된다네.”
늙수레한 목소리에 역시 현자답다고 생각했다.
“거짓된 성자여.”
“······?”
진짜 현자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