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664
■ 663화. 목소리 (3) □ ᓚᘏᗢ
아살라의 케이트에 대한 첫 인상은 빈말로도 좋다할 수 없었다.
비록 전세계적으로 존경 받는 루미너스 교단의 추기경이고, 타락의 길로 빠져들 뻔한 세이비어를 구원했다지만 그게 끝이다.
그때 당시에도 스타비르크는 한창 독립 운동을 펼치고 있었으며 다른 곳에 신경 쓸 여념이 없었다.
굳이 있다면 아이작의 예언 덕분에 세이비어가 정화됐다는 걸까.
스타비르크에는 ‘현자’가 있었기에 예언가라 칭송받아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더구나 방금 전까지만 해도 연합군과 함께 스타비르크를 멸망시키려 든 사람이다. 결코 좋게 볼 수 없다.
“어떠신가요?”
“네?”
“지금 기분이 어떠신지 물어봤습니다.”
개인적으로 자리를 마련한 후에 케이트가 대뜸 저리 물었다. 아살라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가 금방 알아챘다.
케이트는 ‘성자, 제논’에 대해 묻고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앞뒤 다 잘라먹고 묻지는 않겠지.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조국에 가장 큰 위협이 될 여인이었지만, 지금은 공통된 분모를 두고 대화를 나눌 뿐이다.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조국이 하마터면 멸망할 뻔했다는 것도, 제논 님 덕분에 구사일생했다는 것도. 모든 게 꿈 같아요.”
“저희는 그것을 기적이라 부릅니다. 모두가 불가능이라 생각한 것을 이루는 것.”
“기적이라······ 그것밖에 설명을 더 못하겠네요.”
기적을 제외한 다른 단어로 표현 할 수 없었다. 스타비르크가 공공의 적이 된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으니.
모두에게 버림받은 상황에서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준 것이 바로 아이작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마치 부모처럼 쓴소리를 하고 다음부터 잘하자는, 진심어린 조언과 격려를 나눠줬으니.
스타비르크 민족들에게 구원자를 넘어선 성자 그 자체인 것이다.
“아살라 님도 들었다시피 아이작 님께서는 신들께서 데려오신, 그것도 다른 세상에서 온 분입니다. 말씀만 듣는다면 피와 강철이 본인의 세상이라 말씀하셨죠. 신들께서도 아무런 반응이 없으신 걸 보면 확실합니다.”
“그런 끔찍한 세계에서 오셨다니······ 어째서 그토록 목소리를 내라 외쳤는지 알 것 같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놀랐습니다. 여태까지 진실을 교묘히 밝히시더니 납득할만한 이유가 있으셨죠.”
아이작은 피와 강철의 시대 즉, 20세기가 아니라 21세기에서 온 인물이다. 2차 세계 대전을 겪은 세대가 아니라는 의미다.
그런데도 이들이 굳게 믿는 이유는 별 거 없다. 구태여 말을 하지 않은데다가 그렇지 않고서야 설명이 불가능하니까.
설령 들킨다 해도 상관없다. 우선 피와 강철 이후의 시대였으니 ‘겪었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다.
미래는 과거가 있기에 존재하는 것. 아이작은 거짓을 섞었지만 그 거짓조차 완전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나치 독일의 임팩트가 강해도 너무 강한 나머지 다른 쪽으로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가장 먼저 마족을 구원해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주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대신 목소리를 내주셨죠. 마키나의 혁명 당시에도 공장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이를 보건데 아이작 님이 가장 중요시 여기는 건······”
“목소리를 내라. 침묵하지 말아라.”
“그렇습니다. 하지만 시끄러운 소수를 강조하셨다시피 너무 큰 목소리는 경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 그런 뜻이 있었다니······ 전혀 몰랐습니다.”
꿈보다 해몽이라고, 케이트의 포교(?)에 아살라가 서서히 빠져들기 시작했다.
여기서 괄목한 점은 케이트가 진심이라는 것. 사이비처럼 욕망을 위해 포교하는 게 아니라 신앙심을 갖고 있었다.
“이에 아살라 님께 권유드립니다. 아이작 님의 말씀이 보다 더 멀리 퍼지도록, 스타비르크에 성지를 세우는 게 어떻습니까?”
“성지······ 말입니까?”
“네. 아이작 님께서 홀로 대군을 막으셨던 검문소 앞. 그곳에 성지를 세워 모두 다 함께 기도를 드립시다. 여러분을 구원해준 아이작 님에게 힘을 보탤 수 있도록. 아이작 님의 가르침이 멀리 퍼질 수 있도록.”
케이트가 두 손을 맞잡으며 부드럽게 웃어줬다. 아살라는 홀린듯이 그녀를 바라봤다.
너무 아름다워서가 아니다. 그녀의 몸에서 새어나오는 신성함을 거부할 수 없었다.
이성적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선택이다. 예로부터 ‘종교’는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힘을 가졌으니.
‘우리 조국이 단결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
스타비르크는 다른 나라에 비해서 다소 이질적인 분위기다.
루미너스 혹은 모라를 믿지 않고, 그렇다 해서 히르트를 신실하게 믿는 것도 아니다.
자기가 알아서 성장한 지역인데다가 대부분 이런 마인드였기 때문이다. 그쪽 종교가 우리에게 해준 게 뭐냐고.
각 교단 쪽에서 열심히 포교해도 스타비르크 민족은 꿋꿋이 버텼다. 이런 경향은 최근들어 더 심해졌다.
하지만 아이작은 다르다. 바로 눈 앞에서 ‘기적’을 보여줬는데 과연 누가 신앙심을 품지 않을까.
스타비르크를 더욱 강하게 단결시키는 건 물론이요, 여태까지 부족했던 부분들을 메꿀 수 있는 기회다.
“······다른 신들께서 불만을 가지지는 않습니까? 게다가 케이트 추기경은 루미너스 님을 믿고 계시잖아요.”
하지만 우려가 없는 건 아니다. 새로운 종교가 탄생한다면 기존 신들에게 크고 작은 영향이 가해질 터.
신들이 직접 데려온 영혼이니 핍박은 하지 않겠지만 서로 불편한 관계가 될 수도 있다.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비록 저는 루미너스 님의 종이지만, 동시에 아이작 님을 굳게 믿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서로 다른 종교를 믿어도 됩니까?”
“루미너스 님도 좋은 분이고 아이작 님도 좋은 분인데 어째서 한 쪽만 믿어야 하나요? 본인에게 맞는 교리를 따라 종교를 택하면 됩니다.”
“··· ···”
다른 사람도 아니고 무려 추기경이 저런 말을 하니까 설득력이 굉장하다. 그래도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다.
“그러면 어째서 아이작 님을 돕는 거죠?”
“제 사명이니까요.”
“··· ···”
이제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야 될 것 같다. 이이상 묻는 건 포기하는 게 좋겠지.
이후로 그들은 언제쯤 ‘성지’를 세울지 고민하면서 ‘문양’ 또한 고민했다. 각 종교마다 상징하는 문양이 있다.
루미너스는 태양을, 모라는 달을 본딴 문양이다. 히르트는 세계수를 상징하는 거대한 나무고.
“제논께서는 작가이시니 펜과 관련된 문양이 어떻습니까? 글을 쓰는 것 또한 목소리를 내는 일이니까요.”
“정말 좋은 생각이군요. 색상은 당연하게도 붉은색과 황금색으로 하는 게 좋겠습니다.”
혹시라도 사상으로 변질될까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아이작은 이미 세상에 여러번 기적을 선보였으니.
사상으로 변질될 위험도 없다. 종교는 사상과 다르게 주된 골자가 ‘가르침’이다.
“성지를 건설하는 건 때를 맞춰야 할 것 같습니다.”
“그건 왜죠?”
“성서가 아직 완성되지 않았거든요.”
거대한 종교의 씨앗이 스타비르크에 심어지고.
‘전부 계획대로네요.’
케이트는 순수한 광기의 미소를 지었다.
* * *
나를 보자마자 거짓된 성자라 비판한 노인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는 뭐가 재미있는지 비웃는 듯한 미소를 머금고 있다.
거짓된 성자라 부른 것도 아무런 타격이 없다. 예수님이나 부처님에 비해서 내가 한참 모자라다는 건 알고 있었으니.
다만 나에 대해 별로 좋지 않은 인상을 품은 것 같은데, 그 이유를 제대로 알고 싶다.
이 현자는 무엇이 불만이길래 이러는 걸까. 그 생각을 하는 동안 현자가 내 맞은편에 앉았다.
“아이작······ 아니, 제논이라 부르면 되겠나?”
“편하신대로 부르면 됩니다. 현자 님.”
“현자라······ 성자께서 높여 부르니 감개무량하군.”
비꼬는 실력이 장난아닌데. 열이 오르기보다는 앞뒤를 다 잘라먹은 느낌이라 어리둥절하다.
만약 조금이라도 연결고리가 있었으면 모를까, 나와 현자는 초면이다.
‘듣기만 했을 때는 진짜로 현자였는데.’
사라예보 비슷한 사건이 터지기 전, 아살라에게 건넸던 경고. 그 경고는 이 노인이 어째서 현자라 부르는지 납득시켰다.
하지만 좋았던 인상이 모두 날아가는 느낌이다. 뭐가 불만인지 알아야 대화가 통하든 말든 하지 않겠는가.
이에 나는 약간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현자에게 물었다.
“저에게 가진 불만이 상당하신 모양이네요. 듣자하니 암살 미수를 예상하셨다고 하는데.”
“불만이라······ 그대에게 만족과 불만족을 동시에 느끼고 있다면 이해할 수 있겠나?”
“애증이라는 건가요?”
“그런 셈이지.”
좋아하는데 그렇다고 마냥 좋아할 수 없고, 싫어하는데 마냥 싫어할 수도 없다. 우리는 그것을 애증이라 부른다.
뭐 때문에 나에게 애증 아닌 애증을 갖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이에 빙빙 돌리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만족하는 부분과 불만인 부분을 말씀해주실수 있나요?”
“만족하는 부분은 많다네. 피와 강철로 하여금 우리 인류가 진정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는 거지. 조금 과장되긴 했지만 말일세.”
“죄송하지만 과장 전혀 없는 순도 100%의 현실입니다.”
내가 그리 반박해도 현자는 말이 되는 소리를 하라는 듯, 피식 웃을 뿐이었다. 그리고 황당하다는 목소리로 말한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하게나. 인류를 너무 바보처럼 생각하는군. 신의 존재가 불확실해도 인류는 똑똑해질 수 있어.”
“대신 말도 안 되게 멍청한 사람들도 많죠.”
누군가 말했다. 나라를 이끌고 발전시키는 건 상위 10%에 달하는 엘리트 인재들이라고.
인터넷이 발달해도 세상에는 바보들이 너무나도 많다. 오죽하면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조차 바보들이 지천에 깔려있을 정도다.
“그렇겠지. 하지만 임팔 작전만 봐도 말이 안 된다는 건 그대도 알고 있을 텐데?”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니까요. 현자님은 군대 안 갔다 오셨죠?”
“나라를 지켜야 할 군대에 바보들이 넘쳐난다는 건가? 그것도 재미있는 이론이로군.”
똥고집이 굉장하다. 하지만 현자의 믿음과 달리 군대에는 별의별 사건사고가 터진다.
당장 아버지만 하더라도 거대한 새에게 납치당한 동료가 있다고 말했다. 그거 듣고 얼마나 어이가 없었는지.
그러나 이 사람이 시시각각 트집을 잡고 있을 수도 있다. 딱히 화가 나지는 않고 뭘 원하는지 궁금하다.
“그럼 불만은 뭐죠?”
“아까 말했듯이 그대가 거짓된 성자라는 것. 그거 하나라네. 스타비르크 민족은 거짓된 성자에게 현혹되서는 안 돼. 그래야만 하네.”
기분 탓일지도 모르지만 강조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다른 건 몰라도 나에게 현혹당했다는 말만 들어도 그렇다.
그걸 듣고나서 든 생각은 하나다. 그 생각이 들자마자 빠꾸없이 질문을 날렸다.
“혹시 현자님.”
“말하게.”
“악마 숭배자에요?”
“······진실을 알고 있는 자라고 말하겠네.”
대답이 한 박자 느린 걸 보면 확실하다. 아무래도 내가 대놓고 물어보니 살짝 당황한 모양이다.
어쩐지 스타비르크에 각 교단의 세가 유독 약하더니 이런 이유에서였나. 그러나 현자의 부추김만으로는 부족하다.
이 현자가 악마 숭배자인 것과 별개로 스타비르크 특유의 민족성이 그렇다. 마치 신들을 거부한다는 느낌이랄까.
“그럼 그 진실에 대해 알려줄 수 있나요? 듣자하니 스타비르크 민족과 강하게 연관이 있는 것 같은데요.”
“진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됐다면.”
이미 신들에게 들었는데. 아무래도 악마 숭배자는 신들의 눈 밖에 나서 알아차리지 못한 모양이다.
서로가 서로의 상황을 모르는 것이다. 이때는 최대한 모른 척해야지.
“게리오스 왕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야기가 쉽겠군. 스타비르크가 어째서 루미너스와 모라를 신봉하지 않는지 알고 있나?”
“모르죠.”
“본래부터 믿고 있던 신이 있기에 본능적으로 거부하는 거라네. 지금은 존재가 완전히 잊혀졌지만 말이야.”
그거 혹시 루미너스가 소멸시킨 신인가. 나는 눈을 깜빡거리며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현자는 내 무덤덤한 반응에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충격받았다고 착각한 모양이다.
이걸 최대한 이용하면 좋을 것 같다. 이에 볼을 긁적거렸다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누가 듣지는 않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네. 미리 대비했으니까.”
“그럼 그 신이 누구인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물론이지.”
현자는 고개를 끄덕였다가 사뭇 엄숙한 목소리로 소멸한 신에 대해 말했다.
“불과 대장장이의 신, 달로스. 우리 민족에게 축복을 내려준 신이라네.”
그 말에 내가 의아하다는 듯이 되물었다.
“드워프가 아니라요? 대장장이의 신이라면 당연히 드워프일 줄 알았는데.”
“······?”
현자는 이 새끼 뭐지라는 표정을 지었다. 여태까지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던 현자의 표정이 와르르 무너진 모습이다.
나는 그 얼굴을 보고 웃음을 참지 못해 피식 웃었다. 그리고는 놀리듯이 말했다.
“제가 그것도 몰랐겠어요? 그게 아니면 피와 강철도 못 썼겠지.”
“······혹시 동지인가?”
동지 같은 소리하네, 노망난 영감탱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