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666
■ 665화. 목소리 (5) □ ᓚᘏᗢ
신들이 패륜을 저지르는 건 워낙 많이 목격했기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다. 어찌 됐던 간에 먼 과거의 이야기였으니까.
이곳도 다를 게 없다. 따지고 보면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처럼 정치 체제만 다른 거지, 각기의 장단점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대멸망을 막기 위해 만물의 아버지를 봉인시킨 루미너스의 행동은 옳다고 단언할 수 있다.
“루미너스가 옳았다고? 무슨 근거로 말하는 건지 모르겠군. 세계의 창조주이자 만물의 아버지의 뜻을 거른 신이 옳다고 보나?”
“부모와 자식 관계에서는 옳다고 할 수 없죠. 한 명의 인격체로서 가장 하면 안 되는 패륜을 저질렀으니까요.”
이건 명확히 짚고 넘어가야 될 문제다. 신화에서 패륜이 흔하디 흔하다지만 그건 명백한 ‘잘못’이다.
그것도 사람으로서 가장 하지 말아야 될 것이 패련이다. 사회적으로 손가락질 받는 건 물론이요, 엄벌에 맞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루미너스는 잘못을 저질렀을지언정 옳은 행동을 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면 제가 하나 묻겠습니다. 만물의 아버지가 독단적으로 행한 일입니까? 아니면 신들의 동의를 얻은 겁니까?”
무엇보다 만물의 아버지가 독단적으로 결정한 사항인지 아닌지가 중요하다.
어디까지나 추측이지만 지구에서도 투표로 결정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리스·로마 신화를 비롯한 다양한 신화가 남아있지 않았을 테니까.
물론 그 과정 속에서 인류를 멸망시킨 건 넘어가자. 그런데 틈만 나면 멸망이 이루어지던 지구라 별 감흥도 없다.
“창조주이자 최고신의 결정인데 그 누가 거역한단 말인가? 게다가 루미너스는 자기 가족을 제외하고 모든 신들을 소멸시켰다네.”
“흠······”
그건 알고 있다. 루미너스가 전쟁의 신으로서 수많은 신들을 소멸시켰다는 진실.
신을 완전히 소멸시키기 위해서는 그 신을 믿는 신자를 모조리 없애야 된다. 이걸 듣고 미대 떨어진 콧수염 상위호환이라 평가했었다.
그러나 말을 들어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불과 대장장이의 신, 달로스를 숭배했다던 스타비르크 민족이 바로 그 예다.
달로스는 어떤 과정을 통해 소멸하고 스타비르크 민족은 그 존재마저 잊어버리게 된 것일까.
“죄송한데 다른 질문을 해도 될까요?”
“언제든지.”
“신이 완전히 소멸하기 위해서는 그 신을 믿는 신자가 없어야 된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스타비르크 민족은 본인이 한때 숭배했던 달로스의 존재를 완벽히 잊고 있었죠. 이건 어떻게 된 거죠?”
“스타비르크 대대로 전승된 진실이라네. 만약 잊혀진 신의 존재가 알려진다면, 루미너스가 또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
그런 거였구나. 이건 지극히 현실적인 부분이라 납득할 수 있었다.
자칫하다가는 ‘이단’으로 찍혀 스타비르크 민족이 진작에 멸족했을 수도 있다.
세이비어의 과거 행적을 본다면 불가능하지만은 않다. 마족마저 학살했다는데 답이 나오지.
‘뭔가 찜찜한데.’
평소 루미너스에 대한 호감도가 쌓여서 그런지, 아니면 현자가 못미더워서 그런지 몰라도 확신할 수 없었다.
뭐랄까. 가장 중요한 퍼즐 조각 몇 개가 군데군데 빠져있는 느낌이다.
다만 그것이 만물의 아버지와 깊은 연관이 있는 건 확실하다.
‘루미너스 님이 다른 신들을 학살하게 된 경위가 있을 테고.’
루미너스의 과거에 대한 건 거의 알려지지 않은 상황이다.
모라에게 물어봐도 때가 되면 알려주겠다는 등. 제대로 말해주지 않았다.
그나마 알고 있는 건 한때 전쟁의 신으로 군림했다는 것과 지금과 달리 바이킹처럼 풍성한 수염을 자랑했다는 것.
더 나아가 크레토스마냥 신들을 소멸시키고 세상을 멸망시켰다는 것까지. 여러모로 굉장한 과거사를 가진 신이다.
“일단 정리할게요. 창조주이자 만물의 아버지가 대멸망을 결정했고, 그걸 루미너스 님이 막으시려다가 다른 신들까지 소멸했다. 이 말씀이시죠?”
“그렇다네.”
“그럼 루미너스 님이 무슨 이유로 반대했는지 알고 계신가요?”
“모르네만.”
“······?”
이 영감탱이가 뭐라고 대답한 거지? 나는 당당하게 모른다고 답한 현자에 눈쌀을 찌푸렸다.
아까부터 개소리를 장황하게 들어놓더니 이제는 뻔뻔하다.
‘그러고보니 달로스를 숭배하지 않고 왜 만물의 아버지를 숭배하는 거지?’
이것도 이상하다. 구릿빛 피부를 보아 스타비르크 민족은 확실한데 기이할 정도로 만물의 아버지를 찬양했다.
만물의 아버지가 부활하면 달로스도 다시 탄생할 수 있다! 이런 식의 논조였다면 고개를 끄덕였을 터.
순 모순덩어리다. 현자라는 칭호가 붙을만큼 지혜로운 건 맞지만 미친 놈인 것도 맞다.
“······모른다고요?”
“그래. 허나 루미너스가 만물의 아버지를 쓰러뜨리고 세상을 멸망시킨 건 엄연한 사실이지.”
“그런 걸로 따지면 제가 살던 세상은 5번 이상 멸망했습니다. 신들도 그 사실을 밝혔고요.”
물론 너무 오래된 신화다보니 확실하지는 않다. 또한 신들끼리 합의하여 세상을 멸망시켰다는 것도 알려지지 않은 상황이다.
그럼에도 인류가 그들을 원망하는가? 절대 아니다. 오히려 기독교에는 종말을 기다리라는 구절까지 존재한다.
“이해가 안 가네요. 어째서 현자께서는 달로스가 아니라 만물의 아버지를 찬양하는 겁니까? 만물의 아버지와 관련된 진실이 드러나야 달로스도 부활할 수 있으니까? 그런 거예요?”
“그런 걸 하나하나 따진다면 대의를 이룰 수 없는 법이라네, 젊은이. 단지 우리는 새장을 부수고 싶을 뿐일세.”
“자유의지를 주신다고 하셨는데 그걸 무작정 실행하는 것도 모순이죠.”
악마 숭배자의 궁극적인 목표는 만물의 아버지 부활과 인류의 자유의지 부여다.
그 과정에서 자유의지 따위는 없다. 멸망당하기 싫다는 인류의 의지를 깔끔히 무시하는 것이다.
“방금 그대의 세상도 여러번 멸망했다고 말했지. 그러면 묻겠네. 인류가 멸망을 원해서 멸망했나?”
“··· ···”
“신이라는 건 바로 그런 존재들일세.”
하지만 현자도 만만치 않았다. 내 쪽 세상의 예시를 들먹이며 할 말을 잃게 했으니까.
신이라는 존재가 바로 그런 것이다. 인류를 애완동물 같은 존재로 여기며 사랑을 주되 동급으로 여기지 않는다.
설령 ‘가족’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진정한 의미의 ‘동등’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이 어째서 신이라 숭배받는지 생각하자.
같은 인류끼리라면 몰라도 무려 신이었기에 의미가 없어져버렸다. 상식을 한참 넘어선 초월적인 존재들.
“만물의 아버지이자 바다의 신께서는 이 세상에 모든 생명을 탄생시켰다네. 그런 분이라면 당연히 모든 생명의 끝을 결정할 권리를 갖고 있지. 자네도 동의하지 않는가?”
“아뇨.”
“어째서인지 한 번 묻고 싶군.”
너무 흔한 클리셰라서요. 나는 그 말을 하고 싶었으나 꾹 다물었다.
수많은 악신, 그것도 창조주에 해당하는 악역들이 대개 저런 말을 하는 편이다.
자신이 너를 탄생시켰으니 너의 끝도 내가 직접 정하겠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물론 대부분 역관광당하며 둘 중 하나로 귀결된다. 본인의 실수를 참회하거나 아니면 끝까지 추하게 사라지거나.
“그런 거면 사랑이 왜 있고 권리가 왜 있겠습니까? 하다못해 인류도 부모가 자식을 죽이면 쌍욕을 하는 마당에 신이라고 다를 게 있겠어요?”
“만물의 아버지께서는······”
“신앙이 뭔지 알고 말하고 있긴 해요? 그건 신이 아니라 그저 힘만 강한 폭군입니다. 나치 독일의 히틀러 또는 소련의 스탈린이랑 다를 게 하나도 없어요.”
“······방금 뭐라고 그랬나? 히틀러? 아니, 스탈린?”
히틀러와 스탈린이 굉장한 임팩트를 주긴 준 모양이다. 현자가 표정을 완전히 일그러뜨렸으니까.
아슬아슬했던 주도권 싸움이 이쪽으로 넘어온다는 게 느껴졌다. 나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신과 인류의 격차가 크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이건 부정할 수 없어요. 하지만 신과 인류는 서로 상생하는 관계입니다. 신은 인류에게 철학을 부여하고, 인류는 그런 신을 숭배하고 존중하죠.”
“글쎄. 피와 강철을 봤을 때 큰 의미가 없는 것 같네만. 상호존중 같은 건 없어 보이는데?”
“그렇게 따지면 신의 존재 자체가 필요없죠. 존재가 불확실한데 신앙심을 가지는 이유. 그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말이 있다. 과학이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신앙과 거리가 멀어진다고.
하지만 그렇다 해서 종교가 사라질 일은 절대 없다. 인류가 멀쩡한 이상 신은 반드시 존재할 수밖에 없다.
인류는 거친 자연 속에서 살아가기에 너무 나약한 존재고, 의존할 대상이 필요하다. 그 존재가 바로 신이라는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다.
“물론 만물의 아버지께서 성공적으로 세상을 멸망시켰다면 모두 상관없는 일이겠죠. 현재의 신들께서 만물의 아버지의 존재를 없앤 것처럼, 만물의 아버지께서도 그들의 존재를 소멸시켰을 테니까.”
“원래 역사는 승자에 의해 쓰이는 법이지.”
“잘 아시네요. 그런데 말입니다.”
나는 진중한 목소리로 말을 끊었다. 내가 말을 끊자 현자가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지구의 최고신과 만물의 아버지는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차이점은 지구의 문화를 보고 만물의 아버지가 따라하려 했다는 것.
여기서 더 큰 차이점이 존재한다. 지구는 대종말 이후에도 수많은 신화가 소멸되지 않고 남았으며, 이 세상은 매우 적어졌다.
분명 신들끼리 ‘전쟁’이 터졌겠지. 그런데 한 쪽은 많은 신들이 살아남았으며 다른 한 쪽은 상호확증파괴마냥 박살났다.
제아무리 루미너스가 전쟁의 신이었다지만 그 많은 신들을 홀로 상대했을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만물의 아버지가 ‘공공의 적’이 된 게 아닌 이상에야 말이 되지 않는다.
이 추측들을 보았을 때 나오는 결론.
“만물의 아버지께서는 지혜로웠겠죠. 현자님처럼. 그래서 지구의 신들이 찾아왔을 때 그들의 문화에 감격한 거고요.”
“그 사실까지 알고 있었나?”
“네. 물론이죠. 다만······”
족장제를 표방하는 원시인들에게 민주주의를 강제로 도입해봤자 반발이 일어나는 것처럼.
“지혜와 별개로 ‘현명’하지는 못한 모양이네요.”
만물의 아버지는 너무 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