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668
■ 667화. 이번만입니다 (2) □ ᓚᘏᗢ
나는 황금색 손바닥 밑에서 바둥거리는 현자를 멍하니 쳐다봤다. 당최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스타비르크는 루미너스와 모라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고, 더 나아가 현자는 이곳에 올 때부터 판을 짜놓았다.
사실상 도망칠 구석이 거의 없었다. 현자와 1대1 면담을 하는 것부터가 퇴로란 퇴로는 전부 막혔다는 뜻이니.
애당초 현자와 대화를 나누기 전에 그가 악마 숭배자, 그것도 고위층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
안일한 게 아니라 운이 없다고 봐야겠지. 신의 눈조차 피하는 게 악마 숭배자다.
말을 질질 끈 것도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다. 케이트나 아살라가 온다면 어떻게든 해결했겠지.
‘그런데 저건······’
위기에 순간에서 타종 소리와 함께 현자를 짓누른 황금빛 손바닥. 손바닥의 크기만 보더라도 어마어마한 수준이다.
손바닥에 비해 현자의 크기는 겨우 새끼 손가락만하다. 빠져나갈 구멍 같은 건 전혀 없다.
설마 루미너스가 위기를 느끼고 온 건가 싶었을 때, 어느 한 목소리로 공간 전체에 울려퍼졌다.
[어리석은 중생이로구나. 자고로 깨끗한 마음에서 진정한 신앙이 나오는 것이거늘.]엄격한 말투와 달리 중저음의 목소리가 상당히 인상적이다. 듣기만 해도 마음이 평온해진다는 게 이런 건가.
나는 그 목소리를 듣고 잠깐 멍해진 것도 잠시, 그 말을 듣고 화들짝 놀라 앞을 다시 쳐다봤다.
황금색 손바닥과 그전에 들렸던 타종 소리. 마지막으로 목소리에서 언급된 ‘중생’.
이것들을 하나로 종합했을 때 누구인지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부처님?”
[오랜만이구나. 아이야.]현자에게 따끔하게 한 마디했을 때와 달리 세상 온화한 목소리로 반겨주셨다.
정말로 내가 알던 그 부처님이 맞는지 혼란스럽다. 지난번 아리엘의 실수로 신성을 섭취했을 때 딱 한 번 봤다.
심지어 얼굴을 대면한 게 아니라 멀리서 지켜봤을 뿐이다. 악마 숭배자의 농간으로 내 영혼이 넘어왔을 때의 상황 말이다.
‘······설마 이 세상 멸망하는 건가?’
루미너스가 말했다. 지구신들이 이곳으로 넘어오는 건 세상이 멸망하는 것과 같다고.
정황상 내 목숨이 위험해지자 난입한 것으로 추측되는데 간담이 서늘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건 아니란다. 그들의 시야에서 완전히 벗어난 상황에서는 우리가 직접 나설 거라고 했단다.]“끄으으윽······!”
설명하는동안 현자가 앓는 소리를 낸다. 아직까지 여래신장에 묶여 아무것도 못하는 상태다.
[다만 우리가 직접 나서는 경우는 이처럼 한정적인 경우밖에 없을 거란다. 저 자는 너를 완전히 취하기 위해 술수를 부렸지만 우리가 개입할 여지를 만들었거든.]“지금 이 공간이 현실과 다른 공간이라는 건가요?”
[네가 태양과 달과 만날 때 드나드는 공간과 비슷한 구조라고 보면 된단다.]태양과 달이라함은 루미너스와 모라를 말하는 건가. 부처님답다면 부처님다운 비유다.
아무튼 생각보다 현자의 능력이 무시무시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시간이 걸리긴 해도 공간을 바꿀 수 있다.
만약 부처님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발악에 지나지 않았겠지.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 경우는 앞으로 거의 없을 거란다. 지금은 특수한 경우거든.]나는 물론, 신들조차 예기치 못한 사태를 말하는 것 같다. 그 누가 스타비르크에 악마 숭배자 고위 간부가 있을 거라 생각했겠나.
더구나 현자는 스스로 악마 숭배자임을 밝히기 전까지만 해도 ‘현자’ 역할을 충실하게 이행했다.
잊혀진 불과 대장장이의 신, 달로스에 대한 이야기도 말하지 않고 얌전히 때를 기다렸다.
포교를 하고 싶어도 민족 단위로 박힌 거부감 때문에 힘들었겠지. 상황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것이다.
“그럼 저 사람은······”
“끄아아아악!!”
현자는 어떻게 처리하는 건지 물어보려던 찰나, 현자가 전에 없던 비명을 터뜨렸다.
화들짝 놀라 그를 쳐다보니 어느새 여래신장은 사라져 있었다.
대신에 은색으로 빛나는 십자가 모양의 기운이 각각의 손발에 꽂혀있을 뿐.
저건 누가 했는지 알 것 같네. 이에 조심스레 하던 말을 이었다.
“······어떻게 되는 건가요? 직접 처벌하시는 건가요?”
[거기까지의 권한은 없단다. 우리가 떠나도 능력을 펼칠 수 없도록 조치하는 거지.]그렇구나. 하긴 지구신들이 떠나가는 즉시 현자가 나에게 달려들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걸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조치를 하고 떠나는 게 마음 편할 터.
[떠나기 전 약간의 대화를 나누는 것도 좋겠지. 그렇지 않느냐?]부처님의 온화하고 다정한 목소리가 아닌, 근엄함과 자애로움이 동시에 묻어나오는 목소리가 들렸다.
현자의 손발에 꼬챙이처럼 꽂힌 은색 십자가 기운을 보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지구에서 70% 이상이 믿는 종교의 주인. 십자가에 매달려 모든 죄를 짊어진 성자.
“전 상관없어요. 저와 무슨 말을 나누고 싶은지는 모르겠지만.”
[너도 나처럼 십자가에 매달려 죄를 짊어졌으면 좋았을 것을. 이 말을 하려고 했다.]“······처음부터 무시무시한 농담을 하시네요.”
내가 떨떠름하게 말하자 호탕한 웃음소리가 공간 내를 가득 메웠다.
성서에서도 힘이 느껴지는 구절이 많았는데 실제 성격도 강직한 모양인 것 같다.
반대로 부처님은 깨달음을 얻은 자라는 호칭처럼 다정한 성격이시다. 물론 내가 그리 생각해서 그런 걸 수도 있다.
같은 종교 내에서도 다양한 해석이 갈리는데 내가 어찌 확답할 수 있을까. 이것만큼은 주의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저와 무슨 말을 나누고 싶으신 건가요?”
[진짜 성자가 된 기분이 어떻느냐? 조만간 신성도 완성될 거라고 보고 있다.]“그냥······ 떨떠름한 기분이네요. 두 분께서는 어떠셨어요? 어떻게 해야 진정한 성자가 될 수 있는 거죠?”
종교적 해석으로 갈리긴 해도 예수와 부처 모두 인간의 몸으로 성자가 되고, 더 나아가 하나의 종교가 된 분들이다.
양심이 찔리다 못해 터진 수준이지만 대선배격이라고 봐야되겠지. 그래도 궁금한 건 궁금한 거다.
[깨달음을 얻으면 된단다.] [난 아버지의 말씀을 전달했을 뿐.]“아······ 네······”
그들답다면 지극히 그들다운 대답만이 돌아왔다. 실질적인 조언이 하나도 없다.
[그러니 주의하려무나. 만일 네가 정말로 하나의 종교로 탄생하게 된다면, 옳지 못한 교리를 가르치는 건 최대한 피하렴. 최고신께서도 그것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으니까.]“최고신께서요?”
[아버지의 이름을 외치며 순리로 돌아가는 이들이 많아서 그래.]이슬람, 그것도 아주 유명한 극단주의자들을 말하는 모양이다.
가끔 가다가 종교가 문화가 아닌 사상으로 자리잡는 경우가 있는데, 이슬람이 딱 그런 경우다.
물론 다른 종교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종파가 있긴 하지만 유달리 눈에 띄는 편이다. 그 절정이 9·11 테러고.
다른 건 몰라도 그것만큼은 반드시 막아야 된다. 나는 좋은 문화를 퍼뜨리고 싶지, 세상에 온갖 분쟁을 부르기는 싫다.
“주의하도록 할게요. 아, 그리고 하나 더 물어봐도 될까요?”
[묻거라.]“만약 제가 정상적으로 지구에서 살았다면 어떤 사람이 되나요?”
이게 가장 궁금하다. 지금은 신성을 얻어 진정한 의미의 성자로 점점 다가가는 중이다.
명성은 두말할 것도 없으며 감히 건드릴 수 없는 존재로 거듭나기 직전이다.
반면에 지구에서 살았다면 어땠을까. 모라는 내가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바꿀 운명이었다고 말했다.
완전히 사라진 미래라 상세히 알려주기는 힘들지만 이분들은 잘 알고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 질문한 것이다.
[단 한 번의 연설로 나라의 모든 군인이 널 따른다면 믿겠느냐?]“······혹시 쿠데타라도 모의한 건가요?”
저도 모르게 그 질문이 바로 나와버렸다.
나치 독일의 군부조차 처음에는 히틀러를 믿지 않았다. 프랑스 6주라는 대기적을 한 번 맛보고 나서부터 따랐지.
그런데 대부분의 군인들이 나를 따랐다니 믿기지가 않는다.
[그건 아니란다. 군인들의 권력이 강해지는 때가 언제라고 생각하니?]“그거야······ 전쟁이 터졌을 때겠죠.”
모라에게 들은 적이 있다. 조만간 지구에 3차 세계 대전이 터질 거라고.
그 후로 선출될 대통령이 독재자적인 면모를 보이긴 해도 갈등을 모두 수습할 거라고 말이다.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한 가정의 가족으로 살아갈지, 아니면 조국을 위해 제 한 몸 던지는 군인으로 살아갈지. 여러분에게 맡기겠습니다. 그 누구도 여러분을 비난하지 않을 겁니다. 그 누구도 여러분을 모욕하지 않을 겁니다. 무엇이든 간에 여러분은 용기를 갖고 선택하신 겁니다.]불현듯 전혀 듣지 못한 목소리가 공간 내에 울려퍼졌다. 부처님도, 예수님도 아닌 전혀 다른 남자의 목소리다.
강한 호소력이 담긴 목소리가 인상적이다. 연설의 내용도 상당히 울림이 있는 수준이고.
[연설의 극히 일부만 가져온 거란다. 어떠니?]“······제가 정치인이라도 되나요?”
[보기 드물 정도로 훌륭한 정치인이 되지.]진짜로 정치인이 되는 거구나. 아마 저 연설은 전쟁 직전에 꺼낸 연설인 듯싶었다.
물론 앞뒤 상황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 자세한 건 모른다. 단지 연설로 군인들의 마음을 움직인 건 확실하다.
[여기까지밖에 안 되겠구나. 남은 건 이 세상의 빛과 어둠에게 물어보렴.] [즐거운 시간이었다.]물어볼 게 많은데 벌써 가시는 모양이다. 이에 내가 인사를 어떻게 해야 될까 고민하는 동안이었다.
어느새 검푸른색으로 가득 찼던 공간이 스멀스멀 사라지기 시작했다. 현자의 손발에 꽂혀있던 은색 십자가 기운도 모두 사라져 있었다.
[다음에는 얼굴을 마주 보고 대화했으면 좋겠구나.]이윽고 부처님의 말씀을 마지막으로, 원래 있던 방으로 되돌아왔다. 현자는 여전히 쥐죽은 듯이 누워있다.
워낙 순식간에 지나간 일이라 어안이 벙벙할 때쯤, 내 정신을 일깨우는 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똑똑똑-
[아이작 님. 케이트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케이트였다. 나는 저도 모르게 들어오라고 대답했다.
이윽고 케이트를 비롯하여 아살라가 안으로 들어오고.
“이 무슨······?”
“혀, 현자 님! 현자 님께서 왜······!”
죽은 것마냥 널부러져 있는 현자를 보며 당황을 숨길 수 없었다.
나는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될까 고민하다가 진실에 가까운 거짓을 입 밖으로 꺼내들었다.
“······천벌을 맞으셨습니다.”
다른 세계의 신이어도 천벌은 맞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