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671
■ 670화. 불과 대장장이 (2) □ ᓚᘏᗢ
현자에게 들었을 때부터 의아함이 들었다.
어째서 현자는 소멸된 것으로 추정되는 불과 대장장이의 신, 달로스의 존재를 알고 있을까.
또한 스타비르크 민족은 어째서 대멸망으로부터 존속을 유지할 수 있던 걸까. 무언가 앞뒤가 안 맞는다.
더구나 수인과 드워프는 다른 신이 창조한 것으로 추측되는데 그들은 멀쩡히 존재한다.
“전에 모건 왕이 저에게 말했어요. 신을 완전히 소멸시키기 위해서는 그 신을 믿는 신도들을 전부 소멸시켜야 된다. 신을 믿는 자가 없으면 의미가 없다. 이런 식이죠.”
“맞아.”
“하지만 스타비르크의 현자, 아니지. 악마 숭배자는 불과 대장장이의 신을 기억하고, 심지어 이름까지 밝혔습니다. 존재가 완전히 소멸되지 않았다는 뜻이에요.”
내 설명에 모라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더이상 부정할 생각도 없는 모양이다.
하기야 너무 멀리 와버린 상황이다. 이제 와서 거짓말을 해봤자 모순이 더 늘어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이 세상의 신들은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 그러나 거짓말을 못하는 것과 다르게 돌려서 말하는 건 가능하다.
여기서 모순점이 자주 발생하다보니 결국에는 진실밖에 말하지 못할 것이다. 애당초 여기까지 도달한 사람이 거의 없겠지.
“신이라는 게 신자들이 사라졌다해서 소멸되는 건가요? 아니면 기억하는 신자가 없더라도 특정 조건만 충족한다면 희미하게나마 유지할 수 있는 건가요?”
“우선 불과 대장장이의 신, 달로스의 소멸 여부부터 알려줄게. 달로스는 완전히 소멸한 게 아니야.”
모라가 본론부터 꺼내들었다. 역시 달로스는 완전히 소멸한 게 아니었다.
하지만 이 다음에 나온 그녀의 말은 의문이 들기에 충분했다.
“신은 숭배하는 자가 없으면 존재 의의가 없어지지. 그러니 소멸했다는 말도 맞긴 해.”
“모순적인데요?”
“상징으로 남는다는 이야기야. 지금 내 의식체가 이곳에 있지만 신성은 그 차원에 그대로 속한 것처럼, 의식체는 완전히 사라졌지만 달로스의 신성은 남아있다는 거지.”
이해가 갈 듯 말 듯한 설명이다. 모라의 의식은 본래 차원으로부터 추방돼 이곳에 있다.
그럼에도 신성은 본래의 차원에 남아 신도들에게 신성력을 넣어주는 중이다.
“그럼 달로스의 신성이 남아있다는 건가요?”
“남아있긴 해도 큰 의미는 없는 수준이야. 우리는 기계가 아니라 생각하는 존재들 즉, 인격체니까. 현재 달로스를 비롯한 수많은 신들은 뇌사 상태에 빠졌다고 보면 편해.”
“뇌사 상태라······”
가장 중요한 신성이 심장이라면 의식체는 뇌인 모양이다.
심장이 멀쩡해도 뇌가 작동하지 않으면 과연 그것을 인격체라 할 수 있을까.
소멸했으나 소멸하지 않고, 소멸하지 않았지만 소멸했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상태다.
‘지구의 그리스·로마 신화나 북유럽 신화의 신들도 그런 상태인가?’
내 생각을 읽었는지 모라가 옆에서 설명을 꺼냈다.
“지구의 경우는 약간 달라. 그들은 우리처럼 전쟁을 벌였어도 급진적인 변화를 겪진 않았어.”
“그러면 정치 체제의 변화에 가까운 건가요?”
“그런 셈이지. 무엇보다 완전히 잊혀지는 것도 불가능해. 너희 세상에서 천둥번개하면 어떤 신이 떠오르니?”
천둥번개면 당연히 제우스다. 올림푸스의 왕이자 하늘의 신.
북유럽으로 따지면 토르, 인도 신화는 인드라라고 할 수 있다. 신화마다 다양하다.
“전에 말했듯이 신성은 곧 상징이야. 제우스 같은 신이 잊혀지려면 벼락의 존재를 완전히 잊어야 된다는 뜻이지. 기록이 사라지거나 왜곡되어도 존재는 사라지지 않아.”
“복잡한 것 같으면서도 단순하네요.”
다시 말해 신들이 ‘완전한’ 소멸을 이루기에는 힘들다는 뜻이다.
심장만 남아 겨우겨우 생명을 연장한다고 해도 그 존재는 뚜렷하다.
“신성의 종류는 대개 두 가지로 나뉘어. 탄생 혹은 창조.”
“둘 다 같은 말 아닌가요?”
“전혀 달라. 탄생은 생명과 생명 사이에서 등장하는 거고, 창조는 대장장이가 물건을 만드는 것과 같은 행위니까. 나와 오빠가 탄생형 신앙이고 너가 창조형 신앙이지.”
모라의 설명은 이렇다. 바다의 아버지와 자연의 어머니 사이에서 수많은 신들이 탄생했다.
가장 먼저 빛과 어둠인 루미너스와 모라가 탄생하고, 그외에 하늘과 땅, 비, 구름, 천둥, 풀, 불 등등.
다양한 신들이 등장해 각기 고유의 권능을 지녔다. 소위 ‘자연’에 가까운 것들이 탄생형 신화인 셈이다.
그리고 이것들이 그 신의 ‘본질’이다.
“불과 대장장이의 신, 달로스의 본질은 엄연히 불이야. 대장장이는 이를 숭배하는 필멸자들이 붙인 거지. 내가 어둠, 안식, 평화를 상징하는 것처럼 신마다 상징하는 건 많아.”
“그러면 가정이나 행복, 승리 같이 자연과 거리가 멀거나 추상적인 건요? 자연과 연결돼 있다고 하기에도 애매하잖아요.”
“그것도 탄생이야. 너처럼 필멸자가 신앙을 갖고 신격화가 되는 경우가 창조인 거고.”
다시 복잡해질 것 같아 넘기기로 정했다. 지금 중요한 건 이게 아니었으니.
“만약 숭배하는 자들이 늘어난다면 달로스처럼 뇌사 상태에 빠진 신들이 부활할 수 있나요?”
“가능해. 하지만 어째서 우리가 안 하는지는 말 안 해도 알겠지?”
“어렵다는 거군요.”
“단순히 어려운 정도가 아니야. 천사의 경우처럼 아예 시도조차 힘든 경우야.”
“음······”
예전부터 궁금한 부분이긴 했다. 바다의 신이자 창조주인 만물의 아버지가 부재 중인 것과 천사는 대체 무슨 관계인 거냐고.
히르트도 따지고 보면 만물의 아버지의 자식이라 할 수 있다. 바다가 탄생한 후에 자연이 등장했으니까.
그러나 그것과 별개로 만물의 아버지의 능력이 무엇이길래 탄생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건지 모르겠다.
“능력은 아니야. 원래 천사는 신이라면 누구든지 탄생시킬 수 있어. 이건 저주지.”
“저주요?”
“응. 하나는 거짓을 고할 수 없는 저주. 다른 하나는······”
모라는 대답을 꺼내려다 말고 말을 흐렸다. 고민하는 표정이 얼굴에 여실히 드러나 있다.
나는 그녀가 입을 열 때까지 잠자코 기다렸다. 내가 재촉해봤자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그렇게 얼마나 기다렸을까. 모라는 한숨을 푹 내쉬더니 저주의 정체를 밝혔다.
“창조할 수 없는 저주야. 그것이 천사든, 종족이든, 다른 무엇이든 간에 말이지.”
“그것이 다른 신을 부활시킬 수 없는 이유군요.”
예상했던 것보다 크지는 않다. 하지만 모라는 전혀 아니었던 모양이다.
“저주는 이 세상의 멸망과도 직결돼 있어. 너희 지구에서는 신들이 매우 많지?”
“네.”
“하지만 우리는 숫자도 별로 없는데다 창조조차 불가능해. 외부의 신이 침략하는 순간 속수무책으로 당한다는 뜻이야.”
인구 감소로 인한 국방력 약화인 건가. 그리 생각하면 꽤 심각한 사안이다.
제아무리 무기가 좋아도 그걸 운용할 수 있는 병력이 없으면 의미가 없다.
“다행히 지구의 신들이 자비를 베풀어서 멀쩡한 거지, 다른 곳이었으면 진작에 잡아먹혔을 거야.”
“그리 되면 이 세상의 인류는 어떻게 되는 거죠?”
“본질마저 완전히 잃어버렸으니 토착 생물은 모조리 사라지고 그 신들에 맞는 신인류가 탄생할 거야. 아니면 그냥 먹고 버리던가.”
신과 연관된 문제라 그런지 스케일이 장난아니다. 나라가 멸망하는 수준을 한참 넘어섰다.
지금도 노심초사하고 있지 않을까. 이 세상은 욕심 많은 외부 세력에게 당하기 딱 좋은 상황이다.
루미너스가 강하긴 해도 혼자서 막기에는 큰 무리가 따를 터.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너의 신성을 완성시키기 위해 도와주는 것도 이것 때문이야. 너는 저주를 피한, 창조된 신앙이니까.”
“저보고 아이를 순풍순풍 낳으라는 거네요.”
“응.”
“그전에 원인을 해결할 생각은 안 하셨어요?”
만물의 아버지와 신들은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사실상 회복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방치했다면 그건 그것도대로 문제다.
이에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묻자 모라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누가 듣는지 확인하는 모양새다.
뒤이어 인상을 찡그리며 눈을 감았다. 아까보다 더 깊은 고민에 빠진 모습이다.
“으으······ 말해줘도 될까······ 나중에 혼날 거 같은데······”
“··· ···”
“······아냐. 말하는 게 낫겠다. 후우.”
무어라 중얼거리던 모라가 숨을 몰아쉬며 나를 똑바로 쳐다봤다.
보석처럼 반짝거려 신비로운 분의기를 드러나는 검은색 눈동자.
그 눈동자 안에 내 얼굴이 거울처럼 비추어졌다.
“해결할 방법은 있어. 하지만 그 방법은 본인이 가장 거부하고 있을 거야.”
“본인이라면······ 설마 루미너스 님?”
“응.”
아까 오빠라고 중얼거리더니 정말로 루미너스와 연관이 있는 모양이다.
모라는 내가 고개를 끄덕거리자 재차 눈을 질끈 감았다. 보아하니 어떻게든 루미너스와 대화하려는 것 같다.
그러나 의식체가 여기 있는 이상 루미너스와 대화하는 건 불가능하다. 신전에 가서 대화하는 것밖에 없다.
“정 안 되면 루미너스 님에게 직접 허락을 받는 것도 나쁘지 않는······”
“그러면 나 집에 영영 못 돌아가.”
“······대체 뭐길래?”
도대체 무슨 방법이길래 모라가 영원히 집 밖으로 쫒겨나간다는 걸까.
어이가 없기도 하지만 궁금한 건 똑같다. 이에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제안했다.
“혹시 루미너스 님이 우리를 보고 계시나요?”
“신전이 바로 옆에 있는데 당연히 보고 있겠지.”
“그럼 평생 쫒겨날 각오로 말씀해주세요. 제가 책임질게요.”
“자기 일 아니라고 막 말하는 건 아니지?”
나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솔직히 잉여신 한 명 책임지는 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모라가 어디 빨빨빨 돌아다닐 성격도 아니고 앞으로도 쭉 저택에 박혀있을 예정이다.
모라도 그 생각을 했는지 반쯤 포기했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저주를 해결할 방법은 있어. 대신 조건이 엄청나게 까다로워서 그래.”
“그 조건이 뭐죠?”
“최고신에 준하는 신격을 얻는 것. 참고로 신성이 아니라 신격이야.”
미친듯이 빡세다. 신격이라 강조한 걸 보면 직위 비슷한 모양이다.
제우스가 크로노스를 쫒아내면서 최고신에 등극했듯이 말이다.
차이점은 루미너스는 최고신을 쫒아냈음에도 여전히 그 밑에 머물러 있다는 것.
여태까지 히르트가 최고신에 속해있으면서도 대우가 애매모호했는데 이유가 있었다.
“우리 오빠는 전쟁 이후 성자로 격하된 탓에 타이밍을 놓쳐버렸어. 본인이 원하지도 않았고.”
“어째서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거든. 세상을 모조리 파괴한 주제에 너무 뻔뻔한 거 아니냐고 자조했어.”
욕심도 없으셔라. 그냥 당당하게 최고신 자리에 앉으시지.
어쨌거나 내가 신성을 얻고 아이를 순풍순풍 낳아야만 이 세상의 미래가 안전해진다는 뜻이다.
그 생각이 드니 뭐랄까… 이 신들의 무책임함이 느껴진달까. 약간 괘씸하다.
“무, 무책임하다니! 너도 우리 오빠 마음을 이해해줘. 과거가 조금 복잡하단 말이야.”
“네. 네. 알겠어요. 그런데 모라 님.”
“왜, 왜?”
모라가 말을 더듬거리며 묻는다. 겁에 질린 표정으로 하여금 더 괴롭히고 싶은 마음이 든다.
물론 진짜로 괴롭혔다가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잠시 묵혀두자. 지금은 루미너스에 대한 것부터다.
“만약 세상 사람들이 루미너스 님을 더 크게 신봉하여 최고신으로 대우하면, 그때는 어떻게 되는 거죠?”
“그럴 일은 없지만 최고신이 될 수밖에 없겠······ 잠깐만.”
무언가 눈치챈 게 있는지 모라가 입을 떡 벌리며 경악했다.
본래의 차원에서 추방당해도 그녀는 내 머릿속을 읽을 수 있다. 지금쯤 내 계획에 대해서도 파악했겠지.
나는 그저 미소를 짓고 있을 뿐이지만 말이다.
“제가 살던 지구에는 비슷한 이야기가 하나 있어요. 어쩌면 정말로 유사할지도 모르겠네요.”
난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제논 일대기 집필 시절 루미너스가 입 한 번 잘못 놀려서 성자 취급을 받기 시작했던 것을.
“최고신의 아들이 최고신의 만행을 저지하고 세상을 다스린다.”
정말이지 단순한 서사지만.
“이 얼마나 훌륭한 서사에요?”
‘신화’로 둔갑된다면 그 파장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