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672
■ 671화. 불과 대장장이 (3) □ ᓚᘏᗢ
지구에서 꽤 유명한 게임 하나가 있다.
복수심을 원동력 삼아 신들을 모조리 쳐죽여서 한 세상을 멸망시킨 신의 이야기.
그 신이 과거의 잘못을 속죄하며 살아가다가 본인의 아들은 물론, 본인마저 완벽한 결말을 맞이하는 이야기.
흔치 않은 이야기다. 우선 단순히 신들을 전부 개작살내는 스토리부터 굉장한 임팩트를 선사한다.
그러한 이야기가 이 세상에는 존재했다는 것이 차이점이라면 차이점이다.
“루미너스 님을 최고신의 자리에 강제로 앉히면 그 저주도 없어지는 거잖아요. 그렇죠?”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니? 네 머릿속을 뒤져봐도 감조차 안 잡혀.”
“그냥 그런 게 있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어쨌거나 그리 해도 상관없죠?”
“내가 아니라 오빠한테 물어봐. 나에게 권한은 없으니까.”
반쯤 포기했는지 모라가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대답했다. 그러나 이번 프로젝트에는 그녀의 도움이 필요하다.
때마침 본래 차원에서 추방당했겠다, 일일이 신전으로 갈 필요도 없어졌으니 모든 게 완벽하다.
“모라 님의 도움도 필요해요. 저는 여러분의 과거를 모르니까요.”
“다른 사람의 과거를 마음대로 말해주는 것도 예의에 어긋나는 거 알지?”
“지난번에 도와주신다고 하셨잖아요. 루미너스 님도 허락하셨고.”
“그래. 그랬었지. 근데 왜 나냐고.”
“앞으로 저택에 남아있을 테니까요. 아니면 나가실래요?”
현재 모라는 오도가도 못하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나 다름없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신변을 위탁할 수도 없다. 힘과 권능을 잃었다지만 무려 신이다.
나는 신의 영향권에서 벗어났기에 이런 식으로 놀릴 수 있는 거지, 다른 사람은 쩔쩔맬 것이다.
언제나 숭배받았던 모라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겠지. 하지만 민폐라는 건 자각하고 있다.
“너어는 진짜… 얘가 언제부터 막돼먹었지?”
“모라 님께서 저에게 되도 않는 고행을 시켰을 때부터?”
“에휴. 알았어. 앞으로 열심히 알려줄 테니까 그만해.”
결국 모라가 먼저 백기를 들었다. 사실상 내가 이기는 거나 다름없는 싸움이다.
모라의 협조를 받고나서 어떤 이야기를 구상할까 생각하는 도중이었다.
똑똑똑-
[아이작 님. 케이트입니다. 잠깐 들어가도 되겠습니까?]신전에서 현자를 고문… 이 아니라 심문하고 있을 케이트가 내 방으로 찾아왔다.
현자가 악마 숭배자, 그것도 고위 간부라는 사실은 그녀를 포함해 극소수만 알고 있다.
따라서 심문 또한 비밀리에 진행되고 있으며 지금쯤 정보를 뽑아내느라 한창 바쁠 시간이다.
‘뭔가 알아낸 거라도 있나?’
나는 대답하기 전 그녀에게 잠깐 기다리라고 부탁했다. 이어서 모라를 쳐다봤다.
저택 내 가족들은 몰라도 케이트는 모라의 존재를 모른다. 더구나 그녀는 루미너스의 신자다.
직접적인 충돌은 없겠지만 괜한 혼란을 유발시킬 수 있기에 만나도 되는지 허락을 구한 것이다.
“정체를 밝혀도 좋고, 안 밝혀도 상관없어. 네 마음이야.”
“알겠습니다. 케이트 씨. 들어오셔도 괜찮습니다.”
허락을 내리자마자 케이트가 실례하겠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문을 열었다.
문을 여니 갑옷이 아닌 새하얀 수녀복을 입은 그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 세실리 님도… 음?”
침대 위에 앉아있던 모라를 세실리로 착각한 모양이다. 새까만 머리카락 때문에 헷갈릴만도 하다.
하지만 눈동자마저 검은색에다가 결정적으로 특정 부위가 작다.
지금 케이트의 시선이 아래쪽으로 향한 걸 보면 같은 생각을 한 듯했다.
“나도 큰 편이거든? 그 애가 말도 안 되게 큰 거야.”
모라가 불평 아닌 불평을 들어놓든 말든 케이트가 입을 열었다.
“세실리 님이 아니셨군요. 이 분은 누구시죠?”
“우선 제 말이 진실이라는 것만 알아줬으면 합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무려 신이다. 케이트가 매일매일 기도를 올리는 루미너스와 같은 신.
설명하는데에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아 저런 식으로 밑밥부터 깔 필요가 있다.
“아. 혹시 아이작 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을 분이십니까? 그런 거라면 이해하겠습니다.”
그런데 설명을 하기도 전에 케이트가 결론을 내러버렸다.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건 덤.
내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대체 내 이미지가 어떤 식으로 박혔길래 저런 결론을 내리는 걸까.
“전에 세실리 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아이작 님은 너무 착한 나머지 억울한 사람은 쉽게 지나치지 못한다고요. 아델리아 님께서도 그러셨고 체리 님도 그러셨죠. 저 분도 그런 분이군요.”
“아니. 제 말 좀 들어보세요. 이번에는 그런 게 아닙니다.”
그리 답하면서 모라를 힐끔거렸다. 그녀도 어이가 없긴 매한가지라 황당하다는 표정이다.
그녀도 케이트에게 악의따위는 하나도 없다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지금은 오해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이 분이 어떤 분이시냐면…”
참고로 가족들에게는 대충 설명했다. 사정이 있으셔서 당분간 저택에서 지낼 거라는 식으로.
하지만 케이트에게는 거짓말을 하기가 애매하다. 루미너스와 직접적인 대화가 가능한 사람이라 물어볼 수도 있었으니까.
그래서 모라의 예언으로 내가 스타비르크로 향했다는 것까지 모두 알려줬다.
원래라면 전쟁이 일어나야 되겠지만 모라 덕분에 모두 없던 일이 되었으며 더 나아가 차원에서 추방당했다는 것까지.
루미너스의 잘 차려진 밥상이 뒤집어졌다는 건 얘기하지 않았다. 아직 세상은 루미너스가 전쟁의 신이라는 걸 모른다.
“…해서, 모라 님의 의식체가 여기 있는 겁니다. 예언을 내릴 수 없을 뿐, 신성력을 나눠주는 건 가능해요.”
“그렇군요. 무슨 이야기인지 알겠습니다. 세실리 님께서는 이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아뇨. 세실리 누나는 아직 모르고 있어요.”
세실리는 현재 바쁘게 돌아가는 헬리움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헬리움이 교국이 된다는 소리까지 있어서 몸이 열개라도 모자랄 것이다.
웃긴 점은 그들이 신봉하는 여신이 내 저택에 있다는 거지. 과연 세실리가 이걸 알게 되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기대된다.
“결론적으로 모라 님께서 아이작 님을 도와주신 셈이군요. 정말 감사합니다.”
“그정도는 아니야. 전부 네가…”
모라는 말을 하다가 중간에 멈췄다. 입이 조개처럼 다물린 게 퍽 귀엽다.
그나저나 뭘 보고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건지 모르겠다. 나는 그녀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케이트가 환하기 짝이 없는 미소를 짓고 있을 뿐이다.
“…아냐. 그냥 말 안 할게.”
“감사합니다.”
무슨 이야이가 오고 갔길래 저러는 건지 모르겠다.
두 사람 사이에 뭔가 오고 가긴 했는데 감조차 못잡겠다.
“서럽네, 진짜… 오빠가 아끼는 애라서 뭐라 할 수도 없고…”
모라가 투덜거리는 걸 보면 분명 뭔가 있다. 다만 알려줄 것 같지는 않다.
아무튼 서로 통성명 아닌 통성명도 끝났겠다, 나는 케이트에게 질문했다.
“그래서 저는 왜 찾아오신 거예요?”
“다름이 아니라 현자에 대해 상의할 부분이 있습니다.”
“현자요?”
나는 현자가 언급되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예상은 했다만 진짜인 줄은 몰랐다.
현자의 본명은 알려지지 않았다. 본인 말로는 만물의 아버지에게 이름을 바쳤다나 뭐라나.
어쨌거나 현자와 관련된 사항이니 무시할 수 없었다.
“네. 감히 그 더러운 입으로 예언이니 뭐니 하는 소리를 하더군요.”
“흥미롭네요.”
나는 그 답하면서 모라를 쳐다봤다. 혹시 아는 게 있냐는 무언의 표현이다.
그에 모라가 뺨을 긁적거리며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보아하니 뭔가 문제가 있는 모양이다.
“그런 건 아니야. 내가 굳이 찾아갈 필요가 있나 싶어서. 오빠가 먼저 확인했을 걸?”
“이왕 이렇게 된 거 직접 가서 그 놈의 머릿속을 뒤져보면 되지 않아요?”
“그건 안 될 거야. 그런 놈들은 우리의 영향권에서 완전히 벗어났거든. 내가 오빠의 종인 저 아이를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이유랑 같아.”
아무래도 현자가 악마 숭배자 중에서도 높은 위치라서 그런 모양이다.
악마 숭배자라지만 따지고 보면 만물의 아버지의 신도니까. 쉽게 건드릴 수 없다.
“참고로 미래도 한정적으로만 볼 수 있어. 본래의 차원은 이 세상을 말 그대로 관조할 수 있거든. 하지만 지금 의식체가 여기 있는 이상 한정적일 수밖에 없겠지.”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1인칭 시점으로 변한 거네요.”
“정확해.”
모라가 어떤 상태인지 좀 더 상세히 알게 됐다. 말 그대로 관조자에서 일일이 두 발로 뛰는 여행자가 된 거다.
신전을 직접 찾아갈 필요가 없다는 장점만 있는 거지, 그 외는 전부 하위호환이다.
“아무튼 그 현자라는 사람이 예언을 입에 담았다고 했죠?”
“네. 구원을 내려준 빛의 추악함을 두 눈으로 볼 거라 말했습니다.”
루미너스와 관련된 이야기다. 예언이라기보다는 진실에 가까운 이야기.
예전 같았으면 비웃었을 거다. 하지만 현자는 상당히 높은 신성력을 보유하고 있는 몸.
혹시라도 정말로 예언 능력을 갖고 있을 수도 있다. 나는 그 생각을 하며 모라를 쳐다봤다.
“건강한 정신을 얻은 게 아닌 이상 예언 능력은 불가능해. 평범한 사람에게 예언 능력을 부여하면 십중팔구는 미쳐버리거든.”
“예외라는 건 없나요?”
“그 현자가 앞이 안 보이면 가능하지. 예언 능력을 가진 자가 미쳐버리는 이유는 현재의 시각 효과와 미래의 시각 효과가 겹쳐서 그런 거야. 맹인은 오직 미래의 것만 보이니 괜찮은 거고.”
“그럼 두 눈을 뽑아버린 후에 평생 미래만 보라고 하면 되겠군요.”
모라의 설명을 들은 케이트가 살벌한 말을 뱉는다. 역시나 악마 숭배자에 한해서는 가차없다.
하지만 나를 찾아왔다는 것 자체가 의문이다. 나는 싸늘한 표정의 케이트에게 물었다.
“다만 저를 찾아온 걸 보면 뭔가 있나 보네요?”
“…네.
싸늘한 표정을 지었을 때가 언제라는듯, 케이트가 자신감 없는 표정을 지었다.
현자는 현명하지 못해도 지혜 하나만큼은 무서운 사람이다. 그 지혜로움만 따져도 거의 예언에 준하는 수준.
이 세계만의 사라예보 사건마저 홀로 추측했으니 방심해서는 안 될 인물이다.
더 나아가 숨겨진 진실도 알고 있으니 무시할 수 없다.
“저는 놈의 말에 현혹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른 심문관들이 크게 동요하더군요. 어떤 술수를 부렸는지 몰라도 심문관들의 치부 및 두려워하는 걸 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함부로 대하는 걸 꺼려하는 거군요.”
“네. 좀 더 심문을 한다면 모를까, 점점 현혹되는 자들이 늘어나는 것 같아 걱정입니다.”
케이트는 손에 꼽을만큼 강인하고 꿋꿋한 신념을 가진 자다. 올곧음과는 거리가 멀지만 넘어가자.
그나마 케이트여서 현자의 혓놀림을 무시할 수 있는 거지, 다른 심문관들은 꽤 휘둘릴 것이다.
특히 이단심문관들은 악마 숭배자와 좋든 싫든 가까워질 수밖에 없다.
어쩌면 그중 몇몇은 작게나마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거군요.”
“네. 괜찮으시다면 아이작 님이 놈에게 예언 능력이 없다는 걸 보여주시면 됩니다.”
위험하지는 않을 것이다. 전과 달리 이번에는 케이트가 지켜줄 테니까.
무엇보다 전에 게리오스의 마지막 왕, 모건으로부터 전수받은 ‘방법’이 하나 있다.
스스로 예언 능력이 있다고 밝힌 자에게 아주 효과적이면서도 병신 같은 방법을.
“알겠습니다. 현자는 지금 어디 있죠?”
“신전의 심문실에 있습니다. 지금 바로 가시겠습니까?”
“딱히 일도 없으니 바로 가죠.”
굳이 뒤로 미룰 이유도 없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케이트를 따라갔다.
“모라 님도 같이 가실래요? 현자를 보면 어떤지 대충 아실 테니까요.”
“나 오빠 신전에는 못 들어가. 보나마나 발을 들이는 순간 쫒겨날 걸?”
“그정도로 화가 나신 거예요?”
“말했잖아. 밥상을 뒤엎은 수준을 한참 넘어섰다고.”
도대체 얼마나 화가 나셨을지 짐작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