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673
■ 672화. 불과 대장장이 (4) □ ᓚᘏᗢ
마이샬 영지의 신전에는 심문실이 따로 없다. 따라서 현자는 마이샬 영지가 아닌 미네르바 제국 수도의 신전에 있다.
마리에게 또 어디 가냐고 핀잔을 받긴 했지만 키스 한 번으로 무마시켰다. 덕분에 수도로 향하는 길은 어렵지 않았다.
다만 심문실은 태어나서 처음 가는 거라서 신기하긴 했다. 전생에서조차 경찰서 한 번 안 갔는데 이번 생은 다르다.
아델리아와 히리야 사이의 갈등 때문에 국왕 주도의 재판장에 간 적이 있지만, 이번에는 심문실로 간다.
“심문실은 지하에 있죠?”
“네. 그렇습니다.”
“음······”
우선 지하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내 상상력을 자극시켰다. 종교와 관련된 심문실의 이미지는 대부분 ‘고문’과 밀접하다.
왜, 그런 거 있지 않은가. 사슬에 매달린 이단자를 채찍으로 후려친다던가 세뇌 교육을 시킨다던가.
악마 숭배자는 족쳐도 물리적으로 족치진 않았기에 그런 오해가 쌓일 수밖에 없었다.
이참에 그 오해를 푸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일단 역사부터 알아볼 필요가 있다.
“케이트 씨. 케이트 씨는 악마 숭배자를 본격적으로 토벌하기 전에도 대심문관이셨죠?”
“네. 그렇습니다.”
“악마 숭배자가 수면 위로 등장하기 전까지 이단심문관들은 누구를 심판하는 편이었죠?”
적어도 내 상상 속의 이단심문관은 이렇다.
종교를 믿지 않는 자는 곧 이단자. 그러니 개종(물리)시켜주거나 죽어라.
과대망상이긴 해도 세이비어가 한때 그랬던 전적이 있다. 광기에 휘말려 마녀 사냥을 하던 시절이다.
지금이야, 기류가 많이 바뀌었다 해도 성잔 전의 케이트의 예를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무서운 건 사실이다.
“혹시 루미너스 님을 믿지 않는다고 무작정 처벌하거나 그러지는······”
“그정도는 아닙니다. 신을 비판하는 것, 정확히는 교리를 비판하는 것 자체는 묵인하는 편입니다. 오히려 도움을 손길을 내미는 편이죠.”
“도움을 손길을 내민다고요?”
“네. 신을 비판하는 사람들 중 9할은 가난하거나 불우한 과거를 지닌 사람들이거든요. 그런 분들은 대체로 심문실로 향했다가 상담을 받는 편입니다. 최근에는 모라 교단과 협업을 하는 편이죠.”
과거 같았으면 ‘너 이단’ 이러면서 고문을 가했을 텐데 확실히 달라졌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아무래도 전생의 기억과 더불어 역사적인 편견까지 합쳐지니 그런 오해를 산 모양이다.
“먼 과거에는 다짜고짜 이단자라며 심판을 했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루미너스 님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 그러니까 사각지대에 속한 자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어느 한 마을이 단체로 악마 숭배자에게 세뇌당했을 때 이후로 기류가 강해졌죠.”
“그러고보니 로라 그 아이는 지금 잘 지내고 있어요?”
“네. 루미너스 님이 직접 빛을 내려주시기도 했고, 더 나아가 교육도 착실히 받고 있습니다. 어서 빨리 제 후임이 됐으면 좋겠군요.”
환하게 웃는 얼굴을 보아하니 로라도 무럭무럭 성장하고 있는 모양이다. 대신 교육이라는 부분이 조금 걸린다.
전에 봤듯이 케이트가 말한 교육은 다소 과격한 면모가 있다. 폭력을 저질러도 되는 대상은 악마 숭배자와 몬스터뿐이라나 뭐라나.
어느 만화의 신부님이 떠오르는 대사였기에 걱정 아닌 걱정을 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알아서 잘 하겠지.
“그러면 나머지 1할은 뭐죠?”
“취객이거나 정신에 하자가 있는 자들, 그리고 흉악범과 악마 숭배자입니다. 취객 같은 경우는 잠깐 가두면 정신을 차리는 편이고, 정신이상자는 모라 교단으로 넘기죠. 흉악범과 악마 숭배자는······ 말하지 않아도 알 거라 믿습니다.”
빙긋 웃는 얼굴이 무섭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악마 숭배자는 그렇다 쳐도 흉악범까지 담당할 줄은 몰랐다.
간혹 전생에서 사형수나 그에 준하는 범죄자에게 종교를 가르친다고 들었다.
진심으로 회개한다면 훗날 신에게 죄를 사면받을거라고. 그것과 비슷한 것 같다.
“심문실로 가기 전에 루미너스 님을 만나뵈고 오시겠습니까?”
“그럼 잠깐 실례하겠습니다.”
때마침 루미너스에게 물어볼 것도 많다. 불과 대장장이의 신, 달로스부터 시작해서 현자와 지구신에 관한 것까지.
모라에게 얻었던 정보들로는 한참 부족하다. 그녀는 차원으로부터 추방당했으니 한계가 명확했다.
이에 케이트가 마련해준 개인 예배실로 들어가서 조용히 무릎을 꿇었다.
뒤이어 눈을 조용히 감았다가 천천히 떴다.
“왔니?”
새하얀 공간과 더불어 근육질의 미남자, 루미너스가 반갑게 맞이해줬다. 화사한 미소가 참 부담스럽다.
빈말이 아니라 정말 부담스러울 정도로 화사한 미소다. 어딘가 불만이 가득한 표정이랄까.
원래도 잘 웃으시는 편인데 약간 인조적인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루미너스 님?”
“말하렴.”
“혹시 화나셨어요?”
가끔 화가 머리가 끝까지 나면 말없이 미소만 띠우는 사람이 있다. 루미너스가 그런 유형인 듯싶다.
루미너스는 내 물음을 듣고 한참동안 미소만 띠우다가 이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더니 얼굴을 험악하게 일그러뜨렸다.
평소 온화했던 얼굴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다소 살벌한 인상이다. 표정 하나로 분위기가 이렇게 바뀔 수가 있는 건가.
“화날 수밖에 없지. 너 같으면 화가 안 나겠니?”
“그······ 이해는 합니다. 밥상이 엎어졌으니 화가 나시겠죠.”
“그것도 있지만 모라가 자기 멋대로 운명을 뒤틀어서 화가 난 거란다. 만약 네가 건강한 신체를 얻지 못한 채로 갔다고 생각해보렴. 그리 된다면 이 세상은 끝이었어.”
“모라 님이 바보도 아니고 그정도는 예상하지 않으셨을까요?”
“그렇긴 하지만······”
밥상이 엎어진 게 정말 아쉬웠는지 루미너스가 이성적으로 판단하지 못하고 있다. 복잡하다는 듯이 머리를 헤집는 걸 보면 확실하다.
아무래도 밥상이 평범한 밥상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에 궁금함을 담아 물었다.
“루미너스 님이 전쟁을 관조하는 건 알고 있어요. 하지만 루미너스 님의 본질은 빛이잖아요. 전쟁은 필멸자들이 붙여준 거 아닌가요?”
“신들이 붙여준 거란다. 그리고······”
루미너스는 무언가 말하려다가 말고 중간에 말을 흐렸다. 약간 고민하는 듯한 표정이다.
아무래도 과거와 연관된 문제인 것 같아 넘기는 게 좋겠지. 루미너스도 비슷한 생각이었는지 화제를 넘겨버렸다.
“중요한 건 이게 아니지. 단순히 밥상을 엎은 수준이라 생각하겠지만 그 정도를 한참 넘긴거란다. 인간으로 따지자면 몇 년을 기다린 특별식을 누군가 중간에 가로채다 못해 뺏어먹은 격이지. 그것도 내 눈 앞에서.”
“밥상을 뒤엎은 게 아니라 훔쳐먹은 거군요.”
“그렇지. 하지만 훔쳐먹은 방법조차 화가 난단다. 자기가 직접 빼앗아먹었으면 모를까,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양을 꼬드겨서 자기 입으로 넣은 거지. 그때 내가 뭘 할 수 있겠니? 지구에서 눈 뜨고 코 베인다는 속담이 있다던데 딱 그 모양 그 꼴이더구나.”
루미너스가 이리 말을 많이 하는 것도 처음 본다. 도대체 얼마나 화가 나고 답답했으면 하소연을 하는 건지.
전쟁으로 한 세계를 멸망시켰기에 전쟁을 싫어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이건 전쟁이고 나발이고 모라의 방식 때문에 화가 난 것이다.
물론 이미 지나간 일이고 돌아오지 않을 과거다. 더군다나 악마 숭배자 고위 간부도 잡아들였으니 일석이조이지 않은가.
나는 여전히 화가 풀리지 않은 듯한 루미너스에게 살살 달래는 어투로 말했다.
“그래도 결과는 좋잖아요. 제 얼굴을 보고 참아주세요.”
“마음 같아서는 성자로 강등시키고 싶었지만 어머니가 말려서 추방 정도로 끝낸 거란다.”
“그럴 권한이 있는 거예요?”
“··· ···”
내가 예리하게 지적하자 루미너스가 입을 꾹 다물었다. 아직 화가 안 풀려서 그런지 말실수를 해버린 셈이다.
어쩐지 모라를 추방시켰다는 것만으로도 동급이 아니라는 건 어느 정도 추측했다. 그러나 이번 말실수로 확신을 가졌다.
루미너스는 이미 최고신에 준하는 권능을 가졌을지도 모른다고. 사실 만물의 아버지를 스스로 처단했을 때부터 예정된 결과다.
“비어있는 왕좌를 두고 그 앞에 앉아 군림하고 있는 거군요.”
“······정확한 비유구나.”
“그러면 제가 무슨 일을 꾸미는지 알고 계시죠?”
루미너스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모라와 달리 그는 여전히 관조자의 차원에 속해있다.
나와 모라가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내가 무슨 계획을 꾸미는지 다 알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정작 루미너스는 최고신의 자리에 앉을 수 있음에도 그러지 않았다. 단순히 죄책감 때문이라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뭐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시나요? 패륜을 저질렀다는 것? 그건 신화로 잘 버무리면 끝이에요. 제가 살던 세계도 그랬고요.”
“······나를 굳게 믿는 신도들에게 미안해서 그렇단다. 패륜이 죄악인 건 모두가 알고 있지. 그런데 정작 최고신이 패륜을 저질렀는데 거대한 혼란이 오지 않을까 싶구나.”
“잘못인 걸 알고 있으면 그만인거죠. 그에 합당한 이유도 있고요.”
루미너스가 무엇을 우려하는지 잘 알 것 같다. 자칫하다가 신자들의 신앙심이 크게 흔들릴까봐 걱정하는 것이다.
본인이 정작 큰 잘못을 저질러놓고 죄악이라 설명하는 모순. 루미너스는 그것을 두려워하는 중이다.
정말이지 참된 부모의 마음가짐이라 할 수 있다. 스스로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물론, 신마저 널려있는 게 현실이다.
멀리 가지 않아도 만물의 아버지조차 본인의 잘못을 깨닫지 못해 사단을 냈지 않았는가. 루미너스는 훌륭한 반면교사인 셈이다.
“두려워하고 있는 거죠? 저에게서 영향을 받은 미래를 볼 수 없으니까요.”
“······사실 그게 가장 두렵구나.”
솔직하게 답한 루미너스는 고개를 위로 들어올렸다. 새하얀 공간밖에 없지만 마치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 같다.
“너로 인해 셀 수도 없이 많은 미래가 영향을 받았지. 하지만 이제는 그것이 나에게까지 영향을 끼친다니······ 네가 정말 두려워지는구나.”
“··· ···”
“이건 나뿐만 아니라 너에게도 영향을 끼칠지도 모른단다. 보이지 않는 미래의 내가 너에게 어떤 짓을 저지를지도 모르지. 물론 지구신들이 막을 테지만······”
루미너스는 잠깐 말을 흐렸다가 강조하듯이 말했다.
“이건 신조차 모르는 미래라는 것. 그것을 명심하렴. 그 누구도 앞일을 모를 거란다.”
“명심하겠습니다.”
“어떤 결과가 나오던지 받아들이마. 대신 책임만큼은 우리 둘 다 져야할 거란다. 최고의 상황이 나올 수도 있지만, 최악의 상황이 나올 수도 있다는 점을 염두해두렴. 잘못하면 내 신자와 너의 신자가 충돌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으니.”
루미너스의 말마따나 종교 분쟁으로 번질 수도 있는 문제다. 단순하게 생각할 상황이 아니라는 뜻이다.
완급 조절이 필요하다는 뜻. 더구나 루미너스에게 확실한 ‘정당성’을 부여해야 되며, 제일 중요한 ‘속죄’도 필요하다.
‘적당한 이야기가 하나 있어서 망정이지······’
잘못했으면 이도 저도 아니게 되어 최악의 결과가 나타날 뻔했다. 루미너스의 말처럼 이건 세계 자체가 영향을 끼치는 사안이다.
이에 여러 번 조심해야겠다고 속으로 다짐한 후, 루미너스에게 질문을 걸었다.
“작품에 대해서는 신중히 쓰도록 할게요. 그럼 다음 질문이긴 한데······”
“달로스를 말하는 거겠지. 그렇지?”
“네. 달로스가 어떤 신이었는지 궁금해요.”
불과 대장장이의 신이었다는 걸 보면 꽤 높은 직급의 신으로 추측된다. 자연의 일부 중 ‘불’이 속한 걸 보면 확실하다.
아니나 다를까. 루미너스는 어딘가 아련한 표정을 짓더니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내 아들이었단다.”
“그렇구······ 네?”
상상을 초월한 대답이 그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불과 대장장이의 신, 달로스가 루미너스의 아들이었다는 것.
아들이 있다는 말은 즉, 아내도 있다는 뜻. 나는 설마하며 루미너스를 바라봤다.
루미너스는 그에 씁쓸한 미소를 짓더니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내 아들을 신봉하던 민족의 후손이 나를 위협하는 것만큼 씁쓸한 것도 없더구나.”
현자가 진짜 십새끼였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