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678
■ 677화. 자유와 방임 (1) □ ᓚᘏᗢ
최고신이었던 존재, 만물의 아버지와의 설전은 승리 아닌 승리로 끝맺었다.
사실 만물의 아버지가 지구의 사상에 감화될 이유는 차고 넘친다. 그의 말마따나 한계를 뚫을 수 있었으니.
역사적으로 인류는 신을 끌어내리려 시도한 적이 거의 없다. 오히려 간절히 기도하며 신의 노여움을 풀기 위해 애썼다.
초월자가 바로 그런 존재다. 어떻게든 눈치를 볼 수밖에 없으며 가능성을 좁혀버리게 만든다.
현자는 심문을 위해 지하실로 남겨두고 다시 지상으로 올라왔다. 케이트가 지내는 방에서 다과나 즐길 예정이었다.
“케이트 씨.”
“네. 말씀하세요.”
“케이트 씨는 어떤 세상이 좋은 것 같아요? 제가 살던 세계처럼 인류에게 무한한 자유의지를 준 세계와, 이 세상처럼 그렇지 않은 세계.”
겸사겸사 신에게 총애를 받는 케이트에게 질문했다. 과연 어떤 세상이 더 나은지 궁금하다.
내 예상대로라면 케이트는 후자를 택할 것이다. 피와 강철만 보더라도 대부분 후자를 고르겠지.
하지만 케이트는 예상 외의 대답을 꺼냈다. 그녀는 내 질문을 듣고 온화한 미소를 띠며 답했다.
“잘 모르겠습니다.”
“잘 모르겠다고요?”
“네. 도리어 제가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루미너스 님은 정말로 이러한 체제가 이어지는 걸 원하실까요?”
의미심장한 질문이다. 가끔 가다 보면 케이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영 모르겠다.
나를 신격화하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그저 나를 좋아해서 따르는 것 같기도 하고.
어찌 됐든 간에 조금씩 정신적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건 변하지 않았다. 양측의 의견을 물어봐야 된다는 것부터 대단한 성과다.
“루미너스 님께서도 부담감을 안고 계실지도 모릅니다.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 만물의 아버지라는 자의 의견에 동의하고 있을지도 모르죠.”
“그러면 루미너스 님께서 진실을 숨긴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진실을 알려줄 사람이 등장하지 않아서 그런 거겠죠. 아무런 과정도 없이 밝힌다면 큰 혼란이 오지 않겠습니까?”
“··· ···”
설마 저 사람을 나로 착각하는 건 아니겠지. 혹시 몰라 말하지만 내가 이 세상에 오게 된 경위는 말 그대로 ‘사고’다.
그 사고로 인해 이 세상의 신들이 쩔쩔매고 있지 않은가. 지구의 신들이 언제 변심하여 쳐들어올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고인물은 썩기 마련입니다. 신들께서는 현명한 대책으로 지금까지 이끌고 오셨지만, 한계는 명확한 법이죠. 그 한계를 부숴줄 사람을 찾고 있던 겁니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제가 여기로 넘어온 건 순전히 사고입니다.”
“그 사고를 운명이라고 한다면 되지 않을까요?”
“··· ···”
꿈보다 해몽이라고, 이 모든 걸 운명이라 여기는 그녀를 보자니 말문이 턱하고 막혔다.
동시에 무언가 잡힐 듯 말 듯한 느낌이 들었다. 지구의 신들과 만물의 아버지의 결정적인 차이점을.
이 세상의 신들이 만물의 아버지의 의견에 동의하지 못한 이유를 단편적으로나마 알 것 같았다.
“······너무 수동적이지 않아요? 케이트 씨 스스로도 운명을 개척하셔야죠.”
“괜찮습니다. 저는 루미너스 님에게 은총을 받고, 아이작 님에게 은혜를 받은 몸. 평생 갚아도 모자라니 기꺼이 희생할 겁니다.”
“음······”
보아하니 케이트를 설득하는 건 포기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물론 케이트의 마음가짐이 나쁜 건 아니다.
부화뇌동이라 비판할 수 있어도 성직자의 본분을 잊지 않았으니. 케이트의 행동이 잘못된 거라면 그 누가 신의 말씀을 따르겠나.
“그렇다면 아이작 님은 신들의 비호를 받는 세상을 원하시는 건가요?”
“글쎄요. 저도 이 부분은 생각할 거리가 많아서요. 만물의 아버지가 어째서 동의를 받지 못했는지 의아하기도 하고.”
만물의 아버지를 샌드백마냥 말로 팬 건 궤변에 궤변을 들어놓았기 때문이다.
내가 전에 했던 발언들과 만물의 아버지에게 꺼낸 말들을 비교하면 모순되는 점이 넘쳐난다. 나도 이건 인지하고 있다.
단지 만물의 아버지가 어떤 존재인지, 그리고 어떤 흉계를 꾸미고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 신경을 살살 건드린 것뿐이다.
“제가 살던 세상에도 한때 신들의 지배를 받았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신화라는 기록으로 남겨졌고, 또 그것이 실제로 있던 역사인지도 불분명하죠. 그런데 신들이 무슨 연유로 인류에게 자유의지를 줬는지 의문이 듭니다. 그 과정에서 왜 세상을 멸망시켰는지도 모르겠고요.”
“아이작 님께서도 신들의 메세지를 해석하고 싶은 거군요.”
“제가요?”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케이트를 바라봤다. 신들의 메세지를 해석하고 싶다는 말이 무언가 거슬렸다.
“예로부터 신탁이 그러했습니다. 신들께서는 알 수 없는 신탁을 내리시고, 저희들은 그것을 해석하기 바빴죠. 최근에는 신탁을 내려주시는 빈도가 현저히 줄어들어 해석할 필요도 없어졌습니다.”
“··· ···”
“신들께서 남기신 메세지는 다양하게 해석될 여지가 있습니다. 교리가 바로 그런 것이고, 신앙심을 품는 이유죠. 또한 사람마다 깨닫는 이유가 다르듯이 해석도 다르게 이루어집니다. 그렇기에 충돌이 일어나고, 갈등이 발생하며, 서로 발전하는 것이죠.”
살다 살다 케이트에게 가르침을 받을 날이 올 줄은 몰랐는데. 나는 멍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옛날 같았으면 루미너스의 뜻에 반하는 자, 모두 죽어라! 에 가까웠던 케이트다. 쉽게 말해서 광신도.
그러한 과격함은 건재했지만 정말로 깨달음이라도 얻었는지 생각이 상당히 열려있다. 듣는 내가 감탄할 정도다.
“여기까지가 제가 깨달은 바입니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뇨. 덕분에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에요.”
나는 피식 웃으며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내가 케이트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는 루미너스에게 속박된 게 아니다. 반대로 점점 멀어지면서 독립하는 중이었다.
신들이 전달한 교리대로 움직이는 게 과연 수동적이라 할 수 있을까.
전혀 아니다. 그녀 나름대로 해석하면서 능동적으로 행동하고 있는 것이다.
‘아프리카로 봉사하러 가는 신부들의 마음가짐이 이런 거였나?’
가끔 종교인들 중에 몰상식한 사람들이 많다. 가장 대표적인 어절이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다.
반대로 존경받을만한 종교인도 많다. 그런 사람들의 특징은 바로 ‘주체적’이라는 것이다.
각각 해석을 다르게 하는 편이지만 직접적으로 행동한다. 그럼에도 가르침에 어긋나는 짓을 하지 않는다.
이러한 부류가 신들이 가장 원하던 이상향이 아닐까 싶다. 2차 세계 대전이라는 광기 속에서도 종교는 그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잠깐 루미너스 님과 대화를 나눠야 될 것 같습니다. 아, 케이트 씨도 함께 가실래요? 아마 신기한 경험이 될 거예요.”
“네. 예배실은 이곳에 있으니 함께 들어가도록 하죠.”
역시 교황 다음으로 권위가 높은 케이트여서 그런지 개인방에도 예배실이 따로 마련돼 있다.
나는 케이트와 함께 예배실로 들어선 후, 무릎을 꿇지 않고 조용히 눈만 감았다. 옆에서 케이트가 무릎을 꿇는 기척이 느껴졌다.
이윽고 감았던 눈을 천천히 뜨니 익숙하디 익숙한 흰색 배경이 눈에 들어왔다.
[눈을 뜨렴, 아이야.]“······어?”
내가 아닌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케이트에게 전달하는 메세지. 케이트는 그 메세지를 따라 눈을 떴다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신성력이 막강한 그녀여도 이러한 공간에 들어서는 건 처음이겠지. 당황한 표정이 정말 귀엽다.
“여기는······”
“루미너스 님과 더욱 편하게 대화할 수 있는 공간이에요. 속으로 생각할 필요도 없이 말로 대화하면 됩니다.”
루미너스가 직접적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걸 보면 아직 케이트에게도 무리인 것 같다.
지난번에 모라도 가족들에게 직접적으로 현신하지 않았다. 지금이야, 차원에서 추방당해 의식체로 보이고 있지만.
어쨌거나 나는 케이트가 평정을 찾을 때까지 잠자코 기다렸다.
케이트도 순간 당황했을 뿐, 예배를 할 때와 다를 게 없다고 판단한 건지 침착을 되찾았다.
“미천한 종이 빛과 희망의 신, 루미너스 님을 뵙습니다.”
[너에게는 언제나 고마운 마음을 품고 있단다. 귀엽고도 괘씸한 계획을 품은 건 넘어가도록 하마.]귀엽고도 괘씸한 계획? 루미너스가 저런 말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기에 의아해졌다.
이어서 케이트를 쳐다보니 그녀의 반응은 썩 볼만했다. 마치 들켜서는 안 될 비밀을 들킨 것마냥 어버버거리고 있다.
질 나쁜 계획은 아니었는지 안색이 나빠지거나 그런 건 아니다. 반대로 얼굴색이 지나칠 정도로 붉어졌다는 게 흠이다.
대충 반응을 보면 나와 연관된 건 확실하다. 단지 그 계획이라는 게 무엇인지 몰랐을 뿐.
“너, 너무하십니다. 그걸 지금 말씀하시면······”
[장난이란다. 나도 물심양면 도와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도대체 그 계획이 뭔데요?”
이 사람들이 나를 두고 무슨 얘기를 나누는 거야. 일단 심상치 않은 계획인 건 알 것 같다.
아니면 케이트의 개인적 욕심일 수도 있고. 최근 체리와 함께 은혜를 받을 거라니 뭐니 하는 걸 보면 그쪽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 않고서야 얼굴이 저 정도로 새빨개질리가 없다. 나는 그리 판단했다.
“그, 그런 게 있습니다. 아이작 님에게도 도움이 되는 거니 너무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음······ 속아줘도 되는 거죠?”
[그 정도는 속아주는 게 예의란다.]루미너스가 저런 말을 하니 속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넘어갔다.
내가 넘어가는 듯하자 케이트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오늘따라 다채로운 반응을 보는 것 같다.
“혹시 체리와도 연관이 있는 건가요?”
“······네.”
대충 알 것 같네. 다만 건강한 신체를 얻은 이상 주기는 착실히 파악해야 된다.
안 그러면 마리처럼 과속을 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심지어 최근에는 세실리마저 호시탐탐 노리고 있더라.
“아무튼 루미너스 님. 제가 하나 질문해도 될까요?”
[너의 질문이라면 원없이 받아주마.]“만물의 아버지가 지구의 사상에 감화되었을 때가 언제였죠?”
케이트와 상담 아닌 상담을 하면서 깨달은 부분이 있다. 지구의 신과 만물의 아버지의 결정적 차이점.
루미너스는 내 질문을 듣고 잠깐 침묵을 유지하더니 머지않아 입을 열었다.
[우리의 이야기가 제대로 끝나지 않은 시대.]지구의 신들은 전부 성장한 자식을 독립시키기 위해 ‘자유’를 선사한 반면.
[신화가 탄생하지 못해 인류의 위협이 건재하던 시대였단다.]만물의 아버지는 ‘방임’을 선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