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684
■ 683화. 군만두 (1) □ ᓚᘏᗢ
로만은 혼란스러웠다. 아니, 혼란스러운 걸 넘어서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했다.
루미너스를 모시는 종으로서, 감히 해서는 안 될 짓을 저지른 건 인지하고 있다.
결코 있을 수 없고, 또 있어서는 안 될 신들과 세상의 몰락. 그로 인해 나타나는 온갖 인간군상들.
멸망을 향해 걸어가는 기사. 짧게 줄여서 멸망기사의 내용이다.
처음 멸망기사가 등장하게 된 경위는 모두 알다시피 아이작이 직접 주체한 공모전이다.
이단심문관 겸 작가, 로만은 아이작과 만나게 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장편 연재로 결정했다.
이후로도 꾸준히 연재하면서 4권에 달하는 분량을 세상에 선보일 수 있었다. 그때마다 큰 호평을 받을 수 있었다.
[마족의 비극성을 한 집단만으로 모두 표현했다. 실제로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기에 더욱 비참하다.] [희망 같은 건 없다. 기사가 나아가는 길은 오직 슬픔과 통곡만이 남아있을 뿐.] [더이상 멸망기사 속 세상은 구원받을 여지가 없다.]제논 일대기는 물론 피와 강철에도 다양한 비극들이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두 작품 모두 일말의 ‘희망’은 존재했다.
멸망기사는 그런 것도 없다. 문자 그대로 꿈도 희망도 없는 전개가 연달아 이어지는 중이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피로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주인공이 비극을 겪은 자들에게 ‘죽음’을 선물해주면서 카타르시스를 선사했으니.
이렇듯 멸망기사는 떠오르는 초신성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피와 강철 다음으로 가장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체리의 차기작이 등장한다면 또 모르겠지만 일단 멸망기사가 압도적이라 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로만 형제일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멸망기사 속에서 등장하는 비극들은 하나 같이 인상깊었으니까요. 악마 같은 생각을 가지지 않고서야 이런 전개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할 겁니다.”
케이트는 진심인지 거짓인지 모를 칭찬을 하면서 로만에게 말했다. 미소 지은 얼굴은 상큼하기 그지 없었다.
하지만 심문 아닌 심문을 당하는 로만에게는 무시무시한 압박이었다. 입을 벙긋하는 것조차 힘들다.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 그래서 언젠가 들킬 것을 각오하고 꾸준히 글을 쓰고 있었다.
‘어째서?’
평소와 같은 날이었다. 스타비르크에서 악마 숭배자, 그것도 고위급 간부가 등장하는 바람에 한창 바쁘던 시간이었다.
로만은 이단심문관이지만 동시에 교황의 아들. 직접적으로 나서기보다는 후방에서 지원하는 역할을 하는 편이다.
불만도 전혀 없다. 스스로 단련 및 기도를 게을리하지 않을 뿐더러 나름대로 유능하다고 평가받았으니.
그런데 오늘 갑자기 케이트가 부르더니 이렇게 됐다. 마른 하늘의 날벼락 수준을 한참 넘어섰다.
“제 이야기 듣고 계시죠?”
“······예.”
케이트의 물음에 로만이 힘겹게 대답했다. 그에 케이트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현재 이들이 있는 곳은 교황청, 그것도 케이트가 개인적으로 거주하는 방이다.
교황 다음으로 막강한 권위를 갖고 있는 그녀이기에 교황의 아들쯤은 마음대로 호출할 수 있다.
다만 분위기가 장난 아니었다는 것. 심문실에 있는 것도 아닌데 심문실 특유의 압박감이 그대로 느껴졌다.
“조금 궁금하군요. 형제님은 어떤 연유로 이 불경한 책을 쓰신 겁니까? 사실대로 밝힌다면 아무 일도 없을 겁니다.”
과연 아무 일도 없을까. 로만은 침을 꿀꺽 삼키며 케이트를 쳐다봤다.
온화하기 짝이 없는 미소를 짓고 있는 케이트. 하지만 저 미소 안에 무시무시한 괴물이 잠들어 있다.
이단심문관으로서 케이트와 협업을 한 적이 많다. 메이스로 악마 숭배자의 머리통을 수박처럼 부수는 건 약과다.
그녀가 심문실에서 악마 숭배자를 어떤 식으로 대했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뒷처리하는 것도 이단심문관의 일이었으니.
‘로라 자매를 구원했을 때부터 괜찮아진 건가 싶었는데······’
외모가 아름답다지만 딱 상사와 부하 관계로 남는 게 최고였다. 다만 로라를 구원했을 때는 잠깐이나마 다르게 보였다.
그러나 그걸 다 제치고 이번 일은 결코 쉬이 넘어갈 수 없다. 까딱 잘못하면 머리통이 깨질 수도 있다.
이에 로만은 한치의 거짓말도 없이 솔직하게 답하기로 정했다.
“······호기심입니다.”
“호기심?”
“네. 단지 제가 상상하던 걸 쓰고 싶다는······ 그런 호기심 때문이었습니다.”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는 속담을 알 것이다. 현재 로만의 상황이 딱 그러했다.
호기심 하나로 신을 모시는 신자로서 해서는 안 될 짓을 저질렀다. 허나 참을 수가 없었다.
단순히 취미로 쓰면 되겠지. 아이작이 주체하는 공모전이 나왔네? 어차피 떨어지겠지만 넣기나 하자.
이런 안일한 생각들이 겹치고 겹쳐 지금 상황에 이르렀다. 이제 남은 건 천벌을 받거나 심문을 당하거나 둘 중 하나겠지.
“······하나만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말하세요.”
“어떻게 아신 겁니까? 원고는 분명 꽁꽁 숨겨놓았습니다.”
숨겨놓다 못해 금고에 보관해놓았다. 미쳤다고 교황청에 도둑이 들진 않겠다만 혹시 모르니까.
그런데 어찌 된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케이트는 전부 파악했다. 심지어 금고조차 털리지 않은 상황이었다.
물증 없이 오직 심증으로만 멸망기사의 저자가 로만이라는 걸 파악한 것이다.
케이트는 그의 질문에 미소를 유지한 채로 대답했다.
“루미너스 님께서는 다 알고 계십니다. 제가 답할 수 있는 건 이것뿐이네요.”
“그렇습니까······”
예상대로다. 로만은 허탈함에 자조적인 웃음을 흘렸다.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루미너스가 국교인 나라에서 저런 불경한 책을 썼으니 분명 노하셨겠지.
그렇다면 될대로 되라다. 루미너스가 직접 호명했는데 거짓말을 해봤자 전부 드러날 것이다.
이에 로만은 한숨을 내쉬었다가 여태까지의 일들을 모두 설명했다.
“사실은······”
로만의 설명이 이어지는 동안 케이트는 잠자코 경청했다. 로만의 예상과 달리 미소는 전혀 사라지지 않았다.
도리어 만족스럽다는 표정에 가까웠다. 한 술 더 떠서 차를 직접 우려내 로만에게 내밀기까지.
로만은 생각없이 그 차를 마시며 상황을 줄줄 읊었다. 이미 인생을 포기한 사람의 모습이다.
“그 말은 즉, 아이작 님께서 아이디어를 주신다면 로만 님이 집필은 한다는 거군요.”
“네. 사실 플롯, 그러니까 이야기 자체는 전부 전달해주셨습니다. 직접 쓰는 게 낫지 않냐고 물으니 문체가 저와 어울린다고 하더군요.”
“동의합니다. 로만 형제처럼 암울하면서도 깊이가 있는 문체는 찾기 힘들겠죠.”
칭찬인지 욕인지 모르겠다. 로만은 재차 한숨을 내쉬며 케이트가 달인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저는 이제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게 무슨 말인가요?”
“아이작 님께서 도움을 주셨다지만 제가 먼저 이 책을 쓴 겁니다. 결국 제가 근원이라는 거죠.”
잔뜩 체념한 목소리다. 케이트는 로만의 말을 듣고 잠깐 생각에 빠졌다.
그의 말마따나 아이작의 도움 이전에 먼저 책을 집필한 건 로만이다. 불경한 생각을 본인이 직접 기록한 것이다.
옛날 같았으면 ‘불경한 자’로 낙인 찍으며 심판을 내렸겠지. 자칫하다가는 현 교황마저 매우 위험할 수도 있는 사건이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옛날에 한해서다. 그동안 깨달음을 얻으면서 로만이 저지른 건 ‘죄’가 아니다.
‘쓰고 싶은 책을 썼을 뿐.’
그뿐이다. 불경하다고 욕을 먹긴 해도 천벌까지 받을 일은 절대 아니다.
로만의 비밀을 알아낸 이유도 루미너스 덕분이다. 루미너스는 ‘대업’을 앞당길 수 있을 거라며 비밀을 알려줬다.
‘그러고보니······’
게리오스 왕국, 그것도 왕궁에서 아이작과 약속했다. 신들의 비밀과 연관된 책을 쓰기 전, 자신에게 은혜를 내리겠다고.
현재 피와 강철은 결말을 향해 달려가는 중이다. 따라서 차기작이 연재되기까지 얼마 걸리지 않는다는 뜻.
그 날만을 고대하고 있는데 아이작이 집필을 도와준다는 멸망기사가 마음에 걸렸다.
‘혹시?’
퍼즐이 착착 들어맞는 느낌이다. 현자를 심문했을 때 신들의 비밀이 무엇인지 대강 눈치챘다.
어쩌면 아이작은 멸망기사에 일종의 ‘떡밥’을 뿌려놓지 않을까. 케이트는 그 생각이 들자마자 로만에게 물었다.
“로만 형제님. 아이작 님께서 결말을 어떻게 지으라고 하셨나요?”
“예?”
“결말이라 했습니다. 몰락한 신과 큰 연관이 있나요?”
“그걸 어떻게······”
케이트의 질문에 로만이 두 눈을 부릅 뜨며 경악했다. 집필 자체는 몰라도 가장 큰 ‘비밀’이라 할 수 있는 결말마저 예측당했다.
모든 것이 끝났구나. 로만은 그리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지금이라도 루미너스에게 기도하여 직접 천벌을 맞을까 고민했다.
“역시 그렇군요.”
그걸 증명하는 듯, 케이트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보기만 해도 불안이 커질 수밖에 없는 미소.
하지만 동상이몽이라고, 케이트는 로만의 대답을 듣고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아이작이 로만에게 대필 아니 대필을 맡긴 이유.
멸망기사는 거대한 떡밥이다. 절대 물지 않을 수 없는 떡밥.
성직자든, 악마 숭배자든, 일반인이든 결코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 몰락한 신과 관련된 대사를 지금 말씀해주실 수 있습니까?”
“하지만 아이작 님께서······”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렇다면야······”
로만은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관련된 대사를 꺼냈다. 훗날 몰락한 신을 향해 기사가 일침을 가하는 장면.
더 나아가 창조자와 피조물 사이의 관계를 보여주는, 지극히 철학적인 대사다.
“창조주가 피조물을 믿지 못한다면, 피조물은 어째서 창조주를 믿어야 하는가? 기사가 몰락한 신을 향해 이리 말할 것입니다.”
“··· ···”
케이트는 그 말을 듣고 솟아나는 흥분을 가까스로 멈췄다. 마지막 퍼즐 조각이 맞춰졌다.
또한 어째서 루미너스가 자신에게 이런 비밀을 알려줬는지 알 것 같다. 이대로라면 멸망기사는 오랜 시간이 흘러야 완결이 날 터.
가급적이면 피와 강철과 함께 완결이 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 된다면 아이작이 언급한 ‘대업’을 직접 이행하겠지.
그리 된다면 체리와 은혜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녀가 가장 원하고 원하던 상황.
‘감사합니다. 루미너스 님.’
케이트는 루미너스가 어째서 로만의 비밀을 알려줬는지 깨달았다. 충실한 종을 위해 친히 도움을 준 것이다.
그러나 필멸자의 운명은 스스로 개척하는 법. 이대로라면 로만이 펜을 놓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에 케이트는 혼이 잔뜩 빨려나간 듯한 로만을 향해 말했다.
“괘씸하다는 생각밖에 나지 않는군요, 형제님. 루미너스 님을 모시는 몸으로서 해서는 안 될 일을 저질렀어요.”
“······어떤 벌이든 받을 준비는 돼 있습니다.”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케이트는 미소를 지은 것과 다르게 단호한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현재 이행 중인 모든 업무와 책임을 내려놓고, 로만 형제의 역량을 총동원해 책을 완결시키세요.”
만약 아이작이 보았다면 이리 말했을 것이다.
“루미너스 님도 그걸 원하고 계실 겁니다.”
너는 군만두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