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688
■ 687화. 당근 (1) □ ᓚᘏᗢ
미리 말했다시피 나는 재료만 툭툭 던져줬을 뿐이다. 요리는 다른 사람들이 알아서 해줬다.
또한 대한민국이 정상과 거리가 먼 것도 한몫하고 있다. 아버지의 설명에 따르자면 정말 기이한 나라라고.
만약 적국이 국경선에 병력을 배치하고, 시시때때로 도발한다면 전쟁 선포나 다름없다고 한다.
그러니 이 세상 사람들 입장에서 나는 온갖 비극을 겪을대로 겪은 사람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제논 일대기 속에 등장한 비극들 또한 제논이 직접 겪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글을 쓸 수 없다.] [본래 문학은 난세에서 빛을 발휘하는 법이다.] [더이상 그를 의심해서는 안 된다.]결과물은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둘씩 등장했다. 누누이 강조하지만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오로지 진실만을 얘기했음에도 자기들끼리 북치고 장구치고 그러더라. 덕분에 좀 더 편해졌다.
게다가 후속작에 대한 떡밥도 시원하게 날린 참이다. 내가 맨 마지막에 했던 멘트.
[제논이 말했다. 이 세상이라고 해서 다를 게 있냐고. 그리고 제논은 자신의 세상이 신의 천벌로 멸망했다고 말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신께서 인류에게 천벌을 내린다는 것인가?] [제논의 예언으로 혼란스러워진 각 교단들.]지구가 신의 천벌로 멸망했다는 것과 이 세상이라고 다를 게 있겠냐는 내 발언.
이 두 가지가 교묘하게 합쳐지는 바람에 일종의 ‘종말론’이 점차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물론 이것도 어느 정도 예상한 바다. 신권이 강한 세상이다보니 신의 선택으로도 세상이 오락가락하니까.
루미너스와 모라 입장에서는 응? 내가 왜? 라는 의문만 나오겠지. 그래서 종말론은 얼마 가지 않아 점차 수그러들었다.
비록 모라가 부재 중이지만 세실리가 대신 말을 전달하면 끝이다. 신의 말씀을 직접 전달하는 거라서 개연성도 부족하지 않았다.
[종말론은 과연 진실일까? 아니면 단지 경각심을 주기 위한 경고?] [제논의 과거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온갖 비극을 겪은만큼 염세적인 사상이 많을 것.] [그의 진정한 목적은 무엇인가? 어째서 혼란을 부추기는 것인가?]그렇다고 쉽게 사그라들지는 않았다. 이것 또한 신의 존재가 확실한지라 어쩔 수 없다.
마야 제국이 기원후 2012년에 세계가 멸망할 거라고 예언을 때린 거랑 비슷하다.
[멸망을 향해 걸어가는 기사. 일주일만에 신간이 발매되었다.] [혹시 제논이 말한 종말론은 이것인가?]공교롭게도 멸망기사의 신간이 발매되어 더 큰 이목을 끌었다. 의도치 않았지만 판매량이 급격하게 증가했다고.
여유 시간을 얻은 건지 로만도 박차를 가하는 듯했다. 그래도 너무 빨리 나와서 조금 의문스럽다.
‘어디 갇혀서 글만 쓰고 있나?’
이런 생각을 잠깐 했지만 넘어갔다. 진짜로 갇혀서 글을 쓰는 거라면 정체도 들켰겠지.
소재 자체가 매운맛을 넘어서 각 교단의 발작 버튼이다. 들키는 순간 케이트가 직접 나서서 처리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 의미에서 단순히 탄력을 받고 온 거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불안하니 이런 서신을 보냈다.
[로만 작가님. 만약 어디 갇혀 계시다면 맨 마지막 페이지에 당근을 그려주세요.]로만은 원고를 출판사로 직접 보내지 않고 나를 거치는 편이다. 내가 편집자 역할을 대신 하는 셈이다.
중간중간 오타를 검수할 겸 추가적인 보충 설명도 할 겸 겸사겸사 하는 거다.
그래도 재능이 재능이다보니 어지간해서는 곧장 출판사로 보내는 편이다.
‘장난식이기도 하고.’
당근을 그려달라는 건 칭찬의 개념에 가깝다. 어디까지나 지구 기준으로 말이다.
과연 로만이 이 농담을 알아들을지는 모르겠지만 답장이라도 하겠지. 나는 그리 생각하며 앞일을 계획했다.
‘테르스 왕국은······ 별 일 없는 건가?’
우선적으로 테르스 왕국, 정확히는 라오스 왕태자의 동태다.
마리아 여왕도 라오스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는 것인지 나와 협업 아닌 협업을 진행하는 중이다.
지난번 테르스 왕국의 언론사가 개지랄을 했을 당시에도 라오스가 뒷배라는 소문도 있었으니.
다만 그런 것치고는 악마 숭배자가 직접 언론사 사장을 조져버려서 심증마저 애매하다.
어쩌면 시간이 흘러 그동안의 앙심이 풀렸을 수도 있다. 어디까지나 예상이지만 말이다.
‘일단 마리아 여왕을 믿어야지.’
마음 같아서는 적당한 구실을 두고 방문하고 싶다. 그러나 괜히 아델리아에게 영향을 끼칠까 쉬쉬할 수밖에 없다.
어차피 현자도 잡힌 마당에 라오스가 뭘 할 수 있겠냐만은. 당장 현자의 주거지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않았다.
스타비르크의 주거지가 아니라 진짜 주거지. 그러니까 다양한 기밀이 존재하는 곳 말이다.
[제논의 차기작은 1차 세계 대전도 냉전도 아닌 신화. 신화는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이지 않은가?] [신들의 이야기를 보여준다고 했으니 히르트, 루미너스, 모라 이 세 명과 깊은 연관이 있을 터.] [이번에는 어떤 이야기를 보여줄지 기대가 된다.]차기작과 관련된 여론이 없는 건 아니었다. 대부분 사람들은 기대보다는 의문을 지녔다.
이미 신화가 멀쩡히 존재하는데 어째서 신화를 적는다는 거지? 대부분 이런 반응들이다.
하지만 이이상 말했다가는 시작부터 거대한 스포일러를 하는 셈이니 멸망기사의 완결을 기다리기로 정했다.
로만에게 신화의 비밀을 암시하는 초대형 떡밥을 투척하라고 지시했으니 자연스레 이목을 끌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말씀해주세요. 신화의 시대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를.”
“이제 그걸 말할 시간이 왔구나.”
내 부탁에 모라가 복잡미묘한 얼굴로 대답했다. 올 것이 왔구나라는 표정에 가깝다.
피와 강철이 완결되고, 차기작과의 공백을 외전으로 떼울 거지만 그때까지 모라에게 설명을 들을 예정이다.
다만 모두 알다시피 현재의 모라는 2대째다. 루미너스로부터 기억을 전수받았다지만 완벽하지는 않다.
일례로 1대 모라는 유부녀에다가 자식들까지 있었지만 지금의 모라는 아니다.
그러한 기억을 갖고 있으니 여러모로 괴리감이 심할 것이다.
“나도 처음에는 혼란스러웠어. 지금은 익숙해졌지만.”
“그러면 질문 하나만 해도 될까요?”
“무슨 질문?”
“처녀인지 궁금합니다.”
성희롱적인 질문이지만 나름 진지하다. 모라 같은 경우는 철학적으로도 생각할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단순히 기억이 이전됐다고 해서 같은 존재인가. 내 질문에 흠칫거렸던 모라는 내 진지함을 읽고 떨떠름하게 답했다.
“다, 당연히 처녀지! 애당초 루미너스가 내 아버지이자 오빠라서 사실상 별개의 존재라고 보면 돼.”
“그렇군요.”
“그나저나 굳이 그렇게 질문을 했어야 돼?”
“사실 놀리는 것도 있어요.”
“여성을 놀리면 못 써.”
얼굴을 붉히며 툴툴거리는 모라. 그녀는 이런 식으로 놀리는 맛이 있다.
“어쨌거나 본론으로 들어갈게요. 만물의 아버지이자 바다의 신의 이름을 알려주실 수 있으신가요?”
“미안하지만 그것만큼은 절대 안 돼.”
“어째서죠?”
모라가 단호하게 거절하자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생각해보니 지난번 현자도 만물의 아버지의 이름을 밝히려다 실패했다.
지구의 신들이 그 이름을 들으면 안 된다는 것처럼 막았기 때문이다. 이름에 뭔가 있는 건 확실하다.
“우리 같은 존재는 이름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힘을 얻거든. 만일 아버지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된다면 영향력이 더 커질 수밖에 없어.”
“혹시 이 행성의 이름을 히르트로 지으면 안 된다는 것과 같나요?”
제논 일대기를 집필하던 당시 이 세상의 이름을 히르트로 결정지으려다가 말았다.
왜 안 되냐고 물으니 히르트의 영향력이 너무 강해지게 된다고. 대지모신인 히르트조차 거부할 정도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맞아. 더구나 아버지는 극소수를 제외하고 잊혀진 존재이자 만물을 창조한 존재야. 정신력이 약한 자는 이름을 아는 것만으로도 지배당하겠지.”
“이상하네요. 그런 거라면 악마 숭배자가 이름을 퍼뜨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나요?”
“그 이름을 입 밖으로 꺼내는 것조차 어려우니까. 너희 세상도 최고신을 하느님이라던지 다른 명칭으로 높여 부르잖아. 그거랑 비슷해. 무의식적으로 막아버리는 거지.”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종교인들 대부분이 하느님이라 칭하지, 직접적으로 이름을 말하지 않는다.
어쩌면 종족을 넘어 피조물 자체에 각인된 특징인 것 같다.
“그러면 루미너스 님이나 모라 님은요?”
“우리는 최고신 즉, 주신이 아니니까. 주신의 권위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상상을 초월해. 만약 오빠가 정말로 주신으로 승격한다면, 앞으로 루미너스라 직접 칭하지 않고 빛이라고 칭하게 될 거야. 무의식적으로 말이지.”
“······새삼 신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굉장한 존재인지 알 것 같네요.”
신격이 높으면 높을수록 그에 따른 힘이 너무 막강해지다보니 이름마저 제대로 부를 수 없는 모양이다.
크툴루 신화에서도 이름을 아는 것만으로 미쳐버리는 경우가 있던데 그것과 비슷했다.
모라는 내 말이 진심이라는 걸 알아차렸는지 고개를 쳐올리며 우쭐거렸다.
“그렇지? 그러니까 앞으로 존경할 수 있도록 해.”
“··· ···”
“······너무해.”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모라가 입술을 삐죽 내밀며 투덜거렸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 따로 말은 하지 않겠다.
“그럼 단순히 아버지라고만 칭해야겠네요. 바다에서 생명이 탄생하고, 자연이 등장했다는 식으로 서술하면 되겠죠?”
“그정도면 충분하지. 남은 건 다른 신들의 탄생인데······ 이건 오빠에게 들었니?”
“생명의 여신이 바다에서 탄생하고, 루미너스 님과 결혼했다고 들었습니다.”
“잘 들었네. 자, 그렇다면 여기서 질문. 생명이 있다면 으레 ‘죽음’도 존재하지. 죽음은 어디서 탄생했을까?”
모라가 손가락 하나를 펴며 질문을 던졌다. 꽤 깊이 생각해볼만한 질문이다.
모라는 어둠, 안식, 평화 등을 관장하는 여신이다. 여기에 죽음은 포함돼 있지 않다.
따라서 죽음의 신이 따로 존재한다는 뜻일 터. 나는 전생의 신화를 곱씹다가 조용히 대답했다.
“혹시 생명의 여신과 쌍둥이라던가 그런 건가요?”
“땡. 아냐.”
“그러면요?”
“이 세상을 넘어 우주에서 죽음을 관장하는 존재는 없어. 죽음을 집행하는 존재라던가, 죽은 자를 거두는 존재면 몰라도.”
알쏭달쏭한 말이다. 생명의 신은 존재하는데 사신은 존재하지 않다니.
내가 눈을 끔뻑이며 의아해하자 모라는 귀엽다는 듯이 피식 웃으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그게 우주의 법칙이자 순리라는 거야. 모든 생명은 태어난 그 순간부터 죽음을 약속받거든.”
“생명의 여신이 존재하는 이유는요?”
“단순해. 태어났으니까. 생명은 다양하지만 죽음은 하나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면 그냥 넘어가. 우리도 죽음을 모르는 마당에 너도 마찬가지일 테니까.”
죽음에 대해 깊이 파고들 필요도 없고, 그럴 가치도 없다는 말인 것 같다.
잘 생각해보면 그리스·로마 신화의 하데스도 죽은 자의 세상을 관조하지, 죽음을 상징하지는 않는다.
굳이 있다면 타나토스 정도랄까. 그러나 그건 의인화한 존재라 상징한다고 하기에도 애매하다.
“이게 얼마나 큰 깨달음인지 알았으면 좋겠네. 지구의 어느 한 신이 이걸 토대로 윤회라는 깨달음을 전파했거든. 누구인지는 대충 알겠지?”
“필멸자의 몸으로 거기까지 깨달은 셈이니 대단한 거네요.”
“단순히 대단하다고 볼 수준을 한참 넘어섰지.”
겸사겸사 지구의 신들이 얼마나 대단한지도 깨달았다. 여래신장을 날렸을 때부터 느끼긴 했지.
“신화의 시대이니 필멸자들과 두루두루 잘 지내셨죠? 그에 대한 에피소드도 듣고 싶네요.”
“음······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많지. 대표적으로 수인과 드워프의 창조에 대한 거야. 수인과 드워프가 어떤 식으로 창조됐는지 아니?”
“당연히 모르죠.”
“그전에 내 형제들부터 알려줘야겠다. 수인과 드워프를 창조한 신들은 내 형제자매들, 그러니까 아버지의 자식들이야.”
이때 알게 된 사실이지만, 모라도 입담이 상당히 좋은 편이었다. 덕분에 이야기에 흠뻑 빠져들 수 있었다.
그렇게 모라로부터 신화 시대에 듣고 있을 때, 얼마 지나지 않아 멸망기사의 원고가 우리 저택으로 전송됐다.
처음에는 로만이 열심히 하는구나 싶었지만······
“······당근?”
원고 맨 마지막 페이지에 당근이 그려져 있는 걸 보고 떨떠름해질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