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7
■ 6화. 불안한 시작 (4) □ ᓚᘏᗢ
“내 이름은 마리야. 마리 하우젠 레킬리스. 빨간머리 너는?”
흰색 머리카락의 소녀, 마리는 내 옆자리에 엉덩이를 붙이며 자기자신을 소개했다. 방금 전까지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잘 하더니만 지금은 또 친근하게 대했다.
아마 욱하는 성질이 있는 듯했지만 어제 일은 오해였으니 성격 자체는 나쁘지 않아보였다. 아무튼 그녀가 먼저 자신을 소개했으니 나도 해야겠지.
나는 방긋 웃는 그녀의 얼굴을 말없이 바라보다가 무덤덤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이작 듀커르 마이샬.”
“듀커르 마이샬? 예상대로 귀족의 아들이었네.”
“너도 귀족처럼 보이는데.”
“맞아. 무려 레킬리스 가문의 딸이라고. 훗.”
안 물었는데. 내가 속으로 그리 생각하는 동안 마리는 턱을 치켜들며 의기양양한 반응을 보였다. 본인의 가문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모양이다.
그나저나 레킬리스 가문이라. 백작도 후작도 아닌, 황제 바로 다음으로 지위가 높은 공작이다.
나 또한 레킬리스 공작가가 얼마나 유명한지 잘 알고 있다. 옛날 어머니에게서 교육을 받을 때 미네르바 제국의 역사까지 배웠으니 당연히 알 수밖에 없다.
아무튼 레킬리스 공작가를 설명하자면 미네르바 제국의 개국공신 중 하나다. 더군다나 예로부터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여 미네르바 제국민들에게 평판이 매우 좋다.
물론 가끔씩 개망나니가 나오는 경우가 있기는하나 적발되면 가문에서 호적이 파이고 추방당한다.
‘모든 귀족이 다 이랬으면 얼마나 좋을까.”
황제 다음가는 공작이 몸소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데 다른 귀족은 어떨까. 안타깝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전생에서도 권력이 높으면 갑질하는 사람이 많은데 하물며 여기는 엄연히 계급이 존재하는 세상.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도 없어서 증거를 남기기도 어렵다.
이로인해 귀족들이 알음알음 평민을 차별하는 풍조는 여전하다. 심지어 대놓고 핍박해도 권력을 무마시킬 수 있다.
나는 마리를 물끄러미 보다가 입을 열었다. 혹시 몰라 예의바르게 존댓말을 하는 건 잊지 않았다.
“레킬리스 공작가의 영애셨군요. 몰라 봬서 죄송합니다.”
“…그냥 반말 해. 나 그런 거 싫어하니까.”
내가 존댓말을 사용하자 마리의 예쁜 얼굴이 구겨진다. 역시 소문대로 권위주의를 싫어하는 모양이다.
이에 나는 그녀가 원하는대로 반말을 쓰기 시작했다. 마리도 그런 내가 편했는지 재잘재잘 떠들었다.
“넌 제논 일대기를 몇 권까지 갖고 있어? 난 5권밖에 없거든.”
“음…”
나 초고 갖고 있다니까. 이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간신히 억눌렀다.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따로 없다.
나는 무어라 대답할지 궁리하다가 그녀가 납득을 할 수 있겠끔 거짓말을 입 밖으로 꺼냈다.
“나는 따로 소장한 건 없는데 이야기는 다 알아. 어머니가 읽으라고 빌려주셨거든.”
“그래? 뭐, 그런 사람들은 많더라. 우리 오빠는 빌려주지도 않던데.”
“왜?”
“자기 물건은 끔찍히 여기는 사람이거든. 가족이라도 자기 물건에 손 대는 걸 엄청 싫어해.”
오빠라면 어제 마리를 살살 달래주던 그 백색 머리 남자인가. 나는 툴툴거리는 마리를 쳐다보다가 궁금한 점이 떠올라 그녀에게 물었다.
“그런데 어제 너희 오빠가 하는 말은 얼핏 들었는데, 제논 일대기를 사재기하는 일당이 검거되었다고?”
“응? 모르고 있었… 아, 모를만하네. 최근에 잡힌 거라 신문에 소식이 실리려면 시간이 좀 걸릴 거야. 아마 이틀 뒤에 즈음 나올 걸?”
역시 공작 가문이라서 그런지 정보를 얻는 속도가 타의추종을 불허했다.
내가 대단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보자 내 속내를 읽었는지 마리가 으쓱거렸다. 아주 그냥 콧대가 하늘을 찌를 듯했다.
“너무 그렇게 안 쳐다봐도 돼. 우리 가문에서 이정도는 기본 중의 기본이니까.”
“그래도 대단하네. 우리 집은 시골 깡촌이라 소식을 접하려면 신문밖에 답이 없거든.”
“시골 깡촌? 푸핫. 너 말 재밌게하네.”
드르륵-
마리랑 신나게 떠드는 와중에 강의실 앞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렀다. 그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웅성거렸던 강의실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뚜벅- 뚜벅- 뚜벅-
벽 하나를 꽉 메울 정도로 큰 칠판 앞으로 한 노년의 남자가 중앙으로 걸어오는 중이다. 머리카락은 탁한 금색과 흰색이 골고루 섞여있고, 콧수염을 멋드리지게 길렀으나 다소 고집이 강해보이는 인상이다.
옷차림도 딱 교수님들이 입을 법한 양복 차림이었다.
“크흠.”
마침내 칠판 중앙에 선 노인은 헛기침을 하더니 좌중을 둘러봤다. 나를 포함한 모든 학생들은 그의 입이 열릴 때까지 진득히 기다렸다.
이윽고 노인의 시선이 오른쪽부터 시작해 왼쪽 끝까지 다다랐을 무렵, 무겁게 닫혀있던 그의 입이 열렸다.
“반갑습니다. 학생 여러분. 전 인문학 교수, 비루스 아르 트리스탄이라고 합니다.”
목소리가 상당히 점잖은데다 느긋해서 귀에 속속 들어왔다. 비루스라고 소개한 교수가 허리를 꾸벅 숙이자 학생들은 박수로 맞이해줬다.
이어서 허리를 다시 편 그는 특유의 느긋한 말투를 유지하며 말했다.
“우선 헤일로 아카데미, 그리고 문학에 오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특히 이번 해에는 특별한 사람들도 헤일로 아카데미에 입학했죠.”
그러면서 리나와 세실리가 있는 곳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옮겨 정확히 마리를 쳐다봤다. 하기야 황녀나 마족의 공주가 아니더라도 마리도 공작가 출신이니 충분히 특별한 사람이다.
“…어쩌라는 거야?”
물론 마리는 본인이 지목당하자 툴툴거렸지만. 그동안 교수는 점잖게 말을 이었다.
“우선 여러분들이 앞으로 어떤 생활을 하게 될지 알려드리겠습니다. 문학은 2년 동안 공통된 수업을 듣지만, 그 이후로는 본인의 길을 찾아가야 합니다. 의술에 관심있는 사람은 의학으로, 행정은 행정학, 정치는 정치학, 그리고 인문은 인문학으로 말이죠. 그때부터는 본인이 원하는 길을 택할 수 있습니다.”
나는 아카데미, 특히 문학에 관한 지식이 거의 없었기에 교수의 말을 경청했다. 형이나 누나는 전부 다 무학이어서 가르쳐줄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궁금한 점이 생길테죠. 2년 동안 길을 못 찾는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길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건 여러분 나이대에 지극히 당연한 일이니까요. 우리는 기다려줄 수 있습니다.”
“… …”
“무엇보다 문학에 들어오신 분들은 대부분 ‘지식’을 원해서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겠죠. 굳이 길을 찾지 않아도 지식을 원하신다면 상관없습니다.”
그러니까 길을 찾던 말던 졸업은 할 수 있다는 소리네. 졸업증만 받을지, 아니면 인턴으로 들어갈지.
사실 중세에 가까운 세상에서 이런 발상을 한다는 것 자체도 대단한 수준이다. 나는 턱을 괸 채 교수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오늘은 여러분들에게 역사적인 첫 수업이니 제가 간단한 질문을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지식’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만약 좋은 대답을 한 학생에게는 가산점을 주겠습니다.”
첫 질문과 동시에 시작된 수업. 나는 그의 질문을 듣자마자 머릿속에서 한 가지 명언이 떠올랐다.
‘아는 것이 힘이다.’
여기가 지구였다면 누구나 한 번 즈음 들었을 명언 중 하나다. 허나 나는 손을 들지 않았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자라다보니 손을 들어 발표하는 게 영 껄그러웠다.
내가 가만히 있는 동안 어떤 한 학생이 손을 들었다. 놀랍게도 리나였다.
비루스 교수는 리나가 손을 들자마자 그녀를 바라보며 손을 선듯 내밀었다.
“이름이… 리나 학생. 맞죠?”
“네. 교수님.”
“리나 학생은 지식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죠?”
미네르바 제국의 황녀라 해도 교수에게는 학생에 지나지 않는 모양이다. 리나도 그 점은 딱히 신경 쓰지 않았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대답을 꺼냈다.
“사람이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흠… 자세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교수가 부가 설명을 요청하자 리나는 충분히 예상했다는 듯이 설명을 하나하나 꺼내기 시작했다.
“몸 내부의 마나를 순환시키는 연공법부터 시작해 마법, 오러, 그리고 문명을 재건하기 위한 건축까지. 이 모든 게 지식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지식이 없다면 사람들은 아무것도 못 하죠. 그러니 저는 지식이 사람을 높은 곳까지 끌어올려준다고 생각합니다.”
“아주 좋아요. 모두 박수.”
짝짝짝짝짝!
교수가 박수를 종용하자 우렁찬 박수 소리가 강의실 안을 가득 채웠다. 나도 다른 사람들을 따라 박수를 치다가 옆을 힐긋거렸다.
마리는 시큰둥한 얼굴로 느릿느릿하게 손뼉을 치는 중이었다. 한 쪽 입꼬리를 삐죽 올리는 걸 보아 어딘가 불만에 찬 얼굴이다.
“리나 학생의 말대로 지식은 사람을 더 높은 곳에 나아가게 만들 수 있죠. 하지만 제가 원하는 대답은 아니에요. 여기서 더 간략하게 설명할 수 있는 학생이 있습니까?”
“… …”
교수가 재차 물어도 손을 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도 그럴게 자그마치 황녀의 발표를 축약해야한다.
괜히 발표했다가 이상한 대답이라도 하게 되면 분명 비웃음을 살테고, 만에 하나 교수가 흡족해 한다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다. 여러 의미로 찍히게 될테니까.
‘빌어먹을 계급 사회.’
나는 속으로 혀를 찼다.
아마 모두들 내심 이대로 시간이 지나가길 빌고 있을 것이다. 교수가 실망하는 것보다야 다른 사람들에게 찍히는 것이 더 무서울테니. 적어도 세실리나 마리가 발표해야 영향이 적을 것이다.
스윽-
그 생각을 하자마자 리나의 옆에 앉아있던 세실리가 조심스레 손을 들었다. 엉거주춤한 모습을 보니 자신감이 없어보였다.
물론 교수에게는 발표할 학생이 나타났으니 기쁘기 그지 없는 일이다. 비루스 교수는 세실리가 손을 들자마자 화색을 띄며 입을 열었다.
“오! 아마 이름이…”
“세, 세실리라고 합니다…”
“좋아요. 세실리 학생. 학생은 지식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죠?”
당당하게 연설할 때와 달리 상당히 풀이 죽은 목소리다. 아무래도 연설 때와 다르게 확신이 없으니 자신감이 사라진 걸로 추측된다.
“후우…”
세실리는 주변의 눈치를 보다가 스스로를 다독이듯이 가슴을 두드렸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감을 되찾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실로 마족다운 대답이다. 비루스 교수도 흥미가 돋았는지 얼굴을 살짝 내밀며 그녀에게 질문했다.
“자세히 설명해주실 수 있습니까?”
“네. 리나 님이 발표했던 것처럼 지식은 사람이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전에 그 ‘사람’이 되어야 가능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지식이 없는 사람은 아무런 발전 가능성이 없는 짐승에 불과할테니까요.”
“실로 원초적인 대답이군요. 하지만 훌륭해요. 모두 박수!”
리나 때처럼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강의실을 가득 메웠다. 나는 묘한 표정으로 자리에 급하게 앉은 세실리의 뒷모습을 쳐다봤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마족인 그녀가 저런 대답을 꺼내니 뭔가 가슴에 와닿는 기분이다.
“두 학생 모두 아주 훌륭한 대답을 꺼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원하는 대답이 아니었어요. 혹시 다르게 발표할 학생이 있나요?”
있을리가.
세실리까지 발표한 마당에 더이상의 발표 지원자는 없을 것이다. 내가 장담할 수 있다.
이대로 아무런 일없이 끝났으면 좋겠다만…
“더이상 발표할 학생이 없다면 제가 직접 지목하도록 하겠습니다.”
역시나 교수는 전생에서도 그러더니 지금도 빅엿을 먹이려고 한다. 나는 최대한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고개를 아래로 내렸다.
‘제발 나만 찍지마라. 제발…’
하지만 불길한 예감은 언제나 들어맞는다고.
“거기 고개 숙이고 있는 빨간머리 학생? 학생이 대답해보세요.”
이 세계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빨간머리를 물려준 아버지를 원망했다. 정말로 어딜 가도 눈에 띄는 색깔이지 아닐 수 없다.
“야. 교수님이 너 말하는 거 같은데?”
“…나도 알아. 후우.”
나는 속으로 오만가지 쌍욕을 지껄이며 고개를 들었다. 고개를 들자 수 십개의 시선들이 정확히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뭘 노려보냐고 신경질을 부리고 싶었지만 꾹 내리담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비루스 교수가 물었다.
“빨간머리 학생. 학생의 이름이 어떻게 되죠?”
“…아이작이라고 합니다.”
“네. 아이작 학생. 학생은 지식이 무엇이라 생각하죠?”
뭐라고 대답해야할까. 최대한 다른 대답을 궁리했지만 전생의 명언만이 머릿속에서 빙글빙글 돌아다닐 뿐이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나는 고민하는 척 하다가 최대한 덤덤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호.”
뭐요. 씨발. 그 감탄사는 뭐고 눈은 또 왜 빛내는건데요.
내가 속으로 집씹듯이 중얼거리고 있을 때 교수는 전과 달리 들뜬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시죠? 그것 참 흥미로운 대답이군요.”
“… …”
나는 교수의 질문을 듣자마자 리나와 세실리가 앉은 자리를 쳐다봤다.
한 쌍의 푸른 눈과 한 쌍의 붉은 눈이 호기심을 담으며 나를 직시하고 있는 중이다. 나는 실시간으로 불안감이 무럭무럭 솟아오르는 것을 체감하며 간신히 입을 열었다.
“…예로부터 지식은 문명을 발전시키는데 두루 쓰였습니다. 불을 어떻게 피우는지, 농사를 어떻게 짓는지, 건물은 어떻게 세우는지, 또 몬스터를 잡기 위해 어떤 지식이 필요한지처럼 말이죠. 이를통해 지식은 무력보다 더 강한 힘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리나 학생의 발표를 요약했군요. 그렇다면 세실리 학생의 발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니. 이거면 됐잖아요.
그러거나 말거나 교수의 눈빛은 한층 초롱초롱해졌다.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될대로 되라는 듯이 말했다.
“…혼자서 얻을 수 있는 지식은 명백히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끼리의 교류를 하거나 또는 싸움을 통해 강탈할 수도 있죠. 그리고 사람 답다는 건… 하나로 정의할 수 없으니 여기까지 말하도록 하겠습니다.”
진짜로 더이상 할 말이 없었기에 지체없이 자리에 앉았다. 그와 동시에 정적이 강의실에 내려앉았다.
나는 정적이 일자 무언가 심상치 않음을 감지하고 교수를 쳐다봤다. 교수는 내 발표에 감명받았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다.
리나와 세실리가 발표했을 때와 달라도 너무 다른 표정이다.
뒤이어 교수는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정~말! 흠잡을데 없이 멋진 대답이었습니다! 아이작이라고 하셨죠?”
“…그런데요.”
“아이작 학생에게 가산점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모두 힘찬 박수 소리로 맞이해주세요!”
짝짝짝짝짝!
“… …”
나한테 이러지 마. 씨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