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704
■ 703화. 탄생 (2) □ ᓚᘏᗢ
시대와 세계를 막론하고 ‘탄생 설화’는 어디에나 존재하는 법이다.
당장 한국에서 유명한 탄생 설화 중 하나, 박혁거세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박혁거세는 신라의 초대 국왕으로, 알에서 태어났다는 탄생 설화가 존재한다.
이외에 주몽이라던지, 견훤이라던지 등등. 한국만 하더라도 수많은 탄생 설화를 알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와 마리 사이에서 태어난 첫째 딸, 그레이스의 탄생도 일종의 설화로 취급될 수도 있다.
솔직히 그 어떤 아이가 빛에 휘감긴 채로 태어나겠나. 눈뽕을 제대로 맞아버린 유모에게 미안한 마음이다.
“들었어? 제논 님의 아이가······”
“방금 봤어. 빛에 휘감긴 거 맞지?”
“역시 신들께서 축복을 내려준 게 분명해. 그렇지 않고서야······”
내 딸 그레이스가 태어나면서 빛무리에 휘감겼다는 소문은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태어나면서 빛을 내뿜는 것까지는 그렇다 쳐도, 그레이스는 한동안 빛무리에 휘감겨 있었다.
마치 빛이 그녀를 보호하는 것처럼, 신성한 빛으로 하여금 절로 경건함이 들 정도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산모와 아이 모두 건강했다는 것. 어디 부족한 곳 없이 멀쩡했다.
“이상해.”
“뭐가?”
“정신적으로 힘든데 왜 잠이 하나도 안 오는 거지?”
아리엘의 씨앗을 입에 머금었다지만 출산의 고통을 고스란히 느꼈던 마리.
그녀는 잠도 안 자고 눈을 멀뚱멀뚱 뜨고 있었다. 피로한 기색이 역력한데 잠을 못 자고 있다.
아직 낮이라지만 보다 더 좋은 회복을 위해 잠은 필수다.
게다가 방금 전 어머니의 조언으로 조금 걷고 왔다.
“어머니 말씀으로는 원래 그렇데.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
“어머님께서는 어떻게 4명을 낳으신 거지? 이제 곧 한 명 더 낳으실 텐데 정말 대단하시다.”
참고로 이번에 출산을 경험한 마리는 어머니를 더욱 존경하게 됐다.
한 명으로도 이리 벅찬데 릴리까지 4명, 그리고 또 한 명 더 낳을 예정이었으니.
예로부터 다산은 금실의 증거이자 남녀를 가리지 않고 위대하다는 인식이 강했다.
남자는 다둥이를 낳을 정력을, 여자는 그 남자와 다둥이를 버틸 수 있는 강인함을.
그런 의미에서 마리가 어머니를 존경하는 건 이상하지 않았다.
“······그런데 아이작.”
“응. 말해.”
“얘가 정말로 우리 아이가 맞지?”
마리는 자기 옆에 누워있는 사랑스러운 친딸, 그레이스를 바라보며 나에게 물었다.
나를 닮아 붉은색 머리카락과 금색 눈동자를 가진 여자아이. 다만 이목구비는 마리와 똑닮았다.
누가 봐도 나와 마리 사이에 낳은 딸이라는 걸 눈치챌 정도다. 여기서 특이할 점은 바로 빛.
태어날 때도 빛을 내뿜었으며 지금도 그 휘광이 약간이나마 존재했다.
“물론이지. 네 배에서 나온 아이야.”
“신기하다. 이렇게 큰 애가 그 자그만한 구멍에서 나왔다고?”
마리가 그레이스의 볼을 톡- 톡- 건드리며 신기해했다. 그러자 꾸물꾸물거리는 그레이스.
신성력을 무럭무럭 받아먹어서 그런지 그레이스는 우량아라 불리기에 손색이 없었다.
그럼에도 난산을 겪지 않고 몇 번 힘을 주는 것만으로도 쏙- 나왔으니 신기하다면 신기하다.
이것만으로도 애정을 가지기에는 충분하고도 남았지만, 특별한 점은 끝나지 않았다.
“어머님은 막 태어난 아이는 보통 쭈글쭈글하다고 들었는데 우리 그레이스는 아니네?”
“처음에는 쭈글쭈글했어. 1시간도 안 되서 이리 된 거고.”
갓 태어난 아이는 양수 때문이라도 쭈글쭈글하다. 그거 때문에 충격을 먹는 산모가 적지 않다.
하지만 그레이스는 다르다. 처음에는 쭈글쭈글하긴 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말끔해졌다.
지금도 선명한 이목구비와 더불어 머리카락도 꽤 많은 편이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태어난 지 며칠 된 아이라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다.
“우응······”
마리가 연신 볼을 찌르자 그레이스가 옹알이를 한다. 그 옹알이에 마리가 엄마 미소를 짓는다.
빛무리에 휘감겨 있어도 그레이스는 내 딸이다. 사랑하는 여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
아리엘도 생물학적으로 따지자면 내 딸이긴 해도 그레이스가 좀 더 각별히 느껴졌다.
물론 그렇다 해서 아리엘이 소중하지 않다는 건 전혀 아니다. 나는 절대 차별을 두지 않을 것이다.
“그레이스.”
“우응.”
“앗. 혹시 내 말에 대답한 거야?”
“그런 거 같은데?”
내가 긍정적인 대답을 꺼내자 마리가 베시시 웃었다.
우리의 화목한 분위기를 읽기라도 한 것인지 그레이스도 베시시 미소를 지었다.
‘······잠깐만. 웃는다고?’
재차 확인하니 방긋방긋 웃고 있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이 절로 녹을 정도다.
신생아에게 미소는 자극으로 인한 반응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도 며칠은 지나야 가능한 일이다.
빛무리에 휘감겨 태어났던만큼 평범한 아이라 생각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그래도 귀여우니 됐지.’
아리엘, 릴리, 그레이스. 마이샬 가문의 보물이자 사랑둥이들.
탄생 설화든 뭐든 뭐가 중요하겠나. 무럭무럭 건강하게 자라는 게 더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위험 요소들을 사전에 차단해야겠지. 내 책임이 더욱 막중해지는 순간이다.
똑똑똑-
[잠깐 들어가도 될까?]마리와 그레이스를 번갈아보며 흐뭇함과 책임감을 가지고 있을 때 세실리가 노크를 했다.
나는 혹여 그레이스가 깰까봐 조심조심 움직였다. 이윽고 문 앞까지 도착한 후에는 최대한 조용히 문을 열었다.
문 뒤에는 예상한대로 세실리가 서 있었다. 그녀는 내가 문을 조용히 열자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들어가면 안 돼?”
“그건 아니야. 대신 조용히 들어와.”
신생아는 대부분의 시간을 잠으로 충당한다. 본능에 따라 먹고 자는 행위밖에 못한다.
약 100일 정도가 흘러야 심리적 소통을 할 수 있을 뿐. 지금은 작고 소중한 생명에 지나지 않았다.
“우와······”
세실리는 작은 빛무리를 내뿜는 그레이스를 보며 약하게 탄성을 질렀다.
누구라도 저 귀엽고 사랑스러운 생명체를 본다면 저런 반응을 보이겠지.
“이름이 그레이스라고 했지?”
“응. 아이작 말로는 축복이라는 뜻이 담겨있데.”
“축복이라······ 정말 잘 어울리네. 잠깐 만져봐도 될까?”
“응. 대신 조심히 만져.”
보통 같으면 유리 공예품 그 이상으로 다루어야 하는 것이 신생아다.
하지만 그레이스는 약간 특이 케이스를 한첨 넘어섰다. 그렇기에 이정도는 괜찮았다.
이윽고 세실리는 길고 가느다란 검지 손가락으로 그레이스의 볼을 꾹- 꾹- 건드렸다.
그레이스는 새로운 자극에 옹알이를 하다가 몸을 꿈틀거렸다.
“어떡해. 너무 귀여워.”
“귀엽지?”
“응. 이런 걸 보니 아이를 더 빨리 갖고 싶어.”
원래부터 호시탐탐 내 아이를 노리고 있던 세실리다. 그레이스를 보고나니 욕심이 더 나는 모양이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쓰게 웃었지만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마리가 출산한 이상 다음은 세실리였으니까.
다만 시기가 시기다보니 천천히 시간을 둘 예정이다. 무턱대고 과속부터 하면 곤란해질 수도 있으니.
‘타이밍을 잘 잡아야지.’
세실리가 내 애인이라는 건 이미 기정사실화돼 있다.
지난 제논 축제부터 함께 붙어 다녔으니 모르면 이상하지.
하물며 마리와의 관계도 친하다고 어느 정도 알려져 있는 상황이다.
지금 필요한 건 그녀에게 청혼하는 것뿐. 이건 모든 일이 마무리 된 후에 할 예정이다.
“너도 빨리 낳아. 그래야 내가 얼마나 힘든 지 알겠지.”
“그러면 더이상 안 낳는다는 거야?”
“에이. 그건 아니지. 뭐든 간에 처음이 어려운 법. 이정도 고통은 기꺼이 참을 수 있어.”
마리와 세실리가 아주 조용한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는 동안 그레이스를 지켜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딸이라는 게 실감나지 않는다. 어쩜 이리 예쁘게 낳았을까.
형이나 누나는 결혼조차 하지 않은 몸인데 정작 막내인 내가 먼저 아이를 가졌다.
‘그러고보니 지금 급하게 온다고 하지 않았나?’
아버지가 직접 네이비 기사단에게 요청했다. 그레이스가 태어났으니 휴가를 보내달라는 식으로.
지금쯤 부랴부랴 달려오지 않을까 싶다. 이들에게도 그레이스는 매우 특별한 존재였으니.
“아이작.”
“응?”
“그레이스는 어떻게 키울 생각이야?”
잠깐 형제들을 생각하고 있을 때 세실리가 나에게 질문했다.
그레이스를 어떻게 키울 거냐니. 답은 정해져 있다.
“건강하게만 자라달라고 해야지. 손에 물 묻힐 필요는 없어.”
건강이 얼마나 중요한 지는 여러 일을 겪으면서 절실하게 깨달았다.
환생을 하기 직전 심장이 멈췄을 때의 고통과 신성을 섭취했을 때 신열을 앓은 고통.
그 고통들을 겪어보니 건강이 얼마나 중요한 건지 알겠더라. 그레이스가 그런 일을 겪는 건 안 된다.
“그건 당연한 거잖아. 세실리가 말하는 건 어떤 아이로 키우고 싶냐는 거야. 너도 이제 아빠니까 계획은 세워야지.”
내 대답이 성의없게 느껴졌는지 마리가 나를 타박하며 정정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골똘히 생각했다. 확실히 나도 아빠가 되었으니 진지하게 고려해야 된다.
애당초 아리엘은 자기가 알아서 잘 크는 편이어서 신경 쓸 부분은 크게 없었다.
그러나 그레이스는 0에서부터 시작하는 몸이니 각별히 주의할 필요가 있다.
“으음······ 다른 건 다 괜찮지만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흠이 없는 아이로 키우고 싶어. 환경은 모두 충족시킬 수 있으니까.”
“축약하자면?”
“올바른 아이로 키우고 싶어.”
내 성향이 그쪽으로 쏠린 것인지 몰라도 도덕적으로 훌륭한 아이로 키우고 싶다.
건강, 돈, 명예, 권력, 마지막으로 외모까지. 그레이스에게는 부족한 것들이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그렇기에 탈선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전생에서도 부자들이 사고를 치는 걸 지켜봤다.
“부족함 없이 자란 아이는 그 부족함을 느끼지 못해 공백을 느끼는 경우가 있더라고. 자기가 무엇이 부족한 지 깨닫고, 무엇을 소중히 여기는 게 중요한 지 깨달아야지.”
“엄청 힘들겠네. 심지어 자기 아빠는 성자라서 비교되겠다.”
“나도 부족한 점이 많아.”
벌써부터 아찔함이 느껴지는 건 왜일까.
최대한 노력하겠다만 부디 그레이스가 엇나가지 않도록 바랄 뿐이다.
다행히 우리 가문은 엇나가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도리어 영웅적인 행적을 밟은 사람들이 대다수지.
그레이스가 그 행적을 밟기를 원하는 건 절대 아니다. 평범한 아이로 자라나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를 원했다.
전생과 현생을 통틀어 깨달은 건 하나. 스케일이 커도 ‘소소한 행복’이야 말로 진정한 행복이라는 것이다.
‘클라크 할아버지가 몸소 희생한 것도 이때문인가?’
클라크 할아버지는 개인보다는 대의를 선택한 분이다. 그 대의의 끝에는 해방이 뒤따랐다.
아버지는 비록 권력 다툼에 휘말려 좋지 못한 삶을 사셨지만, 어머니와 만나 소소한 행복을 일구었다.
마이샬 가문이 영웅적인 행적을 이룩했음에도 알려지지 않은 것도 이와 연관이 있었겠지.
‘300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어도 마이샬 가문의 피는 꾸준히 이어졌으니까.’
이 말은 즉, 마이샬 가문이 대부분 소소한 행복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허나 해방되지 않는 이상에야 그 끝은 파멸. 강제적으로 영웅적인 업적을 이룰 수밖에 없었겠지.
나 또한 마찬가지다. 그레이스가 태어나면서 더욱 강한 책임감을 가질 수 있었다.
마이샬 가문과 악마 숭배자 및 만물의 아버지는 여기서 끝나야 된다.
내가 그렇게 만들 것이다.
“아우우.”
속으로 다짐하고 있을 때 그레이스의 눈이 떠졌다. 선명하게 빛나는 황금색 눈동자다.
하루도 지나지 않은 신생아가 어떻게 눈을 뜬 걸까. 그래도 귀여우니 넘어가자.
“어머. 우리 딸 깼니? 엄마가 시끄럽게 굴었나 보네.”
“눈동자도 반짝반짝거리네. 신기하다.”
“황금색 눈동자라 그런 거 아니야?”
“아니야. 잘 봐. 눈이 빛나는 것처럼 반짝거리는데?”
그런가. 처음 눈을 떴을 때는 평범했는데.
나와 마리는 세실리의 말에 따라 그레이스의 눈을 집중했다.
그녀의 말처럼 아주 미약하지만 황금색 눈동자에 빛이 나고 있다.
휘광에 감싸져 있어서 인지하지 못했던 거지, 문자 그대로 보석처럼 빛나는 눈이다.
“보석을 박아도 이렇게 빛나지는 않을 거야. 정말 신기하네.”
“그, 그러게. 이러다가 나중에 레이저 같은 걸 쏘는 건 아니겠지?”
“네 딸이야, 네 딸. 말을 그렇게 하면 어떡하니?”
“조금 당황스러워서.”
친엄마인 마리조차 당황스럽게 만드는 그레이스의 비범함이다.
여기까지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다. 어찌 됐든 간에 신생아라는 건 변함이 없었으니.
“끄으으응······!”
그런데 그레이스는 정말 놀랍게도.
“끄으응······ 아!”
약간의 힘을 주는 것만으로 몸을 뒤집어버렸다.
“··· ···”
뭐지.
내가 방금 뭘 본 거지.
태어난 지 하루도 안 지난 신생아가 몸을 뒤집는다고?
어머니로부터 신생아의 성장 과정을 들은 나와 마리는 아무런 말도 못했고.
“앗! 뒤집었다! 뒤집었어! 어떡해! 어떡해!”
아무것도 모르던 세실리만이 박수까지 치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뿌애애앵!”
물론 몸을 뒤집은 것과 별개로 목을 못 가눴다. 그에 팔다리를 바둥거리는 그레이스.
마리가 서둘러 그레이스를 다시 뒤집으며 울음은 멈출 수 있었다.
“끄으응······ 차!”
얼마 가지 않아 또다시 몸을 뒤집어버렸지만.
마리는 그 광경을 보다가 작게 중얼거렸다.
“······설마 얘도 아이작처럼 환생한 건가?”
오죽하면 그레이스를 환생자로 취급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