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709
■ 708화. 사인회 (2) □ ᓚᘏᗢ
전에 말했다시피 첫 팬사인회는 미네르바 제국부터 시작했다.
리나에게도 말을 한데다가 머스크의 수완도 훌륭한 편이어서 건물도 대여했다.
내가 알기로 팬사인회는 부스 같은 형식으로 진행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만 여기는 그런 문화가 없다.
그래서 커다란 건물을 통째로 빌린 후, 시간이 된다면 안내인의 안내에 따라 내가 있는 방으로 들어올 것이다.
그때까지 심심하지 않도록 콜 오브 듀티를 하라고 안내한 건 덤. 덕분에 독자들은 심심해하지 않고 무난히 기다렸다.
‘한 사람당 10분 정도 대화하니까······’
10명만 해도 100분이다. 나와 대화하기 위해 몇 시간이나 기다려야 된다는 뜻.
그래서 미리미리 순번을 정해놓았다. 후번들은 수도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시간을 보낸다.
때마침 수도에도 축구장이 세워졌기에 거기서 많이 놀더라. 당연하지만 우리 영지의 축구장을 토대로 건설했다.
이렇듯 순번을 기다리다가 누군가 오지 않았다? 잠깐 화장실을 갔을 수도 있었으니 그 번호는 잠깐 뒤로 미루고 다음 번호를 부른다.
미네르바 제국은 인구가 인구인만큼 당첨자 수도 많다. 게다가 나를 한 번이라도 보려고 수도에 어마어마한 인파가 몰렸다.
치안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었기에 황궁에서도 치안대를 대폭 늘렸다. 물론 이렇게 해도 안 되는 부분이 많다.
황제가 직접 엄명을 내릴 수도 있지만 내가 먼저 이러한 말을 남겼다.
[큰 문제가 생기면 곧장 떠나겠습니다. 조용히 즐겨주세요.]그러더니 다들 안내원의 말을 고분고분 잘 따르더라. 심지어 한 성깔하게 생긴 모험가마저 예의를 가졌다.
대신 콜 오브 듀티만큼은 얄짤없다. 이 새끼 사기를 쳤다니, 패를 빼돌렸다니 등등 온갖 음해가 돌아다니더라.
이 같은 경우는 어찌할 부분이 없어서 간신히 진정시킬 수밖에 없었다. 축구도 판정 시비가 들린다더라.
그래도 조용한 것보다 적당히 시끌벅적한 게 좋다. 나도 팬들과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재미있다.
“어째서 진을 죽일 생각을 하신 건가요?”
“··· ···”
다만 비슷한 질문이 연달아 날아오니 정신적으로 피곤하더라. 특히 진과 관련된 질문이 매우 많았다.
다른 건 몰라도 이건 예상치 못한 부분이었다. 제논 일대기가 완결된 지 1년이 조금 넘었다.
그 사이 피와 강철의 연재로 묻힐 줄 알았더만 순전히 내 착각이었다.
그나마 다행히 외전이자 진짜 결말을 통해 진과 릴리가 이어졌다는 것.
그것마저 없었더라면 질문의 반 이상이 진의 죽음과 관련돼 있었을 것이다.
[진의 죽음과 관련된 질문은 하지 말아주세요.]결국 안내인에게 따로 부탁했다. 진의 죽음과 관련된 질문은 하지 말아달라고.
덕분에 독자분들과 다양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대부분 나와 관련된 질문들이다.
“제논 님은 어떤 색깔을 좋아하세요?”
“빨간색을 좋아합니다.”
“그럼 두번째로 좋아하는 색은요?”
“음······ 하얀색?”
대충 저런 식의 질문이다. 독자들은 이런저런 질문을 충분히 준비하며 나와 대화했다.
평소 나는 영지에 짱박혀 잘 나오지도 않는다. 설령 밖으로 나온다고한들 축구 심판을 보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외국으로 갈 때도 세실리나 아르웬의 도움을 받아 텔레포트로 이동한다. 영지민이 아니라면 내 얼굴을 보는 것조차 힘들다.
“와아······ 진짜 제논이다······”
“······하하.”
“우와······”
그래서인지 몰라도 내 얼굴만 뚫어져라 쳐다보는 분도 계셨다. 어딘가 홀린 것 같은 표정이다.
중간에 질문할 게 없냐고 물어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렇게 내 얼굴만 보고 시간을 보냈다.
“제논 님! 제논 님! 제논 님은 몇 살이에요?”
“이제 21살을 막 넘겼어요.”
“저보다 더 많네요! 대단하다!”
가끔 나이가 어린 팬들도 있었으며 부모님을 대동했다. 이들 같은 경우는 다른 부류보다 훨씬 편했다.
정말로 순수하고 귀여워서 보기만 해도 미소가 나왔다.
“제논 님! 제논 님은 신님들이 데리고 오셨죠? 부모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네. 그렇죠.”
“그런데 왜 날개도 없고 귀도 짧아요? 얼굴만 보면 천사가 맞는데.”
가끔 대답하기 난감한 질문도 있었다. 이런 경우는 평소 갈고 닦은 구라······ 아니, 재치를 발휘했다.
“이건 비밀인데, 잠깐 귀 좀 빌려줄 수 있나요? 공주님에게만 알려드릴게요.”
“핫! 정말요?”
“물론이죠.”
뒤에서 소녀의 부모님이 웃참을 하고 계시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무슨 술수(?)를 부릴 지 눈치챈 모양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이는 기대하는 표정으로 귀를 빌려줬다. 나는 아이의 귀에다 입을 대며 속삭였다.
[그건 신님들이 인간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저를 엘프가 아닌 인간으로 태어나게 하셨죠?] [저, 정말요?] [물론이죠.]루미너스와 모라, 그리고 히르트는 차별없이 모든 종족을 사랑한다. 인간’만’ 사랑하는 건 절대 아니다.
하지만 소녀에게는 그것만으로 충분할 것이다. 앞으로 순수한 마음을 잘 간직할 수 있겠지.
“비밀을 잘 지켜줄 수 있죠?”
“네!”
소녀의 귀에서 입을 떼면서 묻자 소녀가 힘차게 대답한다. 그러면서 앙증맞게 두 손으로 입을 막기까지.
아직 질문 타임이 남아있는데 저러네. 아무래도 내가 질문을 해야 할 차례인 것 같다.
“공주님께서는 커서 뭐가 되고 싶나요?”
“제논 님 같은 분이랑 결혼하고 싶어요!”
“··· ···”
그건 조금 힘들겠는데. 나 같은 사람이 앞으로 몇 명이나 나올까.
이처럼 순수하디 순수한 아이를 통해 피곤했던 마음을 치료할 수 있었다.
건강한 신체의 존재로 육체적인 피로는 거의 느끼지 않지만, 정신적 피로는 아직 힘들다.
그나마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고, 체력이 든든하게 받쳐주니 그렇게 지치지는 않았다.
“여기 사인입니다. 앞으로 제 작품 많이 읽어주세요.”
“가, 감사합니다······!”
대부분의 팬분들은 나와 담소를 나누다가 마지막에 사인 및 악수를 하는 것으로 끝났다.
여기서 사고라도 쳤다가는 앞으로 영영 팬사인회가 불가능한 건 물론, 신변에도 이상이 생길 테니 다들 자중하는 분위기다.
“여기에다가 사인이 가능합니까?”
“어······ 가능은 합니다만 뭘 하시려고······?”
“문신으로 새길 겁니다.”
“··· ···”
물론 과감한 사람들이 없는 건 아니었다. 특히 모험가 계열 쪽이 그런 양상을 보였다.
지금도 나보다 머리통 하나 정도는 큰 거한이 자기 심장 쪽에 사인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처음에 옷을 벗어던졌을 때는 이상한 짓이라도 할까봐 아델리아가 저지했을 정도.
‘진짜 부담스럽네.’
참고로 내 사인은 한글로 쓴 내 이름이다. 그러니까 저 거한의 가슴에다가 ‘아이작’이라는 문신을 새긴다는 것.
이 세상에서 한글은 나 혼자만 알고 있는거라 아무 상관이 없겠지만, 심경이 복잡한 건 매한가지다.
어쨌거나 사인은 해야겠지. 나는 체계화된 단련이 아닌, 숱한 경험으로 빵빵한 그의 가슴에 내 이름을 새겼다.
가슴판이 워낙 커서 그런지 크게 적어도 문제가 없었다.
“다 끝났습니다.”
“감사합니다. 가능하면 등에도 해줄 수 있습니까?”
“··· ···”
일단 해달라다는 대로 해줬다. 모험가는 내가 사인을 끝내자 매우 흡족한 표정으로 예의바르게 허리를 꾸벅 숙였다.
이윽고 모험가가 밖으로 나가자 아델리아가 농담조로 나에게 말했다.
“문신을 새기고 나면 웃통을 벗고 다니는 건 아니겠지?”
“··· ···”
아주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라서 쓰게 웃었다.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시대라지만 몬스터는 남아있다.
폭력에 노출이 되기 쉬운 직군인만큼 야만적인 성정 또한 남아있겠지.
이처럼 과감한 독자분들이 있긴 해도 무례를 범하지는 않았다.
내가 왜 이런 말을 하느냐, 실제로 충동을 이기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감사합니다. 앞으로 열심히 응원해주세요.”
“하아······ 하아······ 네······”
뺨을 잔뜩 붉힌 여자가 나와 악수를 하면서 숨을 몰아쉬었다.
얼굴만 보면 어디서든 시선을 끌법한 미녀다. 어디 귀족가의 자제 혹은 부잣집 딸내미인 건가.
속으로 그리 생각하고 있을 때쯤, 여인이 돌발행동을 취했다. 악수를 하면서 자신을 얼굴을 빠르게 들이민 것이다.
이 기회를 틈타 내 입술을 탐하려는 듯했다. 하지만 그녀가 모르는 게 있었으니.
쾅!
“꺄악!”
뒤에 있던 아델리아가 미리 낌새를 느꼈다는 것이다. 가장 먼저 얼굴부터 붙잡고 그대로 책상에 찍어눌렀다.
분명 내 뒤에 있던 아델리아였는데 순식간에 거리를 좁혔다. 여태까지 훈련을 좌시하지 않았기에 가능한 속도다.
“아으윽······!”
“이러시면 안 됩니다. 한 번은 용서하겠지만 다음은 없어요.”
“네, 네······!”
아델리아는 사무적인 어조로 여자에게 경고를 하고는 슬그머니 놓아줬다.
여자도 한 대 맞고 정신을 차렸는지 겁에 질린 표정이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빙긋 웃어주며 상냥하게 말했다.
“실수할 수도 있는 거죠. 앞으로 그러면 안 돼요?”
“··· ···”
본인도 잘못했다는 걸 알고 있는지 후다닥 빠져나가는 여성분. 그래도 예의는 있는 건지 빠져나가기 전에 사과하고 떠났다.
보통 같으면 끌려가도 할 말이 없겠다만 이정도는 용서할 수 있었다. 건강한 신체 때문이라도 어쩔 수 없다.
나에게 호감이 있다면 거의 페로몬 수준으로 홀려버린다. 여기에 잘생긴 얼굴까지 곁들이니 뻑이 가는 거지.
다소 자화자찬 같긴 해도 현실이다. 나를 신에 준하는 수준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으니까.
“오늘만 해도 10명째군요.”
잠깐 쉬는 시간에 케이트가 방으로 들어와 말했다. 10명이라는 건 방금 전처럼 사고를 친 사람을 뜻한다.
그녀는 안내원 및 검문 역할을 하고 있다. 팬들이 지닌 위험한 물건을 일일이 확인하거나 악마 숭배자인지 판별하는 것이다.
“제국조차 이런데 헬리움은 더 심하지 않을까?”
“그건 아닐 겁니다. 마족은 제논 님을 구원자로 숭배하는만큼 더 예의를 차리겠죠.”
아델리아의 우려 섞인 물음에 케이트가 반박했다. 확실히 마족은 엎드려 절하면 절을 했겠지, 사고를 치진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절제를 미덕으로 삼는 종족인만큼 사고가 날 확률은 극히 희박하다.
“아차.”
설명을 하던 케이트는 도중에 무언가 잊은 게 있었는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에 나와 아델리아가 그녀에게 시선을 옮겼다. 무슨 일이라도 일어난 걸까.
“그러고 보니 중요한 걸 깜빡하고 있었군요. 나중에 세실리 공주님과 얘기를 나눠야 할 것 같습니다.”
“무슨 얘기요?”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헬리움과 연관이 있습니다.”
무슨 얘기인지 몰라도 나와 관련이 있다는 건 반쯤 확실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런 반응을 낼 수 없었을 테니.
저런 경우는 물어봤자 대답해주지 않을 테니 쉬이 넘겼다. 종교 문제여도 상관없는 게, 헬리움은 이미 나라는 존재가 종교다.
‘그나저나 선물은 어떻게 다 옮기지?’
팬사인회를 하면서 대화만 나눈 건 아니다. 팬들이 나를 위해 다양한 선물도 준비했다.
간단한 과일부터 시작해서 팬레터, 손수 제작한 인형, 그리고 조각까지.
케이트의 말로는 나를 위해 무기를 제작한 사람들도 있단다. 큰 물건 같은 경우는 밖에 배치한 상황이다.
‘이건 천천히 생각하자.’
팬사인회는 아침부터 시작해서 해가 지기 전까지 진행하고 있다. 보통 사람이라면 진작에 녹초가 되고도 남겠지.
하지만 나를 비롯하여 아델리아와 케이트는 괜찮다. 체력에서만큼은 절대 뒤지지 않았다.
더구나 그녀들은 나처럼 기가 빨릴 일도 없다. 나 혼자만 조금 고생하면 끝이다.
아. 물론.
“제논 님. 남자 대 남자로서 질문을 해도 되겠습니까?”
“······무슨 질문이죠?”
“제논 님은 상체를 선호하십니까, 아니면 하체를 선호하십니까?”
별의별 괴상한 사람들이 튀어나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시대가 시대인지라 성희롱이라는 개념이 사실상 전무하다. 이건 어디까지나 농담에 가깝다.
나는 진지하기 짝이 없는 남자를 보다가 뒤를 힐끔거렸다. 꽤 관심이 가는지 아델리아도 집중하는 표정이다.
이럴 때일수록 현명한 대답을 해야하는 법. 나는 성희롱적인 질문과 달리 현명한 인상의 남자를 보면서 대답했다.
“사람마다 취향이 갈리는 대답이군요. 하지만 이 대답은 할 수 있습니다.”
“그게 무엇이죠?”
“큰 걸 좋아하는 사람은 정상이지만, 작은 걸 좋아하는 사람은 비정상입니다.”
아르웬도 다른 사람에 비해서 가슴이 빈약한 거지, 절대 작다고 할 수 없는 크기다.
하체는 두말 할 필요도 없다. 허리 라인에서 내려오는 골반 라인은 가히 국보급이라 칭송해도 부족함이 없으니.
남자는 내 대답을 듣고 무언가 큰 깨달음이라도 얻었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큰 깨달음을 얻고 가는군요.”
깨달음은 무슨 깨달음이야.
나는 속으로 그리 생각하면서 미묘한 웃음만 지어줬다.
이윽고 남자가 밖으로 나가고 다양한 사람들과 마주하면서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제논 님. 한 가지 부탁해도 되겠습니까?”
“무슨 부탁이죠?”
팬사인회를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진상도, 돌발행동을 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후손들이 제논 님의 아름다운 외모를 보다 더 잘 알기 위해 그림으로 남기고 싶습니다.”
“아, 네. 뭐······ 제논 축제 때······”
“나체로 말이죠.”
“··· ···”
변태 같은 ‘낭만’이 가득한 사람들이었다.
‘그래. 이런 시대였지.’
내가 왜 이걸 몰랐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