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710
■ 709화. 입헌군주제 (1) □ ᓚᘏᗢ
사상 첫 팬사인회는 무난하게 진행됐다. 악마 숭배자가 지랄하는 것도 없었고, 눈에 띌만한 사고도 발생하지 않았다.
사고라 해봤자 나와 스킨십을 하고 싶은 사람들밖에 없었다. 그런 경우는 아델리아가 전부 사전에 차단했다.
물론 가끔 가다 무례를 범하는 사람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돈을 줄 테니 언론을 조작해달라는 건 기본이다.
한 번이라도 좋으니 자기랑 관계해줄 수 없냐고 요구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당연하지만 대부분 여성들이다.
내가 바람둥이라는 건 이미 전세계가 알고 있으며 밤일을 짐승처럼 한다는 것 또한 공공연한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이 여자 저 여자 건드리는 사람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더러 있더라. 틀린 말은 아니지만 조금 억울하다.
“한 번만이라도······ 제 전재산을 바칠게요! 아니면 가문이라도······!”
“죄송합니다.”
“아아! 제논 님! 저도······!”
나는 아델리아에게 질질 끌려나가는 여인을 안타깝게 바라봤다.
듣자하니 제논 축제 당시 나를 멀리서 지켜봤던 귀족가 영애라던가.
그때부터 사랑에 푹 빠져버렸다니, 앞으로도 열렬히 사모하겠다니 하면서 난감하게 만들었다.
‘여자만 있다면 모르겠는데······’
아주 소수지만 남자도 있더라. 나는 물론이요, 아델리아마저 당혹스러워했다.
어찌저찌 넘기기는 했다만 대외적인 활동이 얼마나 큰 파급력을 초래하는지 깨달았다.
“전부 받아들이면 되지 않습니까? 아이작 님의 은혜를 원하시는 분이 저렇게나 많은데.”
이것만으로도 힘든데 케이트마저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나를 종교 수준으로 사랑하는 그녀이니 마인드가 남다르다.
나를 너무 사랑하다 못해 추종하는 포용력이 굉장히 넓어졌다고 해야 하나.
그러니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오케이라는 것이다.
“그러기는 힘들어요, 케이트 씨. 저는 저를 잘 아는 사람과 이어진 것이지, 저 분들은 멀리 있는 저를 보며 연모하는 거죠.”
“이해하기 힘듭니다만.”
“······그냥 은혜를 나눠줄 사람이 한정돼 있다고 생각하세요.”
“이해했습니다.”
역시 케이트는 다소 종교적인 의미를 섞어서 설득할 수밖에 없었다. 포용력이 넓어도 너무 넓다.
체리도 그러한 포용력으로 끌어들인 거겠지. 그나마 체리는 나 또한 호감을 있는데다가 내가 먼저 구원한 아이다.
만약 그녀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상당히 골치아파졌을 것이다. 혹시 모를 경우를 막아야 할 것 같다.
“케이트 님. 다른 건 몰라도 제가 사랑하는 여자만큼은 제가 선택할 겁니다. 여인들 또한 선택권을 가져야 하고요. 제가 무작정 선택하거나, 여자 쪽에서 저를 원한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거예요.”
“알겠습니다. 허면 아이작 님은 일부다처제를 용인하시는 겁니까?”
“아내들을 평등히 대하고, 매일 밤 잠자리를 가지는 데에 불만이 없을 정도로 강인하며, 아내들 모두 공평히 사랑할 수 있는 능력과 조건이 된다면 말이죠.”
일부다처제는 여자는 물론이거니와 남자도 매우 힘들다. 특히 지구 같은 현대 사회에서 일부다처제는 불가능에 가깝다.
외모, 재력, 신체, 능력, 정치 등등. 모든 것들이 제대로 맞물려야 행복하게 살 수 있다.
그렇지 않는다면 치정극이 발상하거나 이별을 겪는 등. 안 좋은 일이란 안 좋은 일은 다 일어날 것이다.
케이트는 내 말을 듣고 골똘히 생각하더니 특유의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말했다.
“숙지하겠습니다. 아이작 님의 위상을 더욱 끌어올릴 수 있겠군요. 아이작 님은 모든 게 완벽하시니까요.”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저도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건강한 신체를 얻기 전까지 밤마다 애인들을 상대하느라 진땀을 뺐다.
특히 아델리아나 레오나처럼 기본 체력이 강한 애인들은 정말로 힘들었다.
여기에 악주기에 접어든 세실리까지 달려든다? 그때는 죽었다고 복창해야 된다.
지금이야, 그들이 한꺼번에 덤벼들어도 굳건히 이겨낼 수 있었다. 신성력이 좋긴 하더라.
“허면 앞으로 리나 황녀님을 제외하면 은혜를 내릴 대상이 없는 겁니까?”
“아마 그렇겠죠.”
지금쯤 리나는 잔뜩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본인의 성적 욕구를 채울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과연 첫날밤 그녀의 모습은 어떨까. 약간 궁금해진다.
팬사인회가 모두 끝나고 황궁으로 향할 예정이었으니 조금만 기다리면 될 것이다.
“아쉽군요.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봐야 하는데······”
“황녀 님도 참······ 그래. 취향은 존중해야지.”
아쉬워하는 케이트와 달리 아델리아는 그냥 고개만 끄덕거리고 넘어갔다.
리나의 독특한 성적 취향은 이미 애인들 사이에 퍼져있다. 당연하게도 마리가 퍼뜨린 것이다.
처음에는 다들 당황했지만 취향이니 존중하자는 식으로 넘어갔다. 덕분에 리나가 잘 녹아들 수 있었다.
‘문제는 매일매일 놀린다는 거지만.’
가면을 벗어던진 리나는 정말이지 훌륭한 샌드백 역할을 수행 중이다. 틈만 나면 얻어맞는다.
아무리 본인이 청산유수로 말을 하더라도 ‘변태’ 한 마디면 바로 침몰한다. 마지막 자존심인 것이다.
과연 그 자존심이 첫날밤에서조차 굳건히 버틸지, 아니면 와르르 무너질 지 기대가 된다.
“자자. 잡담은 여기까지 하고 할 일부터 하자. 오늘은 몇 명으로 예상하고 있어?”
“되는대로 받아야지. 끌려나간 사람들이 있어서 잘 몰라.”
“저는 그럼 밖으로······ 아, 그전에 아이작 님.”
“네?”
검문을 위해 문 밖으로 나가려던 케이트가 나를 불렀다. 이에 나는 케이트를 쳐다봤다.
“전에 얼핏 들은 게 있습니다. 어느 한 예술가가 아이작 님의 누드화를 그리고 싶다고 하셨더군요.”
“······그 제안은 거절했습니다. 그건 왜 묻죠?”
“한 번 진지하게 고려하심이 어떻습니까? 후대의 기록을 위해서라도 한 장 정도는 필요할 겁니다.”
“··· ···”
장난이었다면 모르는데 진지해서 난감하다. 이 시대의 예술은 종교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으니까.
테르스 왕국에서 발생한 제이로스 혁명도 이때문이다. 무작정 종교 관련 그림만 그리라고 하다가 사단이 난 것이다.
지금이야, 예술의 자유가 주어졌기에 꼭 그럴 필요는 없지만 성직자다보니 그쪽으로 생각이 쏠린 듯했다.
“그······ 꼭 누드화가 아니어도 괜찮지 않아요?”
“아이작 님의 그림이라면 상관없습니다. 후대에게 전달해야 하니까요.”
“그 부분은 천천히 상의하도록 하죠.”
“알겠습니다.”
누드화만 아니라면 상관없다. 물론 시간이 시간인만큼 천천히 고려할 문제다.
더구나 굳이 그림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당장 헬리움은 ‘영화’를 촬영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림이 아니더라도 사진을 찍으면 충분하다. 케이트가 말한 그림은 종교적인 색채가 섞여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림이라······ 그러고 보니 한 곳에 모여서 사진 같은 걸 찍은 적이 없네.”
아델리아도 케이트의 말을 듣고나서 무언가 생각난 게 있는 모양이다.
그녀의 말마따나 나와 가족들의 초상화는 존재해도, 애인들끼리의 초상화나 사진은 없었다.
때마침 생각났으니 기회가 된다면 모두 한 자리에 모여 찍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했다.
“여유가 되면 다 같이 모여서 찍자. 세실리나 아르웬에게 사진기를 발명해달라고 부탁해야겠네.”
“영화를 만드는 마법 구슬로 어떻게 되지 않을까?”
“그건 봐야 알겠지? 자. 다음 분 들어오세요.”
팬사인회는 중간중간 끌려나가는 사람 덕분에 빨리 진행됐고.
“그곳이 크다고 들었는데 정말인가요? 아내분께서 그리 말씀하셨잖아요.”
“······부끄럽지만 맞습니다.”
“하아······ 하아······ 혹시 보여주실 수 있나요?”
“··· ···”
다양한 의미의 변태들을 견뎌내느라 정신력을 모두 소비했다.
* * *
미네르바 제국에서의 팬사인회는 원래 일주일 동안 진행되는 것으로 예상했다.
당첨자들의 숫자를 미리 정해놓았기에 그정도로 예측한 것이다.
중간중간 끌려나가는 사람을 예측하지 못했을 뿐. 그 덕택에 시간을 꽤 단축시켰다.
일주일 정도로 예상했던 팬사인회가 정확히 6일만에 끝났으니까. 시간이 중요한 모험인만큼 꽤 순조로웠다.
“황제 님의 전언입니다. 제논 님을 황궁으로 초청하신다고 하더군요.”
“곧 가겠다고 말씀드려주세요.”
“알겠습니다.”
모든 팬사인회가 끝난 후에는 당연하다는 듯이 황궁으로 향했다. 이건 미리 입을 맞춘 상황이다.
미네르바 제국을 시작으로 각 나라마다 나를 초청할 터. 나는 그때마다 수락하면 그만이다.
그리하여 세실리, 아델리아, 케이트와 함께 미네르바 제국의 황궁에 입성할 수 있었다.
“빨리 왔네?”
안내인을 따라 황궁으로 들어가니 마리가 먼저 도착해 있었다.
원래라면 내일 와야하지만 팬사인회가 일찍 끝난만큼 세실리가 소식을 전달한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머리색과 어울리는 은색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특유의 청초함이 돋보였다.
그레이스를 낳았다지만 겨우 그걸로 특유의 분위기가 변하지는 않았다.
“예상보다 일찍 끝났거든. 리나는 어디 갔어?”
“아마 곧 올······ 왔네.”
“안녕?”
얼마 지나지 않아 흰색 드레스를 차려입은 리나와 만날 수 있었다.
안 그래도 화려한 황금색 머리카락이 더 찬란하게 빛나는 것 같다. 흰색 드레스를 착용해서 그런 걸 수도 있지.
더 나아가 귀걸이와 목걸이 같은 장신구까지 착용해서 그녀만의 우아함을 가감히 내보였다.
나는 상당히 신경 쓴 것 같은 그녀의 외모에 담백한 칭찬을 건넸다.
“오늘따라 유독 예쁜 것 같네. 리나.”
“그런 말을 하면 다른 사람들이 섭섭해하지 않을까? 그래도 고마워.”
내 칭찬을 진심으로 느꼈는지 리나의 뺨에 미미한 홍조가 일어났다. 입꼬리 또한 부드럽게 올라간 모습.
이전이었다면 담담하게 받아넘겼지만 저 반응만으로도 그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었다.
“곧 있으면 저녁 식사가 준비될 거야. 여기서 기다려줘.”
“폐하와 함께 식사하는 거야?”
“그건 아니야. 지금은 따로 할 일이 있으시거든. 아마 식사 후 디저트 타임 때 알현하실 수 있을 거야.”
“우리도 있어야 돼?”
세실리의 질문이다. 함께 식사하는 것까지는 몰라도 디저트 타임은 황제 마음이다.
리나는 그녀의 질문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건 아냐. 만약 뵙고 싶다면 내가 따로 말씀드릴게.”
“으음······ 아냐. 괜찮아. 아무래도 나는 빠지는 게 좋을 것 같네.”
“나도.”
“저도 빠지겠습니다.”
세실리, 마리, 아델리아 순이다. 이들은 눈치가 있기에 적당히 빠질 수 있었지만 딱 한 사람.
“그럼 저는 참여해도 될까요? 황제 폐하의 용안을 뵙고 싶습니다.”
오직 케이트만이 눈치없이 끼어들었다.
정치적인 문제를 회피하기 위해서라도 거절해야겠지만, 그녀는 아무것도 모른다.
머릿속에는 오직 나와 관련된 것밖에 없다. 이에 내가 쓴웃음을 지었을 때였다.
“알겠어요. 때마침 아바마마께서도 케이트 추기경 님을 보고 싶어하십니다.”
“폐하께서?”
“응. 묻고 싶은 게 있으시다고 하셨어.”
의외라면 의외다. 껄끄러울 수도 있는데 먼저 보고 싶다니.
다른 사람도 뭐가 있나 싶어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개인적인 일이니 넘어갔다.
그리하여 애인들끼리 단란하게 식사까지 끝마친 뒤, 나는 케이트와 함께 리나를 따라 응접실로 향했다.
“어서오게나. 오랜만에 보는군.”
황궁의 응접실답게 화려하디 화려한 방에서 베리트가 나를 반갑게 맞이해줬다.
대공황부터 시작해서 그동안 꽤 많은 격무에 시달려서 그런지 전보다 꽤 살이 빠진 듯했다.
베리트의 옆에는 레오르트가 앉아있었다. 스타비르크 이후 오랜만에 본다.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레오르트 님도 오랜만이군요.”
“그동안 별 일 없었지?”
“예.”
시덥잖은 대화는 넘어가고 곧바로 자리에 앉았다.
베리트는 가장 상석에 앉고 레오르트는 오른쪽에, 리나는 왼쪽에 앉았다.
나는 리나의 왼쪽에 앉았으며 케이트는 내 바로 옆에 앉는 식이었다.
“그래. 그러면 오늘 리나와 하룻밤을 보내는 건가?”
“······쿨럭.”
시작하자마자 빠구없는 질문을 날리는 베리트 황제. 당황한 나머지 하마터면 차를 뿜을 뻔했다.
나는 입에 넣었던 차를 조용히 내뱉으며 약하게 기침했다. 그 상태로 베리트를 쳐다보니 그는 무덤덤한 표정이다.
“······아바마마. 그런 소리를 벌써부터 하시면 어떡해요?”
“난리를 친 건 너란다, 리나. 안 물어보면 이상한 거지.”
“하아······”
리나는 잔뜩 빨개진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며 부끄러워했다. 이것만으로도 부끄러운 걸 넘어 수치스럽겠지.
그러나 베리트마저 예상치 못한 부분이 있었으니. 바로 내 옆에 앉은 케이트다.
“아. 그러면 오늘 은혜를 받는거군요. 축하합니다, 리나 황녀 님.”
“··· ···”
케이트는 진심으로 리나를 축하해줬다. 악의라고는 하나도 없는 미소하며 응원이다.
당연하게도 리나는 부끄러워 죽을 맛이겠지. 얼굴을 넘어서 목과 귀까지 새빨갛게 익어버렸다.
당황한 건 그녀뿐만 아니라 베리트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순간 당황했다가 껄껄 웃으며 넘어갔다.
“허, 허허허. 케이트 추기경 님께서는 제 딸과 친하신 모양이군요. 그런 농담까지 건네시는 걸 보면.”
“물론입니다. 아이작 님에게 은혜를 받은 분들은 모두 형제자매입니다. 그러니 저 또한 리나 님과 자매 사이라고 할 수 있죠.”
“··· ···”
이제는 내 차례다. 베리트와 레오르트는 그 말을 듣고 오묘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마음 같아서는 무시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다. 그냥 말없이 차만 홀짝일 뿐이었다.
앞으로도 케이트와 같이 다니면 이런 일이 많아지겠지. 익숙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
“흠흠. 아무튼 내 딸아이와 이어진다면 실로 축하할 일이지. 다만 문제가 아예 없는 건 아닐세.”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갈 뻔했지만 베리트가 간신히 휘어잡았다.
케이트의 악의없는 공격으로 목이 탔던 나는 차를 한 모금 마셨다가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봤다.
베리트도 내 표정을 읽었는지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문제에 대해 꺼냈다.
“자네는 레킬리스 공녀와 백년가약을 맺었지. 다른 애인들도 있는 것 같네만 첫번째는 그녀일 테고. 아닌가?”
“예. 맞습니다.”
“여기에 리나가 끼게 된다면 굉장히 애매해질 수도 있다네. 정말로 괜찮은가?”
늘 듣던 말이다. 옛날 같았으면 마리와 리나 사이가 굉장히 어색해질 수도 있는 문제.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내 위상은 신에 가까울 정도로 상승했으며 모든 이를 포용할 수 있다.
“괜찮습니다. 저는 온갖 귀여운 변명을 대면서 속마음을 밝히지 못한 여자를 무시할 생각이 없거든요.”
“야. 너 진짜······”
“왜? 맞잖아? 나한테 증인이 필······”
성적 취향과 연관된 말을 꺼내려던 찰나 리나가 가로막았다.
그녀가 발로 내 다리를 툭툭 건드린 것이다. 이것만큼은 말하지 말라는 무언의 표시다.
그에 어깨를 으쓱이며 찻잔을 들었다. 리나도 얼굴을 붉힌 채 찻잔을 들어올렸다.
“아무튼 문제는 없을 겁니다. 제국에게도 큰 도움이 되겠죠. 물론 국서가 아니라 마리의 남편으로 살아가겠지만 말이죠.”
“그렇군.”
베리트는 내 대답에 별로 개의치 않은 것 같았다. 숨겨둔 수라도 있는 것일까.
뒤이어 그는 레오르트와 한 번 눈을 마주쳤다가 다시 나를 바라봤다.
이윽고 베리트가 진지한 목소리로 진실을 꺼내기 시작했다.
“실은 국서가 되겠다 했으면 우리가 반대했을걸세. 다행이라면 다행이겠지.”
“흠? 어째서죠?”
의외라면 의외인 이야기다. 내가 국서가 된다면 미네르바 제국은 그 어느 나라도 범접할 수 없는 위상을 갖는다.
당장 마이샬 영지조차 미네르바 제국, 그것도 수도 바로 옆에 붙어있지 않은가.
황제라면 응당 욕심을 부릴 법한데 그 반대의 생각을 갖고 있다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우선 이것부터 묻지. 아이는 몇 명 정도 낳을 생각인가?”
“어······ 리나가 원하는대로요?”
“5명으로 생각하겠네.”
“아바마마!”
베리트의 농담에 리나가 화들짝 놀라며 빼액 소리쳤다. 그에 껄껄 웃는 베리트와 레오르트.
놀리기에 진심인 아버지와 오빠의 모습이다. 그 누가 저걸 보며 권위 높은 황족이라 생각할까.
베리트는 리나가 숟가락을 던지려는 모션을 취하자 곧장 사과하며 말을 이었다.
“어쨌거나 아이를 몇 명이나 낳든 상관없다네. 대신 한 명은 무조건 갖게 해줄 수 있겠나?”
“조금 기다리셔야 할 겁니다.”
세실리마저 임신한다면 그 다음부터는······ 순번 같은 건 없다. 그냥 모두 해피 엔딩을 맞이하는 것뿐.
물론 저 말을 대놓고 할 수 없었으니 애둘러 말할 수밖에 없었다. 베리트도 이해하는 표정이었고.
그나저나 궁금한 부분이 있다. 베리트는 어째서 저런 말을 하는 것일까.
그에 대한 해답은 얼마 지나지 않아 베리트 본인이 입 밖으로 꺼냈다.
“이 말을 하는 이유는 간단하네. 전에 리나가 말하길, 자네의 세상은 입헌군주제라는 제도가 존재한다고 하더군. 최종승인은 왕실에게 있고, 정치는 평민이 하는 식으로 말이야.”
“그 말씀은······”
“리나 세대에 입헌군주제, 그리고 민주주의를 도입할 계획이네.”
베리트의 입에서 나온 폭탄발언.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를 쳐다봤다.
전에 보던 장난기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진지하디 진지한 표정.
나는 한동안 그와 마주하다가 조용히 질문을 날렸다.
“어째서죠?”
그리고 그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누구 덕분에 일이 너무 많아져서 그렇네.”
양심이 쿡쿡 찔리는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