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715
■ 714화. 투쟁 (1) □ ᓚᘏᗢ
리나에게 자그마한 선물을 쥐어준 후에는 곧바로 수인의 나라, 애니머즈로 향했다.
여태까지 방문한 나라는 헬리움, 알븐하임, 테르스 왕국 이 셋밖에 되지 않는다. 애니머즈는 처음이다.
애니머즈는 건국된 지 불과 300년밖에 되지 않은 문명. 그렇다 보니 생활 양식 분야에서 다소 독특한 면모를 보였다.
가장 눈에 띄는 건 단연코 건물이라 할 수 있다. 부족 생활을 하다가 결집한 거라 그런지 돌로 이루어진 건물은 거의 없다.
그렇다고 부족처럼 생활하는 것도 아니다. 약간 동남아의 전통 가옥 비슷하게 생긴 건물들이라 해야 될까.
동남아와 몽골의 특징을 골고루 섞였다고 보면 편할 것이다. 역사가 짧다보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게다가 그마저도 통일되지 않고 형식이 제각각이었다. 대충 때려박은 느낌이 강하다.
“너도 보다시피 건물이 다소 독특하게 느껴질 거야. 어찌보면 중구난방처럼 보이겠지.”
안내인 역할을 위해 애니머즈에 남아있던 레오나가 우리에게 설명했다.
팬사인회가 이루어질 건물마저 동남아 및 몽골을 뒤섞은 듯한 목재 가옥이다.
보안이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지만 그나마 안전한 곳이 여기라고.
기술적으로 부족한 점도 있었으나 전통을 중요시 여기는 면모도 있다.
“더구나 애니머즈는 인간보다 훨씬 많은 민족이 한 곳에 살고 있어. 뿌리는 같아도 전통과 문화가 다르다보니 이런 현상이 나타난 거지.”
“초창기에 많은 충돌이 있었겠네.”
“히크 님이 없었다면 진작에 분열되고도 남았을 거야.”
애니머즈는 인종의 용광로라 할 수 있는 미국보다 더 복잡한 곳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은 전세계의 이민자를 받아들이면서 인종의 용광로가 됐지만, 애니머즈는 모든 민족이 이주민이다.
뿌리는 같아도 많은 부분이 다른 종족이 수인이다. 당연하게도 민족 간의 갈등이 매우 클 수밖에 없다.
그중에서도 육식 동물에 가까운 수인과, 초식 동물에 가까운 수인이 가장 큰 갈등을 빚고 있다 들었다.
“솔직히 민주주의를 도입시킨다 해도 어떻게 될 지는 모르겠어. 과연 잘 결집할 수 있을까?”
“음······ 그건 나도 잘 모르겠네. 그나마 비슷한 나라가 우리 세상에도 있긴 있었지만 근본적으로 다른 부분이 많아서.”
미국도 정치 싸움이 살벌한 나라며 각 정당마다 색깔이 매우 강하다.
하지만 그들은 국익을 위해서라면 하나로 똘똘 뭉치는 특징이 있다. 표만 위해서 움직이는 건 아니다.
‘근데 미국도 막상 좋은 나라는 아니지.’
누군가 말했다. 미국이 망한다는 그건 외부적인 요인이 아닌, 내부적인 요인 때문이라고.
그것도 미국이 중요시 여기는 ‘자유’로 인해 망가질 거라고 비판했다.
실제로 내가 이곳으로 넘어오기 직전만 하더라도 미국은 많고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가장 심각한 마약과 총기 난사부터 시작해서 문화를 서서히 좀먹고 있는 정치적 올바름 같은 것들.
정치적 올바름은 괜찮다. 그러나 그곳에 선민사상이 깔리는 순간부터 사람들은 극렬히 거부했다.
‘잘 만들면 상관없다지만······’
정치적 올바름은 복어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잘 섞이기만 한다면 아주 훌륭하지만 잘못한다면······ 그냥 독이다.
실제로 영화, 게임, 드라마 등등. 각종 분야에서 쓸데없이 넣었다가 개 같이 망하는 경우가 많다.
애니머즈의 미래가 미국과 같을 거라고 생각은 안 하지만, 역사 자체가 놀랍게도 유사해서 걱정된다.
“레오나.”
“왜?”
“애니머즈는 정당방위의 범위가 꽤 넓은 편이지?”
“응. 자기 몸은 자기가 지켜야 된다는 풍조가 강하니까.”
보통 국가가 먼저 세워지고 인권을 찾는 편이다. 그러나 애니머즈는 정반대다.
부족 생활을 하던 수인들을 한 군데에 밀어넣다보니 ‘개인’을 중요시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
부족 생활을 할 때 당시에도 어린애가 아닌 이상 자기 몸은 자기가 지켜야 된다는 문화가 있었다고.
그때문인지 몰라도 동물이라는 특징과 다르게 개인주의가 매우 강한 편이라 할 수 있다.
총 대신 발톱과 강력한 신체 능력을 지닌 나라. 그것이 애니머즈다.
‘내가 뭐 어떻게 해결하기는 힘들겠네.’
애당초 애니머즈는 충돌을 빚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2차 세계 대전처럼 민족 전체를 하나로 묶어줄 전쟁이 터진던지, 아니면 서서히 곪아가던지.
지도자가 할 수 있는 건 내전이 일어나지 않도록 불만을 잠재우는 것밖에 없을 것이다.
그나마 올림픽이나 스포츠가 활성화된다면 불만을 잠재울 수 있겠지.
수인이 지향하는 ‘투쟁’과 깊은 관계가 있으니 스트레스 정도는 해소할 것이다.
“그러고 보니 레오나. 올림픽은 어떻게 잘 진행되고 있어?”
“아직 종목이 별로 없다보니 천천히 생각할 수밖에 없어. 그리고 종목 중에 ‘축구’를 넣을지 말지 고민하는 중이고.”
“수인은 축구하기 힘들지 않아? 저번에 보니까 수인은 축구보다는 럭비가 더 잘 어울릴 것 같은데.”
내가 아니라 아델리아가 꺼낸 질문이다. 확실히 거친 걸 좋아하는 수인의 특징상 축구보다는 럭비가 어울린다.
또한 모두 알다시피 수인은 발이 세모다. 레오나는 혼혈이라 신체가 인간에 가깝지, 순혈은 아니다.
주둥이가 긴 것부터 시작해서 발이 짐승의 것과 가까워 축구를 하기에 적합하지가 않다.
“응. 그거 때문에 말이 많아. 차라리 축구와 럭비 둘 다 넣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말도 나오고 있어.”
“설마 그것도 민족마다 갈리는 편이야?”
레오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라는 뜻이다.
의외라면 의외다. 나는 육식형 수인이 럭비를 선호할 줄 알았다.
“선호하는 건 맞아. 하지만 순혈 수인은 발이 축구에 적합하지 않잖아? 이런 패널티를 안고도 우승을 하면 자존심이 더욱 상승하겠지. 투쟁을 통한 증명이라는 사상에도 잘 어울리기도 하고.”
“장점에만 기대는 게 아니구나.”
“응. 투쟁이야말로 수인의 근원이니까.”
수인은 전통 혹은 본능 때문인지 몰라도 기본적으로 호전성과 경쟁심이 상당히 강한 편이다.
당장 부족 생활을 끝낸 시간이 300년 전이다. 상대를 이기지 못하면 죽음을 맞이하는, 지독하리만큼 잔인했던 생활.
이러한 성향을 스포츠로 해소시킬지는 모르겠다만 어느 정도 효과는 있을 것이다.
‘미식축구라도 전수할까?’
상남자 중에서도 인자강만이 할 수 있는 미식축구. 미국에서 야구와 함께 어마어마한 인기를 자랑하는 스포츠다.
럭비를 살짝 변형한 스포츠지만 과격함은 따라갈 수 없다. 빈말이 아니라 심심하면 사람이 튕겨져 ‘날아간다’.
물론 럭비의 변형인만큼 내가 굳이 전수하지 않아도 알아서 탄생할 가능성은 높다.
괜히 역사서에 이상하게 기록될 수 있으니 가만히 있는 게 좋을 것 같다.
“이제 슬슬 시간이네. 난 이만 가볼게.”
서로 떠들고 놀다보니 어느새 팬사인회를 할 시간이 다가왔다.
바깥이 웅성웅성거리는 걸 보아하니 꽤 많은 사람들이 몰린 듯했다.
나는 밖으로 나가는 레오나에게 인사하려던 찰나, 궁금한 점이 있어 그녀를 멈춰세웠다.
“아참. 레오나.”
“응?”
“팬사인회가 다 끝나고 민주주의 반대파와 얘기해야 되잖아. 그거 언제면 돼?”
“······아. 맞다.”
내 말에 금색 눈을 두어번 깜빡이다가 아차하는 그녀. 무언가 깜빡하고 있었다는 반응이다.
그에 고개를 갸웃거렸을 때쯤, 레오나가 머쓱하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그 사람 당첨됐어.”
“뭐?”
“팬사인회에 당첨됐다고. 아마 곧 있으면 만날 수 있을 걸?”
“··· ···”
아니. 어차피 만날 건데 굳이 응모까지 했다고?
내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멍청하게 있자 레오나가 부가 설명을 꺼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그 사람도 제논 일대기랑 피와 강철을 감명 깊게 읽었거든. 더구나 네가 민주주의만 뿌린 게 아니잖아? 가이스트처럼 스스로 투쟁해서 증명하는 사람들을 좋아할 뿐이야. 그게 어떤 사상이든지 말이지.”
“··· ···”
“약간 머리가 이상하긴 해도 불만을 가진 거지, 나쁜 사람은 아니야. 그럼 난 이만 가볼게.”
레오나는 앞으로 내가 맞이해야 할 사람에 대해 알려주며 밖으로 떠났다.
밖으로 떠나면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것이 기이한 충동을 일게 만들었다.
어차피 팬사인회가 끝나고 지나이와 발칸도 만날 테니 참아야지. 지금은 팬사인회부터다.
“······누나. 케이트 씨한테 사람을 보내달라고 부탁해.”
“알겠어.”
애니머즈에서의 팬사인회가 시작되었다. 진행 자체는 미네르바 제국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다만 종족 특징 때문인지 몰라도 정말이지 각자 개성이 넘쳐나다 못해 줄줄 흘러내렸다.
개 수인이 나가면 고양이 수인이 들어오고, 고양이 수인이 나가면 소 수인이 들어온다.
“제논 님에게는 독특한 냄새가 나는군요.”
“······그런 말 많이 듣습니다.”
그리고 항상 저런 말을 꺼내더라. 전반적으로 오감이 민감한 수인이다보니 어쩔 수 없다.
무엇보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외모에 대한 평가다. 수인은 다른 종족과 달리 짐승에 가까운 얼굴을 선호한다.
다시 말해 인간 기준으로 미남인 내가 수인 기준으로는 추남에 가깝다는 것이다.
레오나조차 인간들 사이에서 상당한 미녀지만 수인 사이에서는 추녀다.
“얼굴은 몰라도 몸은 튼튼해 보입니다. 한 번 만져봐도 될까요?”
“안 돼요.”
물론 건강한 신체는 종족 불문하고 호감을 사기에 충분했다.
그 덕택인지 몰라도 팬사인회는 정말로 평범하게, 정말정말 평범하게 진행됐다.
미네르바 제국에서처럼 기습적으로 달려드는 사람도 없었고, 무엇보다 인문학적 변태(…)도 없었다.
그렇게 첫 날은 무난히 진행되는가 싶었지만, 인생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법.
“그대가 제논이오?”
“어······ 네.”
“만나서 반갑소. 호족의 족장, 아누만 타이그리라고 하오.”
오늘 하루를 마무리하기 위해서 마지막 팬과 만남을 가졌지만, 그 사람이 레오나가 언급한 민주주의 반대파 수장이더라.
나는 내 앞에 떡하니 앉은 호랑이 수인을 멍하니 쳐다봤다. 확실히 호랑이 수인답게 풍채가 어마어마하다.
곰 수인이 전반적으로 후덕하지만 근육으로 꽉 찬 근육 돼지형이라면, 호랑이 수인은 단련된 근육이 알뜰하게 박혔다.
여기에 더해 호랑이 특유의 사나운 인상까지. 크기다 크다보니 팔짱을 끼는 것만으로도 위압감이 어마어마하다.
“일단 사인을 좀······”
“아, 네.”
그런데 이 수인. 근엄하게 인사한 것과 다르게 사인 부탁은 정말 예의바르더라.
긴장했던 내가 바보처럼 느껴질 정도다. 내가 사인을 해주자 아누만은 매우 흡족한 미소를 띠었다.
물론 그가 원하는 건 사인만이 아닐 것이다. 맨 마지막에 들어온만큼 시간은 사실상 무한대에 가깝다.
“듣자하니 저에게 물어볼 게 있으시다는데 아닌가요?”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다만 괜찮겠소? 뒷사람이 있다면 나중에 대화하리다.”
나는 정중하기 짝이 없는 아누만의 말을 듣고 뒤에다 소리쳤다.
“케이트 씨! 뒤에 사람 더 없죠?”
[네. 그 분이 마지막이에요.]“들으셨죠?”
“고맙소.”
진득하게 이야기를 할 시간은 많다. 아누만은 내 의도를 읽고 고개를 꾸벅 숙였다.
이 사람이 정녕 투쟁! 결코 다시 투쟁! 만을 외친다던 수인이 맞나 싶다.
아니면 내 위상이 위상이다보니 그런 걸 수도 있고.
“아누만 씨······ 라고 불러도 될까요?”
“편한대로 해주시오.”
“아누만 씨는 민주주의를 반대한다고 하셨어요.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요?”
히틀러는 민주주의를 교묘하게 이용해 세계 최악의 전쟁을 일으켰다.
이걸 보더라도 민주주의가 마냥 완벽하다는 건 아니다.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헌법이 완벽해야 되는 거지.
이것 때문에 반대하는 거라면 이해할 수 있다. 만약 그런 요지의 대답을 꺼낸다면 헌법에 대해 언급할 생각이다.
“나는 무조건 반대하는 게 아니오. 민주주의는 체제에 지나지 않을 뿐, 나치 독일이나 미국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충분히 투쟁할 수 있지.”
“허면 지나이 씨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건가요?”
“처음에는 그랬지.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마음이 바뀌었소. 비열함을 국정에 잘 이용하니 꽤 괜찮아졌거든.”
잔머리와 비열함을 좋은 말로 바꾸자면 지혜와 명석함이다.
쓸 곳에 따라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바뀌는 거지, 지나이의 두뇌가 훌륭하다는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뭐가 불만인 거죠? 들어보면 무조건적으로 찬성해도 이상하지 않습니다만.”
그러면 아누만은 무엇이 불만인 것일까. 민주주의도 받아들이고, 지나이의 능력도 인정했다.
불만을 가질만한 구석을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다. 대체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
“후우.”
이에 아누만은 답답함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꽤 고민이 많은 것 같다.
뒤이어 시선을 내린 채 한동안 골똘히 생각하다가 고개를 살짝 들었다. 맹수와 같은 금색 눈동자와 딱 마주쳤다.
“제논. 그대는 평화가 좋소?”
“좋죠.”
“나는 평화가 싫소.”
처음에는 전쟁광인줄만 알았다.
“평화에 찌들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자들이 싫소.”
“··· ···”
“투쟁의 본질을 잊어버려 증명조차 하지 않은 자들이 떵떵거리는 게 너무나 싫소.”
하지만 그가 꺼낸 고민은.
“내가 괜한 걱정을 하는 것이오?”
지구의 미국을 넘어 전세계가 앓는 병폐를 예언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 질문을 듣고 그와 바라보다가 피식거렸다. 그 미소에 아누만이 실망한 기색을 지으려던 찰나.
“당신 같은 사람이 제 세상에 있어야 했는데 아쉽네요.”
내 말을 듣고 표정이 오묘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