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720
■ 719화. 기계 (4) □ ᓚᘏᗢ
책상에 머리를 박고 기절한 한다이는 케이트가 서둘러 확인했다.
드워프답다면 드워프답게 코미디처럼 넘겨버릴 수 있지만, 현재 한다이는 과로로 쓰러진 거다.
신생국가를 위해 한 몸 갈아넣어 희생했으니 과로로 고생하는 건 당연한 일일 터. 조치하지 않으면 큰일난다.
“피로 누적입니다. 최소 한 달 간은 푹 쉬어야 합니다. 마키나에는 신전이 없지 않습니까?”
“히르트 님을 숭배하는 신전은 있소. 다만 신성력을 사용할 수 없지.”
“스타비르크와 비슷하다고 보면 되겠군요. 피로 회복에 좋은 약초와 함께 무조건적인 안정을 취하셔야 합니다.”
마키나는 애니머즈와 스타비르크처럼 신전이 아니라 병원이 존재하는 곳이다.
외과는 발전했어도 내과는 상대적으로 뒤떨어질 수밖에 없다. 신을 숭배하는 지역은 반대지만.
신성력은 기본적인 재생력을 크게 끌어올려주는 힘. 적절한 약초와 함께 사용한다면 큰 효력을 발휘한다.
‘확실히 복구라기보다는 재생에 가깝지.’
그래서인지 절단 같이 치명적인 상처는 케이트가 아닌 이상 회복하기 어렵다. 심지어 그녀조차 절단된 부분이 있어야 된다.
사람은 구조상 상처를 회복할 때 재생보다는 소독을 선택하게 돼 있으니까. 신체가 다시 자라지 않고 그대로 아물기 마련이다.
이윽고 한다이가 시종들에게 들 것으로 실려가고, 드워프 삼형제 중에 에인스와 기아스만 남았다.
기아스는 실려나가는 한다이를 보며 머쓱하게 웃더니 이해를 부탁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 친구가 열정적으로 일해서 생긴 일이니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괜찮아요. 대신 건강도 챙기면서 일하라고 전해주세요. 자칫하다가 영영 일어나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요.”
“새겨듣도록 하겠습니다.”
역사적으로 군주들의 사망 원인 중 1위는 과로사다. 미네르바 제국의 역대 황제들도 대부분 과로로 쓰러졌다.
그나마 미네르바 제국은 체계가 잡혀있어서 망정이지, 마키나가 그런 상황이 펼쳐진다면 큰일난다.
신생국가인만큼 기틀을 잡아야 하는데 그 기틀을 잡아줄 지도자가 사망한다면 큰 혼란이 펼쳐질 테니.
“체계는 언제쯤 전부 잡힐 것 같나요?”
“조만간 잡힐 겁니다. 다만 드워프들 대부분이 정치와 거리가 멀다보니 인재를 양성하는데에 힘을 써야죠.”
“눈에 띄는 인재는 있습니까?”
“많습니다. 아무래도 부르주 왕조의 행패가 워낙 심하다보니 자연스러운 일이죠.”
원래 나라가 개판일수록 정치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이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가이스트가 체계를 잘 잡기만 한다면 앞으로 마키나는 따로 걱정할 필요는 없을 터.
하지만 걱정되는 부분이 아예 없는 게 아니다. 특히 앞으로 내가 저지를 일을 생각하면 마키나도 위험하다.
“혹시 멸망기사의 결말부를 읽어보셨습니까?”
“기사의 손에서 악신이 소멸하고, 그 후로 세상이 멸망을 향해 치닫는 부분 말이군요.”
“네.”
“제논 님께서 무엇을 우려하시는지 알 것 같습니다만······”
기아스는 뒷말을 흐리며 에인스를 쳐다봤다. 에인스는 내 말을 들어도 어깨만 으쓱일 뿐이었다.
보아하니 별로 개의치 않는 모양이다. 하기야 마키나는 종교의 영향이 옅은 국가 중 하나다.
히르트를 숭배하고 있다지만 결집을 위해서일뿐, 내가 진실을 퍼뜨려도 큰 문제는 터지지 않을 것이다.
“큰 문제는 없을 듯합니다. 얼마나 큰 진실인지는 모르겠지만, 마키나는 그것보다 다른 곳에 신경을 써야 되니까요.”
“다행이군요.”
드워프가 관심 없는 부분에는 정말 관심 없는 종족인 것도 한몫할 것이다.
혁명이 발발한 이유도 부르주 왕조의 폭정이 너무 심해서다. 관심이 가는 부분마저 영향력을 끼치니 반란이 일어날 수밖에.
“혹시 모르니 대비는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세상의 근간을 흔들 수도 있을만큼 위험한 진실이거든요.”
“저희에게는 망치와 곡괭이가 더 중요합니다.”
기아스의 명료한 대답에 피식 웃었다. 드워프답다면 드워프다운 대답이다.
어쨌거나 마키나는 상대적으로 나아보인다. 나를 국부로 대우하는 것만 아니면 말이지.
“아. 괜찮으시다면 지하공방을 방문하시겠습니까? 꽤 흥미로운 것들이 많을 겁니다.”
“괜찮습니다. 피곤하신 분들을 괜히 붙잡을 생각은 없거든요. 여러분에게 필요한 건 휴식입니다, 휴식.”
“그러면······”
“하루 정도 머물 방만 주셨으면 하는군요.”
마음 같아서는 지하 공방을 방문하고 싶다. 그러나 기아스와 에인스가 너무 피곤해 보여서 그러기가 힘들었다.
심지어 한다이는 과로로 내 눈 앞에서 쓰러졌다. 간다고 하면 양심이 터진 걸 넘어 없는 거지.
“아이작 님. 잠깐 가이스트를 따라가도 되겠습니까?”
“그건 왜요?”
“한다이 님이 쓰러지신 걸 보고 저 분들도 위험한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겸사겸사 할 이야기도 있고요.”
“음······”
케이트의 부탁에 고민했다. 내가 가는 것보다 케이트와 함께 있는 게 상대적으로 덜 부담스러울 터.
더구나 케이트는 위급 상황이 발생해도 즉각적으로 조치할 수 있다.
“네. 알겠어요. 무슨 이야기를 하실 거예요?”
그 질문에 케이트가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아이작 님에게도 좋은 이야기입니다.”
“··· ···”
괜찮겠지?
* * *
케이트는 아이작으로부터 허락을 받고 곧바로 가이스트가 있는 쪽으로 향했다.
때마침 한다이를 제외한 가이스트는 점검 겸 휴식을 위해 지하 공방으로 내려가려던 상황.
에인스와 기아스는 어째서 케이트가 자신을 만나려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그래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소문을 들어보면 케이트는 아이작이 아끼는 여인. 그들 입장에서는 영부인에 준하는 취급을 하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영부인은 따로 있지 않아?”
“영부인이 꼭 하나인 법은 없지. 인간은 남자 한 명이 여러명의 여자를 거느린다고 했으니까.”
에인스와 기아스의 대화에도 케이트는 끼어들지 않았다. 전이었다면 마키나에서 아이작의 여인이 될 사람이 없냐고 물었겠지.
그러나 팬사인회를 하면서 조건을 들었다. 아이작의 여인이 되기 위해서는 그가 직접 선택해야 된다고.
여기저기 은혜를 뿌리는 게 아니다. 케이트는 그 조건을 충직하게 지키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마키나는 루미너스 님이나 모라 님을 숭배하지 않으시죠?”
“예.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저희는 기본적으로 창작에 집중하다보니 두 분의 교리에 맞지 않기 때문이죠.”
“히르트 님을 숭배하는 이유는 광산에서 나오는 다양한 자원 때문이고요.”
“정확합니다.”
“흠······”
케이트는 기아스의 설명을 듣고 고민에 빠졌다. 애니머즈도 애니머즈지만 마키나에 종교를 퍼뜨리기 어려울 것 같다.
애니머즈는 종교가 스며들기 힘든 사회지만, 마키나는 히르트 신앙이 꽉 잡고 있는 상황이다.
과연 어떻게 해야 퍼뜨릴 수 있을까. 일단 천천히 대화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아까 얼핏 들었습니다만, 스타비르크에서 총의 설계도를 얻었다 하셨나요?”
“네. 엄밀히 따지자면 미네르바 제국과의 거래를 통해 입수한 겁니다.”
“그러면 스타비르크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시나요?”
“당연히 알지요. 제논 님께서 얼마나 자비로우신지 알게 된 사건이었습니다.”
순간 케이트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저 말은 곧 아이작이 도끼 한 자루로 연합군을 막은 사실도 알고 있다는 뜻.
과장 하나 없는 진실만 담겨있었기에 절대 거짓은 아닌 이야기다. 부풀려진 건 전혀 없다.
케이트는 머리를 팽팽하게 굴렸다가 지하 공방에 입성하기 전, 온화한 목소리로 그들에게 말했다.
“그 후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셨는지는 전혀 모르는 건가요?”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거리도 거리일 뿐더러 워낙 바쁘다보니 상세한 건 잘 모릅니다.”
“어떤 일이 있었냐면······”
이때다 싶어서 그 당시 있었던 일들을 설명하기 시작한 그녀. 기아스는 물론이고 에인스도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관심 없는 건 정말 관심 없어하는 드워프도 아이작만큼은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 주제.
하물며 아이작의 위대한 업적(?)을 알려주는 셈이었으니 관심이 안 갈 수가 없다.
“······하여, 아이작 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목소리를 내어라. 침묵하지 말지어다. 어디선가 들어보셨지 않으셨나요?”
다소 장황하게도 느껴질 법한 설명 끝에 케이트가 가장 중요한 교리를 설파했다.
종교적인 색채가 짙은데다 과장도 섞여있었으나 에인스와 기아스는 상관없었다.
케이트가 마지막으로 꺼낸 구절은 그들로 하여금 어마어마한 감동을 선사하기에 충분했으니까.
“그 말은······ 설마 우리에게도?”
“혁명이 성공할 수 있도록 조언해준 거란 말이오?”
“예. 그렇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 없는 분을 포함한 여러분은 아이작 님께서 은혜를 내리신 겁니다. 목소리의 힘을 단적으로 드러내셨으니까요.”
이것저것 갖다 붙인 것도 아니다. 실제로 혁명은 수많은 목소리가 결집되어야 성공할 수 있는 행동.
에인스와 기아스는 케이트의 설명을 듣고 서로를 바라봤다. 무언가 크게 깨달은 바가 있는 표정이었다.
안 그래도 마키나의 국부로 추앙하고 있었는데 그녀의 설명을 들으니 그 수준을 한참 넘었다.
아이작은 일찍감치 마키나의 해방을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목소리라는 형태로 말이다.
“전에 아이작 님께서 조언까지 해주셨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어째서 아이작 님께서 여러분에게 조언을 주셨는지 곰곰히 생각해주세요. 분명 뜻이 있었을 겁니다.”
“······저희가 큰 착각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군요.”
“하지만 히르트 님을 외면할 수는 없는데······”
에인스가 히르트를 언급하며 곤란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확실히 드워프 입장에서 자연 그 자체인 히르트를 버리기는 힘들 터.
하지만 케이트는 영악하게도 이 부분마저 교묘히 이용했다.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히르트 님도 좋은 분이시고 아이작 님도 좋은 분이신데 어느 한 분만 믿으라는 법은 없지 않습니까?”
“아! 그렇군! 그런 방법이 있었어!”
“지하 공방만 갔다 오고 곧장 상의하겠습니다!”
“기쁜 마음은 아시겠지만 여러분은 휴식이 필요합니다.”
잔뜩 흥분한 두 드워프를 어르고 달래는 케이트. 그녀의 입가에는 온화한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다만 그 미소가 사뭇 음흉하게 느껴질 법한 미소라는 걸까. 물론 순진한 드워프들은 그걸 알 길이 없었다.
‘계획대로.’
이런 식으로 천천히 퍼뜨리면 된다. 스타비르크는 이미 종교가 창시되기 직전이고, 마키나는 위쪽부터 시작이다.
하물며 목소리만큼은 어느 체제든지 통하는 이야기다. 목소리를 내는 건 누구든지 가능하지만, 용기를 내며 밝히는 건 어려운 일이다.
케이트는 차근차근 진행되는 작업(?)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띄며 가이스트를 따라갔다.
지하공방은 꽤 넓은 장소였는데, 듣자하니 마키나의 마력의 반을 담당하는 발전소까지 있단다.
“제논 님에게 보여주고 싶은 발명품이 있었지만 다음으로 미룰 수밖에 없겠군요.”
“무슨 발명품입니까?”
“석유를 이용한 발명품입니다. 미완성작이긴 하지만 앞으로 석유를 이용한 엔진이 등장할 겁니다.”
아이작이 들었다면 기겁했을 이야기다. 물론 문외한인 케이트는 고개만 끄덕이고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이윽고 발전소처럼 사용하고 있는 거대 마력 기관을 지나쳐 에인스의 개인 공방으로 들어섰을 때였다.
“저건······”
“케이트 추기경 님에게만 보여주는 겁니다. 제논 축제에 선보일 작품이죠. 그리고······”
케이트의 눈에 들어온 건.
“머지않아 마키나 광장 중앙에 설치될 제논 님의 동상입니다.”
가이스트가 아닌, 아이작을 그대로 표현한 ‘동상’이었다.
케이트는 동상을 멍하니 올려다봤다. 창작과 손재주의 종족인 드워프답게 보기만 해도 웅장함이 깃들었다.
저걸 어떻게 옮기느냐는 건 중요하지 않다. 저만큼 세밀히 표현돼 있는 동상은 흔하지 않으니까.
다만······
“······실례지만 다소 엉성한 부분이 있군요.”
“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저희는 분명 제대로 했단 말입니다!”
케이트가 보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었다. 그 말에 두 드워프가 격한 반응을 보였다.
실제로 아이작의 동상은 부족한 부분이 하나도 없었다. 정확히는 딱 한 곳이 있다.
“고간.”
“네?”
“고간을 좀 더 크게 표현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녀는 빙긋 웃으며 추가 설명을 덧붙였다.
“아이작 님의 실물은 저것보다 훨씬 크거든요. 대신 너무 과하지만 않게 표현해주세요.”
“오오······ 역시······”
“하마터면 저희가 큰 실수를 저지를 뻔했군요. 정말 감사합니다.”
바보들의 행진이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