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721
■ 720화. 예언 (1) □ ᓚᘏᗢ
날이 밝아왔다. 늘 그랬듯이 여인들과 한 침대에서 비척비척 깨어나 준비를 끝냈다.
상대적으로 난이도가 쉬웠던 마키나 다음으로 방문할 국가는 세이비어 교국. 난이도가 꽤 높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잡음도 일어나지 않다지만 그 속은 아니다. 지금 종말론 하나 때문에 난리도 아니라고.
내가 고의로 퍼뜨린 건 아니라지만 내 위치가 위치다보니 종말론마저 진실이라 믿는 사람들이 많다.
아, 물론 부작용만 있는 건 아니다. 종말론을 빌미로 신도들이 대폭 늘어났다나 뭐라나.
세이비어 교국 입장에서는 해명하기도 힘들고, 해명하지 않아도 피해만 늘어난 게 아니라 가만히 있는 것이다.
“케이트 씨. 어딘가 기분이 좋아보이시네요.”
“물론이죠. 아이작 님의 명성이 더 멀리 퍼지고 있으니까요.”
하룻밤 사이에 기분이 좋아진 듯한 케이트가 화사한 미소를 띄며 대답했다.
케이트는 다른 애인들과 달리 금욕을 추구하다가 한 번에 터뜨리는 스타일이다. 따라서 이번 밤에도 나와 몸을 섞지 않았다.
그런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피부의 윤기가 좀 더 밝아진 것 같은데다가 분위기 또한 한층 더 따스해진 듯한 느낌이 든다.
세실리와 아델리아는 날마다 나를 쪽쪽 빨아먹고 있어서 그렇다지만 케이트는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다.
“어서 빨리 이 모든 여정이 끝났으면 좋겠군요. 루미너스 님도 그걸 바라고 있을 겁니다.”
“여정이 끝난다면 케이트 씨는 무얼 하실 건가요?”
“마음 같아서는 아이작 님의 아이를 낳아 평범하게 살고 싶지만······”
케이트가 아랫배에 조심히 손을 얹으며 나를 쳐다봤다. 사랑과 애정이 가득 담겨있는 눈이다.
뺨까지 불그스름해져서 귀여움과 아름다움이 공존하고 있었다. 내가 그 표정을 보며 잠깐 멍을 때릴 쯤이다.
“저에게는 사명이 있기 때문에 당장은 힘들 것 같습니다. 모든 일이 끝난 후에 아이작 님의 곁을 지키겠습니다.”
“음······ 알겠습니다. 너무 급할 필요는 없어요. 전 언제나 기다릴 테니까요.”
“감사합니다.”
“그 사명이라는 거, 저도 보태줄 수 있는 건가요?”
케이트가 고개를 꾸벅 숙이며 감사 인사를 전함과 동시에 세실리가 물었다.
보아하니 세실리는 케이트가 어떤 사명을 짊어지고 있는지 알고 있는 모양이다.
나에게는 알려주지 않아서 조금 섭섭해졌으나 개인마다 비밀은 있는 법이니 구태여 캐묻지 않았다.
“네. 다만 헬리움은 모라 님이 보호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루미너스 님께서는 저에게 사명을 내리신 반면, 모라 님께서는 어떤 결정을 내리셨는지 모릅니다.”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거예요. 저에게 다 방법이 있거든요. 모라 님께서 받아들일지 모르겠지만.”
“조만간 진지한 토론이 필요할 것 같군요. 세이비어 교국에 도착하고 비어있는 시간에 초대하겠습니다.”
“저도 케이트 님이 어떤 사명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뭐야. 둘이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야.
종교가 다른 두 사람이서 종교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다보니 불안하면서도 궁금해진다.
물론 물어봤자 시원하게 대답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는 그저 내 할 일을 하면 될 뿐이다.
“아델 누나. 누나는 뭔지 알고 있어?”
“모르겠는데? 난 종교에 별 관심이 없어서.”
아델리아도 모른다고 하니 더욱 그런 마음이 들었다. 나에게 해가 되지는 않을 테니 괜찮을 터.
그리하여 우리는 마키나에서 세이비어 교국으로 넘어갔다. 텔레포트가 있다보니 시간이 별로 걸리지 않았다.
물론 다짜고짜 수도에 텔레포트를 한다면 불법 침입으로 걸린다. 따라서 입국심사대까지만 텔레포트가 가능하다.
“아이작. 세이비어 교국은 어떤 곳이야? 수도에 방문하는 건 처음이라서.”
입국심사를 간단하게 패스한 후, 마차에 탑승한 세실리가 나에게 질문했다.
스타비르크 사건 당시 헬리움과 세이비어 교국이 연합군을 이루어 출정했다. 이를 보면 두 국가 간의 접촉이 있었다는 뜻.
하지만 이러한 부분은 왕이 직접 해결해야 되는지라 세실리는 헬리움에 남았다. 그러니 세이비어 교국의 방문은 처음이다.
반면 나는 로만의 군만두형 집행건으로 몇 번 방문한 적이 있다. 이에 골똘히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해서 다른 곳과 크게 다르지 않아. 눈에 띄는 특징이라면 색깔이랄까?”
“색깔?”
“응. 루미너스 님을 상징하는 색이 황금색과 하얀색이잖아. 그래서인지 건물들 대부분이 그런 색을 띄고 있어.”
루미너스를 상징하는 색깔이 황금색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세이비어 교국은 황금을 사랑한다.
돈독이 오른 게 아니라 황금을 신성한 광물로 생각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황금은 국고로 집어넣는 편이고.
나라가 심히 위태롭다면 루미너스에게 직접 허가를 받아 황금의 사용을 허락받는다. 이외에 건물을 지을 때도 마찬가지다.
“거리마다 신전이 아닌 교회가 있고, 최근에는 매주마다 단체 기도를 하는 문화까지 생겼지. 그때문인지 몰라도 사람들이 꽤 신실한 편이고.”
“그렇구나. 인내심도 강해?”
“인내심이 강하기보다는 매사에 긍정적이라 봐야겠지?”
적어도 내가 세이비어 교국을 방문했을 때까지만 해도 그런 느낌이 들었다.
루미너스가 빛과 희망을 관장하다보니 사람들 대부분이 미소를 띈 채 활동했으니까.
헬리움의 마족이 선호하는 ‘절제’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대신 신을 욕하는 순간 집단린치를 당해도 할 말이 없다.
“국력은 강하지만 사람들은 평범하게 사는 곳이야.”
분명히 그랬는데.
“루미너스 님을 믿읍시다! 루미너스 님께서는 종말에도 우리를 지켜주실 분입니다!”
“루미너스 님이 데려오신 성자, 제논 님도 믿으셔야 합니다! 종말을 알려주신 분이니 분명 대비하는 법도 알고 계실 겁니다!”
“우리는 항상 종말에 대비해야 합니다! 우리가 늘 안전하다는 생각은 버리십시오!”
어째서 지금은 세기말의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 것일까.
나는 마차 밖으로 보이는 광경을 보며 어안이 벙벙해질 수밖에 없었다.
어느 한 사람이 단상 위에 서서 종말론에 대해 소리치고, 그 앞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다.
심지어 선동 아닌 선동을 하는 사람조차 말끔한 성직자복을 입었으며 나이를 지긋하게 드신 분이었다.
“······좋은 곳이라 하지 않았어?”
“··· ···”
그 모습을 본 세실리가 복잡한 목소리로 나에게 물었다. 나는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꺼낼 수 없었다.
로만이 군만두형을 집행당하고 있을 때만 해도 이런 건 전혀 없었다. 그냥 평범하기 짝이 없는 도시였지.
하지만 다시 돌아온 현재, 멸망기사의 결말 때문인지 몰라도 종말론이 잔뜩 팽배해 있다.
극성맞은 광신도들이나 보일 법한 언행을 보이는 자와 그 앞에서 기도하는 있는 주민들.
이 무슨 혼파망스러운 상황인 것일까. 나는 당황스럽다는 표정으로 케이트를 쳐다봤다.
“······케이트 씨?”
“네. 말씀하세요.”
“저게 대체 뭐죠?”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그러나 케이트는 저게 일상인 것인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을 뿐이었다.
나는 순간 떨떠름해졌지만 더이상 묻지 않고 넘어갔다. 솔직히 말해 아예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다.
종말론이 퍼질 때 가장 극성맞을 것으로 추측한 곳이 바로 세이비어 교국이었으니까.
하물며 약간 과할 뿐이지, 내가 원하던 분위기에 적절했으니 굳이 건드릴 필요는 없어보였다.
“목소리를 낼지어다! 침묵하지 말지어다! 신께서는 더이상 숨길 것이 없습니다!”
“이 종말론의 기원을 언젠가 깨달을 거라고 신께서는 믿고 계십니다! 우리는 그때를 기다리면 됩니다!”
잠깐만. 맨 앞에 저거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구절인데.
나는 눈을 깜빡였다가 고개를 홱- 하고 돌려 케이트를 쳐다봤다. 저걸 퍼뜨릴만한 사람은 한 명밖에 없다.
그러나 케이트는 무슨 문제라도 있냐는 듯이 미소지은 얼굴로 나를 쳐다볼 뿐이었다.
뻔뻔하다고 해야할지, 아니면 정말로 몰라서 그러는 건지 헷갈렸다.
꾸욱-
괜스레 무안해져서 손가락으로 케이트의 볼을 꾸욱 눌렀다. 그러자 케이트의 미소가 더 짙어졌다.
무언가 섬뜩하게도 느껴지는 미소에 다급히 손가락을 떼었다. 방금 그건 뭐였지.
“점점 참을 수 없게 만드시는군요. 다른 분들이 하시는 걸 듣고도 참고 있었는데.”
“어······ 죄송합니다?”
“제가 금욕에 실패한다면 모두 아이작 님 때문입니다. 그리 아세요.”
“그 말에는 전적으로 동의할 수밖에 없네요.”
케이트의 선언 다음으로 세실리가 살살 거들어줬다. 아델리아는 피식 웃을 뿐이고.
나는 당장이라도 잡아먹을 듯한 기세로 웃는 케이트를 애써 무시했다.
“루미너스 님을 믿으십시오! 모라 님을 믿으십시오! 제논 님을 믿으십시오!”
“목소리를 낼지어다! 침묵하지 말지어다!”
벌써부터 내 멘탈이 갈갈 갈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당장 수도의 분위기부터 저런데 팬사인회까지 한다면 어떻게 될까.
“제논 님! 정말로 이 세상이 종말하는 겁니까?”
“······저야 모르죠.”
“그, 그럼 한 번 종말을 겪었던 겁니까? 제논 님의 세상이 종말을 겪었던 것처럼!?”
“··· ···”
뭐긴 뭐야.
업보를 달게 받아야지.
세이비어 교국은 종교를 중시하는 국가답게 대부분 종말론을 꺼내들고 오더라.
이에 미네르바 제국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내 머리 위에 하나의 표시를 달아놓았다.
이거면 괜찮겠지. 나는 웃으며 다음 사람을 안으로 들였다.
“제논 님.”
“네. 말씀하세요.”
“제논 님께서는 신들께서 저희를 벌하시는 게 빠를 것 같습니까, 아니면 인류가 스스로 자멸하는 게 더 빠를 것 같습니까?”
“··· ···”
집에 가고 싶다.
* * *
아이작이 팬사인회를 하면서 기와 기는 전부 빨려버렸을 때, 케이트는 잠시 교황청으로 복귀했다.
교황청으로 복귀하면서 수많은 사람들과 만남을 가졌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기에 발걸음을 옮겼다.
이윽고 그녀가 발걸음을 옮긴 곳은 개인적으로 머무는 숙소.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루미너스와 접견하기 위함이다.
[오랜만이구나. 그동안 잘 지내고 있었니?]“네. 아이작 님의 축복 아래에 부족함 지내고 있었습니다.”
루미너스는 온화한 목소리로 대답한 케이트에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동시에 섭섭함도 느꼈다. 예전 같았으면 아이작이 아니라 자신을 언급했을 테니까.
이제 케이트가 신봉하는 대상은 루미너스가 아닌 아이작 쪽으로 기울었다는 뜻이었다.
[대답을 들어보니 잘 지내고 있는 모양이구나. 다행이야.]“루미너스 님께서는 그간 평온하셨습니까?”
[나는 언제나 그대로였단다. 최근에서야 조금씩 바뀌고 있을 뿐.]루미너스는 느낄 수 있었다. 아이작이 아닌 케이트가 조금씩 퍼뜨리고 있는 신흥 종교를.
스타비르크부터 시작해서 마키나까지 새로운 교리를 퍼뜨리고, 그 영향이 조금씩 주변을 물들이고 있었다.
비록 아직은 큰 영향이 없었으나 머지않아 불꽃처럼 활활 타오르게 될 터. 루미너스는 그때만 조용히 기다렸다.
[아이야.]“네. 말씀하십시오.”
[훗날 모든 과업이 끝난 후에도, 너는 나를 믿을 거니?]여러모로 복잡한 심경이 담겨있는 질문이었다. 모든 업무가 끝나면 종교의 판도는 다른 쪽으로 넘어갈 것이다.
그리 된다면 자연스레 루미너스의 힘도 약해질 터. 개인적으로 씁쓸해질 수밖에 없다.
케이트는 그 질문에 한참동안 침묵을 유지하더니 이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신앙으로서의 믿음은 아이작 님에게로 향하겠지만, 저에게 은혜를 내려주신 아버지로서의 믿음은 여전히 루미너스 님께 있을 겁니다.”
[··· ···]“설령 아이작 님이 강해지더라도 루미너스 님을 믿는 모든 이가 루미너스 님을 ‘아버지’라 부르게 될 겁니다.”
[······그래. 고맙구나.]다른 세상에서 넘어온 아이작에게는 결코 들을 수 없는 대답. 루미너스는 그 대답에 무거웠던 가슴이 편해짐을 느꼈다.
하지만 모든 열쇠가 아이작에게 달려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아이작의 활동에 따라 패륜아와 아버지를 오고 갈 테니.
그러기 위해서는 미리미리 대비하는 게 좋다. 그 생각에 루미너스가 케이트에게 부탁했다.
[그러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부탁을 하마.]“부탁······ 말입니까?”
[그래. 부탁.]루미너스는 케이트에게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부탁을 꺼냈다.
[예언을 그려다오.]예언을 그려달라는 루미너스의 부탁.
[내 모든 것이 그 아이에게 넘어갈 수 있도록.]케이트는 그 부탁에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기꺼이 수락했다.
“예. 알겠습니다.”
이어서 그녀는 루미너스를 새로운 호칭으로 불렀다.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