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724
■ 723화. 성자 (2) □ ᓚᘏᗢ
까놓고 말해 내가 연예인병에 걸렸다는 건 조금 인지하고 있었다. 최대한 무시하고 있었을 뿐이지.
피와 강철로 인해 드러날 영향을 어느 정도 예상했으면서도 쓰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진행한 걸 보면 답이 나온다.
더 나아가 내 외모가 워낙 개성적이다보니 어딜 가나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넘친다. 붉은 머리카락에 금안의 조합은 보기 어려우니.
그럼에도 끝까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던 건 부담감 때문이다. 나를 알아보는 건 기분 좋은 일이지만 너무 부담됐으니까.
그래서 내 위상이 성자를 넘어 종교로 상승한다는 소문을 들어도 한 귀로 흘려들었다.
신이 되는 이유조차 내 주변인을 지키기 위해서지, 종교로 격상시키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 ···”
“··· ···”
“··· ···”
헬리움은 다른 나라와 다르게 마차가 아닌 도보를 이용했다. 세실리가 확신을 가졌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리고 그 확신에 대한 대답이 내 눈 앞에 펼쳐졌다. 무슨 모세의 기적마냥 사람들이 길을 열어줬으니까.
모든 사람들이 할 일을 멈추고 길을 만든 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붉디 붉은 눈에는 존경심을 포함한 다양한 감정이 담겨있었다.
나는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세실리를 쳐다봤다. 설명을 요구하는 내 표정에 그녀는 어깨를 으쓱이며 입을 열었다.
“아까 말했잖아. 헬리움은 백성들 한 명 한 명이 너의 기사라고.”
“······너무 부담스러운데?”
“뭘 이정도로. 널 위해 목숨까지 바칠 사람이 지천에 깔려있을 텐데. 이제 가자.”
세실리는 사람들이 터준 길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썩 부담스럽다는 표정으로 앞을 바라봤다.
미리 말을 맞춘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자연스레 길을 터준 건지 모르겠으나 결코 허언은 아닌 것 같다.
지금 당장 나를 보는 시선들만 해도 알 수 있다. 당장이라도 무릎을 꿇을 기세였다.
‘······일단 걷자.’
중간에 어떤 반응이 튀어나와도 담담히 넘어가야 할 것 같다.
내가 조금이라도 격한 반응을 보인다면 분명 이들에게도 큰 영향이 갈 테니까.
나는 이유 모를 긴장감에 침을 꿀꺽 삼키며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윽고 가장 앞부분을 지나칠 때쯤, 시선을 옆으로 옮겨 마족 한 명과 시선을 마주했다.
역시 마족답다면 마족답게 아름다운 미모를 자랑하는 여인이다. 그녀는 나와 시선을 마주하자 부드러이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제논 님.”
아, 예. 뭐······
차마 입 밖으로 말을 내뱉지 못했다. 왜냐하면 반대편의 마족도 똑같이 고개를 꾸벅 숙였으니.
“감사합니다, 제논 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내가 지나칠 때마다 고개를 숙이며 감사 인사를 전달하는 마족들.
마키나에서는 격한 환영식을 보여줬는데 헬리움은 조용하면서도 울림이 강했다.
절제를 미덕으로 삼는 성향 때문일까. 아니면 종교적인 의미가 섞여서 그런 걸까.
그래도 다른 종족도 아닌 마족에게 감사를 받다보니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비록 의도치 않은 결과라지만 정감이 가는 종족이다. 사실상 내 책의 주요 팬층이기도 하고.
그래. 저것까지는 다 좋다.
“······왜 계속 고개를 숙이고 있는 거야?”
“글쎄? 나야 모르지.”
왜 내가 지나쳐도 고개를 숙이고 있는 건데.
팬사인회가 진행될 건물에 도착한 후 뒤를 돌아보니 수많은 사람들이 아직까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이걸 대체 무어라 불러야 하는 것일까. 저런 자세로 계속 있으면 목도 안 아프나.
“이건 반드시 기록해야 됩니다······!”
내가 당황하고 있을 때 옆에서 케이트가 기쁨에 찬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녀를 힐끔 쳐다보니 어디선가 갖고 온 수첩에다 기록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함께 다니면서 특정 상황이 발생하면 항상 수첩에 뭘 적던데 지금도 똑같다.
“아이작 네가 한 마디 하는 게 좋지 않을까?”
“내가?”
“응. 상황만 보면 해야 할 것 같은데?”
세실리의 권유에 앞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마족이라 몸이 튼튼한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나를 향한 마음 때문인지 고개조차 들지 않았다.
가끔 가다가 몇몇 귀여운 꼬마 아이들이 꺄르르 하는 소리가 들렸으나 그닥 중요한 건 아니었다.
거짓말이 아니라 정말 힘들어 보여서 억지로나마 고개를 들게 하는 것이 좋을 듯했다.
“흠흠. 모두 고개를 들어주세요.”
음성 증폭 마법도 없어서 목소리를 크게 하는 수밖에 없었다.
대신 여태까지 목소리를 크게 만들어야 할 때가 많아서 마법은 따로 필요없었다.
워낙 웅변(?)을 자주 하다보니 마나만으로 목소리를 키우는 법을 알아서 터득했다.
이윽고 마족들이 내 부탁에 따라 고개를 들었다. 다들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본다.
‘이거 왠지 데자뷰가······?’
스타비르크에서 했던 짓을 또 해야 되는 건 아닐 거다. 단지 그런 느낌만 들었지.
더구나 헬리움은 스타비르크와 달리 진작부터 나를 성자로 추앙하던 국가다.
내가 무슨 말을 하던 간에 위로를 받을 사람들. 종족 중에서 가장 큰 상처를 받고 있던 종족.
상처를 딛고 승승장구할 일만 남았으니 힘내라고 위로해주면 될 것이다.
‘혹시 모를 당부도 해야지.’
물론 혹시 모를 당부를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마족은 엘프처럼 오랜 세월을 살아가는 종족. 그러면 내 당부가 오래 이어질 수 있겠지.
나는 한참동안 말을 고르고 고르다가 이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다소 즉흥적이긴 하지만 마족이다보니 말이 술술 나왔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랜만······ 은 아닌가요? 이렇게 직접 말하는 건 처음이니까요.”
헬리움은 다른 국가에 비해서 자주 방문하는 곳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사람들이 몰린 곳에 오지는 않고 대부분 왕궁으로 직행하는 편이다.
아마 내가 정체를 밝히기 전에 거리를 돌아다녔을 것이다. 그때 귀여운 꼬마 숙녀님을 만났었지.
‘괴식도 먹어보고.’
그때 뭘 먹었는지 기억이 안 나지만 맛은 그럭저럭 있던 것으로 안다.
덕분에 괴식 문화가 상당히 발달돼 있다는 것도 깨달았고. 석유만 주구장창 나는 나라다보니 어쩔 수 없다.
“여러분께서 저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는 대강 알고 있어요. 신이 보내주신 성자 혹은 구원자라 생각하시겠죠. 아닌가요?”
내 질문에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는 마족들.
제논 일대기부터 시작된 착각이 어느 순간부터 진실로 변해버렸다.
하지만 적어도 마족에게는 그 착각조차 진실이었을 것이다. 마족을 구원한 건 변함없었으니까.
또한 루미너스는 말했다. 나를 향한 신앙심이 점점 늘어나는 상황이라고.
그 지분의 대부분은 마족이 차지하고 있을 거라 장담할 수 있다.
“이제는······ 네. 인정할 수밖에 없네요. 저는 여러분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살아갈 것 같습니다.”
내가 순순히 인정하는 발언을 꺼내자 마족들의 얼굴이 한층 더 밝아졌다.
본인들의 기대가 확신으로 변했기 때문일까. 하나 같이 감격한 표정들이었다.
“어어. 무릎 꿇지 마세요. 그냥 일어서서 들으세요. 괜히 무릎만 아픕니다.”
누군가 무릎을 꿇으려고 하길래 다급히 막아세웠다.
한 명이 무릎을 꿇기 시작하면 방금 전처럼 우르르 무릎을 꿇을 것 같았으니까.
이러한 나의 제지 덕분인지 무릎을 꿇으려던 마족들이 우뚝 멈췄다. 뒤이어 그들이 일어서자 다음 말을 이어나갔다.
“뭐, 아무튼······ 이미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저는 평범하디 평범한 영혼입니다. 악마 숭배자의 농간으로 이 세상으로 넘어오고, 전생의 기억을 갖고 있을 뿐. 본질만 따지자면 여러분과 같은 영혼이이에요.”
“악마 숭배자?”
“악마 숭배자 때문에 넘어오신 거였어?”
“이건 처음 듣는데······”
내 말에 마족들이 저마다 수근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 반응에 응? 하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옆의 세실리에게 조용히 물었다.
-혹시 내가 악마 숭배자 때문에 넘어왔다는 건 말 안 했어?
-안 했어, 이 바보야.
세실리가 내 코를 툭- 치며 귀엽다는 듯이 말했다. 미소를 보아하니 그닥 신경 쓰는 모습은 아니다.
이 금붕어 같은 기억력이 기어코 사고를 터뜨렸다. 아니지, 기억력이 아니라 입이라고 해야 되나.
아무튼 진행하는데 큰 문제는 없다. 나는 혼란스러워하는 군중들을 향해 말했다.
“우연이라면 우연이고, 필연이라면 필연이죠. 누가 과연 예상이라도 했겠습니까? 전생의 작가였던 사람이 이곳으로 넘어오고, 그 작가가 우연찮게 글을 썼는데 그것이 한 종족을 구원한다는 이야기. 정말 동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죠.”
“··· ···”
내가 다시 입을 열자 집중하는 군중들. 그들도 믿기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것을 소위 ‘기적’이라 부르는 겁니다. 그리고 기적은 신께서 직접 내려주시는 게 아닌, 기적을 만들 기회를 주시는 거죠.”
무지막지한 확률을 뚫어버리거나 과학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을 때 우리는 기적이라 부른다.
그렇다면 그 기적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일까. 또한 어떤 준비가 필요한 것일까.
“좋은 과정에는 좋은 결과가 등장할 확률이 높습니다. 만약 마족이 절제를 추구하지 않았다면 제논 일대기도 큰 의미가 없었겠죠. 따라서 기적이라는 씨앗은 여러분이 심은 겁니다. 저는 단지 그 씨앗이 물을 주어 싹을 틔운 것이죠.”
슥슥슥슥-
내가 말을 하는 동안 케이트는 열심히 필기 중이다. 이제 뭘 하는지 대충 눈치챘다만 넘겨야지.
과연 저게 체리의 필체와 만나 어떤 결과를 보여줄지 걱정되면서 기대된다.
“물론 준비를 한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결과만 나오는 건 아닙니다. 때로는 의도는 선해도 결과가 좋지 않은 경우가 있거든요. 자연이 그러하듯 세상의 운명 또한 가혹합니다.”
끝까지 좋은 이야기만 할 수 없다. 가끔씩 따끔한 충고도 필요한 법이다.
헬리움은 현재 행복도가 최고치를 찍은 상황이다. 특히 행복할 때 선택하는 순간 후회를 남기는 일이 많다.
“저 또한 전생에 극심한 절망을 겪은 적이 있습니다. 선한 의도로 행했던 일이 부모님과 영원토록 헤어지게 만들었으니까요. 그때는 정말로 신을 원망했습니다. 제가 이곳으로 오기 전까지 여러분도 비슷한 감정이었을 겁니다.”
“··· ···”
신을 원망했다는 말에 마족들의 표정이 씁쓸해졌다. 대체적으로 암울한 얼굴이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마족은 원하지도 않는 비극을 겪은 피해자다. 세상을 원망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 증오심을 거두지 못해 강경파 마족이 악마 숭배자에게 가담하지 않았는가.
심지어 강경파 마족과 끈을 만든 헬리움의 귀족도 존재할 정도였다.
“하지만 여러분은 해냈습니다. 어쩌면 저보다 더 위대한 분들이 여러분이라 할 수 있겠죠. 저는 절망감에 휩싸여 아무것도 하지 않은 반면, 여러분은 끝까지 절제를 추구하셨습니다. 그 결과가 지금이죠.”
“··· ···”
“철저한 준비 끝에 좋은 결과가 나타난다고 할 수 없습니다. 좋은 결과에는 무조건 좋은 과정을 거쳤다고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준비를 하지 않는다면 그러한 결과조차 없습니다.”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행동을 취한다고 해서 좋은 결과가 나오리라는 법은 없다.
아까 말했듯이 세상이 원래 그렇다. 불합리함으로 가득 찼으나 합리적으로 돌아가는 운명.
“목소리도 내지 않고, 아무런 행동도 보여주지 않는 것. 제가 생각하기에는 그것이 가장 큰 죄악인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겪은 경험을 토대로 따지자면요.”
“··· ···”
“여러분은 행동하고, 목소리를 내었으며, 결실까지 맺었으니······”
나는 잠깐 말을 삼켰다가 진심이 우러러 나오는 미소를 지었다.
아마 마족에게 가장 듣고 싶은 말은 이것이지 않을까.
“평범한 사람처럼 사셔도 됩니다.”
원래 마족은 악마와 동급의 수준으로 차별 받았다. 모욕을 당해도 ‘종족차별’이 아니라 당연한 거라고 여겼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그들을 차별하는 순간 종족차별로 옥살이를 하게 될 것이다.
“절제를 미덕으로 삼는 건 좋지만, 속에 진 응어리를 풀어버릴 욕망 정도는 가지셔도 됩니다.”
헬리움은 앞으로도 쭉 절제를 미덕으로 삼을 것이다. 이건 평생 변하지 않을 문화였으니.
하지만 사람이 어떻게 욕망과 거리를 두겠나. 욕망이 존재하기에 인류가 존속할 수 있던 것이다.
“그러니······”
나는 마족들과 얼굴을 한 명 한 명 마주쳤다.
거의 울기 직전인 사람도 있고, 이미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르는 사람도 있었다.
다른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면 와닿지 않았겠지. 그러나 내가 말하면 일종의 축복처럼 들릴 것이다.
“이제 일상으로 미래를 즐기시면 됩니다.”
“··· ···”
“저 또한 일상으로 돌아가 열심히 준비할 테니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아시겠죠?”
마음 같아서는 이스라엘의 예시를 들어주고 싶다. 그런 나라와 같은 짓은 하지 말라고.
그러나 이런 분위기에서는 어울리지 않을 테니 넘어가도록 하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제논 님······”
“우리의 구원자······”
내 말을 끝으로 저마다 손을 모으며 기도하는 마족들. 다들 나에게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다.
앞의 사람들뿐마 아니라 뒷쪽의 사람들까지 손을 모아 기도하는 중이었다. 스타비르크와 비슷하면서 다른 장엄함.
나는 괜히 울컥해지는 기분에 서둘러 인사만 마치며 건물로 들어서려고 했다.
번쩍!
느닷없이 하늘에서 새하얀 빛무리가 나에게 쏘아지기 전까지는.
“······응?”
뭐야 이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