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725
■ 724화. 성자 (3) □ ᓚᘏᗢ
환상을 넘어서 환장할 것 같은 현상에 서둘러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바깥에는 진짜 성자였다니, 더이상 숨길 게 없다니 뭐니 하면서 떠들석하기 그지 없다.
혼란의 방지를 위해서 어떻게든 수습에 나섰지만 나도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다.
스타비르크에서조차 이런 현상은 일어나지 않았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
마음 같아서는 루미너스나 모라에게 물어보고 싶었으나 여기는 헬리움.
모라를 국교로 삼다보니 루미너스를 모시는 신전은 없었다.
모라는 본래의 차원에서 추방당해 의식체가 완전히 떨어져 나간 상태고.
‘진짜 뭐였지?’
나를 향해 내려오던 빛무리는 얼마 가지 않아 다시 사라졌다.
그러나 빛무리가 기적처럼 내려왔다는 것 자체부터가 문제다.
전후사정을 알 수 없다보니 답답했지만 그것보다는 당황스러웠다.
‘몸의 변화는 딱히 안 보이고.’
다급히 몸의 상태를 살펴봐도 달라진 건 없다. 하얀 피부도 그대로다.
그나마 달라진 건 신성력 정도랄까. 원래도 강력했던 신성력이 한층 더 진해진 느낌이다.
과연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바일까. 혹시 건강한 정신이라도 얻은 걸까.
‘머리 아프네.’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필이면 그 수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기적 같은 현상이 펼쳐졌다.
팔자에도 없는 성자 노릇을 하느라 힘들었는데 이제는 아예 대놓고 도장까지 찍어버렸다.
마족들이 보기에 내가 너희를 구원할 ‘메시아’로 추앙받아도 할 말이 없었다.
여기서 이미 성자로 추앙 받고 있었는데 무슨 의미가 있냐 물을 수도 있겠지.
‘진짜 길 걸을 때마다 엎드려 절하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빈말이 아니라 어떤 마족이 길을 걷다가 나와 마주친다?
감격한 표정 다음으로 엎드려 절할 게 분명하다. 과장이 아니라 꼴을 보면 확실하다.
이런 말을 좀 문제가 되겠지만 독실한 기독교인 앞에서 예수가 등장한 거나 똑같겠지.
물론 지구는 신의 존재가 불확실하여 진짜 예수인지 의심하겠으나 나는 아니다. 신이 명확히 존재하고 있는 세상이다.
덜컥-
“아이작. 우리 왔어.”
“왔어?”
내가 머리를 싸매며 고민하고 있을 때쯤 바깥의 혼란을 수습하던 세실리와 케이트가 나섰다.
아델리아는 혹시 모를 사태를 위해 내 곁을 지키고 있던 상황. 저 둘은 종교와 긴밀한 연관이 있다보니 제격이었다.
“지금 사람들은 어때?”
“일단 어찌저찌 돌려보내긴 했습니다만······”
케이트가 말을 흐리며 나를 바라봤다. 그녀도 방금 전 마족들 못지 않게 흥분과 감격이 섞여있었다.
음. 아무래도 무슨 설명을 하던 간에 믿지 않을 것 같네. 그런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팬사인회를 진행하는 것. 문제는 그게 가능하냐는 거다.
나는 복잡한 생각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가 애인들에게 말했다.
“팬사인회는······ 진행할 수 있겠지?”
“팬사인회 자체는 문제가 없을 겁니다. 반응이 과격해지겠지만요.”
“혹시 모르니 성직자들을 대기시켜 놓을게. 중간에 사람이 쓰러질 수도 있으니까.”
농담이라 생각했지만 진지한 얼굴들을 보아 결코 농담은 아닌 것 같다.
그래도 팬사인회가 중단되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다른 건 몰라도 할 일은 해야지.
“······일단 팬사인회부터 진행하자. 일정이 조금 늦어져도 최대한 노력해야지.”
“알겠어. 나는 일단 신전부터 갔다 올게. 성직자들을 데려와야 하니까.”
세실리가 다시 바깥으로 나가고 남는 사람은 아델리아와 케이트.
나는 답답함에 재차 한숨을 내쉬었다. 뭐가 어떻게 된 상황인지 아직도 갈피를 못 잡겠다.
이런 건 루미너스에게도 듣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그가 나를 엿먹이기 위해 일부러 이런 짓을 한 건가 싶었다.
“너무 심란해 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이작 님.”
“······케이트 씨.”
“받아들이면 편합니다.”
“··· ···”
무슨 포기하면 편해와 동급의 위로인 거 같은데.
나뿐만 아니라 아델리아도 비슷한 뉘앙스로 들렸는지 어처구니 없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하지만 케이트는 진심이었는지 특유의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부담스러우신 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저 또한 비슷한 경험을 겪은 적이 있거든요.”
“······케이트 씨가요?”
“네. 타락한 추기경 바크를 처단하고나서 깨달음을 얻었을 때였습니다. 그때 루미너스 님이 저에게 빛을 하사하셨죠.”
루미너스 네 이 놈. 네가 저지른 일이구나.
그러한 생각이 내 얼굴에 드러난 걸까. 케이트가 웃음을 흘렸다.
“이번 사태는 루미너스 님이 행한 건 아닐 겁니다. 순전히 아이작 님이 행한 기적이라는 소리죠.”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루미너스 님의 상징색은 찬란한 황금색. 제게 빛을 내려주셨을 때도 황금색이었죠. 반면 아이작 님은 때묻지 않은 하얀색이었습니다.”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것 같다. 나는 아직 제대로 된 신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관장하는 영역마다, 그리고 그 대상의 특색마다 신성력의 색깔이 바뀐다.
루미너스의 신성력은 태양을 상징하는 것처럼 황금색이고, 모라는 달을 상징하기에 은색이다.
반면에 나는 그 어떤 특색도 없었으니 새하얀 빛무리가 내려왔다는 것이다.
“······그건 그거대로 얼척이 없는데요? 제가 뭘 했다고?”
“신도들의 마음을 움직였죠. 그것만으로 충분할 겁니다. 그 마음이 하나로 합쳐 기적을 보여준 것이죠.”
“··· ···”
그런가. 나는 케이트의 대답에 고개를 갸웃거렸다가 아델리아를 바라봤다.
나와 마주한 아델리아는 본인은 아무렴 상관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나는 종교에 별 관심이 없어서. 그냥 네가 좋으면 좋은 거지 뭐.”
태평하기 짝이 없는 대답에 피식거렸다. 확실히 아델리아는 나라는 사람 자체를 더 좋아한다.
내가 어떤 모습이든 간에 나를 사랑해줄 사람. 그래서 묘하게 힘이 난다.
아무튼 할 일을 해야하는 건 변함 없다. 최대한 심란한 마음을 털어내는 게 좋을 것 같다.
“일단 헬리움에서의 팬사인회부터 시작하자. 준비는 언제 끝나?”
“세실리 님께서 돌아오신다면 그 즉시 가능합니다.”
비록 분위기가 어수선해졌지만 팬사인회는 중단되지 않는다. 나는 슬슬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세실리가 성직자들을 대동한 채 돌아오고, 팬사인회가 시작될 시간이 도달했다.
가장 먼저 들어온 사람은 예쁘장한 미모를 지닌 마족 여인. 날카로운 눈매와 꼬불꼬불한 뿔이 특징이다.
“제, 제논이시여! 미천한 종이 구원자를 뵙나이다!”
“··· ···”
그런데 이 여자가 나를 보자마자 넙죽 엎드리더라. 내가 미처 제지하기도 전이었다.
순간적으로 따라갈 수 없는 상황에 눈을 깜빡인 것도 잠시, 나는 서둘러 일어나라고 부탁했다.
이윽고 내 부탁에 따라 서서히 일어나는 마족 여인. 붉디 붉은 두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었다.
“그······ 사인은······”
“가, 감히 제가 구원자 님의 것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절대 안 됩니다.”
아니. 그럼 왜 온 거야.
그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끝까지 미소를 유지했다.
첫 스타트부터 상당히 불안불안하다. 어떻게든 잘 타이르는 게 좋을 듯했다.
“저는 마족의 구원자이기도 하지만 지금은 작가입니다. 부디 받아가시는 걸 추천할게요.”
“네, 네! 제논 님의 말씀이라면!”
어질어질하네. 나는 마족 여인이 가져온 책에다 사인을 해주고는 잡다한 이야기를 나눴다.
“아아······”
털썩-
3분도 안 되어 갑자기 쓰러져서 대화가 끝났지만.
대화를 나눌 때도 얼굴이 서서히 붉어지던데 이제는 혼절해버렸다.
나와 아델리아는 황급히 쓰러진 여인에게로 다가갔다.
위험천만 상황과 다르게 얼굴은 행복하기 그지 없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케, 케이트 씨! 사람이 쓰러졌습니다!”
“세실리 님께 말씀드리겠습니다.”
크게 외치니 바깥에서 세실리가 데려왔다던 성직자들이 마족 여인을 데리고 갔다.
아까도 말했지만 첫 스타트부터 불안불안하다. 그나마 일찍 끝날 것 같다는 게 위안이라면 위안이랄까.
여러모로 혼란하기 그지 없는 상황이 지나가고, 다음 사람을 불렀다. 다음에 들어온 사람은 마른 체형의 마족 남성이었다.
“미천한 종이 제논 님을 뵙습니다!”
“··· ···”
방금 전 그 여인처럼 나를 보자마자 냅다 절하는 마족 남자. 이러다가 마족들 무릎이 남아나질 않겠다.
결국 케이트에게 하나 당부할 수밖에 없었다. 무릎을 위해서라도 엎드려 절하는 건 삼가해달라고.
다행히 그 당부 후에 엎드려 절하는 사람은 없어졌다. 허리를 꾸벅 숙이는 사람들만 늘어날 뿐.
그나마 이게 낫다. 나도 예의를 갖추며 인사하고 있었으니 서로가 편할 것이다.
“제논 님. 한 가지 부탁해도 될까요?”
“무슨 부탁을······?”
“제논 님께서는 마이샬 영지의 출산율을 대폭 올리셨다고 들었어요.”
“······?”
내가? 영지의 출산율을? 저게 뭔 소리야?
앞뒤를 다 잘라먹은 질문에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아, 하며 깨달았다.
현재 여성 팬이 나에게 질문한 건 축구와 깊은 연관이 있다. 축구 덕분에 영지의 부인들이 아주 좋아했지.
남자들은 유흥을 통해 스트레스를 풀면서도 체력을 증진시키고, 그 남는 체력으로 부인들과 뜨거운 밤을 보낸다.
이러한 과정 덕분에 임신한 부인들이 상당히 많아진 상황이다. 그 부분은 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가 직접 맡으셨고.
“네. 뭐······ 건강한 유흥 덕분에 그런 거죠. 그런데 그건 왜······?”
“사실 제 남편과 아이를 가지려고 하는데······ 제 악주기가 워낙 고약하다보니 남편이 힘들어 해서요.”
“마족이 힘들어 한다고요?”
모두 알다시피 악주기는 마족만이 갖고 있는 생리 주기다. 그렇기에 악주기가 온다면 모두가 이해하는 편이다.
그러나 악주기는 가임기나 마찬가지. 이렇다 보니 여러모로 고생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엘프의 낮은 출산율이 보수적인 관념 때문에 그런 거라면, 마족은 말 그대로 ‘전투’를 해야되서 힘들다.
그런데도 꾸준히 균등한 출산율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국가 차원에서 지원해주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고 그런 짓이 아니라 단순히 약이다. 약을 통해 악주기를 조금이나마 완화하는 것이다.
“악주기마다 잠에 빠져드는 체질이라서······ 남편도 잘 자고 있는 저를 건드리기 미안해서 가만히 두고 있어요. 기껏 노력해도 생기지 않고······”
“그······ 실례지만 나이가 어떻게 되시죠?”
“이제 300살을 조금 넘겼어요. 남편은 240살이고요. 결혼한 지는 100년이 흘렀죠.”
어마어마한 연상연하로군.
그래도 결혼한 지 100년이 넘었는데도 아이가 없다는 건 꽤 고민이 될 일이다.
인간으로 치자면 10년 동안 알콩달콩 지냈는데 아이가 없다는 뜻이니까.
“힘들겠네요.”
“네. 그러니 어떻게 안 될까요? 아이는 꼭 갖고 싶어서······”
비단 마족들뿐만 아니라 모든 종족이 갖고 있는 고민이다. 분명 남편과의 궁합은 좋은데 이상하리만큼 아이가 생기지 않는 체질.
나와 마리는 사고 한 방으로 생겼다지만 원래 임신은 확률이 미묘한 편이다. 안 생기면 진짜 안 생긴다.
‘그건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없는데.’
무슨 만화마냥 제가 대신 해드릴까요? 라고 대답하면 미친 새끼지.
이건 나도 어떻게 해줄 수가 없다. 그냥 솔직하게 말하고 끝내자.
“죄송하지만 그건 저도 힘들 것 같습니다. 제가 아직 그······ 완전하지가 않아서요.”
“아······ 그, 그러면 다른 걸 부탁해도 될까요?”
“무슨 부탁이죠?”
드르륵-
내 질문에 의자를 뒤로 끌며 서서히 일어나는 마족 여성. 나는 무던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
겉보기에는 동그란 안경까지 써서 지적인 이미지를 풍기는 미녀다. 소심해 보이는 얼굴이 매력적이었다.
그러나 행동은 절대 소심하지 않았다. 그녀는 부끄럽지만 절박하게 느껴지는 표정으로 상의를 서서히 올렸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당황스러웠으나 이 다음에 이어진 행동은 더 충격적이었다.
“여, 여기에다 사인을 해줄 수 있을까요······?”
“······네?”
“안 될 거라는 건 알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하의마저 살짝 내려 하복부를 수줍게 보여줬으니까.
나는 입을 살짝 벌리며 그녀의 얼굴과 그 아래를 번갈아봤다.
맨들맨들한 살결과 살짝 튀어나온 하복부. 헌데 신기하게도 음심은 전혀 들지 않았다.
착각일지 몰라도 절박하디 절박한 그녀의 심정이 나에게 전달되는 것 같았다.
“······그냥 해줘. 난 모른 척 할게.”
때마침 옆의 아델리아도 모른 척해준다고 말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마음을 굳게 다잡으며 펜을 쥐었다.
뒤이어 나에게 간절히 부탁하는 마족 여인의 하복부에다가 내 이름을 새겨줬다.
스윽- 슥-
‘······하. 시발.’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심한 현타가 몰려온다. 그래도 꿋꿋이 이름을 새겨줬다.
그나마 다행인 건 여인이 신음 소리를 내지 않았다는 것. 조금이라도 냈다면 집중력이 흐뜨려졌겠지.
‘차라리 진짜 됐으면 좋겠네.’
이 절박함이 원하는대로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다른 건 몰라도 이것만큼은 ‘진심’이었다.
이윽고 사인을 모두 끝내자 마족 여인도 옷을 제대로 갖춰입었다.
“감사합니다. 제논 님. 무리한 부탁을 들어주셔서.”
“아닙니다. 부디 결실을 맺기를 바라겠습니다.”
화악!
내 말을 끝나자마자 느닷없이 새하얀 빛무리가 뿜어져나왔다.
어디서 나왔냐고 하면 아까 전 사인을 했던 곳이라고 대답하겠다.
그러니까 마족 여인의 아랫배에서 흰색 빛무리가 뿜어져 나왔다는 뜻이다.
“······어?”
“··· ···”
그 현상에 마족 여인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나는 기가 차서 할 말조차 나오지 않았다.
이어서 여인은 황급히 자신의 아랫배를 확인했는데, 방금 전 그 사인이 온데간데도 없이 사라져 있다.
“··· ···”
“··· ···”
순식간에 침묵으로 가득 채워진 방 안. 당최 무슨 상황이 펼쳐진 건지 모르겠다.
그동안 여인은 계속해서 아랫배와 나를 번갈아 보더니 이내 환희에 찬 표정을 지었다.
“가, 감사합니다! 제논 님! 정말 감사합니다!”
아니. 내가 뭘 했다고요.
미처 그 말을 하기도 전에 밖으로 튀어나가는 마족 여인.
[여보! 여보! 빨리 집으로 가자!] [어, 어? 갑자기?] [빨리! 제논 님에게 축복을 받았어! 오늘 분명 아이가 생길 거라고!] [그게 무슨 소리야? 악주기도 아니······] [됐으니까 빨리!]바깥에서의 소란이 내 귀에 똑똑히 들어왔다.
나는 그 소란을 듣고 우두커니 앉아있다가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아델리아는 어이가 없는 건 마찬가지인지 한 쪽 입꼬리만 올린 채 헛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아이작.”
“······응.”
“너 대체 무슨 신이 되려고 하는 거야?”
그 질문에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소심하게 답했다.
“······잡신?”
진짜 잡신이 될 것 같은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