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726
■ 725화. 바보 (1) □ ᓚᘏᗢ
미래의 나는 어떤 신이 될까라는 주제는 얼마 가지 않았다. 팬사인회는 꾸준히 이어졌으니까.
이후로도 갖가지 부탁을 하거나 내 앞에서 기도를 하는 등. 여러모로 진이 빨리는 상황이 이어졌다.
그나마 아랫배 사인이 제일 압권이었다는 걸까. 그걸 제외하고는 무난한 팬사인회가 이어졌다.
“앗! 그때 그 빨간머리 오빠다!”
“공주님은······”
“에이미! 나는 에이미야!”
그렇다고 피곤한 마음을 달래줄 사람이 없던 건 아니었다.
여태까지 꾸준히 느꼈던 바지만 아이들이 가장 순수해서 좋았다.
너무 어린 나머지 성자라는 개념도 잘 모르고 내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도 모른다.
이 순간만큼은 세상을 이롭게 만든 성자가 아니라 작가 제논으로서 대할 수 있어서 좋았다.
“에이미? 아~ 옛날에 만났던 그 애구나.”
“성자 오빠도 기억하네? 히히.”
젖살이 빠지지 않아 오동통한 볼살을 지닌 소녀가 해맑게 웃는다. 깊이 파인 보조개가 매력적이다.
양뿔처럼 돌돌 말려있는 뿔과 미래가 기대되는 외모. 나는 이 소녀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2년 전이었던가 3년 전이었던가. 헬리움에 잠깐 방문했을 때 우연히 만났던 소녀다.
그때는 내가 정체를 밝히기 전이라서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었다. 내 머리카락을 보고 빨간색이라 외쳤지.
“저······ 제논 님? 정말로 기억하시는 건가요?”
에이미의 어머니로 추정되는 여인이 조심스레 물었다. 응모권에 당첨된 아이들은 부모와 대동할 권한이 주어진다.
나는 방실방실 해맑게 웃는 에이미를 보다가 빙그레 웃으며 대답해줬다.
“당연히 기억하죠. 제 머리카락을 보고는 위험하다 소리쳤던 것도 기억나는 걸요? 뿔이랑 머리카락이랑 헷갈렸던 걸로 알아요.”
“저, 정말 기억하시는군요. 이걸 어떻게 감사를 전해야 할 지······”
“감사까지야······”
감격한 얼굴로 두 손을 꼭 마주잡는 에이미의 어머니.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가 다시 에이미를 쳐다봤다.
“언니. 언니.”
“응? 저, 저요?”
“응. 언니는 성자 오빠랑 무슨 사이야? 언니도 엄청 예쁘다. 눈이 하늘 같아.”
에이미는 여전히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는지 내가 아니라 옆의 아델리아에게 말을 걸었다.
빨간머리라는 이유로 나에게 말을 걸었던 것도 그렇고 꽤 붙임성이 좋은 모양이다.
나는 아델리아에게 대답해도 된다는 식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당황했던 그녀가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저는 성자님을 지키는 기사입니다. 지금도 곁에서 지키는 중이죠.”
“앗. 그러면 성자 오빠가 릴리고 언니가 진인 거야?”
“어······ 그런······ 셈이죠?”
묘하게 납득이 가는 비유에 아델리아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끄덕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에이미는 싱글벙글 웃으며 자잘한 대화를 이어나갔다.
소년들이 원하는 질문을 따닥따닥 한다면, 에이미 같은 소녀는 온갖 말을 지어낸다.
그 말은 즉슨, 에이미의 질문 공세에 하나하나 열심히 대답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성자 오빠. 오빠는 인간인데 어째서 마족의 성자라 부르는 거야?”
“제논 일대기에서도 릴리가 진을 구원해줬잖니? 그런 거라고 보면 돼.”
“아하! 그럼 제논 일대기가 실제로 있던 이야기야? 엄마는 그렇다던데?”
“··· ···”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에 슬쩍 에이미의 어머니를 바라봤다.
그녀도 에이미처럼 보조개가 움푹 파일 정도로 기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적어도 마족 입장에서 제논 일대기가 진실인지 거짓인지 의미가 없다. 그 책으로 구원받았다는 건 변함 없었으니까.
나는 여기서 고민했다. 귀엽디 귀여운 소녀의 동심을 지켜줄 것인가, 아니면 동심을 파괴할 것인가.
‘산타클로스가 어째서 탄생했는지 알 것 같네.’
줄곧 생각해보면 에이미 같은 어린이들에게는 거짓말을 했다. 당연하게도 동심을 지켜주기 위함이다.
그러니 이번에도 거짓말을 하자. 아이들의 동심을 지켜주기 위해서.
“응. 맞아. 제논 일대기는 실제로 존재하는 이야기야.”
“그것 봐! 엄마, 내 말이 맞지?”
“어, 어어? 저, 정말로······?”
아니. 당신이 왜 동심을 갖고 있는 건데요.
에이미의 어머니는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나와 에이미를 번갈아봤다.
아무래도 다른 사람도 아닌 내가 직접 한 말이라 덥썩 믿어버린 모양이다.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닌데.’
우선 오해를 풀어줘야 할 듯싶었다. 이에 에이미의 어머니를 바라보며 입에다 검지 손가락을 갖다 대었다.
에이미의 동심을 지켜주기 위한 거짓말이라는 걸 알았을까. 혼란스러웠던 그녀의 표정이 잠잠해졌다.
이윽고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오해를 푼 모양······
‘······푼 거 맞겠지?’
왜 결연한 표정인지 모르겠네. 무덤까지 끌고 갈 기세처럼 느껴졌다.
“그럼 성자 오빠는 무슨 능력을 갖고 있어? 릴리처럼 아픈 사람을 치유할 수 있는 거야?”
“아직 거기까지는 아니야. 대신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치유했지.”
“마음이 아픈 사람? 마음이 아프다는 게 어떤 느낌이야?”
“그건 에이미가 크면 자연히 알게 될 거란다.”
그렇게 재잘재잘 이야기의 꽃을 피우다보니 어느새 10분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에이미는 어떻게든 나와 더 얘기하기 위해 땡깡을 부렸지만 그녀의 어머니가 끌고나갔다.
-나 성자 오빠랑 더 말할 거야! 더 말할 거라고!
-안 돼. 에이미. 성자 오빠는 나중에 보자?
-언제 볼 수 있는데?
-······한 100년 뒤?
-너무 멀잖아!
100년 뒤라면 내가 승천하고 없어질 시간이지 않은가. 여러모로 고생하는 에이미의 어머니다.
‘그레이스도 나중에 저럴까?’
지금도 말괄량이 기질이 넘쳐나는 그레이스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짧은 두 다리로 오도도 달리는 아이.
나중에 크면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가 되면서도 걱정됐다. 차라리 에이미처럼 재잘거렸으면 좋겠는데.
“이제 다 끝난 건가?”
“응. 헬리움은 저 아이가 끝이야.”
아무튼 다른 나라보다 훨씬 다사다난했던 헬리움의 팬사인회도 끝을 맞이했다.
몸은 몸대로 마음은 마음대로 피곤해서 그런지 시간이 길게 느껴졌다.
나는 기지개를 쭉 펴며 찌뿌등한 몸을 풀었다. 남은 건 헬리움의 왕궁으로 향하는 것뿐.
‘왕궁으로 향할 때도 텔레포트를 써야하나?’
도보를 이용한다면 시선이란 시선은 다 끌릴 게 분명하다. 여기서 끝나지 않고 무릎까지 꿇겠지.
이제 헬리움뿐만 아니라 마족들 앞에서 함부로 모습을 드러내면 안 될 것 같다.
괜히 만났다가 한 명이라도 무릎을 꿇으면 음······ 상상도 하기 싫다.
‘전세계 순방 팬사인회도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려나······’
원래라면 매년마다 한 번씩 전세계를 돌면서 팬사인회를 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 생각이 오만이었다는 건 헬리움을 방문하고나서야 깨달았다.
한 명당 10분씩 대화하는 것만으로도 진이 쫙 빨리는데 이거 매년마다 한다?
성향이 안 맞아도 너무 안 맞는다. 전생의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여도 예비군은 갔다 왔는데 이건 못해먹겠다.
“이제 남은 나라가 알븐하임이랑······”
“테르스 왕국.”
내가 남은 나라를 손가락으로 꼽자 아델리아가 테르스 왕국을 언급했다.
스타비르크는 현재 나라를 재건 중이어서 리스트에 넣지 않았다. 안 그래도 바쁜데 나까지 끼어들면 힘들겠지.
나는 무덤덤하게 테르스 왕국을 입 밖으로 꺼낸 아델리아를 슬쩍 바라봤다.
트라우마를 완전히 떨쳐냈는지 무덤덤한 얼굴이다.
‘······언급도 하지 말아야지.’
괜히 언급했다가 도리어 트라우마를 자극할 수도 있다. 그쪽과는 아예 연을 끊는 게 낫다.
아델리아에게 있어서 가정사는 상종하기도 싫은 과거였으니까. 심지어 그녀의 어머니는 소재조차 찾지 못했다.
내일을 팔아 오늘을 사는 매춘부였으니 성병으로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 아델리아가 뚝심있게 자란 것조차 기적이다.
끼익-
아델리아와 대충 정리하고 있을 때 바깥에서 익숙한 얼굴들이 문을 열었다. 세실리와 케이트다.
지금 들어온 걸 보니 바깥의 상황도 대충 정리하고 온 모양이다.
“다 정리한 거야?”
“응. 계속 기다리는 사람이 있길래 다 보냈지.”
역시 예상대로다. 팬사인회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 줄 알았다.
이대로 바깥으로 나갔다면 또 괴상한 일이 벌어졌겠지. 나는 그들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건넸다.
“그런데 아이작.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네가 어떤 악주기도 아닌 마족 여인을 임신시켰다는데 무슨 소리야?”
“······쿨럭.”
갑작스레 치고 들어온 세실리의 질문. 묘하게 가시가 돋혀있는 건 절대 착각이 아닐 것이다.
저런 건 서둘러 해명하는 게 좋다. 구구절절 변명했다가는 오해가 더 깊어질 수도 있다.
“······조금 오해가 있나보네. 일단 누나가 생각하는 건 절대 아냐. 그리고 그게 진짜인지도 모르는 걸?”
“흐음~ 아무튼 이상한 짓은 안 한 거지?”
“아델 누나가 옆에서 눈에 불을 켜고 있는데 어떻게 해?”
“알았어. 나중에 왕궁에서 천천히 듣지 뭐. 여기 신문.”
세실리는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나에게 신문을 건넸다.
팬사인회는 아침 일찍부터 시작하기에 신문을 읽을 여유가 없었다.
그나마 점심 시간이 있다지만 신문을 읽으면서 쉬기에는 부적합하다.
“오늘은 무슨 뉴스라도 있어?”
“딱히 없지만 슬슬 네가 펼친 기적이 소문으로 번진다는 것 정도?”
“그건 예상하고 있었지.”
나는 신문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눈에 띌만한 소식이 없는지 파악했다.
나의 팬사인회로 인해 경매로 부쳐진 사인이 있다니, 그로 인해 각종 사건사고가 발발했다니 등등.
팬사인회와 관련된 것들이 많았다만 이건 충분히 예측한 바라 쉬이 넘겼다.
그에 오늘도 별일 없나 싶어 넘길 때쯤, 내 눈에 들어온 소식이 하나 밟혔다.
[회색 사막 원정대. 고고학자 두 명이 실종되었다.]꾸준히 작업 중에 있던 회색 사막 원정대, 그것도 고고학자 두 명이 실종됐다는 소식.
회색 사막 원정대는 언데드 계열의 몬스터가 많다. 당장 모건 왕만 하더라도 따지고보면 언데드 계열이다.
그로 인해 사상자가 꽤 발생하는 편이다. 살인적인 사막 기후도 공략에 차질을 빚는 중이고.
‘설마?’
나는 그 소식을 읽자마자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엘레나와 신디도 고고학자로서 참여한 거라 눈에 밟힐 수밖에 없었다. 그에 다급히 자세한 정보를 파악했다.
‘아. 세이비어 교국 출신이구나.’
다행히도 세이비어 교국 출신의 고고학자들이 실종됐다는 소식이다.
이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알븐하임 출신만 아니면 된다. 애당초 곁에 아이케르가 지키고 있을 테니 걱정도 안 되고.
이 다음에 눈에 띌만한 뉴스는 없었다. 나는 신문을 대충 덮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장인어른이랑 장모님께서는 뭐하고 계셔?”
“우선 오늘은 엄마만 같이 식사를 할 거야. 아빠는 바쁘거든.”
“왜?”
“근무 이탈한 발락 경의 징계 건 때문에 그래.”
“······가르츠 씨가?”
나는 어리둥절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팬사인회에서는 가르츠도 응모되어 나에게 사인을 받았다.
제논 일대기 및 피와 강철 전권 세트를 바리바리 들고 와 사인을 받았던 그다. 나를 향한 팬심은 변하지 않았지.
그런데 그것이 근무 중 무단 이탈이었다니. 징계를 받고도 남을 사유라 할 말이 없었다.
“응. 아마 사인을 받았던 책을 전부 압수 당할 거 같다던데?”
“··· ···”
진짜 불쌍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