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727
■ 726화. 바보 (2) □ ᓚᘏᗢ
마음 같아서는 가르츠를 도와주고 싶었다. 지금까지 빼앗긴 사인만 하더라도 한 트럭은 될 테니까.
하지만 세실리는 다른 건 몰라도 그것만큼은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해는 하지만 근무 이탈은 용서할 수 없다나 뭐라나.
나도 그녀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한 건 아니었으나 안타까운 건 안타까운 거다.
애당초 사인본만 있었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테니.
“이번 일을 계기로 발락 경도 정신을 차려야겠지. 게다가 팬사인회는 오늘만 하는 게 아니잖아?”
“······오늘만 할 생각이었는데? 1년에 한 번씩 하다가는 큰일날 것 같아서.”
“······나중에 기회가 되면 몰래 전해줘.”
세실리도 가르츠가 딱하긴 딱한 모양이다. 내가 팬사인회를 하지 않겠다고 하자 저리 말하는 걸 보면.
비록 근무 이탈은 명백한 잘못이라지만 억울한 건 억울한 거다. 대신 궁금한 점이 있다.
“그나저나 왜 걸린 거야? 가르츠 씨는 나한테 사인만 받고 갔거든. 잠깐 화장실 갔다 온다고 하면 되잖아.”
“우연히 동료 중 한 명이 화장실에 있었거든. 그냥 운이 없는 거였지 뭐.”
진짜 불쌍하다. 리퍼인만큼 분명 머리도 똑똑할 텐데 왜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한 거지.
어쩌면 군대라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숭고한 사명을 갖고 있어도 군대의 본질은 어디 가지 않으니까.
어쨌거나 조만간 가르츠에게 몰래 사인본을 줘야 할 것 같다. 근무 이탈을 할만큼 나를 좋아하는 사람인데 안 주면 미안하다.
‘또 뺏기면 팔자라고 생각해야지.’
그때라면 반란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까. 나는 속으로 실없는 생각을 하며 왕궁으로 향했다.
아까 말했듯이 데스칼은 현재 업부 및 가르츠의 징계 건으로 자리를 비운 상태.
그러니 세실리의 어머니이자 장모님인 아이실리아만 함께 식사를 할 예정이다.
“고생하셨어요, 여러분. 차린 건 없지만 부디 마음에 드셨으면 해요.”
언제 봐도 세실리와 흡사한 외모를 가진 장모님이다. 차이점은 앞머리의 유무랄까.
아이실리아는 이마를 드러낸 헤어스타일인 반면 세실리는 앞머리를 단정하게 자른 스타일이다.
그녀와 처음 마주하는 아델리아와 케이트도 구분을 위해 두 사람을 번갈아봤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가까이 보니 두 분 모두 아름다우시네요. 제 딸아이에 비해서 모자란 점이 없으세요.”
“부인께서도 아름답습니다. 반려께서 없으셨다면······”
툭-
나는 케이트가 또다시 말실수를 하기 전에 그녀의 허벅지를 무릎으로 건드렸다.
이에 그녀가 아차하더니 기침으로 말을 흘린 후, 재차 입을 열었다.
“세실리 님의 외모가 어디서 나왔는지 알 것 같습니다.”
“호호. 고마워요. 그나저나 케이트 추기경 님? 케이트 추기경께서도 제논 님과 이어지신 건가요?”
내가 아델리아와 이어졌다는 건 아이실리아 그녀도 알고 있다.
마리가 언론에 퍼뜨린 사실과 더불어 내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확신을 가졌을 테니까.
하지만 케이트는 아니다. 케이트는 최근에야 나와 이어진 사이다.
“네. 앞으로 제논 님을 위해서 제 한 몸 바칠 계획입니다.”
“그렇군요. 제논 님?”
“편하게 아이작이라고 불러주세요, 장모님.”
원래 아이실리아는 나를 아이작이라 불렀다. 하지만 이번에는 뭔가 다르다.
사실상 제논 또한 내 이름이긴 하지만 존경심이 느껴진달까. 어감에서 묘한 차이가 느껴졌다.
“그건 힘들 것 같네요. 제논 님께서 기적을 보여준 이상 우리 마족은 영원한 존중을 보여드릴 거예요.”
“으음······ 그럼 제가 승천하기 전까지만 어떻게 안 될까요? 어디까지나 이 자리처럼 개인적일 때만.”
“그 정도면 괜찮겠네요. 그러면 아이작 님?”
“네. 말씀하세요.”
“외람된 말씀이지만 부디 제 딸아이를 외면하지 말았으면 해요.”
한 명의 마족이 아니라 한 명의 어머니로서 부탁하는 말이었다. 나는 그녀와 얼굴을 마주했다.
아이실리아 입장으로서 세실리가 나와 이어지는 건 박수를 치고도 남을 일이다. 그러나 동시에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혹시라도 내가 세실리를 모질 게 대하거나 소홀히 대할 수도 있다는 걱정.
그런 일은 없겠다만 딸을 가진 어머니로서 당연히 가질 법한 걱정이다.
“디저트는 다양한만큼 각각 색다른 맛을 느낄 수 있죠.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특정 디저트만 골라 먹는 경향이 강하답니다.”
“······네. 그렇죠.”
나는 떨떠름한 심정으로 겨우겨우 대답했다. 연륜이 느껴지는 섹드립에 순간 당황해버렸다.
그러고보니 세실리와의 첫날밤 당시에도 아이실리아가 나에게 말했다. 나를 위한 디저트가 준비돼 있었다고.
그 디저트의 정체는 바로 세실리였다. 그것도 가터 벨트와 승부 속옷까지 착용한 세실리.
모든 준비 작업이 그녀의 손에서 시작됐다 했으니 디저트로 비유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장모님께서 걱정하실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디저트가 많다지만 도리어 그것이 장점이 될 수도 있거든요.”
“장점이라면 어떤 장점이죠?”
“달달한 걸 좋아하는 사람이어도 하나만 먹다 보면 질리는 법입니다. 하지만 맛이 가지각색이라면 이것저것 즐길 수 있는 거죠.”
“어머.”
내 현답(?)에 아이실리아가 감탄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나는 애써 시선을 피하며 차만 홀짝일 뿐이었다.
양심이 찔리긴 하다지만 저것만큼 명답도 없을 거다. 어차피 바람둥이로 낙인찍힌 거 될대로 되라지.
‘실상은 다르지만 뭐······’
내가 디저트를 골라먹는 게 아니다. 디저트들이 알아서 내 입으로 들어오는 상황이다.
나는 그것들을 전부 꿀꺽하다 못해 부족해서 더 달라고 재촉하는 중이고.
오죽하면 디저트를 더 늘려야 된다고 의논을 할 정도일까.
“그러면 안심할 수 있겠네요. 다른 게 아니라 진짜 걱정되서 한 질문이에요.”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더욱 걱정하셨겠죠.”
“이해해주셔서 감사해요. 그렇다면 아이는 언제 가질 예정이죠?”
저 질문이 왜 안 나오나 했다. 사실 섹드립을 했을 때부터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었다.
이에 전혀 당황한 기색도 없이 여유롭게 대답했다.
“아이는 모든 상황이 종결된 후에 가질 예정입니다. 아무래도 마족은 악주기에만 아이를 가질 수 있다보니 기간이 남았죠.”
“그렇군요.”
고개를 끄덕이며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아이실리아. 나는 그녀의 입이 열릴 때까지 잠자코 식사만 했다.
이윽고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식사가 거의 끝나가려던 찰나에 아이실리아의 입이 열렸다.
다소 여유로웠던 전과 달리, 꽤 조심스럽게 느껴지는 말투였다.
“그······ 아이작 님?”
“네. 말씀하세요.”
“소식은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아이작 님께서 축복을 내리신 마족이 아이를 가졌다는 건 아시나요?”
“······네?”
그 말을 듣고 어안이 벙벙해질 수밖에 없었다. 설마 그때 그 마족 여인을 말하는 건가.
사흘 전에 발생했던 일이니 왕궁까지 소식이 들어온 건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정말로 임신을 했을 줄은 몰랐다.
나는 그저 진심을 담아 마족 여인의 바람을 들어줬을 뿐이었으니까. 솔직히 말해 미신에 가깝다.
“그 여인이 신전에 방문해서 확인한 결과 임신이라고 했어요. 여기서 걱정되는 건 누구의 아이냐는 거죠.”
“··· ···”
“모라 님께 여쭈어보고 싶어도 이상하리만큼 대답이 없으셔서······ 괜찮은 건가요?”
그건 나도 모르겠는데. 모라의 부재가 스노우볼로 굴러갔다.
만약 그 아이가 정말로 내 아이라면 끔찍하다. 쓰레기도 그런 쓰레기가 없겠지.
물론 가능성은 매우 낮다. 하다못해 신들도 남녀가 직접적으로 결합해야 아이를 가질 수 있는 마당이다.
루미너스가 언급한 바다. 남녀가 결합하지 않는 이상 아이가 태어나는 건 불가능하다고.
만물의 아버지조차 자연의 어머니인 히르트와 맺어져 루미너스와 모라를 낳았다.
‘히르트의 탄생은 신화로 넘어가면 되니까.’
아무튼 대답은 해야겠지. 나는 근심이 가득한 표정의 아이실리아를 보며 차분히 대답했다.
내가 진짜 쓰레기도 아니고 그런 짓은 절대 하지 않는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그······ 직접적으로 한 것도 아니고 축복만 내린 거니까요. 다른 건 몰라도 탄생만큼은 신조차 거스를 수 없습니다.”
“다행이네요.”
“그런데 그건 왜······?”
“아. 그것이······”
아이실리아는 살짝 부끄러워하더니 세실리의 눈치를 봤다. 세실리도 무언가 눈치챘는지 입꼬리만 올렸다.
이에 내가 설마설마하고 있을 때쯤, 아이실리아가 부끄러움이 담긴 목소리로 나에게 부탁했다.
“저에게도 축복을 내려줬으면 해서······ 그이의 아이를 더 갖고 싶거든요.”
“······장모님께서도 악주기 때 고생하시나요?”
“제가 서큐버스의 피를 진하게 이어받았다보니 어쩔 수 없어요. 한때 남편의 정기를 다 흡수한 나머지 모라 님께서 영혼을 거두어 갈 뻔했고······”
“··· ···”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세실리를 쳐다봤다. 나는 어떻게 살아남았냐는 무언의 질문이다.
세실리는 내 표정에서 의도를 읽었는지 빙긋 웃으며 잔망스레 대답했다.
“그때 모라 님께서 신성력을 주셨잖아. 왜인지 알겠지?”
“··· ···”
모라가 진짜 내 목숨을 살렸던 거구나.
* * *
아이실리아의 난감한 부탁을 들어준 후에는 곧바로 취침에 들어섰다.
오늘 함께 취침할 대상은 세실리 혼자밖에 없다. 아델리아와 케이트가 위험한 날인 것도 아니다.
세실리가 그들에게 부탁한 것이다. 오늘만큼은 나와 단 둘이 있고 싶다고. 자신의 부탁을 들어줄 수 없겠냐고 말이다.
“왜 이런 부탁을 한 거야?”
“그냥 너랑 있고 싶어서.”
실제로 세실리는 나를 껴안기만 할 뿐, 덮치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보아하니 정서적 안정이 목적인 모양이다.
나 또한 이런 분위기를 싫어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세실리에게만 집중할 수 있어서 편하다.
나는 야시시한 속옷만 입은 채 나를 껴안은 그녀의 뿔을 어루만지면서 말없이 분위기를 즐겼다.
세실리도 내가 뿔을 쓰다듬는 게 좋았는지 내 가슴에다가 얼굴을 마구 비볐다.
“아이작.”
“응. 누나.”
“일이 다 끝나면 나도 마리처럼 아이를 만들어 줄 거지?”
세실리답다면 세실리답다고 해야 될까. 나는 시선을 살짝 내려 그녀를 쳐다봤다.
어째서 오늘만큼만 둘이 있게 해달라 했는지 알 듯했다. 이런 귀여운 고민이 있을 줄이야.
나는 어딘가 시무룩해 보이는 그녀를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여태까지 그런 고민을 가슴 속 깊이 묻어줬던 모양이다.
더 나아가 마족 여인에게 내린 축복을 보면서 마음이 심란해졌겠지. 내 아이를 갖고 싶은 마음은 마리보다 훨씬 크다.
“물론이지. 악주기 때쯤이면 일도 다 끝났을 테니 가능할 거야.”
“결혼식은?”
“누나가 원한다면. 마족은 조용한 결혼식이 문화라며?”
마족은 신분을 가리지 않고 조용한 결혼식이 문화다.
모라는 관장하는 영역 때문에 결혼식에 어울리지 않았으며, 마족들 자체가 조용한 편이라 그런 것도 있다.
“응. 마리보다 더 성대하게 치르는 것도 그렇고 조용한 게 나아. 대신 우리 부모님을 포함해 아는 사람은 초청했으면 좋겠어.”
“그 정도라면 기꺼이 할 수 있지.”
“그리고······”
“그리고?”
무언가 더 부탁할 게 있는 모양이다. 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하지만 그녀는 대답하지 않고 한동안 침묵을 유지했다. 아무래도 쉽게 꺼내기 힘든 사안인 모양이다.
나는 세실리가 입을 열 때까지 잠자코 기다렸다. 오늘 밤에 모든 고민을 털어낼 테니 기다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축가.”
“축가?”
“응. 나도 축가를 불러줬으면 좋겠어. 마리에게 그랬던 것처럼.”
이건 예상치 못했는데. 나는 의외라는 표정으로 세실리를 바라봤다.
꽤 부끄러운 대답이라 생각했는지 몰라도 그녀의 뺨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노래가 너무 좋았거든. 그리고······ 사람들 앞에서 그런 노래를 부르니 너무 부럽더라.”
“그랬어?”
“응. 안 될까?”
안 될 건 없다. 솔직히 세실리를 위한 축가도 따로 생각해놓은지 오래다.
마리처럼 달달한 노래는 아니지만, 그래도 결혼식에 어울리는 노래.
어쩌면 세실리에게 딱 맞는 노래라고 할 수 있다.
그녀는 모든 위험과 비난을 무릅쓰고 나에게 고백했으니까.
특히 마리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 수도 없이 노력했다. 중간중간에 실수도 했으나 끊임없이 대시했다.
“당연히 되지. 왜 안 될 거라 생각한 거야?”
“그냥······ 부러워서? 너무 추잡한 감정일까?”
“자연스러운 거니까 자책하지 않아도 돼.”
사람이라는 존재가 원래 그렇다. 질투는 결코 추잡한 감정이 아니다.
질투는 성장의 동력으로 삼을 수 있지만, 피해를 주는 순간 더러운 감정이 된다.
세실리는 그 질투를 마음 속 깊이 간직하고 있었다. 마리를 정실로 인정했다지만 내심 그런 감정이 없지 않아 있었을 터.
“누나도 참 바보 같네. 속 시원하게 말하지.”
“······부끄러우니까 말하지 마.”
“누나가 먼저 말했는데?”
“··· ···”
툭-
할 말이 없었는지 내 가슴을 손으로 치는 세실리. 얼굴은 이미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나는 귀여운 반항에 약하게 웃었다가 천장을 올려다봤다. 잔잔한 등불로 인해 약간이나마 모양이 보였다.
“······너무 걱정하지는 마.”
“아이작?”
“보란 듯이 살아볼 거야.”
이어서 조용하지만 뚜렷한 목소리로 그녀만을 위한 노래를 불러줬다.
전생에서도 난이도가 낮지만 축가로 아주 어울리는 노래 중 하나다.
비록 번역을 하지 않아 알아듣기 힘들겠지. 하지만 멜로디 정도는 알려줄 수 있다.
[나 어제 또 울었어.] [나 어제 또 슬펐어.] [왜 이런 바보를 사랑한 거니?]세실리에게 정말 딱 어울리는 노래라 할 수 있다. 왜 이런 바보 같은 남자를 사랑하게 된 걸까.
지금은 몰라도 당시의 나는 무엇 하나 잘난 게 없었다. 제논 일대기조차 숨기고 있었으니 말 다했지.
하지만 그녀는 내가 제논 일대기 저자이기 전에 조금씩 나에게 마음을 품었다.
마족이라는 이유로 하나 때문에 마리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했을 뿐.
더 나아가 제논 일대기의 저자로 의심받고나서는 실수까지 저질렀다. 정말로 서로가 바보짓을 한 셈이다.
[바보도 사랑합니다.] [보내주신 이 사람.] [이제 다시는 울지 않을 겁니다.]마리의 결혼식에서 불렀던 축가보다 난이도가 훨씬 낮은 노래.
그렇기에 무리없이 수월히 부를 수 있었다.
번역하지 않은 거라 세실리는 알아들을 수 없겠지. 그러나 확신을 새겨줄 수 있다.
그녀를 위해 이미 오래 전부터 준비하고 있었다는 것을. 이 하나만으로 그녀의 마음을 풀어줄 수 있을 것이리라.
[우리의 사랑을 위해.] [너의 손을 잡고 놓지 않을게.] [사랑하는 내 사랑 바보야.]서정적인 분위기가 마족이라는 정체성에 정말 잘 어울렸다. 내가 이 노래를 고른 이유도 분위기 때문이다.
마지막 부분까지 끝마치자 한동안 쥐 죽은 듯한 침묵이 방 안을 가득 메웠다.
나 또한 천장만 올려다보다가 고개를 돌려 세실리를 쳐다봤다.
그녀는 어딘가 몽롱해진 눈으로 나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대충 이런 분위기야. 어때?”
“······너무 좋아. 너무······ 감동스러워······”
거의 울먹일 듯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세실리. 나는 몸을 빙글 돌려 그녀를 조용히 안아줬다.
정확히는 안으려고 했다. 그녀가 내 가슴을 밀기 전까지는 말이다.
뒤이어 그녀는 슬금슬금 내 위로 올라타더니 나를 내려다봤다.
아름다운 얼굴 밑으로 풍만한 가슴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최대한 그녀의 얼굴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어디 노래야? 마리는 네 기준으로 외국의 노래였다며.”
“내가 살던 나라의 노래야.”
“그래서 바로바로 우리 말로 번역할 수 있던 거구나.”
“그렇······ 응?”
잠깐만. 뭐라고? 번역?
나는 분명 한국어로 불렀는데 번역?
그 생각이 채 이어지기도 전이었다. 세실리는 나에게 바짝 밀착하더니 몸을 위아래로 흔들었다.
상의를 벗고 있던 상태여서 가슴의 감촉이 생생히 느껴졌다. 동시에 내 아랫도리가 자동적으로 반응했다.
“안 되겠어. 오늘은 넘기려 했는데······ 못 참아.”
“··· ···”
“반드시······ 반드시 임신할 거야. 어떻게든······”
“어······ 누나? 지금 악주기인데······”
“쉿.”
세실리는 내 입에 검지 손가락을 대었다. 뒤이어 고혹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이건 사고인 거야. 알겠지?”
“··· ···”
“마족의 욕망을 건드린 네 잘못이야.”
그리 말한 그녀는 내 입에다 댄 검지 손가락을 아래로 쓸어내렸다.
이윽고 자신의 아랫배로 갖다 대며 색기에 찬 목소리로 부탁했다.
“임신시켜 줄 거지?”
“··· ···”
뜨거운 밤은 아니었다. 단지 늪처럼 깊고 끈적한 밤이었을 뿐.
나는 간절히 부탁하는 세실리를 보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펜 좀 가져올래?”
뒷감당은······ 나중에 하면 되지 않을까?
세실리는 내 허락에 환한 미소를 짓더니 상체를 들었다.
이어서 자기 아랫배에 두 손을 갖다 대고는 하트를 그리며 부탁했다.
“기왕이면······ 하트로 그려줄래?”
“··· ···”
정말 미치겠다.
* * *
한편 그 시간, 마이샬 저택.
“응?”
“왜 그러니, 아리엘?”
아리엘이 머리 위의 새싹을 바짝 세우며 다른 쪽을 쳐다봤다. 그에 마리가 의아하다는 목소리로 물었다.
아리엘은 한동안 한 곳을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다시 고개를 돌렸다. 뒤이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대답했다.
“아냐. 엄마. 그레이스는 어디 있어?”
“그레이스는 지금 자고 있지. 그레이스는 왜?”
“동생 챙기고 싶어서.”
다소 중의적인 표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