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732
■ 731화. 만물과 자연 (1) □ ᓚᘏᗢ
히르트를 만나러 가는 게 이번이 세 번째인가. 나는 세계수로 향하는 길을 걸으며 생각했다.
첫 번째 만남은 아르웬과의 첫날밤 이후였고, 두 번째 만남은 모라가 사고를 쳤을 때인 걸로 안다.
다른 신들과 다르게 히르트는 자연을 넘어 행성 그 자체인 대지모신. 그녀를 만나기 위해서는 세계수의 도움이 필요하다.
짹짹! 짹!
저 멀리 올곧게 뻗은 세계수로 향하고 있을 때 새들이 내 주위를 빙글빙글 맴돌았다.
몇몇 새들은 내 어깨 위에 올라오거나 머리에 안착하는 등. 나를 향한 친밀감을 드러냈다.
‘그러고 보니 어느 순간부터 동물들이 나에게 안 달라붙네.’
나는 손가락에 조심스레 발을 디딘 새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아리엘의 실수로 모라의 신성을 섭취했을 때다. 죽을 뻔한 위기를 몇 번 넘긴 후에 몸이 바뀌었다.
바뀐 몸은 본능이 매우 강한 동물들을 유혹했으며 덕분에 꽤 고생했다. 진정시키느라 진땀을 뺐었지.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동물들이 나에게 친밀감을 드러낼 뿐, 먼저 다가오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가끔씩 감정이 격해졌을 때 동물들이 찾아오는 경우가 있었으나 그것도 가끔이다.
‘그레이스한테도 왔었지?’
그레이스가 탄생했을 때 보여줬던 비범한 탄생.
찬란한 빛무리에 온 몸이 휘감겼으며 말도 안 되는 성장 속도까지 보여줬다.
이것만으로도 설화에 가까운 탄생이었으나 바깥에서도 반응이 나왔다.
새들이 저택 안으로 들어오기 위해 창문을 부리로 쪼고 난리도 아니었으니.
푸드득!
나는 손 위에 안착했던 새를 멀리 날려보냈다. 머리 위와 어깨에 안착했던 새들도 따라 날아갔다.
저택에 남아있을 가족을 떠올리다 보니 어느새 세계수에 거의 다다랐다.
언제 봐도 경건함이 드는 세계수. 3000년 전부터 지금까지 성장하고 있다는 신의 상징.
시간이 흘러 과학이 발전하더라도 세계수만큼은 굳건히 서 있을 테지. 어쩌면 과학적으로 분석하지 않을까.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면서 세계수의 두터운 줄기에 다다랐을 때쯤, 나는 볼 수 있었다.
“어서 오렴. 기다리고 있었단다.”
줄기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여성, 히르트를.
원근감을 말끔히 무시하는 커다란 키. 자애로운 미소가 어울리는 미모.
숲을 연상케 만드는 진한 녹색 머리카락을 길게 기르고, 은밀한 부분은 여전히 나뭇잎으로만 가렸다.
그럼에도 음심은 전혀 들지 않았으며 도리어 마음이 경건해지는 기분이다.
만물의 아버지에 이어 창조주라 할 수 있는 대지모신.
“안녕하세요. 히르트 님. 오랜만에 뵙네요.”
“겨우 1년밖에 안 지났단다. 게다가 앞으로 자주 만날 테고.”
내가 고개를 꾸벅 숙이며 정중히 인사하자 히르트가 웃음기를 머금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목소리 하나하나가 가슴과 머리를 차분히 진정시키는 기분이다.
스윽-
히르트가 나와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천천히 무릎을 굽혔다.
무려 3m가 넘는 키를 가졌기 때문인지 쪼그려 앉아야만 나와 눈높이를 맞출 수 있었다.
“그동안 잘 지내고 있었니?”
히르트가 다정한 목소리로 나에게 질문했다. 진한 녹색 눈동자에는 자애로움이 가득하다.
현자에게 빙의했던 만물의 아버지와 달라도 너무 다른 존재. 차라리 히르트가 처음부터 창조주였다면 어땠을까.
나는 그런 생각을 마음 속 깊이 억누르며 질문에 대한 대답을 꺼냈다.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루미너스 님과 모라 님께서 잘 보살펴주셨거든요. 히르트 님께서는요?”
“잘 지내고 있었지. 최근들어 공기가 아주 약간 탁해진 것 같지만.”
히르트가 살풋 웃으며 뼈가 실린 말을 꺼냈다. 나는 그 말에 애써 시선을 피했다.
매연이 심해진 이유는 바로 마력 기관과 공장의 설립 때문이다.
현재 사용 중인 마력 기관은 결국에 증기 기관을 모티브로 삼은 것.
증기력을 마력으로 치환할 수 있다지만 매캐한 연기만큼은 어떻게 할 수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내가 몇 번 경고했기에 정화 장치를 발명하고 있다는 걸까.
그래도 히르트 입장에서는 깨끗했던 공기가 조금 더럽혀졌으니 약간 불쾌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죄송합니다. 마력으로 치환한다고 하길래 매연이 거의 없는 줄 알았거든요.”
“괜찮단다. 오히려 네 조언이 없었더라면 다들 인지조차 하지 못했겠지. 이정도는 충분히 정화가 가능하고.”
“다른 건 몰라도 플라스틱만큼은 해결책을 찾도록 하겠습니다.”
“고맙구나.”
산업 혁명이 시작되었으니 앞으로 자연은 급격히 망가질 것이다. 이건 필연에 가깝다.
그나마 다행인 건 마나가 에너지 자원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것.
전에 언급했듯이 이 세상은 스타트부터 다르다. 지구로 따지자면 불과 전기를 동시에 발견한 셈이다.
그러므로 환경 오염은 지구보다 덜하면 덜했지 심각해질 일은 없다. 세상이 멸망한다면 몰라도.
“궁금한 게 있는데, 지구의 자연은 히르트 님 입장에서 어떤가요? 제가 왔을 때도 거의 망가지기 직전이었는데.”
“별 문제 없단다. 천천히 적응하고 있으니.”
“정말인가요?”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지구의 자연은 심각할 정도로 망가져 있다.
기관에서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게 아니라 ‘즉시’ 멈춰야 겨우겨우 회복된다고 발표할 정도였으니.
그런데도 히르트는 괜찮다고 말했다. 나로서는 놀랄 수밖에 없는 자연의 힘이다.
“그래. 인류가 많이 힘들겠지만 자연은 적응할 거란다. 새로운 종이 등장하고, 몇몇 존재는 환경에 맞게 진화하겠지.”
“······아포칼립스는 아니죠?”
“자연이 그렇잖니? 변하는 환경에 맞게 진화하지 않는다면 도태된다. 그것이 자연의 섭리란다.”
웃는 얼굴로 잔인한 섭리를 언급하니 뭐랄까······ 진정으로 자연의 여신다운 포스가 느껴졌다.
확실히 인류가 좆되는 거지, 자연이 좆되는 건 아니다. 자연은 어떻게든 환경에 맞춰 변화할 테니까.
자연에게 있어서 인류는 개체가 많은 동물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멸종해도 별 상관없는 동물.
“인류는 영원토록 자연을 이길 수 없는 거죠?”
“감지할 수 있고, 그에 따라 대비할 수 있겠지만 방지할 수 없는 것. 그게 자연이란다.”
“무섭네요.”
솔직한 말이다. 인류가 세워놓은 찬란한 문명은 자연 앞에서 무력하다.
강대국이었던 나라조차 자연 앞에서는 힘없이 쓰러지는 법. 지진 한 방에 멸망한 나라도 있다.
하지만 인류는 자연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다. 그걸 알고 있지만 자연을 파괴하는 실정이다.
“히르트 님.”
“말하렴.”
“정말 만물의 아버지에게 승리를 점할 수 있을까요?”
“··· ···”
내 질문에 히르트의 올라갔던 입꼬리가 살짝 내려왔다. 동시에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여태까지 자신만만했지만 내심 불안해 하고 있던 부분이다.
자연조차 이기지 못하는데 창조주 그 자체인 만물의 아버지를 이길 수 있을까.
다른 신들이 도움을 준다지만 그들조차 만물을 창조했던 아버지 앞에서는 빛과 어둠에 지나지 않을 터.
물리력으로 승부를 본다면 루미너스가 조져버릴 수 있겠지. 그러나 이번에 중요한 건 물리력이 아니다.
“루미너스 님을 주신으로 격상시키고, 만물의 아버지를 끌어내리는 계획을 갖고 있죠. 하지만 그것이 정말로 가능한지 자신이 없네요.”
“··· ···”
“그래서 히르트 님을 통해 확신을 가지려 합니다. 정말 가능할까요?”
“만약 내가 부정적인 대답을 꺼내면 어떻게 할 거니?”
히르트가 되물었다. 사실 그녀의 가정이야말로 최악 중의 최악이다.
만약 그리 된다면 인류는 이 행성을 떠나기 전까지 영원토록 만물의 아버지에게 위협을 받아야 된다.
현 시대에서 악마 숭배자를 토벌해도 그를 추종하는 자들은 끊임없이 등장할 것이며 영웅의 시대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누가 말했듯이 영웅이 없는 사회가 불행한 게 아니라 영웅이 필요한 사회가 불행하다고 했으니까.
“시간을 최대한 벌 생각입니다. 만물의 아버지가 다시 힘을 얻어도 즉각 조치할 수 있도록. 히르트 님께서 말씀하셨다시피 방지할 수 없어도 대비는 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구나. 우선 내 대답은······ 가능하단다.”
천만다행히 긍정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헌데 히르트의 표정이 약간 이상했다.
언뜻 슬퍼보이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아무래도 본인의 반려였던 만물의 아버지였으니 그런 모양이다.
그녀는 잠깐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더니 이내 다시 미소를 되찾으며 나에게 설명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만물의 아버지는 신성이 격하된 상황이란다. 기회는 지금밖에 없겠지.”
“루미너스 님이 주신으로 격상된다면 만물의 아버지는 영원토록 부활하지 못하는 건가요?”
“그래. 본인의 본질마저 잃어버릴 테니 정신체마저 완전히 소멸할 터. 루미너스가 그의 역할을 대신할 거란다.”
“휴우.”
나는 그녀의 설명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루미너스는 물론이요, 모라조차 그게 가능할까? 라며 의문을 자아내던 계획이다.
그들은 희망 회로를 돌렸기에 긍정적인 반응을 냈을 뿐, 그들 스스로도 애매하다는 뉘앙스를 풍겼으니.
그러나 히르트는 만물의 아버지와 가장 가까운 존재이자 동급인 신이다. 그녀의 말만큼은 다르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자신감을 얻었어요.”
“자신감을 얻었다니 다행이로구나.”
“네. 그런데······ 다른 질문을 해도 될까요?”
“무엇이 궁금하니?”
히르트가 맑게 웃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름다움에 성숙함이 가미되어 포근함이 느껴지는 미모.
나는 그녀의 아름다운 미모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지금 가장 가슴이 아플 존재는 그녀이지 않을까.
반려는 사랑하는 세상을 멸망시키려 하고, 자식들은 그런 아버지를 끌어내리려 한다.
아무리 히르트가 대지모신이라지만 이미 한 번 겪었던 비극을 다시 한 번 겪을 수도 있다는 뜻.
그렇기에 만물의 아버지가 더 궁금해졌다. 어째서 그는 이토록 세상을 멸망시키려 하는 것일까.
게리오스 왕국에서 발견했던 기록물대로 인류에게 자유의지를 주기 위해서?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분명 또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는 그것에 대해 물으러 왔다.
“만물의 아버지의 이름은······”
“그건 말해줄 수 없단다. 너뿐만 아니라 이 세상을 위해서라도.”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거절당했다.
약간이나마 엄격해진 얼굴을 보아 절대 발설하면 안 되는 모양이다.
그 이름이라는 것이 도대체 얼마나 중요하길래 다들 이러는 걸까. 그래서 더욱 궁금해진다.
“조금이라도 힌트는 주실 수 없나요?”
“그것도 안 된단다. 대신 모건 왕이 말했듯, 너는 이미 그 이름을 알고 있지.”
“음······ 알겠습니다.”
감이 잡힐 듯 말 듯한데 여전히 잘 모르겠다.
그래도 별로 아쉽지는 않다. 어차피 대충 찔러나보자는 식으로 물은 거였으니.
“그렇다면 다음 질문. 만물의 아버지께서는 분명 인류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세상을 멸망시키려 했죠.”
“······그랬었지.”
“중간에 무슨 일이라도 있던 건가요?”
“그건 아니란다. 단지······”
히르트는 대답을 망설였다. 눈치를 보는 걸 보아 무언가 걸리는 게 있는 모양이다.
나는 그녀가 대답할 때까지 잠자코 기다려줬다. 겨우 이정도 가지고 보채면 히르트가 혼낼 수도 있다.
“······얘야.”
“네. 히르트 님.”
“너도 알고 있을 거란다. 너의 세상이 여러번 멸망했다는 것을.”
“틈만 나면 멸망했죠.”
무겁게 닫혔던 히르트의 입이 열리며 내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빈말이 아니라 여러 신화를 보면 다 멸망한다. 대부분 대홍수를 통해 멸망시켰고.
“신들이 어째서 인류를 멸망시켰는지 알고 있니?”
“네. 인류의 죄악이 극에 다다랐기에 심판 형식으로 내렸습니다.”
“우리도 그랬단다. 아니, 정확히는 너무 성급했지.”
히르트가 담담하지만 슬픔이 담긴 목소리로 알려줬다.
“너희 세상이 그랬듯이, 우리 세상의 아이들도 큰 죄악을 저지를 거라고.”
만물의 아버지가 저지른 실수이자 가장 납득이 가는 이유.
“그리 판단하여 세상을 멸하려 들었단다.”
인류의 죄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