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736
■ 735화. 태풍의 눈 (2) □ ᓚᘏᗢ
솔직히 말해 테르스 왕국를 향한 내 인식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제논 일대기를 작성할 때만 해도 온갖 기성 소설가들이 나를 폄하했으니까. 대부분 테르스 왕국 쪽이었다.
시간이 흘러 아델리아와 만남을 가지고, 테르스 왕가와 싸웠을 때 비호감이 절정으로 치달았다.
하지만 오늘 팬사인회를 하면서 다시 한 번 느끼게 됐다. 내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저질렀구나 싶어서.
테르스 왕국은 비호감만 모여있는 국가가 아니다.
“후우······ 후우······ 제논 님······?”
“······네.”
“실례지만 손을······ 손을 그려도 되겠습니까?”
세상 제일의 변태들이 모여있는 곳이지.
나는 손을 그려도 될 지 부탁하는 남자를 보며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겉보기에는 정말 평범한 인상의 남자다. 하지만 지금은 내 손을 그리기 위해 부탁하는 변태다.
“······제 손이면 충분한가요?”
“충분하고 말고요!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린 위대한 손! 이 손만큼은 반드시 그려야 합니다!”
“······빠르게 스케치만 하고 가세요.”
“감사합니다!”
과연 10분만에 스케치할 수 있을까. 그런 마음으로 손을 슬쩍 내밀었다.
뒤의 아델리아는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하고 있었다. 갑자기 나에게 달려들 수도 있었으니.
하지만 남자는 그런 생각이 추호도 없었는지 정말 내 손만 빤히 관찰했다.
“흠. 다른 분들과 달리 펜혹이 덜하시군요.”
“아. 그건 집필할 때 펜이 아니라 다른 기계를 쓰기 때문입니다.”
“기계? 아~ 마족에게 선물을 받았다던? 이해했습니다.’
슥슥슥- 슥슥-
변태 같은 표정은 어디 갔는지 진지한 표정으로 스케치를 시작하는 화가.
나는 그의 스케치가 다 끝날 때까지 잠자코 기다렸다. 과연 이 짧은 시간 내에 다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중간에 말을 걸기도 애매하다. 입술을 살짝 내민 걸 보아 집중에 빠져든 것 같았으니.
“다 했습니다.”
“벌써요?”
“예. 여기에 살을 덧붙이면 됩니다.”
대충 8분쯤 됐을 때 스케치를 모두 끝냈다는 말이 날아왔다.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묻자 화가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스케치를 보여줬다.
“오······”
펜으로만 그렸을 텐데 퀄리티가 굉장하다. 내 손을 옆에 두고 비교하니 더 그렇다.
나는 한동안 스케치와 내 손을 서로 비교하다가 화가에게 권유했다.
“여기에 제 사인을 새기면 될까요?”
“안 그래도 부탁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손 그림만 그리는 건가요?”
스케치 가장자리에 내 사인을 새겨주면서 화가에게 질문했다.
전신도 아니고 어째서 손만 그리는지 궁금하다.
“많고 많은 예술들 대부분은 손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죠. 저는 거장들의 손을 그립니다.”
“그냥 아무 손이나 그리고 그 사람의 손이다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 않아요?”
“그걸 대비하기 위해 그 사람에게 사인을 부탁하는 편이죠.”
훗날 이 사람의 예술품이 어떤 가치를 가지게 될까. 지구에서도 손만 그리는 예술가는 없던 걸로 안다.
어쩌면 저런 독특한 개성을 지녔기에 유명해진 걸 수도 있다.
‘자칫하면 페티시로 오해받겠네.’
중근대는 변태들로 넘쳐나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겠지. 후대에는 어떻게 평가될 지 모르겠지만.
나는 화가를 보낸 후에 다음 사람을 들여보냈다. 팬사인회를 하면서 알게 됐는데, 열에 하나 정도는 예술가더라.
소위 ‘거장’이라 칭해지는 예술가들도 간간이 섞여있었으며 그때마다 진이 쪽 빠졌다.
“제논 님. 외람된 말씀이지만 제논 일대기 및 피와 강철을 교육용으로 참고 해도 되겠습니까?”
“그거 헤일로 아카데미에서는 이미 하고 있지 않아요?”
“그렇긴 합니다만 제가 원하는 건 연구를 위해서입니다. 특히 피와 강철은 300년이 흘러도 연구 대상으로 자리잡히겠죠.”
“음······ 마음대로 하세요.”
어차피 내가 따로 허락하지 않아도 교육 및 연구용으로 사용할 것이다.
더군다나 제논 일대기는 이미 교육용으로 참조하고 있다. 헤일로 아카데미에서 교수에게 들은 바다.
문제는 내가 아무 생각없이 적은 것들을 해석한다는 것. 그건 조금 어이가 없더라.
“감사합니다. 이를 통해 문화를 한층 더 발전시킬 수 있을 겁니다.”
“그정도까지야. 그나저나 선생님께서도 예술가이신가요?”
“아뇨. 역사학자입니다.”
테르스 왕국은 문화뿐만 아니라 학자들의 실력도 드높기로 유명하다.
미네르바 제국이 나날이 발전하는 것도 막강한 경제력을 이용해 테르스 왕국의 인재를 빼오는 것이다.
테르스 왕국은 미네르바 제국을 극도로 싫어하는 이유도 이때문이다. 대부분 근본 없는 나라라 욕하는 편이지.
“제논 님의 말씀대로 원래 미네르바 제국과 테르스 왕국의 학자들은 서로 껄끄러워하는 사이였습니다. 알븐하임의 성지에서도 파벌이 갈리는 편이었죠.”
“최근에는 많이 나아졌다는 걸로 들리네요?”
“네. 공공의 적······ 큼. 큼.”
“··· ···”
방금 공공의 적이라고 했지? 내 귀로 똑똑히 들었다.
내가 황당한 표정을 짓는 동안 학자는 헛기침을 하더니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제논 님께서 분기점 그 자체를 만드신 덕분에 역사학자들이 힘을 합칠 수밖에 없습니다. 역사뿐만 아니라 신학을 연구하는 학자들도 마찬가지죠.”
“음······ 제가 다른 세상에서 왔다는 건 알고 계시죠?”
“물론입니다.”
“이것 때문이라도 매우 어려우실 텐데요?”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부분이 있다. 역사는 사실만을 기록해야 된다.
하지만 역사는 결국 사람이 기록하는 것이며, 결국에는 주관적인 견해가 상당히 섞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수많은 역사를 비교해야하며 그것을 통해 해석하는 것이 역사학의 존재 이유다.
안 그러면 중국의 문화대혁명이나 나치 독일의 홀로코스트의 사례가 또다시 터질 테니까.
“그렇기에 더욱 힘을 내야하는 겁니다. 수많은 해석이 갈려도 상관없습니다. 첫 단추를 잘 끼워야 된다는 말처럼, 저희 세대에서 최대한 기록 및 해석할 계획입니다.”
“많이 힘드실 텐데······”
“그래야만 후대에 욕을 덜 먹을 테니까요.”
“··· ···”
뭔가 지나칠 정도로 현실적이라 할 말이 없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의 원흉은 나다.
심지어 게리오스 왕국마저 제대로 파헤쳐진 게 아니다. 세상 곳곳에 연구할 것들이 넘쳐나는 상황이다.
‘신화 시대의 대륙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어떻게 되려나?’
지구에서조차 ‘전설’에서나 등장하는 고대 유적들이 속속 발견되는 실정이다.
트로이, 마추픽추, 크레타 섬의 미궁, 앙코르와트 등등. 전부 전설에서나 등장하는 유적들이다.
괜히 아틀란티스를 믿는 게 아니다. 심지어 이 세상은 한 번 바다에 잠겼던만큼 해저 유적이 실존할 확률이 높다.
“그래도 어쩌면 다행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엇이 말이죠?”
“작금을 기준으로 역사에 이상한 일이 생겼을 때 십중팔구 제논 님이 관여했을 테니까요.”
그거 영국 아닌가. 그런데 다 맞는 말이라 반박할 수가 없다.
나는 쓰게 웃으며 역사학자가 나에게 내밀어준 책에다 사인해줬다.
역사학자는 고맙다는 인삿말을 남기고 밖으로 나갔다. 저 사람이 마지막이다.
“······이제 다 끝났네.”
“그러게.”
마지막 사람이 떠나면서 중얼거리자 뒤의 아델리아가 무덤덤하게 대답해줬다.
테르스 왕국에서의 팬사인회는 모두 끝났다. 전세계 순방이 드디어 끝을 맺은 것이다.
하지만 완전히 끝난 건 아니다. 하이라이트이자 제일 중요한 테르스 왕가의 방문이 남아있었으니.
“누나.”
“응?”
“누나는 아무렇지도 않지?”
“아무렇지도 않지. 이제 남남인데.”
아델리아는 내 물음에 특유의 당당한 태도로 대답했다.
그녀의 말마따나 새로운 가족을 맞이한 후, 테르스 왕가는 완전히 남남 취급한다.
그러니 테르스 왕가 쪽에서 혈통을 거론해도 ‘좆까’ 한 마디 정도는 하지 않을까.
“나는 너에게 피해가 오는 그 즉시 나설 거야. 그러니 걱정하지 마.”
“······그래.”
나는 아델리아가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하자 피식거렸다.
그녀는 내가 위험하다면 몸을 날리면서까지 막아주겠지. 이건 확실하다.
또한 아델리아뿐만 있는 게 아니다. 케이트와 세실리 또한 왕궁으로 들어설 테니 신변에 문제는 없다.
‘너무 걱정하는 건가?’
그럴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델리아와 함께 방 내부를 천천히 정리하기 시작했다.
팬사인회 동안 받은 선물들은 세실리가 알아서 저택으로 배송할 예정이다.
끼익-
“아. 정리하고 계셨군요. 저도 도와드리겠습니다.”
“고마워요.”
적절한 타이밍에 케이트도 들어와 청소를 도와줬다. 뒤이어 세실리도 따라들어왔다.
선물을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30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됐다. 예술 관련 물건이 많았기에 더 그렇다.
“바깥의 조각상이나 그런 건? 다 정리한 거야?”
“응. 한꺼번에 보내려고 다 정리했지.”
대부분의 선물을 정리하고, 세실리가 그 선물들을 영지로 보내는 것으로 정리도 말끔하게 끝났다.
남은 건 테르스 왕가에서 마련한 숙소로 향하는 것. 거리는 그다지 멀지 않아 걸어가면 충분하다.
걸어가는 동안에 사람들이 몰려들 게 뻔하기에 기사단이 직접 길을 터줄 것이다.
“그럼 이제······”
타다닷!
건물 밖으로 막 나오려던 찰나였다. 근처에서 누군가 이쪽으로 빠르게 달려오는 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그 소리에 의문을 가지며 고개를 돌렸을 때쯤, 내 곁을 쏜살처럼 지나가는 사람이 있었다.
콰당!
“크억!”
아델리아였다. 그녀는 나를 향해 달려오던 사람을 순식간에 제압했다.
아까 전만 해도 시원시원하게 웃던 그녀였으나 지금은 진지함만이 가득하다.
다급히 달려오는 걸 보고 낌새를 눈치챈 모양이다.
“기사단! 빨리 오십시오!”
“자, 잠깐······! 하, 할 말이······!”
아델리아가 외치는 동안 제압당한 사람이 무어라 말하려 애썼다.
그러나 무릎으로 등 부분을 강하게 짓누르고 있었기에 입을 열기도 쉽지 않은 상황.
나는 기사단이 이쪽으로 달려오는 동안 제압당한 사람의 면모를 살펴봤다.
‘나이가 조금 있네?’
여태까지 이런 식으로 나에게 다가오던 사람이 아예 없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대부분 나이가 젊었다. 아델리아가 제압한 사람처럼 나이가 많지는 않았다.
그런 의문을 지니고 있을 때, 기사들이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인을 끌어올렸다.
“쿨럭! 쿨럭! 자, 잠깐만······! 나, 나는 노······ 읍! 읍!”
남자가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기사가 입을 막아버렸다. 그에 남자는 어떻게든 떼어내기 위해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나 반항이 심하면 심할수록 제압 또한 강해지는 법.
퍽!
기사 중 한 명이 뒷목을 가격하자 남자의 눈이 뒤집히며 추욱 늘어졌다.
그 후로 기사들에게 질질 끌려가는 중년인. 나는 그가 사라질 때까지 가만히 지켜봤다.
안타깝기는 해도 이런 식의 만남은 해서는 안 될 짓이다. 나중에 저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해야겠지.
“최근들어 잠잠하다 했네.”
“그러게.”
나는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애인들과 함께 걸음을 옮겼다.
그로부터 하루가 지나고.
“어서오시게. 그동안 잘 지냈나?”
“네. 뭐······”
“하하. 보아하니 잘 지낸 모양이군. 아델리아 너도.”
“······누구 덕분에요.”
재수없는 쌍판데기와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