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74
■ 73화. 후폭풍 (4) □ ᓚᘏᗢ
“재미있기만 한데.”
알븐하임의 여왕, 아르웬은 두 손으로 소중히 붙잡은 제논 일대기 10권을 바라봤다. 철부지 소녀처럼 입술이 댓발 튀어나와 속에 담겨있던 불만을 여실히 표현하는 중이다.
만약 원로원이 이 모습을 보았다면 여왕으로서 품위를 지켜야한다니, 시덥잖은 견제를 했겠지만 지금은 아무도 없다. 도청의 위험도 알현실이기에 전혀 없다.
“엘프는 고귀해야한다며 쫑알쫑알. 책에서 엘프가 교만을 담당하는 건 싫다며 궁시렁궁시렁. 엘프 인간의 로맨스는 말도 안 된다며 칭얼칭얼. 애새끼도 아니고 뭐 하는 짓인지.”
아르웬은 주위에 보는 사람도 없겠다, 방금 전까지 자신을 압박했던 원로원을 신랄하게 까내렸다.
근무 중 아무도 없는 이 시간이야말로 아르웬에게는 가뭄의 단비와 마찬가지. 속에 꾹꾹 묵혀왔던 말을 꺼내기에 적합했다.
대외적으로는 자애롭고 다정한 여왕이라 칭송받는 아르웬이지만, 이렇듯 지극히 소녀다운 마음을 지니고 있다.
원로원이 잔소리처럼 여왕으로서 품위를 지켜야하기에 평상시에는 그런 면모를 드러내지 않을 뿐, 그녀는 고작 150살밖에 되지 않았다.
인간이었다면 그것도 많은 나이라며 태클을 걸겠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인간의 기준이다. 엘프의 기준으로 따져도 사회의 한 일원이 되기에 충분하나 그럼에도 어린 편에 속한다.
그리고 아르웬은 50대라는 어린 나이에 즉위하여 지금까지 알븐하임을 다스렸다. 엘프에게 50대는 모든 교육이 끝나고 사회로 진출하는 발판이 마련되나 여왕이라는 자리는 호락호락하지 않다.
허나 100년이 넘는 시간동안 원로원의 압박에 굴하지 않고 알븐하임을 다스린 걸 보면 그녀의 정치적 수완이 얼마나 뛰어난지 알 수 있다.
‘원로원 같은 사람들 때문에 제논이 휴재에 들어간 거겠지. 인간들은 원로원보다 심한 곳이 있다던데 엄청 힘들겠다.’
아르웬은 두 손으로 잡은 제논 일대기를 동정어린 눈빛으로 쳐다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녀도 제논 일대기의 많고 많은 팬들 중 한 명이다.
제논 일대기가 세계에 끼치는 영향력이 얼마나 막강한지 잘 알고 있으며, 그것이 정치적으로 이용당하기 쉽다는 것 또한 인지하고 있다.
어쩌면 알븐하임의 여왕인 자신보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을까. 신의 선택을 받았다는 엘프조차 ‘문화’라는 거대한 힘 앞에서는 무력해질 수밖에 없으니.
그래서 더욱 안타까웠다. 신분을 숨겼음에도 불구하고 심적으로 고생 중이라 했으니 작가가 얼마나 큰 부담감을 안고 있는지 알 것 같다.
‘그래도 스승과 여왕이 어떻게 되는지만 적고 가야할 거 아니냐. 이 나쁜 작가야.’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아르웬은 작품 속 스승과 엘프 여왕의 관계가 어떻게 될지 궁금해 미칠 것 같았다.
비록 작품 속 엘프 여왕은 자신과 전혀 동떨어진 허구의 인물이지만, 왠지 모르게 몰입이 되었다. 특히 작품 속 엘프 여왕은 자신보다 더 하면 더 했지, 덜하진 않은 수준으로 고생하는 중이다.
원로원에게 심한 견제를 받는 건 물론이고, 악마가 세계 곳곳에 출현해 알븐하임에도 큰 위기가 닥쳐올 징조가 간간이 묘사되는 중이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사생활까지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스승만이 엘프 여왕에게 심적으로 위로가 되어주니 더욱 애틋한 관계가 될 수밖에 없다.
‘제논 작가도 참 대단해. 어떻게 엘프의 신화를 세세하게 꿰뚫고 있는거지? 엘프와 관련된 신화와 역사는 인간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을텐데. 알븐하임에서 교육받았던 학자인가?’
제논 일대기는 칠죄종이 등장하기 전까지 엘프에게 큰 관심을 받지 못 했다. 종족전쟁 당시 큰 치욕을 안겨줬던 인간이 주인공인데다 칠죄종의 등장 전까지는 인간 사회에서만 활동했기 때문이다.
학자들도 연구용으로 심도있게 읽었을 뿐이지, 엘프들 사이에서는 읽는 사람만 읽는 책에 불과했다. 다만 재미없다는 말은 거의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독특하게도 아르웬은 1권부터 꾸준히 읽은 애독자다. 옛날부터 책을 좋아하던지라 세계를 강타한 제논 일대기를 자연스레 접했으며 뛰어난 문장력과 흡입력에 매료되어 그대로 빠져들었다.
하지만 칠죄종이 등장하고, 주인공 일행이 알븐하임에 들어오고나서는 상황이 반전되었다. 악마측 간부 중 한 명이 엘프, 그것도 ‘교만’을 담당하고 있다는 건 여러가지 구설수를 만들기에 충분했다.
원로원에서도 제논 일대기를 불쏘시개 취급하다가 막상 알븐하임이 등장하니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 정말로 작가가 알븐하임의 실태와 문화에 대해 안다면 본인들에게도 큰 피해가 갈 수도 있었으니.
실제로 작품 속 원로원, 그러니까 ‘의회’라는 정치 기구에서 별 되도 않는 이유로 엘프 여왕을 압박하고 있다. 고증이라면 고증이었는지라 아르웬으로서는 내심 통쾌하면서 씁쓸했다.
‘그나저나 ‘다크 엘프’는 다음에 나오는 건가?’
엘프는 타종족보다 몇 배에 달하는 수명을 가진만큼, 기록된 역사가 매우 방대하다. 인간이 문명을 세운 시기는 불확실했지만 엘프는 정확히 3500년 전에 문명을 세웠다.
그 오랜 세월동안 수많은 사건 사고가 존재했다. 태생적인 능력을 이용해 세상을 지배하려던 시기도 있고 동족끼리 내전을 벌인 적도 있었다.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약 3200년 전에 심각한 내전이 일어났다. 내전이 발생한 이유는 간단했다.
종교.
엘프는 루미너스, 모라, 하르트 이 3명의 신들을 함께 모시고 있으나 그건 현재에 해당하는 이야기고 과거에는 서로 견제하고 싸우기 바빴다.
당연하게도 신들은 신탁까지 내리며 한사코 말렸으나 엘프는 듣지 않았다. 신의 목소리를 더 명확하게 듣기 위해 타종족보다 긴 귀를 가진 엘프였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필요할 때 듣지 않은 것이다.
그중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교단이 바로 모라다. 모라는 갈등보다 타협을 원했으나 안타깝게도 그때는 말보다 힘이 더 앞서나가는 시기였다.
더군다나 빛을 섬기는 루미너스 입장에서는 모라가 눈엣가시로 보였을 것이다. 그래서 하르트와 힘을 합쳐서 그들을 추방시켰다. 추방시키는 과정에 무력으로 진압하는 건 당연했다.
여기서 추방된 자들은 대부분 갈색 피부를 가진 ‘다크 엘프’이며 알븐하임에서 생활하는 다크 엘프가 거의 전무한 이유이기도하다. 대부분의 다크 엘프가 모라를 섬기고 있었는데 싹 다 쫒겨났으니 남아있을리가 없다.
이로인해 다크 엘프는 스스로 엘프라는 것에 혐오감이 생겨 상징인 귀를 반으로 잘라냈다. 그 풍습이 현재까지 이어져서 다크 엘프를 보면 하나 같이 귀가 반으로 잘려있는 걸 확인할 수 있다.
‘그래도 인간의 눈에는 다 똑같이 보이겠지. 다만 역사를 잘 알고 있으니 언젠가 나오려나? 나오면 어떻게 나올까? 진짜 사람 궁금하게 만드네.’
그로부터 200년이 흘러 악마 전쟁 당시, 엘프는 위기에 빠지자 본인들이 추방시켰던 다크 엘프에게 도움을 청했다. 하지만 그동안 쌓여있던 앙금이 쉽게 해소될리가 없다.
다행히 악마를 퇴치하기 위해 동족을 도와줬으나 그들은 알븐하임에 발을 디디지는 않았다. 2000년간 쌓였던 서로 간의 불신 때문이었다.
특히 원로원이 다크 엘프를 싫어하는 편인데 종족우월주의에 빠져있는 그들로서는 종족의 이름을 버린 다크 엘프가 실로 못 마땅할 것이다. 다크 엘프도 고집불통인 원로원을 싫어하고.
‘하여간 꼰대가 문제라니까. 그들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도 모르고.’
아르웬은 어딜 가도 안 끼는 곳이 없는 원로원을 재차 까내렸다. 그녀는 즉위하고나서부터 다크 엘프를 다시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그들도 결국 한 뿌리에서 나온 동족이며 그들이 있어야만 ‘엘프’라는 종족이 하나로 완성된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게다가 전통과 법률을 우선시 여기는 원로원만 다크 엘프를 싫어할 뿐이지 깨어있는 자들은 그들에게 미안함을 갖고 있다.
본인들의 조상이 저지른 만행 때문에 여태까지 고향에 발을 디디지 못 하고 있었으니. 그건 아르웬도 마찬가지였다.
“아아~ 이렇게 고민하면 뭐 하냐. 다음 권이 2년 뒤에 나오는데!”
아르웬은 책을 품에 꼭 안고서 아이처럼 칭얼거렸다. 2년이라는 기간은 엘프에게 짧디 짧은 시간이지만 왠지 엄청 길게 느껴졌다.
아마 제논 일대기를 기다리는 2년은 세상에서 가장 긴 2년이지 않을까. 그녀는 제발 2년이라는 시간이 빨리 지나기를 빌었다.
샤아아아-
“응?”
왕자에 드러눕듯이 기대고 있을 때, 아르웬은 문득 마나의 흐름이 변했다는 걸 감지했다. 선천적으로 마나에 민감한 그녀로서는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다.
누군가 마법을 사용했다. 그러나 알현실은 왕을 제외한 나머지는 마법 사용 금지다.
이에 아르웬은 자세를 바로잡으며 누가 침입했는지 서둘러 확인했다. 원로원이 미쳤다고 알현실에 마법을 사용하지는 않을테지만 만약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뒤이어 그녀는 탐지 마법을 발동시키자마자 안심할 수 있었다. 그녀에게는 아주 익숙한 기척이다.
“…이제 장난은 그만 치렴.”
아르웬이 힘없이 입을 열자 아무도 없는 왕좌 앞에서 누군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무슨 마법을 사용했는지 몰라도 주변 환경과 완벽하게 동화되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윽고 마법을 푼 상대의 모습이 온전히 드러났는데 로브를 뒤집어 써서 얼굴을 제대로 확인하기가 어려웠다. 허나 아르웬은 이 신원미상의 침입자가 누구인지 잘 알고 있다.
“…레인.”
“안녕하세요. 여왕님!”
아르웬이 이름을 부르자 레인이라고 불린 침입자가 밝게 인사했다. 생기발랄한 목소리와 달리 꽤 낮은톤의 목소리가 매력적이었다.
스윽-
신원미상의 여인은 인사를 하고나서 로브를 뒤로 젖혔다. 은은한 붉은기가 도는 밀색 머리카락과 대비되는 구릿빛 피부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제일 눈여겨 볼 점은 그녀의 귀다. 여느 엘프처럼 귀가 긴 것 같으나 중간이 잘려있었다. 이를보아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아르웬의 눈 앞에 나타난 이 여자는 ‘다크 엘프’라는 것을.
“오늘도 노땅들이 귀찮게 굴었나 보네요? 왕좌에 드러누운 걸 보면.”
레인은 방긋방굿 웃으면서 아르웬에게 물었다. 아르웬은 원로원을 대놓고 까는 그녀의 질문을 듣고 헛기침을 했다.
원로원을 욕하는 건 상관없지만 여왕의 품위를 지키지 않았다는 부분이 아르웬에게 더욱 신경쓰였다. 아무리 사적으로 친하다지만 지켜야할 건 지키고 싶다.
“흠. 흠. 그냥 좀 문제가 있었단다. 그런데 오늘은 무슨 일로 찾아왔니?”
“제가 여왕님에게 주고 싶은 선물이 있어서 왔어요!”
“선물?”
“네!”
평소 레인은 아르웬에게 줄곧 선물을 잘 하는 편이다. 아르웬은 다크 엘프를 다시 받아들이기 위한 정책을 펼치고 있었으며 레인은 다크 엘프였으니.
비단 레인 뿐만 아니라 다크 엘프 전체가 아르웬에게 우호적인 편이다. 그래서 다크 엘프 측에서도 레인을 보내어 친밀감을 형성시키는 거고.
정치적인 목적으로 레인을 보낸 것이나 아르웬은 레인을 마음에 들어하고 있다. 천진난만한 소녀 같은 레인을 싫어할 이유도 없거니와 제논 일대기의 신권이 나올 때마다 항상 가져와주기 때문이다.
심부름꾼 같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레인이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거라 아무런 문제도 없다. 오히려 아르웬이 그녀를 더 좋아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네가 주는 선물이라니, 그거 궁금하구나. 무슨 선물이니?”
“아마 여왕님께서 엄청 좋아하실 거에요. 제논 일대기랑 큰 연관이 있는 거거든요.”
“제논 일대기랑? 그거 정말이니?”
“네!”
레인이 제논 일대기와 관계있는 선물이라 말하자 아르웬의 은회색 눈동자에 의문으로 채워졌다. 제논 일대기 10권은 이미 레인이 선물해줬다.
게다가 제논 일대기는 2년 동안 휴재를 한다고 선언했다. 도통 무슨 선물인지 감을 잡기가 어려웠다.
“짜잔!”
아르웬이 궁금해하는 동안 레인이 품 속에 고이 간직하고 있던 무언가를 꺼내 보여줬다. 그에 아르웬은 레인의 품 속에서 나온 선물에 시선을 집중했다.
겉보기에는 낡아빠진 종이뭉텅이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의문이 더더욱 증폭될 수밖에 없었다.
“여기요!”
“고맙구나.”
레인이 종이뭉텅이를 건내주자 아르웬은 감사 인사를 전한 뒤에 선물의 정체를 확인했다. 단순한 종이뭉텅이가 아니라 원고지였으며 꽤 유려한 필체가 담겨있다.
‘누가 쓴 거지? 그리고…
아르웬은 첫 문장을 읽자마자 눈을 깜빡거릴 수밖에 없었다. 기억력이 좋은 그녀로서는 첫 문장부터 매우 낯익었기 때문에.
전에도 말했지만, 아르웬은 제논 일대기를 1권부터 읽은 애독자 중 한 명이다. 또한 애독자라면 1권부터 최신권까지 정주행하는 경우가 많다.
그녀는 설마하면서 발빠르게 원고지를 정독하기 시작했다. 익숙한 문장들 하나 하나가 아르웬의 뇌를 강타했다.
“…어라?”
이게 왜 여기에 있지? 도난당했다고 하지 않았나? 이거 하나 때문에 작가도 찾아달라며 애원하고 있는데?
순간적으로 아르웬이 사고가 정지되었을 쯤이다. 그런 그녀의 속마음도 모르는지 선물을 전달한 레인은 허리에 손을 척 얹으며 뿌듯하게 설명했다.
“무려 제논 일대기 1권의 초고라고요! 우연히 출판사 앞에 방문했는데 초고를 공개하더라고요? 그래서 그 날 밤 몰래 갖고 왔죠.”
“… …”
그 설명을 들은 아르웬의 머릿속에서는 한 가지 생각이 두둥실 떠올랐다.
“여왕님은 제논 일대기를 좋아하시니 분명 좋아할 거라 생각했어요. 이걸로 여왕님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겠죠?”
좆됐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현실에 그녀는 다시 한 번 더 생각했지만.
“이걸로 제논 일대기 작가와 만나시면 될 거 같아요. 초고를 빌미로 작가에게 말한다면 그 사람도 분명히 찾아올 수밖에 없겠죠.”
“… …”
“저 잘했죠? 헤헤.”
정말로 좆됐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