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744
■ 743화. 빛이 있으라 (2) □ ᓚᘏᗢ
온 세상이 빛으로 물들어 있다.
보기만 해도 경건함이 드는 빛이었으나 눈이 부시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그저 하늘을 둥둥 떠다니는 것처럼 편안하다. 바다의 부유감이 아닌 하늘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느낌.
바다의 깊은 심연 속으로 끌려가는 게 아니라 자유롭게 나는 것 같다. 이런 기분을 뭐라고 설명해야 될까.
“으음······”
나는 침음성을 흘리며 눈을 떴다. 마음 같아서는 좀 더 힘을 빼고 싶다만 할 일이 남았다.
“여기는······”
눈을 뜨자마자 시야에 들어온 건 광활한 하늘.
방금 전까지만 해도 바다였는데 지금은 푸르런 하늘이다.
중간중간 구름이 끼여있어 마음이 절로 평온해진다. 사방이 빛으로 가득한 건 덤.
“일어났느냐.”
멍하니 하늘을 둘러보고 있을 때 뒤쪽에서 어느 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부처님과 예수님과 다르게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는, 평범하디 평범한 목소리.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편안하게 받아들여지는 목소리다. 나는 고개를 천천히 돌려 뒤를 바라봤다.
“꽤 고통스러웠을 텐데 결국에는 성공했구나.”
“··· ···”
노인이다. 새하얀 머리카락과 풍성한 수염이 특징적인 노인.
여기에 고대 그리스 복식 같은 옷을 입고 있어서 인자함마저 느껴졌다.
세상의 모든 이치에 통달한 ‘신선’을 묘사한다면 딱 이렇게 생겼을 것 같다.
물론 이 생각들은 앞의 노인에게 있어서 무례한 것이다. 사실 진작부터 이 분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설마 하······”
“쉿.”
내 진명을 입에 담으려 하자 입에 검지 손가락을 갖다 댄다. 나는 그 행동에 입을 꾹 다물었다.
뒤이어 지구의 최고신은 인자한 미소를 띄더니 뒷짐을 진 채로 내게 말했다.
“가급적이면 아버지 혹은 최고신이라 부르거라. 이 세상의 달이 말하지 않았느냐? 최고신들은 그 진명을 부르는 것만으로 강력한 힘을 얻는다고.”
“그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구에서는 이미······”
“그렇기에 내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지. 괜히 내 진명을 외치며 순리로 돌아가는 이들이 있겠느냐?”
“··· ···”
“최고신의 진명을 함부로 부르지 못하게 하는 건 균형을 위해서란다. 자칫하다가 나에게 힘이 쏠리게 되면 자연스레 타락의 길로 걸을 테니.”
한 곳에 밀집된 권력은 반드시 부패한다. 이 말과 일맥상통하는 듯한 설명이다.
종교의 위세는 시대가 흘러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설령 약세하더라도 종교는 어마어마한 힘을 포함하고 있다.
멀리 가지 않아도 사이비 종교를 보아라. ‘믿음’이라는 것 자체부터가 종교의 힘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기에 최고신의 진명을 함부로 발언하지 못하는 거겠지. 무섭다면 무서운 일이다.
“······아버지.”
“말하거라.”
“이 세상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묻고 싶은 질문은 너무나도 많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이 세상의 처우가 제일 궁금하다.
비록 루미너스가 한 세계를 멸망시킨 힘을 가졌다 하더라도 지구의 신에 비해서는 부족하다.
지구의 신 중에도 ‘전쟁’을 관장하는 신들이 분명 존재할 테니까.
반면 여기는 신들의 숫자가 턱없이 부족하다.
“계약대로라면 이 세상은 우리 손에 떨어져야 되겠지. 이쪽 신과 맺은 계약이니 어쩔 수 없느니라.”
“그런······ 자비를 베풀어주실 수는 없습니까?”
“초월자들의 계약은 자기 멋대로 파기할 수 없다. 개인과 개인이 아닌 세상, 그러니까 필멸자들의 언어로 우주와 관련된 거니까.”
“··· ···”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만 신들조차 파기할 수 없다는 건 알 것 같다.
그렇기에 안타까움을 숨길 수 없었다. 이쪽 세상이 먼저 잘못한 거라지만 억울한 면모도 있었으니.
모든 원인은 만물의 아버지, 히르트에게 있는데 이 세상 전체가 연좌제처럼 묶이는 건 정말 억울하다.
“······제 개인의 바람으로는 안 되겠습니까?”
“네 개인의 바람을 들어주고 싶지만, 우리 세상의 순리가 심각할 정도로 망가져서 힘들 거란다. 그에 합당한 대가를 치러야하지.”
“··· ···”
결국에는 이렇게 되는구나. 나는 한숨이 터져나오려는 건 간신히 억눌렀다.
최고신 앞에서 한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무례라고 생각한다. 그냥 속앓이를 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너로 인해 그 합당한 대가를 치렀을지도 모르겠구나.”
“······네?”
사실상 포기하고 있을 때 최고신께서 이해할 수 없는 말을 꺼냈다.
그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묻자 최고신이 인자한 미소를 띄더니 나에게 질문했다.
“너는 지배가 뭐라고 생각하느냐?”
“······다른 사람을 아래로 두고 수족처럼 부리는 걸로 압니다.”
“그래. 지배는 바로 그런 것이지. 그렇다면 지배에는 어떤 종류가 있는지 아느냐?”
최고신의 질문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배에도 종류가 있다니 처음 듣는다.
그러나 의미 있는 질문일 수도 있어서 골똘히 생각했다. 어쩌면 자비를 베풀지도 모른다.
“··· ···”
“생각나는대로 말해도 괜찮단다.”
“······죄송합니다. 마땅히 생각나는 거라고는 그런 쪽밖에 생각이 안 납니다.”
지배라 하면 보통 무력으로 인한 지배, 그러니까 전쟁을 떠올리는 일이 부지기수다.
인류 역사상 가장 쉬운 지배 방법이자 조건만 충족한다면 피지배자들도 따르게 만들 수 있을 정도.
최고신은 그런 내 대답을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너그럽게 말씀하셨다.
“괜찮단다. 지구 인류 역사의 반은 전쟁으로 채워졌으니 그럴만도 하지. 한때 내가 그러라고 지시했었고.”
“······아버지께서 말입니까?”
“그렇단다. 너는 나에게 큰 관심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먼 과거에 그랬었지.”
최고신이 씁쓸하게 웃는다. 나는 살짝 멍해졌다.
전생의 나는 무교라 성경에서 최고신이 어떤 지시를 내렸는지 전혀 모른다.
간혹 극단적인 사상을 갖고 패악질을 부리는 종교는 많이 봤지만, 신들의 잘못이라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시대가 흐를수록 수많은 지배 방법이 드러나더구나. 그중에서 전쟁 다음으로 강력했으나 제일 어려운 것이 바로 ‘문화’였단다.”
“문화······”
“하나의 종교를 완전히 끝내버리고 신화로 남게 만든 힘. 과학과 함께 문명의 발전을 이끌었던 원동력.”
최고신은 단언하듯이 말을 꺼내셨다.
“그것이 문화의 진정한 힘이며, 우리가 이미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는 뜻이란다.”
“··· ···”
“하하. 이해가 안 가는 표정이구나. 그 바보 같은 얼굴은 평생 가겠어.”
나는 그의 말을 듣고 얼굴을 더듬거렸다. 아무래도 특유의 얼빵한 표정을 짓고 있던 모양이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최고신 앞에서 그런 거라 얼굴이 화끈거렸다. 부모 앞에서 속내를 들킨 아이 같달까.
“네가 이 세상에 퍼뜨린 문화와 영향력을 생각해보거라. 본래 지구의 역사와 다르게 흘러갈 이 세상의 운명은 네가 원하는대로 흘러가고 있지.”
“그건······ 네. 부정할 수 없네요.”
“이 상황에서 너가 만인에게 존경받는 ‘신’으로 승천하게 된다면, 우리가 굳이 손 써서 나설 필요가 없는 거란다. 너는 우리 지구의 영혼이요, 시간이 흘러도 그 사실은 변치 않으니.”
“······식민지?”
가만히 말씀을 듣자니 식민지라는 단어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식민지는 본래 무력을 동반하는 편이라 힘에 의한 지배가 강하다.
하지만 영국의 예시를 들어보면 최고신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세계사에 이상한 일이 일어났을 때 영국을 집어보면 맞다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실제로 영국은 대영제국 시절 전세계에 크고 작은 영향을 끼쳤으며, 그건 현대에 와서도 짙게 남았다.
그것 또한 지배라고 부른다면 지배겠지. 영국의 영향력은 지구 문명이 잔존한 이상 끝까지 남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도 부를 수 있겠구나. 아무튼 이 세상의 문화가 미처 태어나기도 전에 지구의 문화로 덮어버렸지. 핍박받던 마족은 너의 글로 구원 받았으며, 노예로 착취당하던 드워프들은 너의 조언으로 나라를 뒤엎었지. 본래의 역사대로라면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을 거란다.”
“······제가 나쁜 놈처럼 들리네요.”
“죄인은 아니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단다. 문화를 짓밟은 것도 아니잖느냐?”
“그런가요?”
“그래. 씨앗조차 심어지기 전에 네 씨앗을 심었을 뿐이지.”
“··· ···”
그리 말하니까 진짜 나쁜 놈 같은데. 내가 얼떨떨한 표정을 짓자 최고신께서 웃음을 흘리셨다.
이래나 저래나 이 세상이 안전하다는 건 확실하다. 하지만 내가 문자 그대로 신이 되어야만 가능한 일.
최고신에게는 무례처럼 들리겠으나 여기서 시간 낭비를 할 게 아니다. 나는 살짝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버지. 혹시 저는 어떻게 되는지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히르트, 그러니까 자연의 여신께서 씨앗을 주셨는데······”
“안 그래도 너의 영혼을 그곳으로 보내려 준비하고 있었단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걸리겠지.”
“얼마나 걸리는 겁니까?”
“내 아들이 그랬듯이 3일. 그 후면 너는 진정한 ‘신체(神體)’로 태어나겠지.”
다행이다. 히르트가 세계수의 씨앗을 건네줬을 때부터 설마했는데 그 설마가 맞았다.
나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3일 후면 부활한다고 했으니 기다리면 된다.
“······그럼 그때까지 뭘하면 되겠습니까?”
“뭘 하기는.”
최고신은 특유의 인자한 미소를 지으시더니.
“부활하고 나서 신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만 생각하거라.”
그 말만 남기시며 떠나셨다.
바로 코앞에서 신기루처럼 사라진 거라 무어라 말할 수도 없었다.
“··· ···”
진짜 뭐하지.
* * *
“······그대까지 나설 줄은 몰랐군.”
만물의 아버지, 히르트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앞의 세 존재들을 쳐다봤다.
자신이 깊은 감명을 받았던 세상에서 온 신들. 그리고 이 세상을 한 번 방문했던 신들이다.
드넓은 우주에서 ‘인류’가 탄생한 곳은 여기밖에 없다고 했던가. 그렇기에 저들은 이곳을 자주 방문했었다.
“어째서 나를 방해하는 건가? 나를 숭배하는 이들의 실수로 그쪽의 순리를 건드렸다지만, 이런 식으로 방해하는 건 이상하다.”
지구의 신들이 말했다. 어지간해서는 이 세상에 간섭할 일은 없을 거라고.
이 세상에 태어날 문화를 존중하며 가급적이면 지켜볼 거라는 말만 했다.
하지만 지구의 순리를 어그러진 이후부터 상황은 바뀌었다.
지구의 신들은 호시탐탐 이쪽 세상을 노리고 있었으며, 만물의 아버지도 그걸 알고 있었다.
그러니 이 세상을 지배하지 못할 바에야 아예 부숴버리겠다는 마음도 약간이나마 존재했다.
물론 악의란 악의가 뒤섞여 사고가 오락가락하는 편이라 큰 의미는 없었다.
“본래 하나였던 존재를 다시 하나로 되돌리는 과정을 치를 뿐이다. 네가 존재하는 이상 이 세상은 언제나 불안감에 떨겠지.”
깨달은 자도, 죄를 짊어진 자도 아닌 최고신이 근엄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대가 타락한 건 우리의 책임이 크다. 우리는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당도한 것이다.”
“바로잡는다고? 웃기는군. 다른 이들은 몰라도 그대가 그런 말을 할 처지가 되는가!”
최고신의 발언에 만물의 아버지가 호통쳤다. 그 호통에 일대가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거렸다.
“당신도 홍수를 이용해 인류의 죄악을 말끔히 청소했지. 인류의 죄악이 크다는 이유로 말이야!”
“··· ···”
“나 또한 신들의 지배를 받는 인류의 말로는 죄악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런데 나를 막겠다고?”
만물의 아버지는 다소 성급하게 결정을 내린 면모가 있다.
그러나 그 결정에는 인류의 죄악이 큰 이유를 차지하고 있었다. 무려 자연을 희롱했으니.
본래 히르트였던 존재는 엄격한 아버지와 자애로운 어머니로 분리되었고, 엄격한 아버지는 끝내 제 아들에게 쓰러졌다.
그 과정에서 패륜이 발생하고, 수많은 생명들이 목숨을 잃었으며 죄악이 세상에 퍼져버렸다.
다행히 어머니와 아들딸이 세상을 평화롭게 다스렸으나 인류에게 자유의지는 주어지지 않았다.
그저 따르는대로 따를 뿐. 아버지가 원하는 세상은 이런 게 아니다.
“무엇보다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다. 그대 또한 과거의 행적은 ‘죄’로 가득 차 있지. 사람을 노예로 삼는 것을 합리화하며, 적의 아이와 가축은 전부 취했으며, 남자를 안지 않은 여자는 모두 가지라고 말이다!”
지구의 종교조차 완벽하지 않다. 당시 시대상을 따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야만적인 부분이 존재할 수밖에 없으며, 최고신이라 해서 다르지 않다.
“다행히 그대가 인류에게 자유의지를 부여했기에 곧이곧대로 따르지 않았지. 결국 자식은 부모를 닮게 돼 있다! 독립하지 않는 이상 우리의 죄악은 고스란히 아이들에게까지 전달될 거란 말이다!”
그 말에 화가 났을까.
죄를 짊어진 자가 미간을 꿈틀거리며 한 걸음 움직였다. 깨달은 자도 마찬가지.
여차하면 만물의 아버지의 입을 꿰매기라도 할 듯한 분위기였다.
“되었다. 저 자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잖느냐.”
“하지만 아버지.”
“괜찮다.”
죄를 짊어진 자가 항의해도 최고신은 인자하게 웃으며 다독일 뿐이었다.
이어서 그는 만물의 아버지를 쳐다보며 고저없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대의 말은 하등 틀린 점이 없지. 내가 그러라고 지시했으며, 우리의 아이들은 그걸 따랐다.”
“그런데 왜······”
“허나 어느 한 아이가 이리 말했지. 아버지. 그것은 죄악입니다. 사람을 노예로 삼는 것은 죄악이요, 아이와 가축을 죽이는 것 또한 죄악이며, 남자를 안지 않은 여자를 가지는 것도 죄악입니다라고.”
현대의 지구를 관점으로, 최고신의 가르침 중에는 ‘죄악’으로 분류될 것들이 꽤나 존재했다.
이로 인해 논란이 되는 경우가 잦았으며 종교계조차 쩔쩔매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그럼에도 최고신은 가만히 방치했다. 이건 자유의지와 같은 논리가 아니다.
“아이들은 죄악을 저지른 우리를 몰아내지 않고 ‘설득’했지. 신화에서 으레 있을 법한 패륜을 저지르는 게 아닌, 나를 설득하며 간신히 애원했다.”
“··· ···”
“나는 아이들의 말을 무시했지. 응당 그것이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오랜 시간이 흘러 나는 그 설득을 받아들이고 죄로 인정했다.”
수많은 논란이 있어도 최고신의 위명은 결코 떨어지지 않았다. 그 반대였을 뿐.
수 백년이 흘러 새로운 도덕과 윤리가 등장했는데도 절대 ‘신화’로 격하되지 않았다.
한때 로마를 호령했던 그리스·로마 신앙과 대조되는 부분이자 가장 큰 차이점.
“우리의 아이들은 신보다 훨씬 뛰어난 업적을 이루었다. 부모를 몰아내는 ‘패륜’이 아니라 ‘설득’을 통해 감화시키는 것으로. 그렇기에······”
위잉-
최고신의 손에서 새하얀 빛이 일렁인다.
아이작의 영혼이 육신으로부터 떠날 때 보였던 것과 똑같은 빛.
“이 세상에도 그 지긋지긋한 순환과 비극을 끊도록 하겠다.”
신화에서 으레 등장하는 패륜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이 세상에 보여줄 수 있는 최대의 지배요, 마침표일지어니. 그대에게······”
최고신이 명한다.
-새로운 빛이 있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