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748
■ 747화. 고백 (1) □ ᓚᘏᗢ
나처럼 죽음과 부활을 두 번이나 겪은 필멸자가 있기는 할까. 하다못해 지구의 성인들조차 한 번만 겪으셨다.
원래 한두 번이 어렵지, 이러다가 또 죽으라고 하면 또 죽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그정도로 무덤덤하다.
‘앞으로 또 한 번 죽어야 되나?’
그때는 죽음이 아니라 승천 비슷한 거겠지. 영혼만으로 새로운 육신을 창조할 수 있는 단계.
하지만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 할 일을 해야 된다. 정말 적절한 타이밍에 부활을 한 터라 말하기도 좋다.
문제는 내 옷차림. 자연의 여신 히르트의 복장을 봤을 때 설마했는데 나도 나뭇잎 한 장만 달랑 거쳤더라.
게다가 크기를 차마 감추기 힘들었는지 그 나뭇잎이 굉장히 크다. 불편하지 않다는 게 포인트.
‘역사에 어떻게 기록될지 정말 궁금하네.’
일단 첫 장부터 흑역사 스택을 착실하게 적립했다. 따지기도 애매하니 넘어가자.
지금은 세상에 진실을 알리고, 더 나아가 라오스를 조지는 것도 시작해야 되니까.
이미 주도권은 이쪽에 넘어온지 오래라지만 못까지 확실하게 박아놓아야 안심할 수 있다.
“신들께서······”
“패륜을······?”
“저게 정말 사실······ 아니. 그전에 히르트 님은 멀쩡히 계시는데?”
신들이, 정확히는 루미너스가 패륜을 저질렀다는 진실에 군중들이 혼란스러워진다.
이미 진실을 알고 있는 몇몇 사람은 침착한 얼굴이었지만. 지금부터 중요하다.
나는 딱딱한 낯빛의 라오스를 한 번 힐긋거렸다가 힘있는 목소리로 모두에게 알렸다.
“제가 무슨 말을 하시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겁니다. 그리고 또 믿기 어려우실 겁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무슨 말인지 알고 있습니다.”
“······설마?”
“멸망기사에 나왔던 그 악신?”
“악신은 세상을 멸망시키려 들었잖아.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여태까지 뿌렸던 떡밥을 회수하는 것만큼 기분 좋은 일도 없다.
내 말에 사람들이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이 서로서로 의견을 나누었다.
애써 부정했던 자들도 혼란스러운 표정이다. 퍼즐이 딱딱 들어맞는 느낌이겠지.
“아마 혼란스러우실 겁니다. 멸망기사 속에 묘사된 악신이 신들과 무슨 관계인지 궁금하시겠죠. 그리고 밝히겠습니다.”
두 번째로 밝히는 진실.
“악신은 실존하는 존재이며, 이 세상을 멸망시키기 위한 집념으로 똘똘 뭉쳐있습니다. 또한 빛의 루미너스, 어둠의 여신 모라의 아버지이자 히르트 님의 남편이었던 존재.”
“··· ···”
“마지막으로 현재 악마 숭배자들이 숭배하고 있는 존재, 바다와 만물의 아버지입니다.”
워낙 충격적인 진실이어서 그럴까. 수근거림은커녕 무거운 침묵만이 광장에 자리잡았다.
단순히 ‘상식’이 박살나는 것만으로도 사람은 말을 잃어버린다. 하지만 그것이 종교와 연관이 있는 거라면?
종교를 넘어 세상을 다스리는 부모나 다름없는 존재가 가장 끔찍한 죄악을 저질렀다하면 얼마나 큰 충격을 받을까.
“여기서 바다를 꺼려하시는 분들이 대부분일 겁니다. 만물의 아버지의 악의를 담기 위해서는 바다만한 곳이 없기 때문에 그런 것이죠. 하지만 그렇다 해도 만물의 아버지가 모든 신의 아버지라는 건 변함이 없습니다.”
악마 숭배자가 숭배하는 신이 사실 모든 이의 아버지다. 쉬이 믿기 어려운 진실이다.
그러나 자연의 여신이자 모든 이의 어머니인 히르트와 결합하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본디 생명이란 남녀가 서로 맺어져 태어나는 것. 자웅동체라 할지어도 한 몸에 남녀가 깃든 거다.
“정말로 악마 숭배자가 믿는 신이······”
“그런데 어째서 우리 세상을 위협하는 거야?”
“대체 무슨 이유로 우리를······”
“설마 루미너스 님께서도?”
만물의 아버지의 정체를 알리자 의견을 나누기 시작하는 군중들.
나는 그들의 궁금증을 해소시켜주기 위해 재차 목소리를 내었다.
“만물의 아버지는 인류를 믿지 않으셨습니다. 인류가 악으로 물들기 전에 전부 멸망시키고 새로운 인류를 창조하려고 했죠. 그러나 루미너스 님을 비롯한 다른 신들은 이를 거부했습니다.”
물론 그 안에 좆간이 좆간해버려서 히르트가 둘로 분열되었다. 이건 나중에 책으로 써내릴 계획이다.
당장 필요한 건 전후사정이며, 내 장기 중 하나인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를 유용하게 사용할 때다.
사람들은 내 입에서 나온 말들을 전부 믿을 것이며, 설령 의심을 품어도 곧장 풀어줄 수 있다.
“당시 루미너스 님은 빛의 신이 아닌 전쟁 또한 관장하고 있는 분이셨습니다. 때문에 전쟁의 광기도 가지고 계셨지만, 지혜를 얻어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었죠. 그러나 안타깝게도 만물의 아버지는 그 지혜를 루미너스 님의 눈 앞에서 뺏어가셨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내 이야기에 흠뻑 빠져버렸다. 보통 같으면 수근거렸을 텐데 지금은 집중하고 있다.
나는 두 손을 꼭 마주잡은 채 집중하는 여인을 바라보다가 한 쪽을 힐긋거렸다.
라오스는 뭐가 초조한지 팔짱을 낀 채 발을 까닥거리고 있었다. 설마 도망칠 궁리를 하는 건 아니겠지.
하지만 도망치기에는 이미 늦었다. 때마침 나와 눈이 마주친 케이트가 은근슬쩍 그의 뒤를 점했으니.
그가 도망칠 곳은 없다. 나중에 최후의 발악이나 지켜봐야지.
“루미너스 님은 분노하셨습니다. 무엇보다 소중한 지혜, 그것도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렸으니까요. 그럼에도 만물의 아버지는 인류의 악을 막겠다며 세상을 멸망시키려 들었습니다. 이때부터 루미너스 님의 죄악이 시작됐죠.”
당시의 모라는 루미너스를 보조하거나 인류를 최대한 보호하는 식으로 나섰다. 직접적인 전투는 없다.
그러나 세상이 멸망할 정도의 전쟁이었던지라 결국 몸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하늘은 새까만 구름으로 가득 채워져 태양을 가리고, 바다의 해수면은 상승했으며, 신들의 분노에 의해 화산과 폭풍,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인류는 그저 힘없이 쓰러질 뿐이었죠. 만약 모라 님께서 인류를 보호하시지 않았더라면, 저희는 모두 이 자리에 없었을 겁니다.”
세상이 멸망하는 과정은 모라에게 직접 들었다.
간단히 축약하자면 지구에서 흔히 볼 법한 재난 영화가 총집합됐다고.
지진으로 인해 땅이 갈라지는 걸 넘어 대륙 전체가 분리되고, 거대한 해일이 문명을 덮어버린다.
루미너스는 세상을 물리적으로 멸망시킬 수 있고, 만물의 아버지는 자연을 조종해 파괴시키니 멸망은 확정적이다.
“루미너스 님께서는 하나의 존재로서 해서는 안 되는 죄악을 끝내 저지르셨죠. 만물의 아버지의 육신을 파괴시켜 심해에 빠뜨렸습니다. 하지만 그 분이 지키고 싶었던 세상은 이미 망가질대로 망가져 있었습니다. 죄악을 저지르면서도 지키고 싶었던 건 끝내 지키지 못한 비극을 겪으신 겁니다.”
루미너스가 망나니였던 시절은 언급하지 않았다. 어차피 조만간 책으로 모두 보여줄 거니까.
그의 망나니 시설은 약간 과장해서 ‘혐’이라는 단어가 어울릴 정도다.
지혜의 여신이 얼마나 내조를 잘 했으면 사람이 바뀌었더라.
“루미너스 님께서도 아무것도 지키지 못한 채 죄악만 저지른 스스로가 혐오스러웠습니다. 그렇기에 자신의 죄악을 후대에게 밝히지 않고, 그저 보호하는 식으로 시간을 보내셨죠.”
“··· ···”
“지금 저희 죄악이라 생각하는 것들은 머나먼 과거 신들께서 저지른 죄악이 이어진 것. 그렇기에 저희는 바다를 두려워하고 죄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죄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다소 종교적인 색채가 끼어있지만 마냥 틀린 말이라 하기에도 애매하다.
이건 나중에 누군가 알아서 해석해주겠지. 본래 도덕과 윤리는 시대에 따라 변하는 법이다.
누누이 언급했다만 기독교가 괜히 그리스·로마 신앙을 신화로 몰아냈겠는가. 그 시대에 그만한 도덕성은 찾기 힘들다.
불교도 마찬가지. 부처님은 기원전의 인물인데도 윤회를 깨닫는 걸 넘어 이치마저 깨달았다.
“하지만 여러분. 지금의 루미너스 님을 떠올리십시오. 여러분은 루미너스 님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어느 순간 신들이 아닌 자연스레 루미너스에게만 초점이 맞추어졌다.
내 질문에 사람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눈치를 보더니 한 마디씩 나누기 시작했다.
“선량하신······ 분이시지.”
“우리를 위험으로부터 구해줬어.”
“루미너스 님이 없으셨다면······ 지금처럼 되기는 힘들었을 거고.”
죄악과는 별개로 루미너스는 이 세상을 다시 한 번 일으킨 신이다.
비록 게리오스 왕국처럼 진실이 탄로날까봐 일부러 방치했던 과거도 있었으나 은연히 후회하는 중이고.
살면서 수없이 많은 잘못을 저질렀으나 그것을 후회하고 바로잡으려 노력하는 신.
인간적이다라는 표현은 루미너스에게 어울리며, 그렇기에 한층 더 발전할 수 있다.
“루미너스 님은 후회하고, 고뇌했으며, 고민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자신의 과오를 숨길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필멸자들의 세상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자신의 과오를 밝힐 수 있을지.”
“··· ···”
“우리를 사랑하는 신께서는 변했습니다. 잘못됨을 느끼고 스스로 변하셨습니다. 더 나은 존재가 될 수 있도록 후대에게 죄가 무엇인지 알려주셨습니다. 그리고 제 도움을 빌려서, 여러분에게 부끄러운 과거를 고백하셨습니다.”
악마 숭배자가 나를 이곳으로 불렀던 건 순전히 사고다. 하지만 상황이 이리 된 걸 보면 운명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신들조차 전혀 예상치 못했던 운명. 정말이지 재미있는 운명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루미너스 님께서 저지르신 죄악을 비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그 분을 비판하실 수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루미너스 님께서는 모든 것을 겸허히 받아들이기 위해 용기를 내셨으며, 여러분을 사랑하는 마음은 변치 않을 겁니다.”
이런 말이 있다. 죄를 미워해야지 사람을 미워해서는 안 된다.
상당히 어려운 말이다. 사람을 막 죽이고 다니는 범죄자를 어떻게 미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 범죄자에게 당한 피해자의 유족의 슬픔은 어떻게 감당하겠는가. 이래서 함부로 말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당성이 부여된다면 어느 정도 성립할 여지가 충분하다.
화악-
그 순간 우중충하게 하늘을 메웠던 구름들이 걷히기 시작하며 환하디 환한 빛이 내려쬐기 시작했다.
인위적인 빛이 아니라 루미너스를 상징하는 태양빛. 사람들은 쾌청한 하늘을 멍하니 올려다봤다.
태양은 루미너스를 상징하고, 구름이 끼였던 하늘은 그가 잠시 숨었다는 뜻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이제 과오도 공개했겠다, 떳떳한 정도는 아니어도 얼굴 정도는 내밀 수 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루미너스 님께서도 지켜보고 계신 모양이네요. 더이상 숨길 게 없다는 뜻이겠죠.”
“··· ···”
“제가 내는 목소리는 여기까지입니다. 그전에······”
슬슬 끝나가지만 할 일은 남아있다. 나는 빙긋 웃으며 고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 시선에 사람들도 따라 움직였다. 내 시선이 향한 곳은 다름아닌 라오스.
그의 근처에는 언제라도 포박할 준비가 돼 있는 케이트와 성기사들이 포진돼 있었다.
“마지막으로 낼 목소리는 있습니까? 라오스 아니······”
이제 남은 건 하나.
“만물의 아버지의 마지막 목소리 님.”
지렁이가 어떻게 꿈틀거릴지 지켜보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