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750
■ 749화. 마지막 (1) □ ᓚᘏᗢ
모든 게 마무리되었다.
아직 할 일은 남아있긴 하지만, 나를 위협하던 것들은 더이상 없다.
만물의 아버지는 지구의 신들에게 붙잡힌 상황이고, 라오스는 성기사들에게 끌려갔다.
후에 거친 폭풍들이 몰려오겠지만 당장 내가 신경 쓸 건 아니다. 지금은 그냥 집에 돌아가고 싶다.
라오스 때문에 돌아오기까지 조금 오래 걸렸다만 조금만 걷는다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 ···”
“··· ···”
나는 축제를 즐기라는 말을 한 뒤 단상에서 내려와 저택으로 걸어갔다.
내가 저택으로 돌아가기 시작하자 무슨 모세의 기적마냥 사람들이 알아서 길을 터주더라.
헬리움에서도 경험했던 일이지만 마이샬 영지에서 똑같은 일이 생기니 조금 당황스럽다.
‘제발 무릎만 꿇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혹시나 하는 생각에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내가 지나친 쪽의 사람들이 전부 경건하게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으고 있더라.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역시나 이런 건 부담스러웠다.
“목소리를 낼지어다······”
“침묵하지 말지어다······”
이제는 사실상 기도문이 되어버린 두 가지 구절. 작게 말해도 내 귀에는 똑똑히 들어왔다.
나는 헛웃음을 흘리면서도 저택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다 좋은데 부끄러워서라도 빨리 가고 싶다.
지금 내 옷차림을 보면 그럴만도 하다. 고간에 커다란 나뭇잎 한 장만 떡하니 붙여져 있으니까.
심지어 앞에만 붙어있지 뒤에는 훤히 비어있다. 차라리 무릎 꿇고 기도하는 게 이로울 것이다.
‘사이즈도 다행이고.’
조금이라도 작았다면······ 아마 역사서에 이상한 표현이 실리지 않았을까 싶다.
구렁이 한 마리가 알음알음 보였다던가 비슷한 표현들. 상상만 해도 수치사할 것 같다.
물론 이 모양 이 꼴로 돌아다니는 것부터가 망신살 그 자체다. 집에 가서 무슨 말을 들을지 모르겠다.
‘우리도 기도해야 돼?’
‘그냥 해요, 좀! 눈치 없게!’
저택에 거의 다 도착했을 때쯤 익숙한 목소리들이 귀에 들어왔다. 아버지와 어머니다.
괜스리 걱정을 끼친 것 같아 정말 죄송하다. 나중에 엎드려 사과해야지.
그런 마음을 지닌 채 얼마나 걸었을까. 그립고 그리웠던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나는 굳게 닫혀있던 대문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뒤로 돌렸다. 사람들은 여전히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다.
‘······잘 즐길 수 있겠지?’
축제를 즐기라는 말은 했다만 과연 잘 즐길 수 있을지 모르겠다. 너무 무책임한 말인 것 같기도 하고.
뭐, 그래도 전보다는 마음이 훨씬 편해질 것이다. 나는 당당히 돌아왔으며 악마 숭배자는 사실상 몰락했다.
지구의 신들께서 만물의 아버지를 어떻게 처우할지 모르겠지만 그건 알아서 하겠지.
끼이익-
머지않아 저택의 대문이 개방되고, 나는 그 안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대문을 지키던 경비들은 무슨 일인지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그런 그들에게 가볍게 목례만 했다.
“아빠!!”
대문을 지나치자마자 귓가로 익숙하디 익숙한 소녀의 외침이 들렸다.
그 소리에 앞을 바라보니 아리엘이 날개를 파닥파닥거리며 날아오고 있었다.
“아빠다. 진짜 아빠야!”
나는 아리엘을 가볍게 안아줬다. 아리엘도 내 가슴에 얼굴을 비비며 애교를 부렸다.
이렇게 보니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너무 많은 피해를 끼친 듯했다. 이 잘못을 다 뉘우치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
“기다렸어?”
“응. 아빠 기다렸어.”
“그동안 잘 지냈고?”
“응! 릴리랑 그레이스랑 잘 지내고 있었어!”
“다행이네.”
나는 아리엘을 안아든 채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저택으로 들어오니 그립고도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다사다난한 과정 끝에 드디어 돌아온 것이다. 이제 침실로 돌아가 편히 쉬면 되겠지.
“아빠. 아빠한테 좋은 냄새 나.”
“좋은 냄새 난다고?”
“응. 뭔지 몰라도 좋은 냄새.”
새로운 육체를 얻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신성을 말하는 것일까.
뭐든 간에 아리엘이 귀엽고 사랑스럽다는 건 변하지 않을 거다. 나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침실로 향했다.
마음 같아서는 이것저것 하고 싶었다만 방금 막 부활해서 그런지 매우 피곤하다.
신체가 피곤한 게 아니라 정신 쪽에서 과부화가 걸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죽음과 부활을 겪었으니 그럴만도 하지.’
필멸자는 감히 상상조차 못할 죽음과 부활. 나는 그걸 무려 2번이나 겪었다.
뿐만 아니라 부활하자마자 사람들 앞에서 연설 아닌 연설까지 했으니 정신적으로 상당히 몰려있다.
“아리엘. 아빠가 피곤해서 그런데······”
“그럼 같이 자자!”
“하하. 그래. 그래.”
그러면 되겠네. 나는 아리엘을 안은 채 침실로 향했다.
중간에 클라크 할아버지를 만날까 말까 고민했다만 그건 후일로 미루었다.
모든 일이 끝났으니까. 더이상 내 앞길을 방해하거나 주변인을 해할만한 일은 없으니까.
그러니 지금은 조금만 쉬자. 잠깐만 쉬고 내일 다시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일상은 힘들겠지만.’
아무튼 일상이다. 원래부터 저택 밖으로 잘 나오지 않았는데 앞으로도 쭉 박혀있어도 별 말은 없겠지.
이윽고 침실로 돌아와 나뭇잎도 떼지 않은 채 침대에 몸을 던졌다.
내 침대여서 그런지 뽀송뽀송하고 아늑한 기분이다.
“아빠. 나뭇잎은 안 떼?”
“자고 일어나서 뗄 거야.”
“알았어. 잘 자.”
“아리엘도 잘 자렴.”
나는 아리엘이 눈을 천천히 감는 것을 가만히 지켜봤다. 어느새 그녀도 훌쩍 성장했다.
그래도 오동통한 젖살이 빠지지 않아 천사가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줬다. 귀엽다는 뜻이다.
할 일은 모두 끝났으니 남은 건 사랑하는 사람들과 오순도순 지내는 것뿐.
‘루미너스랑 얘기도 나눠야 하고······ 생각해 보면 할 일이 좀 많네.’
내 눈이 서서히 감길 때쯤이었다.
끼익-
아주 미세하게나마 문이 열리는 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나는 눈을 감다 말고 고개를 들었다.
혹시 애인들 중 한 명인가 싶었으나 의외의 인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은하수가 흐르는 것처럼 반짝이는 검은색 머리카락과 눈동자.
세실리와 흡사한 외모지만 청초함이 더욱 부각되는 외모.
“다 끝난 거야?”
모라였다. 나풀거리는 검은색 원피스 차림의 그녀.
나는 혹여 아리엘이 깰까봐 그녀를 쳐다봤으나 벌써 잠에 빠져들었는지 색- 색- 거리는 숨소리만 내고 있었다.
“······대충은요.”
“그렇구나.”
내 대답에 모라가 무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둠의 여신인 그녀도 아직 실감이 안 나는 모양이다.
본래의 차원에서 추방당했으니 더욱 그런 것도 있겠지. 그러나 매듭은 깔끔하게 마무리 지은 상태다.
“······아버지의 이름도 알고 있겠네?”
약간의 침묵 후에 모라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나에게 물었다. 걱정스럽다는 어조다.
하긴 후에 신화와 관련된 글을 쓰게 될 텐데 만물의 아버지의 진명을 밝히기에는 영 그렇다.
지구의 신들께서 조치를 취할 거라고는 하지만 만약이라는 게 있으니까. 어떻게 될지 경과를 지켜보는 게 좋다.
“네. 알고 있습니다. 어째서 만물의 아버지가 미쳐날뛰는 것 또한 알게 됐죠.”
“잘 해낼 수 있겠어?”
“잘 해내야죠.”
그 말에 모라가 순간 어벙한 표정을 지었다가 피식 웃었다. 뒤이어 이쪽으로 슬금슬금 다가오더니 침대에 앉았다.
여전히 와닿지 않는다는 얼굴이다. 그녀는 현재 초월자가 아닌 필멸자의 시야를 갖고 있었으니.
모라는 잠깐동안 머뭇거렸다가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질문을 꺼냈다.
“아이들은······ 어때? 우리의 진실을 알았잖아.”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그러니 다들 용납했죠.”
“반박하는 사람은 없어?”
“라오스 혼자만 이상한 소리를 지껄이길래 하나하나 반박해줬습니다.”
“그렇구나. 우리를 미워하지 않아서 다행이네.”
“미워할 이유가 없죠.”
내 말에 모라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녀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다.
“그건 또 아니야. 그걸 누가 말하냐에 따라 우리를 개자식으로 둔갑시킬 수 있거든. 창조신의 의지를 거슬러 권좌를 대신 차지했다는 식으로 말이야.”
“··· ···”
“네가 돌아오지 않았더라면 그런 식으로 상황이 흘러가 우리의 신앙이 무너졌겠지.”
“앞뒤를 다 잘라먹고 진실만 교묘히 이용하는 방법이군요.”
“너의 장기이자 앞으로도 이어질 신앙 중 하나지.”
나는 모라의 말을 듣고 쓰게 웃었다. 이러다가 혓바닥의 신이 되지 않을까.
여태까지 뿌린 것들만 해도 무슨 신이 될지는 잘 모르겠다. 그나마 가장 근접한 건 문화와 관련된 거다.
“저는 어떤 신이 될까요?”
“글쎄. 네가 이 세상에 끼친 영향은 너무 광범위해서 잘 모르겠어. 곧 있으면 우리 오빠가 줄 선물을 아이들이 보고나서 정하겠지.”
“루미너스 님의 선물이요?”
루미너스가 선물을 준다는 소리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너무 뜬금없어서 무슨 선물인지 감도 안 잡혔다.
“응. 케이트에게 들은 바로는 예언과 관련된 선물이라고 했어. 내일이면 공개하지 않을까?”
“내일이라······”
축제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겠다만 이번에는 오래 갈 것 같다.
주최자이자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내가 이제 막 도착했을 뿐더러 ‘신화’를 목격했으니까.
각 교단들마다 바쁠 뿐더러 라오스의 처우에 대해서도 즉각적으로 처리할 수 있으니 오래 갈 것이다.
“아이작, 아니 제논.”
그때 모라가 내 이름을 불렀다. 본명이 아니라 신으로서의 이름을.
이에 고개를 들자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는 모라와 딱 마주칠 수 있었다.
고마움과 애정, 그리고 갖가지 다양한 긍정적 감정들. 그녀의 표정에서 모두 읽을 수 있었다.
“정말 고마워. 모든 게 다.”
“··· ···”
“우리도 이제 조금이나마 죄책감을 털 수 있을 거야.”
수 천년이 흘러도 아버지를 내몰았다는 게 죄책감으로 남았던 모양이다.
나는 그 말을 듣고 괜찮다는 의미로 미소만 지어줬다. 모라도 미소를 지어줬다.
이어서 그녀의 미소가 더욱 짙어지더니······
쪽-
고개를 천천히 내밀어 내 입술에다 가볍게 키스해줬다. 다른 누구도 아닌 여신에게 받는 키스.
내가 살짝 어벙해진 동안 모라는 뺨을 살짝 붉히며 쑥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이건 내 선물. 줄 게 이것밖에 없어서 미안해.”
“······충분하네요.”
“그래? 다행이다. 히히.”
장난꾸러기 같은 웃음을 흘리는 그녀. 모라 특유의 귀여움이 묻어나왔다.
여러모로 마음이 힐링되는 기분이랄까. 아니면 그녀가 안식의 여신이어서 그럴까.
피곤했던 정신이 조금이나마 개운해지는 느낌이다. 조금만 자도 금방 회복할 것 같다.
“그럼 우린 이만 가볼게. 조금만 더 고생해줘.”
“······네?”
그런 또 무슨 소리야. 그리고 아리엘은 왜 데리고 가는 거고.
내가 어리둥절해 있는 동안 모라는 아리엘을 안아들고 문 쪽으로 향했다.
이윽고 문을 열더니 그 뒤에 있던 사람에게 조용히 말했다.
“다 끝났어. 들어가도 돼.”
“감사합니다, 모라 님.”
이건 마리의 목소리인데. 내가 눈을 끔뻑이는 동안 익숙한 얼굴이 안으로 들어왔다.
마리를 시작으로 세실리, 아델리아,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애인들까지. 전부 내 침실로 몰려들었다.
각기 다른 표정들이었으나 대부분 공통된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안도와 질책.
그 두 가지 감정이 섞여서 그런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뻔히 보였다.
“······나 지금 피곤해서 그런데······”
내가 그리 말하자.
“시끄럽고 나뭇잎이나 떼.”
마리가 그리 말하며 드레스를 성급히 벗기 시작했다. 다른 애인들도 마찬가지로 저마다 옷가지를 벗어던졌다.
객관적으로 정말 아름다운 광경이라 할 수 있다. 각각 개성이 강한 미녀들이 전부 속옷 차림 또는 나체가 되었으니까.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공포를 한참 넘어선 무언가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독수공방시킨 것도 모자라 우리를 걱정시켜? 정실부인으로서 모두의 의견을 받아들여 너를 벌할 거야.”
“하지만 사정이······”
“네 목소리는 들을 필요 없어. 케이트 씨?”
마리가 케이트에게 바통을 넘겼다. 나 또한 케이트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속옷 차림의 그녀는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온화한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아이작 님께서는 목소리를 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라오스가 거짓된 말을 하려고 하자 목소리를 빼앗으셨죠.”
“··· ···”
“특히 피와 강철에서 목소리의 위험성을 알려주셨습니다. 이를 보았을 때 시끄러운 목소리는 무시할 필요가 있다고 알려준 거라 생각합니다. 하물며 진실과 탄압은 서로 큰 연관이 있죠.”
“들었지?”
아니. 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닌데.
내가 당황하고 있는 동안에도 마리가 나에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이윽고 내가 덮고 있던 이불을 빼았더니 나뭇잎에 손을 갖다 대었다.
“그러니까······”
마리는 빙긋 웃으며 내 나뭇잎을 세차게 벗겨냈다.
“오늘만 힘내자?”
커다란 나뭇잎 한 장이 나풀거리며 서서히 바닥으로 떨어졌다.
여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