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76
■ 75화. 방학 (1) □ ᓚᘏᗢ
초고 도난 사건이 발생하고 어언 한 달이라는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다. 그 시간동안 최대한 학업에 집중했지만 신경 쓰이는 건 어쩔 수 없다.
제논 일대기 1권의 초고는 내가 이 세상에 환생하고나서 남긴 첫 기록물이며 그만큼 애정이 깊다. 컴퓨터가 아니라 손으로 썼기에 초고를 볼 때마다 뿌듯함이 일었다.
하지만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 벌어지자 화가 나기보다는 황당했다. 솔직히 초고가 최초로 공개된지 하루만에 도난 당할 줄은 상상도 못 했고, 또 금고 입구를 통째로 뜯어버릴 줄은 전혀 예상치 못 했다.
물론, 모험가를 고용하지 않고 안일하게 대처한 출판사와 너무 쉽게 초고를 넘겨준 내 책임도 없지 않아 있다. 그래도 억울한 건 변함이 없다.
그 후로 한 달이 지난 지금, 나는 초고가 과연 누구의 손에 넘어갔을지 매일 한 번 쯤 생각하면서 학업에 정진했다. 누군가의 손에 넘어갔다면 그나마 다행이나 불태우거나 소실되지만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미안해. 우리도 열심히 조사했지만… 나오는 건 없었어.”
“하나도 없었어?
“응. 단지 마나를 잘 다루는 실력자라는 것과 근력이 강하다는 것. 이 두 가지를 제외하면 누가 훔쳤는지 알 수 없어. 제국 최고의 마법사를 시켜 조사한 결과가 이 모양이야.”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나누기에 적합한 카페의 비밀방.
맞은편에 앉아있는 리나가 진심이 담긴 목소리로 사과했다. 나는 미리 주문했던 커피를 마시며 그녀의 얼굴을 살펴봤다.
최근 한 달 동안 고생했는지 수심이 드리워진 표정은 물론이고, 컨디션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 하여 미모가 팍 죽어버렸다. 리나는 레오르트처럼 황실로 복귀하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꽤나 고생을 한 모양이다.
‘황실 입장에서도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긴 하겠지.’
나도 이미 입장문을 낸 상태다. 내 보물이니 부디 찾아달라고.
시위가 끝난지 하루도 채 되지 않아 초고가 도난당했으니 황실 입장에서도 뒷목을 잡지 않았을까. 특히 한 번 호되게 혼난 황실 남매에게는 무조건 찾아야 한다는, 차마 이루어 말할 수 없는 압박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므로 조사단을 지휘하지 않고 강의만 듣는 리나에게도 적지 않은 압박감이 전해졌을 것이다.
“…반드시 찾을 수 있어.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는 마.”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입만 다물고 있자 불안해지기라도 한 걸까. 리나가 주눅 든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내가 화가 나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걸로 생각한 모양이다. 하긴 전과가 있었으니 그리 생각할만도 하다.
하지만 그녀의 생각과 달리 딱히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있다. 범인을 찾지 못 했다는 건 조금 실망스럽긴하나 어쩔 수 있겠나. 그냥 실망감만 느끼고 말지.
더이상 리나를 닦달해봤자 범인이 자수하는 것도 아니고 초고 문제는 넘기는 편이 정신 건강이 이롭다. 초고를 도난당했을 때는 화가 났으나 시간이 지나니 차차 진정된 것도 있다.
“알았어. 그런데 지금 출판사는 어때? 처벌이라도 내릴 거야?”
“고작 그거 가지고 처벌을 내리기에는 부족해. 비록 모험가를 고용하지 않고 직원들만 시켰다지만 금고의 성능이 뛰어났거든. 거기다 하루만에 당할 줄은 꿈에도 몰랐을테니 정상참작은 해줬어. 그대신 다른 걸로 붙잡혀갔지.”
“다른 거?”
“탈세. 금고 안에는 초고뿐만 아니라 기밀 장부도 있었거든. 사장이 충격 때문에 미처 빼내지 못 했나 봐.”
“그러면 어떻게 되는거야? 출판사가 없어지기라도 해?”
내 질문에 리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대답했다.
“아니. 마음 같아서는 그러고 싶지만 제논 일대기가 그 출판사와 계약된 상태라서 힘들어. 대신 벌금을 좀 많이 물고 말 거야.”
“벌금이라면 얼마 정도?”
“보통 탈세는 금액에 따라 200%에서 300%를 징수해가니까… 많이 나오긴 할 거야. 최소 단위가 100만 골드일걸?”
“우와.”
100만 골드면 한화로 최소 100억은 넘는 수치인데. 제논 일대기로 벌어들인 수익이 많은지라 탈세금도 어마어마하게 많다.
만약 내가 휴재를 하지 않았더라면 피눈물을 흘리며 벌금을 냈겠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은 휴재를 한 상태다. 벌금을 내는 순간 출판사가 부도가 나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리나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출판사의 미래에 관해 입을 열었다.
“그래도 부도가 날 일은 절대 없어. 제논 일대기는 지금도 꾸준히 팔리고 있으니까. 그리고 2년 뒤에 네가 연재를 시작하면 다시 막대한 수익금을 벌어들일테고.”
“돈을 많이 벌긴 했나 보네.”
“사실 제논 일대기의 인기를 생각하면 이정도조차 적은 수치야. 지금 조사해서 망정이지, 나중에 조사했다면 우리 쪽에게도 뇌물을 먹일 수 있을 정도로 덩치가 커졌겠지.”
그러고 보니 아카데미에 오기 전, 부모님이 나에게 한 말씀이 있었다. 제논 일대기가 너무 잘 팔려서 돈을 많이 벌었다고.
그때는 돈에 큰 관심이 없어서 그러려니 하며 넘어갔지만 지금은 아니다. 약간 욕심이 생겼다.
‘앞으로 원고지를 좀 더 좋은 걸로 살까? 부모님에게 생활비를 좀 더 많이 보내달라 부탁하고.’
아주 사소하고도 귀여운 욕심이.
연재는 약 2년 뒤부터 할 생각이지만 그동안 원고지 말고도 집필에 도움이 되는 것들을 알아봐야 할 듯했다.
물론 아버지가 선물해주신 마법필은 꾸준히 사용할 거다. 아버지가 거금을 이용해 나에게 선물해주신 거니 초고 다음으로 나에게 정말 소중한 보물이다.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리나를 힐끔 쳐다봤다. 그녀는 여전히 어두운 표정으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이건 나중에 마리한테 물어봐야겠다.’
내가 원하는 건 일종의 ‘지우개’다. 여태까지 원고를 쓸 때마다 한 번 삐끗하면 갈아치워야하니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한 가지 묘안이 떠올랐다.
마법필 같은 마법 아이템이 있다면, 지우개처럼 잉크를 지울 수 있는 아이템도 있지 않을까. 설령 없더라도 화이트 비슷한 것만 있어도 충분하다.
방학 동안 부모님에게 부탁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물어봐서 지우개가 존재하는지 확인해보는 것이 좋을 듯했다.
‘생각해보니 방학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
현재 아카데미에 입학한지 벌써 4개월이 훌쩍 넘어갔다. 곧 있으면 과제와 시험도 모두 끝나니 사실상 2주 정도만 버티면 방학이다.
방학이라고 해봤자 고작 한 달밖에 되지 않았으나 나에게는 꿀맛 같은 휴식일 것이리라. 오랜만에 부모님의 얼굴을 볼 생각을 하니 기대가 된다.
‘마리네 저택도 방문할테고…’
그중 제일 기대가 되면서 걱정이 되는 건 바로 마리의 저택 방문이다. 마리네 부모님 입장에서는 금지옥엽처럼 키운 딸이 외간 남자를 데려온 격이니 따가운 눈초리로 바라보지 않을까.
비록 레킬리스 공작가가 권위주의와 동떨어져 있다지만 딸을 키우는 부모님은 또 다르다. 부디 좋게 봐주시길 빌 수밖에 없다.
나는 머릿속으로 방학 계획을 단편적으로 잡다가 리나를 바라봤다. 도대체 무슨 고민을 하고 있는지 몰라도 입도 벙긋하지 않고 있다.
“리나.”
“…으, 응?”
내가 부르자마자 화들짝 놀라며 대답하는 리나. 나는 의문을 품으며 그녀에게 질문했다.
“무슨 생각을 하길래 그리 죽상이야? 아직도 도난 사건이 신경 쓰여?”
“…응.”
역시나 내 예상대로였다. 하긴 나와 대화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그녀에게는 부담감으로 느껴질 것이다.
나는 역전된 듯한 상황에 기묘한 느낌을 받은 것도 잠시, 우선 리나를 안심시키기로 마음먹었다. 제국의 황녀가 이리 저자세로 나올 필요도 없고 무엇보다 내가 불편하다.
“너무 그리 신경쓰지 않아도 돼. 어쩔 수 없는 거잖아.”
“그렇긴 해도… 후우…”
답답함에 한숨을 내쉰 리나는 나를 힐긋 바라보더니 속내를 털어놨다.
“자존심 상하잖아. 우리 황실이 직접 조사단까지 꾸렸는데 아무런 단서조차 잡지 못 하다니… 이건 분명 작정하고 훔친 게 분명해. 그렇지 않고서야 단서가 하나도 안 나올 리가 없어.”
“음…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런 거겠지. 그럼 만약 범인을 찾는다면 어떻게 할 생각이야?”
“일단 네 앞에 무릎을 꿇려서 사과시킬거야. 그리고 주모자를 찾아야지. 만약 대상이 국가라면 외교적으로…”
리나는 말을 하다가 멈칫거리더니 나를 쳐다봤다. 그에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무슨 일이냐는 듯이 보자 그녀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냐. 아직 제논 일대기가 제국에 종속되지 않았으니 의미가 없겠지. 미안해. 요즘 정신이 없어서 흥분했나 봐.”
“음… 만약 내가 제국에 종속된다면 어떻게 돼?”
“뭐?”
내가 그리 묻자 리나가 눈을 화등잔만하게 뜨며 나를 쳐다봤다. 어지간히 놀랐는지 입까지 벌린 상태다.
그에 나는 미약한 웃음을 흘렸다가 입을 열었다. 미리 말하지만 아직은 제국에 종속될 마음은 없다. 그냥 일종의 떠보기다.
“말 그대로야. 내가 제국에 종속된다면 어떻게 될지 궁금해서. 내가 아니라 작가로서.”
“그, 그러면 우리야 당연히 환영이지! 네가 원한다면 작위까지 줄 수 있어! 줄 수 있고 말고!”
리나가 한 달 동안 많이 피곤했던 모양이다. 평소였다면 내가 떠보고 있다는 걸 눈치챘을텐데 드물게 흥분까지 하면서 소리치고 있었으니.
지금 우리가 있는 방이 방음이 잘 되어있어서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더라면 바깥까지 소리가 새어나갈 정도로 큰 목소리다. 그만큼 내 가치가 어마어마하다는 뜻이다.
나는 기대감으로 부푼 리나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미묘한 미소를 지었다.
“지난 번에도 말했지만 나는 작위에 관심이 없거든. 괜히 피곤해지기만 하고.”
“그, 그럼 원하는 게 뭐야? 아바마마에게 부탁해서라도 선물해줄게.”
“아니. 그럴 필요까지는 없는데.”
나는 기겁하며 곧바로 사양했다.
아무리 황녀와 허물없이 말을 나눌 수 있다지만 황제는 결코 넘을 수 없는 벽이다. 내가 제논 일대기의 작가여도 황제의 말 앞에서는 설설 기어야 하는 입장이다.
하물며 리나가 부탁하는 순간 황제마저도 의심할 가능성이 높다. 괜스레 황궁으로 불려가기는 싫다.
나는 리나에게 진정하라는 듯이 손을 내밀었다. 그녀도 내 제스쳐에 흥분을 가라앉혔는지 한숨을 토해내고는 의자에 엉덩이를 붙였다.
“…미안해. 또 흥분해버렸네. 너도 떠보는 거였지?”
“응. 불쾌했다면 사과할게.”
“사과할 필요는 없어. 나도 너와 너희 가족에게 잘못한 게 있으니 이정도는 넘겨야지.”
확실히 말을 놓으니 대화하는 것도 편하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커피잔을 들었다.
“… …”
리나는 커피잔을 들자 내 손을 빤히 쳐다봤다. 손에 집중된 걸로 보아 중지 손가락에 난 펜혹을 보고 있는 듯했다.
“…좋았어. 그러면 되겠다.”
또 무슨 꿍꿍이라도 꾸미는 걸까. 딴에는 작게 말한 거지만 피곤하다보니 목소리가 새어나와 내 귀에 똑똑히 들어왔다.
나는 그녀의 중얼거림을 듣고 한 쪽 눈을 살짝 치켜떴다. 다 들었다는 티를 낼지 말지 고민했지만 못 들은 척 넘어가줬다.
그래도 단단히 마음먹는 건 잊지 않았다.
‘이상한 짓을 하기만 해봐.’
다시 한 번 연중의 힘을 보여줄테니까. 연중이라는 무기가 강력하다는 걸 알았으니 윗쪽에서 이상한 짓을 할 때마다 꺼내면 그만이다.
아무튼 간에 초고 도난 사건은 이렇게 마무리가 되는 듯했고.
“그동안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비록 한 달이라는 짧은 시간이지만 즐거운 휴식을 보내시길 바랍니다.”
“와아아!!”
폭풍 뒤에 찾아온 꿀맛 같은 휴식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