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77
■ 76화. 방학 (2) □ ᓚᘏᗢ
방학은 학생에게 있어서 그 무엇보다 값진 휴식 시간이다. 그동안 앞만 보고 가느라 지쳐있던 심신을 달래거나 미래를 설계하는데 아주 적합한 시간.
설령 그것이 한 달이라는 매우 짧은 시간이어도 충분하다. 한 달이라는 시간은 언듯 보면 짧아 보이지만 조율을 잘 한다면 알차게 보낼 수 있다.
그리고 나는 방학동안 마리네 저택을 갔다 오고 열심히 뒹굴뒹굴거릴 계획이다. 아카데미 생활이 너무 바쁜 것도 있으나 여러 사건들이 있어서 심신이 조금 피곤했다.
지금은 마음을 어느 정도 고쳐먹어서 그나마 편안한 생활이 가능했지만 내 가치를 명확하게 깨닫기 전까지 하루하루 노심초사하면서 지냈다.
“누나는 집에 안 올 거야?”
“아마 방학 중간에 돌아와서 일주일 정도 머물 생각이야. 아버지와 대련해야하거든.”
“왜 일주일이야? 그냥 계속 있지. 나 심심한데.”
“얘도 참. 정 그러면 너도 여자친구네 집에서 계속 지내지 그러니? 그리고 아카데미에 할 일이 많아서 그래. 나는 곧 있으면 졸업인데다가 근무지도 알아봐야 하거든.”
참고로 방학 기간 동안 집이 아니라 아카데미 숙소에서 지내도 크게 상관은 없다. 헤일로 아카데미는 작은 도시나 다름없는데다가 아르바이트도 할 수 있어서 생활비도 마련할 수 있다.
특히 집이 너무 멀어서 왕복이 매우 힘든 사람들이 대부분 방학 동안 아카데미에서 생활하는 편이다. 2학년까지는 방학이 한 달밖에 되지 않아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다.
“그럼 아델 누나는? 아델 누나도 아카데미에 있어?”
“아마 그렇겠지? 아델은 집이 엄청 머니까. 그러고보니 걔는 방학동안 집으로 간 적이 없는 것 같네. 아무튼 간에 방학 잘 보내고, 여자친구네 집에서 가서 실례만 끼치지 마. 알겠지?”
“응.”
본격적인 방학을 보내기 전 니콜과의 이야기를 모두 끝냈다. 그녀와 만나기 전에는 지인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각자 방학 동안 할 일이 많아 보였다.
우선 리나는 초고 도난 사건의 범인을 끝까지 추격할 계획이라 말했고, 세실리는 따로 말해주지 않았다. 그저 상냥하게 웃으며 비밀이라고 알려줄 뿐.
비밀이라고 하니 더이상 캐묻지 않았으나 나를 보는 눈빛이 조금 심상치 않았다. 틈틈이 기회를 노린다고 설명해야 할까. 순전히 내 착각일지도 모르겠으나 나와 깊은 연관이 있을 듯했다.
‘뭐, 내가 신경 쓸 바는 아니지.’
참고로 레오나에게도 물었다. 방학 동안 뭘 할 거냐고.
그리고 그녀는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하고 특유의 시니컬한 목소리로 대답해줬다.
“별 거 없어. 아카데미에서 지낼 거야. 고향으로 돌아가기도 귀찮고 여기서 사는 것도 나름 괜찮으니까.”
“그래? 돈은?”
“돈은 아르바이트인가 뭔가를 해야지. 나름 괜찮은 경험인 것 같기도 해.”
아르바이트를 하는 레오나의 모습이라… 뭔가 미묘하게 어울리면서도 안 어울린다.
내가 그런 표정으로 바라보자 레오나는 인상을 살짝 구기더니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왜. 내가 아르바이트를 한다니까 이상하게 보여?”
“아니. 그냥 무슨 알바를 할 건가 싶어서.”
“네가 알아서 뭐 하려고? 왜, 한 번 찾아오게?”
“가능하면.”
지인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곳에 찾아가서 노는 것도 마냥 나쁘지 않은 경험이다.
레오나는 내 대답을 듣고 피식 웃더니 마음대로 하라며 손을 휘적거렸다.
“됐고, 어서 가기나 해. 지금 네 암컷이 기다리고 있지 않아?”
“응? 암컷? 어감이 조금 이상한데?”
“아, 미안. 아직 익숙치가 않아서.”
아차하며 입을 만지적거리는 걸 보아 정말 실수가 맞긴 한 모양이다. 거기에 더해서 내 눈치를 보기까지.
나는 레오나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어깨를 으쓱였다. 종족이 다르니 이정도 말 실수는 용납해줄 수 있다. 레오나 본인도 미안해하는 중이고.
“어쨌거나 방학 잘 보내. 괜히 나처럼 이상한 방식으로 들키지는 말고.”
“야. 그때는 정말 실수였어. 방심만 안 했다면 너에게 들킬 일도 없었다고.”
“알았어. 그럼 난 간다. 안녕.”
“그래. 잘 가. 빨간 펭귄.”
쟤는 아직도 나를 펭귄이라 부르네.
레오나는 내가 째려보던 말던 킬킬 웃으며 손을 흔들어줬다. 지금 주위에 아무도 없어서 망정이지, 정체를 숨기고 있기에 저런 식으로 웃는 모습은 매우 드물다.
‘이걸로 인사는 다 끝냈고…’
이제 나도 본격적으로 방학을 보내야겠지. 나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약속 장소로 향했다.
약속 장소라고 해봤자 아카데미 입구였지만 그곳에는 사랑스러운 내 여자친구, 마리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애인을 기다리게 하는 사람만큼 매력적이지 못한 행동은 없으니 자연스레 발걸음이 빨라졌다.
그리고…
“아이작!”
아카데미 입구에 거의 도착하자마자 내 귓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에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하얀색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달려오고 있는 마리가 시야에 잡혔다. 사복이 아니라 여전히 교복을 입고 있었다.
그럼에도 마리의 풋풋한 매력을 감출 수는 없었다. 다른 사람과 달리 오히려 교복을 입고 있어 그녀의 매력이 더 늘어난 듯했다.
나는 이쪽으로 다가오는 마리를 보며 밝은 미소를 지었다가 두 팔을 활짝 펼쳤다. 마리는 내가 두 팔을 펼쳐주자 자연스레 안겨왔다.
“우웅… 왜 이리 늦었어?”
서로의 따스함을 느끼는 도중에 마리가 고개를 들어올리며 나에게 물었다. 보석처럼 반짝이는 그녀의 푸른색 눈동자에는 나를 향한 애정이 듬뿍 담겨있다.
나는 그녀의 뺨을 손으로 부드럽게 만져주면서 입을 열었다. 입가에 걸린 미소가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미안해. 다른 사람들한테 인사하느라 늦었지. 언제부터 기다렸어?”
“사실 나도 방금 온 거야. 오빠랑 얘기하느라 늦었거든.”
“그런데 왜 늦었냐고 물은거야?”
“1분 1초가 1시간 같았는걸?”
비록 처음에는 얼렁뚱땅 넘어가는 듯이 사귀기 시작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이렇게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좋은데 내가 그녀를 좋아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무엇보다 마리는 예쁘다. 그것도 엄청.
내가 아무리 화가 나도 마리의 예쁜 얼굴을 보게 되는 순간 마음 속에 있던 화가 눈 녹듯이 사르르 사라진다. 일종의 힐링이라고 볼 수 있겠지.
그만큼 나에게 있어서 마리의 존재는 점점 커져갔다. 주위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쳐다보거나 수근거려도 아랑곳하지 않을 정도로.
“이제 슬슬 갈까?”
“응! 응!”
그리하여 나의 첫 방학은 귀여운 여자친구와 함께 시작되었다.
* * *
아이작과 마리가 행복한 시간을 가지며 본격적인 방학을 시작했을 시간.
헬리움의 공주, 세실리는 방학이 시작된지 1시간도 채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헬리움으로 복귀했다.
세실리는 마법에 한해서 엘프와 함께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마족일 뿐더러, 차기 마왕으로 예약돼 있는만큼 뛰어난 마법 실력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니 공간의 제약을 모두 무시하는 텔레포트를 사용하는 것 정도는 아무런 문제가 없으며 왕성의 좌표도 정확히 기억하고 있으니 누구보다 빨리 왕성에 도착할 수 있던 것이다.
대신 아카데미 내부에서는 마법을 사용할 수 없으니 조금 떨어진 장소에서 발동시켰다.
“저 왔어요. 아빠.”
“어서오거라.”
세실리는 헬리움의 왕성으로 돌아오자마자 헬리움의 왕, 데스칼부터 만났다. 이미 세실리가 복귀했다는 소식을 들은 데스칼은 세실리의 인사에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주며 반겨줬다.
일국의 공주인만큼 사람을 시켜 데려올 수도 있지만 세실리는 그런 부분에 연연하지 않는다. 자기 하나 때문에 밑의 사람이 고생하는 걸 싫어하는 편이다.
데스칼도 그런 세실리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기에 갑작스러운 복귀에도 놀라지 않았다. 애초에 곧 있으면 돌아올거라며 세실리가 편지를 보냈으니 미리 예상은 하고 있었다.
“그래. 아카데미 생활은 할만했니? 괴롭히는 사람은 없었고?”
하지만 어딜 가나 자식을 가진 아버지의 마음은 똑같다고. 데스칼은 걱정이 뚝뚝 묻어나오는 목소리로 세실리에게 물었다.
비록 지금은 시선이 희석되었다지만 몇 년 전까지 악마로 핍박받았던 마족이다. 그러니 왕이기 전에 한 명의 아빠로서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에 세실리는 빙긋 웃으며 데스칼의 걱정을 덜어줬다.
“정말 만족스러웠어요. 좋은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고요. 제논 일대기 덕분에 저를 악마가 아닌 인간으로 대우해주는 사람들밖에 없었어요.”
“그거 다행이구나.”
“아. 물론 제 얼굴이랑 몸을 보고 음심을 품은 사람도 있긴 했어요.”
“어떤 새끼니?”
데스칼은 안심한 것도 잠시, 곧바로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세실리를 추궁했다. 하나밖에 없는 딸을 가진 아버지로서 도저히 지나칠 수 없는 이야기다.
하물며 그 딸이 다른 사람의 눈에도 아름답다 못해 그 이상이라면? 당연히 눈이 돌아갈 수밖에 없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그 놈을 찾아 사지를 찢어버리고 싶다.
그에 세실리는 깔깔 웃더니 손을 흔들며 너스레를 떨었다. 역시 시간이 지나도 자신의 아빠는 한결 같았다.
“장난이에요. 장난. 저 말고도 예쁜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 시선은 별로 없었어요.”
물론 딱 한 명 있긴 있었다. 잭슨이라고, 자신과 대화할 때마다 가슴 쪽으로 시선이 가던 백작가 아들.
하지만 조별 과제 이후로 잭슨은 자신을 피하기 시작했다. 조별 과제를 기회 삼아 여러번 골탕먹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잭슨을 제외하면 자신에게 접근하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아름다운 꽃이라 해도 가시가 있다면 꺾는 걸 주저하기 마련이니.
“…알겠다. 그래도 그런 장난은 치지 마렴. 아비가 되어서 도저히 지나칠 수 없는 이야기니까.”
“네. 알겠어요. 놀라셨다면 죄송해요.”
“뭐, 보아하니 아카데미 생활은 잘 하고 있는 것 같아서 안심이구나. 정말 별 일 없는 거 맞지?”
“음…”
별 일이야 있긴 있다. 그것도 별 일이라 치부할 수 없는 사건이.
세실리는 붉은 머리카락이 인상적인 소년을 떠올렸다가 빙긋 미소를 지었다. 그 소년만 생각하면 저절로 웃음이 나왔으며 가슴이 두근거렸다.
비록 그의 옆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이 있지만, 아무 문제가 없다. 외부를 공격할 수 없다면 내부부터 천천히 공략하면 그만이니.
편지를 주고 받는 것도 그 공략의 일환이다. 진심을 보여주는 것만큼 상대방의 마음을 열기에 효과적인 방법도 없다.
설사 시간이 오래 걸려도 세실리에게는 상관 없었다. 자신은 장수종 중 하나인 마족이며 어릴 때부터 ‘절제’를 길렀기에 인내심이 매우 강하다.
‘언젠가 기회가 올 거야.’
이 세상에 영원한 건 절대 없다. 이건 남녀 간의 사이도 마찬가지이며 활활 타오르던 장작이 점차 꺼지는 것처럼 당연한 일이다.
세실리는 그 순간이 언젠가 오기를 바라며 입을 열었다. 머릿속에는 붉은 머리카락의 소년의 모습이 여전히 재생되고 있었다.
“별 일은 없었어요. 솔직히 저에게는 아카데미 생활 자체가 별 일이잖아요?”
“흠. 그것도 그렇구나.”
“그나저나 아빠. 조사는 잘 진행되고 있나요?”
세실리는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데스칼이 특정 부분에 둔감하다지만 만에 하나 눈치를 채는 순간 의심을 받을지도 모른다.
의심을 받게 되면 자연스레 아이작에게로 시선이 갈테고, 아이작에게 시선이 가는 순간 사람을 시킬지도 모르는 일이다. 세실리는 그것만큼은 막고 싶었다.
다행히 그녀의 우려처럼 데스칼은 눈치를 못챈 모양이다. 데스칼은 세실리의 질문을 듣고 턱을 매만지다가 조용히 대답을 꺼냈다.
“초고 도난 사건이라면 잘 진행되고 있다. 미네르바 제국에서 서신을 보냈으니 얼마 뒤면 답신을 올 거야.”
“그래요? 아빠는 누가 초고를 훔쳤다고 생각하세요?”
“제국이 조사한 바로는 아무런 단서조차 나오지 않아 곤혹을 겪고 있다 했지. 하지만 난 이게 단서라 생각하고 있단다. 제국측에서도 단서를 잡지 못 했다면 남은 건 하나밖에 없어.”
뒤이어 데스칼은 진중한 목소리로 용의자를 추측했다.
“엘프. 그것도 어둠에 몸을 숨기는 능력이 고도로 특화된 다크 엘프겠지.”
“왜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아까 말했던 것처럼 단서가 하나도 없으니까. 만약 범인이 조금이라도 깊게 생각했다면 단서를 조금 남겼을테지. 나는 오히려 단서가 하나도 나오지 않아서 더 다크 엘프 쪽에 힘이 실리는구나.”
데스칼은 제국이 조사했음에도 불구하고 단서가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는 부분을 단서로 잡았다. 세실리는 그의 말을 듣고 납득이 되어 고개를 끄덕거렸다.
마족과 다크 엘프는 여태까지 큰 접점이 없었다. 하지만 오늘로서 접점이 생기게 되었다.
초고 도난 사건은 인간뿐만 아니라 마족의 분노를 키우기 충분했다. 제논 일대기는 마족의 염원을 이루게 해준 보물 중의 보물, 다시 말해 ‘성유물’이나 다를 바가 없었으니.
마족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초고를 찾아 주인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일종의 ‘사명감’을 띌 수밖에 없다. 실제로 헬리움의 결사단체 ‘리퍼’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희가 반드시 돌려드릴게요. 은인.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세실리는 초고를 돌려받은 아이작의 모습을 상상했다.
진심으로 기뻐하면서 자신에게 고마워하는, 귀엽고도 사랑스러운 소년의 모습을.
상상만 했는데도 너무 행복하여 몸둘 바를 모를 것 같았다.
“하아…”
“…?”
그런 세실리의 속마음을 전혀 모르는 데스칼은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