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the Life of a Demon RAW novel - Chapter (11)
마족답게 사는 법-11화(11/385)
마족답게 사는 법 11화
011 사공이 많으면 (1)
카드가 아르놀트의 손을 떠나 하늘 높이 치솟았다.
학생들은 카드가 흩어지는 방향대로 각자 나뉘었다.
학생들이 떠나고 난 뒤 출발한 루시어스는 학생들을 피해 깊숙한 곳에 몸을 숨겼다.
‘이렇게 혼자 다니는 것도 오랜만이군.’
하멜과 만난 후로는 혼자 시간을 보내는 일이 드물어졌지.
그가 눈을 나른하게 감았다가 떴다. 그리고 울창한 숲의 나무 사이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진한 옥빛을 머금은 잎사귀들과 길게 뻗어 오른 황토색 가지들. 그 사이로 내리쬐는 햇볕과 청량한 숲의 기운.
‘날씨도 화창하니 기분이 좋네.’
루시어스가 옅게 웃고는 땅을 발로 가볍게 건드렸다.
지면을 타고 파문이 일어나듯 순식간에 마기가 숲 전역으로 퍼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학생들과 카드의 위치가 루시어스에게 전달되었다. 곧이어 가장 가까이에 있는 카드 하나를 찾을 수 있었다.
‘뭔가 느껴지긴 하는데, 정확히 무슨 구조인진 모르겠군. 아르놀트 선생이 단단히 힘을 쓴 모양이야.’
카드의 앞뒤를 살펴보곤 교복 안쪽 주머니에 갈무리했다. 그리곤 손짓 몇 번으로 은신 결계를 펼쳐 두었다.
‘우선은 첫 충돌이 일어나면 움직일까. 두세 시간쯤 지났을 때가 적기겠지.’
학생들이 대부분의 카드를 찾고, 서로의 카드를 뺏거나 동료를 늘리고자 움직일 때가 기회였다.
자리를 확보한 뒤엔 구근 식물을 하나 소환했다.
동그란 뿌리를 따라 줄기가 자라났고, 줄기 끝에서 꽃봉오리가 맺히더니 안에서 푹신한 솜이 터졌다.
그다음으로는 넝쿨을 엮어 테이블을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향이 좋고 심신 안정에 효과가 있는 식물들을 곁에 소환하자 마치 숲속 정원에 온 것 같은 풍경이 되었다.
‘향긋한 차라도 있으면 더 좋겠지만, 어쩔 수 없나?’
입이 심심해진 루시어스가 만개한 꽃을 한 송이 따 입에 넣었다.
꽃꿀의 달콤함이 사르르 입안에 녹아내렸다.
“느긋하게 실력이나 구경해 볼까.”
* * *
“루시어스는 대체 무슨 생각인 걸까요?”
나뭇가지에 걸린 카드 한 장을 입수한 레이얼이 땅으로 포르르 내려왔다.
키안이 레이얼의 몸을 받아 주며 미간을 찡그렸다.
키안 또한 루시어스의 생각을 종잡을 수 없었다.
“포기한 걸까요?”
“그렇겐 안 보였다.”
그가 고개를 저으며 곧장 부정했다.
그리곤 수업이 시작되기 전 루시어스가 했던 말을 되새김질해 보았다.
어차피 다 카드를 빼앗길 거라고 했었다.
선생님의 말씀을 곱씹어 보라고 하기도 했다.
‘포기했다면 혼자 다니려 하지는 않았겠지. 협력 요청을 받아들였을 거야.’
고민하던 키안이 작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자신이 있는 게 아닐까.”
“자신이요?”
“수업을 완벽하게 마칠 자신.”
레이얼이 기죽은 표정으로 입을 꾹 다물었다.
레이얼은 영악한 마족이었다. 눈치가 빠르고 계산에 능해 언제나 상황을 주도해 왔다.
그런 그에게 루시어스는 지금껏 만나 보지 못한 변수였고, 넘고 싶은 장애물이었다.
“저는 루시어스를 잘 모르겠어요. 약한 건지, 강한 건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자신들이 가진 여섯 장의 카드.
키안은 새삼스레 그것들이 천근만근 무겁게 느껴졌다.
‘그 녀석, 아마 카드를 뺏으러 다니겠지.’
루시어스에게서 제대로 카드를 사수할 수 있을까?
머릿속으로 그의 실력을 가늠한 키안이 고개를 저었다.
날고뛰는 실력의 신입생 중, 루시어스는 실력을 가늠하기 힘든 유일한 학생이었다.
키안의 침묵이 더욱 불안했는지 레이얼이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레이얼.”
그가 레이얼의 머리 위로 손을 턱 올렸다.
동그란 두 눈이 크게 뜨였다.
키안은 자신을 올려다보는 그의 머리를 꾹꾹 누르듯 쓰다듬어 주었다.
“너무 깊게 생각하지는 마라. 문제를 푸는 방법은 하나뿐만이 아니라고 네가 말했잖아.”
“키안…….”
“널 믿고 있어.”
그 말에 레이얼의 눈매가 보기 좋게 휘었다.
이내 진정을 찾고 웃는 레이얼을 바라보며 키안이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레이얼이 크게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씩씩하게 외쳤다.
“맞아요. 저 더 힘낼게요!”
쫑긋.
그때, 키안의 둥근 귀가 먼 곳의 소음을 잡아냈다.
키안이 레이얼에게 낮게 속삭였다.
“아무래도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 같다.”
* * *
루시어스는 학생들이 충돌할 때쯤 아늑한 공간을 정리하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적당히 떨어진 곳에서 나팔 식물을 소환하자 이야기를 나누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쪽은 이리누슈카였다.
‘이리누슈카가 찾아낸 카드는 5장인가…….’
아르놀트가 만들어 낸 카드는 그의 영향을 받아 기척이 약하다.
혼자서 단시간에 5장이나 카드를 찾아낸 학생은 이리누슈카가 유일할 테지.
루시어스의 입매가 위로 슬며시 올라갔다.
‘반대쪽 실력도 나쁘지 않아.’
이리누슈카를 막아선 3명의 학생들도 총 5장의 카드를 가지고 있었다.
“안녕?”
루시어스가 저들의 카드를 확인하는 사이, 푸른 불꽃을 다루는 위습 일족의 에스프가 이리누슈카를 향해 인사를 건넸다.
“내 이름은 에스프라고 해.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 이리누슈카.”
에스프는 경계심을 없애려는 듯 두 손바닥을 펼쳐 빈손을 보여주며 말했다.
“난 너랑 싸울 생각은 없어. 같은 반이 됐는데 첫날부터 으르렁거릴 순 없잖아. 웬만하면 친해지고 싶어.”
“같이 다니자는 건가……?”
“맞아. 나는 아르놀트 선생님이 처음에 말씀하셨던 은신과 탐색이라는 이번 수업 주제는 미끼라고 생각해. 아마 진짜는 동료를 포섭하는 능력을 테스트하는 게 아닐까?”
에스프의 말에는 자신감이 있었다.
이리누슈카는 자세를 풀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일리가 있는 의견이라 동감이 되기도 했다.
“최대 10명까지 팀을 꾸려서 카드를 모아야 하는 거지. 아마 팀 인원은 적을수록 좋을 거야. 카드를 많이 모으면 좋다고 했으니까.”
“확실히…….”
이리누슈카가 고갯짓을 보이자, 에스프는 신나서 말을 이었다.
“그렇게 동료와 힘을 합쳐 카드를 모으고, 균등하게 배분해서 수업을 마쳐야 해.”
“음…….”
“요즘 높은 곳에서도 팀워크를 중요시하는 훈련을 많이 하는 추세라고 알고 있거든. 어때? 너도 점수를 잘 받고 싶지? 날 따라오면 좋은 점수를 보장해 줄게.”
한편 그들의 대화를 엿듣고 있던 루시어스도 고개를 끄덕였다.
‘소식이 빠른 학생이군. 나름의 설득력도 있고.’
에스프의 말대로 요즘 마왕군에서는 개인의 실력보다 팀워크를 중요시하는 훈련을 해 왔다.
그러나 루시어스가 생각하는 오늘 수업의 정답은 달랐다.
‘수업 주제를 해석하려는 시도는 나쁘지 않아. 답을 맞히지는 못했지만, 노력은 합격점이다.’
팀을 꾸리고 다른 학생들에게서 카드를 빼앗아 승리를 거머쥐는 것은 간단하다.
최대한 강한 동료를 많이 포섭하면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순히 팀워크를 알아보는 시험이었다면 사전에 아르놀트가 팀을 짜 주었을 것이다.
“지금껏 학생들에게 왜 점수를 짜게 줬는지 알겠어.”
루시어스가 숨을 옅게 내쉬었다.
아르놀트는 학생들에게 너무 바라는 게 많았다.
‘이러니 높은 점수를 받는 학생이 없는 게 당연하지.’
그는 매번 가르치고 싶은 걸 꼭꼭 숨겨 놓고는 보물찾기하듯 찾으라 한다. 그러니 많은 학생이 수업의 의미를 제대로 헤아리지 못한다.
“뭐, 나도 이 수업이 마음에 들었으니 다를 게 없나.”
루시어스가 자신의 목 뒤로 과량의 마기를 주입했다.
갑작스러운 자극에 스파크가 일어나던 주박이 얼마 지나지 않아 파스스 흐트러졌다.
‘이번에는 제대로 합격시킬 수밖에 없게 해 주지, 아르놀트.’
루시어스는 아르놀트가 바라는 가장 좋은 결과를 이끌어 낼 생각이었다.
그의 뒤통수가 좀 얼얼할 정도로 완벽하게.
“적당히 실력 있는 학생처럼 보여야 할 텐데.”
루시어스가 기지개를 쭉 켜고는 손가락을 한 번 까딱였다.
직후 학생들이 서 있는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땅울림을 느낀 이리누슈카가 에스프에게 외쳤다.
“피해!”
“뭐, 뭣! 윽!”
“공격이다! 누구지?”
“아무것도 못 느꼈는데!”
파파파팍!
맨땅을 뚫고 가시가 솟아올랐다. 이리누슈카는 땅을 박차며 옆에 있는 나뭇가지 위로 올라갔다.
에스프와 동행했던 쌍둥이 마족, 훌른과 베른이 습격자를 찾기 위해 마기장을 펼쳤다.
그러나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자 당황해 허둥거릴 수밖에 없었다.
에스프가 따지듯 큰 목소리로 외쳤다.
“훌른, 베른! 제대로 경계하고 있는 거 맞아?”
“하고 있어, 하고 있는데……!”
“못 찾겠어. 여긴 우리 외엔 아무도 없다고!”
그들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루시어스의 공격이 이어졌다.
돌출했던 가시가 다시 밑으로 숨어들었다.
하지만 잠잠해지기도 잠시, 땅이 갈라지며 촉수 같은 넝쿨이 등장했다.
넝쿨은 채찍처럼 휘어지며 주변에 닿는 것을 옭아매기 시작했다.
이리누슈카가 힘껏 뛰어 다른 나무로 옮겨 탔다.
반면 에스프는 피하는 대신 자신을 덮치는 넝쿨을 불태우며 소리쳤다.
“이리누슈카, 저거 보이지! 이렇게 위험한 숲인데, 같이 다니는 게 너한테도 좋지 않겠어?”
그녀의 시선이 느리게 에스프에게 옮겨 갔다가, 다시 자욱이 일어난 흙먼지 사이로 향했다.
낯설지 않은 마기.
어째서 눈치채지 못한 거지? 이만큼이나 가까이 접근해 있었는데…….
“아무래도, 늦은 것 같다.”
이리누슈카는 흙먼지 안에서 느껴지는 익숙한 마기에 적잖이 당황하고 있었다.
그녀가 알고 있지만, 생각지도 않았던 인물의 등장이었다.
“루시어스…… 켄드릭.”
이리누슈카의 중얼거림에 에스프의 입이 떡하니 벌어졌다.
보기 드문 드라이어드라는 말에 한 번 지나치듯 눈에 담았던 기억이 있었다.
다만 여기서 그 이름이 등장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저 녀석, 드라이어드 아냐? 이걸 저 녀석이 했다고?”
넝쿨이 휘감길 때마다 나무가 한 그루씩 맥없이 무너졌다.
저토록 강력한 공격을 하고 있는데도 루시어스는 지친 기색이 없었다.
에스프가 경악을 감추지 못하고 루시어스를 노려보았다.
“내가 왜 여기 나타났는지는 설명 안 해도 되겠지?”
“너, 우리를 전부 적으로 돌릴 생각이야?”
“글쎄.”
루시어스가 발을 살짝 구르자 가시넝쿨이 길게 솟았고, 손가락을 튕기자 넝쿨의 움직임에 폭발식물 레로가 터졌다.
펑!
“크윽.”
이리누슈카와 에스프에게 타격을 입히기는 했지만, 뒤에서 또 다른 기척이 느껴졌다.
루시어스가 고개를 돌렸다.
폭발로 생긴 연막을 틈타 뒤로 돌아온 쌍둥이 마족과 눈이 마주쳤다.
‘나름 머리를 썼지만, 뻔하군.’
루시어스가 빠르게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또 하나의 넝쿨이 나타났다. 넝쿨이 휙 꺾이며 쌍둥이들을 쳐내 버렸다.
퍼억!
묵직한 타격감이 느껴지는 걸 보니 제대로 맞은 모양이었다.
‘뒤를 잡았다고 방심하면 안 되지.’
화르륵, 화르륵.
이어서 양옆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루시어스가 뒤로 몸을 날렸다.
그가 있던 자리로 왼쪽에서 주홍 불꽃이, 오른쪽에서 푸른 불꽃이 날아왔다.
‘나이치곤 제법.’
펑, 우르르릉!
피식 웃으며 이파리가 넓은 활엽 식물을 소환했다.
루시어스 대신 열기를 막아 낸 잎이 순식간에 말라비틀어졌다.
루시어스가 주변을 한번 둘러보며 혀를 찼다.
“쯧, 숲이 엉망이 됐네.”
숲의 정결한 기운이 열기에 휘말려 혼탁해졌다.
그가 적잖이 아쉬워하며 까맣게 말라붙은 나무들을 돌아봤다.
연기가 흩어지자, 팔짱을 낀 채 서 있는 루시어스와 쓰러진 쌍둥이 마족의 모습이 드러났다.
에스프가 경악하며 외쳤다.
“말도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