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the Life of a Demon RAW novel - Chapter (111)
마족답게 사는 법-111화(111/385)
마족답게 사는 법 111화
111 루아우 축제 (5)
“축제를 시작하자! 먹고, 마시고, 즐겨라!”
“와아아!”
“오늘, 술 창고를 개방한다!!”
“이레네 님 만세에엑!”
루아우 솥 앞에서 축제 개최를 맞이해 가장 들뜬 듯한 표정인 이레네가 자신의 술 창고를 개방하겠다고 선언했다.
그 말에 모인 마족들이 모두 흥분해 이레네의 이름을 연호하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레네의 술 창고에는 그녀가 모아 둔 맛 좋은 술들이 한가득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드워프가 물처럼 마신다는 맥주부터 시작해 독하기 이를 데 없다는 화산의 기운을 담은 증류주까지. 기호에 따라 마실 수 있다는데 환영하지 않을 리 없었다.
물론 아델라이트같은 어린아이들을 위한 특제 음료수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그녀는 이런 쪽으로는 꽤 준비성이 좋았다.
그런데 그건 그렇고.
‘전하랑 더미트는…….’
두 분 다 안 오시는 건가?
축제가 벌써 시작되었는데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걸 보면 역시 업무가 바빠 오지 못하나 보다. 한 명은 대장군이며, 다른 한 명은 마계를 통치하는 마왕이니까.
루시어스가 조금 시무룩하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멜은 마족들의 축제를 좋아할 리 없으니 그렇다 쳐도 두 분은 역시 와 주시기를 바랐는데.
괜히 기대했나 보다.
머쓱해져서 뺨을 긁적이는데 익숙한 마기의 일렁임과 함께 안에서 잘 아는 모습들이 우르르 등장했다. 그걸 발견한 루시어스가 들뜬 표정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더미트!”
계속 기대하고 있던, 반가운 얼굴이었다. 옆으로 시선을 돌리자 여전히 금가루를 뿌려 놓은 것처럼 반짝거리는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마왕이 보였다.
옆에는 하멜과 더미트도 있었다.
마왕이 빙긋 눈웃음 지으며 루시어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미안하다. 조금 늦었지?”
“아니에요. 방금 막 시작했거든요.”
물론 그들이 늦은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마왕성의 직속 재봉사인 아라크네에게 맡겨 둔 정복이 아슬아슬하게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사흘 내에 세 벌의 정복을 만들어오라는 마왕의 터무니없는 명령이었지만, 아라크네는 열심히 실을 잣고 천을 만들며 각자에게 어울리는 최고의 옷을 만들기 위해 애썼다.
그 결과가 바로 이것이었다.
마왕은 은근히 뭔가 원하는 듯한 표정으로 루시어스를 바라보았다. 이렇게 차려입고 왔으니 오늘 멋있다는 말 한마디라도 듣고 싶었던 탓이다.
물론 객관적으로 봐도 오늘의 마왕은 한창 축제가 시작되어 바쁜 분위기 속에서도 시선이 모일 만큼 매력적이었다.
축제라는 활동적인 자리이니만큼 상의는 품이 넉넉한 하얀 셔츠, 하의는 허리까지 감싸는 검은 하이웨스트였다. 그리고 바지와 마찬가지로 검은색의 높지 않은 구두를 신었다.
품위를 지키기 위해 한쪽 어깨에 진한 붉은색 망토를 걸치기도 했다.
옷에 악세서리가 없고 디자인이 간소한 대신, 그의 화려한 외모를 장신구가 돋보이게 했다. 특히 양쪽 귀에 걸린 은색 귀걸이가 그가 움직일 때마다 찰랑거리는 소리를 냈다.
하지만 루시어스는 그런 마왕을 보고는.
‘정말 제대로 즐길 생각이신가 보네.’
그렇게 생각하기만 할 뿐이었다.
저렇게 차려입고 온 이유는 역시 매혹의 종족이라는 뱀파이어답게 누군가를 홀리기 위함이 분명했으니까.
전하께 홀릴 마족들이 조금 불쌍해졌다.
루시어스는 잠시 누군가를 측은해하는 눈빛을 마왕에게 보냈다. 마왕은 자신이 의도하지 않았던 루시어스의 반응에 속으로 무척이나 당황스러워하고 있었다.
마음에 안 드나?
설마 안 어울리나?
나이 먹고서 유난 떤다 생각하나?
마리엘라의 부재가 이렇게까지 큰 타격이 된 적은 없었는데. 마왕이 눈물을 삼키며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루시어스는 그런 마왕의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계속했다.
“그러고 보니 마리엘라 누님은요?”
“마리는 자느라 못 왔어. 깨우기가 조금 어려워서 말이야.”
“아, 그렇구나.”
잘은 모르겠지만 마리엘라는 주기적으로 며칠씩 꼭 긴 잠을 자고는 했다. 그녀의 지병과 연관이 있는 것 같은데 자세히는 묻지 않아 루시어스도 이유는 잘 모르고 있었다.
그녀도 왔으면 좋았겠지만, 그럼 축제에 마왕과 대장군에 더해 과반수의 장로가 집합하게 되는 셈이었다.
회의 때에도 보기 힘든 얼굴들을.
괜히 시선만 모였을 테니 아쉽지만 나쁘지는 않은 결과였다. 루시어스가 더미트와 마왕을 안내했다.
“우선 루아우 솥에 재료부터 넣으러 가요. 재료는 가지고 오셨죠?”
“축제 사흘 전에 초대장을 받아서 적당한 걸 챙기느라 꽤 고생했다.”
마왕이 투덜투덜 불만을 말했다. 하지만 미리 줬으면 미리 주는 대로 한참을 놀렸을 것 아닌가. 그건 자기 자신의 업보였다.
“말씀은 이렇게 하셔도 열심히 준비하셨단다. 자, 같이 가 보자꾸나.”
“그럴까요?”
더미트도 마왕 못지않게 차려입고 온 건 똑같았다. 다만 마왕과는 달리 아주 차분한 느낌이었다. 대장군의 명성 그대로 같은 묵직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짙은 청색의 원단은 더미트의 잿빛 머리카락과 참 잘 어울렸다. 정복에 놓인 은색 자수와 버튼들도 세련되며 고급스러웠다.
넥타이를 고정하는 핀에는 깊은 색의 사파이어가 박혀 있었다. 무릎 밑으로 내려올 정도로 긴 로브형의 정복이었다.
이렇게 챙겨 입은 적이 없으신데.
초대장 때문에 열심히 차려입고 오셨을 거라 생각하니 아버지임에도 너무 귀엽게만 보였다. 루시어스가 옅게 미소 지었다.
“더미트, 오늘 무척 멋있네요.”
“그…… 그러니?”
“네.”
“루시어스 님, 저는요?”
전하께도 그 말을 해주는 게 어떻겠니. 차마 하지 못할 말을 삼키는데 하멜이 불쑥 끼어들며 물었다. 루시어스가 한숨을 작게 내쉬고는 하멜의 얼굴을 밀어서 치웠다.
“너는 각오하기나 해라.”
“네?”
“제대로 된 샌드위치와 칠면조 다리 구이를 먹게 해 주지.”
루시어스의 말에 눈을 꿈뻑이던 하멜이 빙긋 웃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가볍게 숙이며 답했다.
“기대하겠습니다. 물론…….”
“……?”
“어떤 음식보다도 당신이 제일 맛있지만요. 혹시 음식에 피 몇 방울 떨어트려 주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하멜. 좀 때와 장소를 가려라.”
“어떻게 그럽니까. 지금 주인 덕에 2주간 금식 상태라 딱 미쳐 버릴 것 같은데.”
“평소대로네.”
너무한 말씀을.
하멜이 어깨를 으쓱였다.
루아우 솥은 무척 거대했다. 날 수 있는 마족들은 높이 날아올라 가져온 재료들을 풍덩풍덩 넣었다. 날지 못하는 마족들은 차례대로 계단을 타고 올라갔다.
레녹스나 마왕, 그리고 레이얼은 날개를 펴고 포르르 날아갔다. 루시어스는 더미트와 하멜, 키안과 함께 계단을 천천히 올라갔다.
“무슨 재료를 가지고 오셨어요?”
“전에 레온타인 장로님께서 보낸 물품 중에 물고기가 있더구나. 그걸 좀 가져왔단다. 하멜이 상하기 전에 치워야 한다고 얼마나 난리던지.”
“그런 그렇죠. 하멜, 너는?”
“저야 뻔하지 않겠습니까.”
하멜이 자신의 바구니를 꺼내 루시어스에게 보여 주었다. 창고 안에 있던 노란색 과일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레몬이었다.
이 녀석이 정말 물고 뜯고 즐기다 못해 우려먹을 정도로 놀리려 하는구나. 루시어스가 하멜을 불만스럽게 바라보았다. 하멜이 시선을 슬쩍 피하며 레몬을 솥 안으로 집어넣었다.
껍질도 까지 않은 통레몬이 동동 떠다녔다. 레몬을 넣기만 했을 뿐인데 벌써부터 맛이 어떻게 될지 불안해졌다.
더미트는 고민도 하지 않고 가져온 물고기들을 와르르 쏟아부었다. 루시어스는 그 광경을 바라보다가 옆에서 고기를 붓는 키안을 바라보았다.
물고기에 짐승고기라니. 새고기만 넣으면 육해공 산해진미가 다 들어간 기상천외한 스튜가 될 것 같았다. 이 많은 마족 중 누군가는 새고기를 넣겠지.
슬쩍 주변을 둘러보니 정말 ‘먹을 수 있기만 한’ 재료들을 넣는 놈들이 많이 보였다.
먹고 죽지만 않으면 되는 거 아니냐며 웃는 놈들이 태반이었다.
‘괜찮은 걸까.’
만일을 대비한 응급구호반이 한쪽에 자리 잡은 걸 보니 더 불안해졌다. 걱정하면서도 루시어스가 자신이 가지고 온 피리커스 나무를 퐁당퐁당 빠트렸다.
재료를 다 집어넣고 내려오자 먼저 재료를 넣고 온 레녹스가 루시어스에게로 다가왔다.
그의 손에는 익숙한 와인병이 하나 들려 있었다.
레녹스가 뭘 가져올지 궁금하기는 했는데, 설마 저걸 가져올 줄이야. 루시어스가 허어, 하고 작게 탄식하며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설마 뤼디거의 와인을 가져온 거야?”
“아, 이건……. 별거 아니다.”
레녹스는 제 손에 들려 있는 와인을 슥 등 뒤로 숨겼다.
와인병에 붙어 있는 빈 라벨지 한 편에는 와인의 재료가 될 마족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루시어스 켄드릭」
이라고 말이다.
그의 뒤에 서 있던 마왕이 라벨지에 있는 이름을 발견하고는 옅게 웃었다.
뤼디거 녀석의 수집욕이 얼마나 귀찮고 성가신지는 그 또한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감히 저런 걸 창고에 보관하고 있었다니. 레녹스가 와인병을 발견하고는 없애 버릴 생각으로 가져온 모양이었다.
뤼디거의 아들이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할 정도로 깜찍한 반항이었다.
‘이 녀석, 마음에 드네.’
마왕의 시선이 와인을 들고 있는 그의 오른손으로 향했다. 레녹스는 양손에 검은색 장갑을 끼고 있었다.
‘아카데미에서 만났을 때는 분명 맨손이었는데.’
패션을 위해서 장갑을 낀 걸까, 아니면 뭔가를 숨기고 싶은 걸까?
마왕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걸렸다. 참 한결같이 거짓말을 못 하는 루시어스가 마냥 귀여웠다.
마왕은 우선 레녹스가 들고 있는 와인병을 빼앗았다. 그리고 마력을 써서 와인병을 가루도 남지 않도록 잘게 부숴 버렸다.
레녹스는 그런 그의 행동에 잠시 당황했다. 시선이 마주치자 빙글 웃는 걸 보니 아무래도 와인병 라벨지에 쓰여 있던 이름을 본 모양이었다.
루시어스가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마왕이 왜 갑자기 힘을 사용하면서까지 와인병을 없애버렸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잠시 눈치를 보던 레녹스가 한숨을 작게 내쉬며 설명했다.
“사실 그게 뭐였냐면…….”
“……?”
“……네 이름이 적혀 있는 와인병이다. 꽤 옛날부터 창고에 있었지.”
“아아…….”
루시어스가 뭔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번에 만나러 갔을 때도 준비해둔 와인병을 뻔뻔하게 들이밀었지 않은가. 아마 그 와인병이겠지.
“아버지 덕에 뤼디거 장로님을 뵌 적이 있지. 아마 그때 만들어두시지 않았을까 싶은데.”
마왕의 눈치를 보며 슬쩍, 레녹스가 아직 자신이 장로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처럼 은근하게 돌려 이야기했다. 레녹스는 그랬을 것 같다며 장단에 맞춰 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왕은 뻔히 보이는 수작질을 느긋하게 감상하고 있었다. 둘 다 뭔가를 숨기는 건 잘하지 못하는구나.
그 주군에 그 종자답다.
마왕이 흐뭇한 웃음을 숨겼다.
“아무튼, 와인은 아니고 와인을 만드는 데에 필요한 베이스다. 정기가 응축된 물이지. 스튜에 들어가면 꽤 괜찮을 것 같아서 가져왔다.”
“뤼디거 님께서 직접 준비한 베이스면 좋은 재료가 되기는 하겠어.”
“그렇지. 너는 나무 같은 걸 넣던데?”
“피리커스다. 스튜의 풍미를 깊게 만들어 줄 거야.”
“좋은 재료군.”
루시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축제의 분위기를 훑고 있는 마왕을 올려다보았다.
“전…… 그, 어…….”
그가 준비한 재료가 무엇인지 궁금해 물어보려고 했던 루시어스가 입을 꾹 닫았다. 무어라 불어야 할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변장하고 오셨으니 전하라고 부를 수는 없고. 그렇다고 루겔 님이라고 본명을 부를 수도 없고. 달리 가명을 쓰지도 않으니…….
그렇다고 저기요, 여기요, 하며 불러댈 수도 없지 않은가.
축제를 살펴보던 마왕은 루시어스의 꾸물거림을 알아챘다. 그 고민이 귀여워 모르는 척 루시어스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
한참 고민하던 루시어스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대…….”
도저히 못 부르겠다.
입술만 살짝 달싹일 뿐, ‘대부님’이라는 단어가 입 밖으로 나가지를 않았다. 마왕은 루시어스가 저를 뭐라고 부르려 이러는지 기대하고 있었다.
꾸욱.
안 되겠다며 대신 루시어스는 마왕의 소맷깃을 가볍게 잡아당겼다.
마치 여기 좀 보라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