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the Life of a Demon RAW novel - Chapter (113)
마족답게 사는 법-113화(113/385)
마족답게 사는 법 113화
113 루아우 축제 (7)
대작을 지켜보던 마족들이 환호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이레네 님 만세! 만세다!!”
“하하하하, 그럼 그렇지! 내가 딱 보고 얘기했잖아. 분명 열 잔도 못 마실 거라고!”
“호기롭게 나서더니 맥을 못 추는구만. 이야, 저렇게 술 못 마시는 놈도 오랜만에 본다!”
휘익! 휘이익!
여기저기서 휘파람과 박수 소리가 퍼졌다. 이레네는 승자의 여유를 만끽하며 관중들에게 손짓하고 있었다.
껄껄 웃는 마족들 사이를 뚫고 루시어스가 한숨을 내쉬며 쓰러진 마왕에게 다가갔다.
대체 체통도 잊고 뭘 하시는 건지.
“이만 모셔가도 될까요?”
루시어스가 이레네를 향해 물었다. 그녀는 샴페인 한 잔을 더 쭉 마시더니 빈 잔을 자신의 머리 위로 툭툭 털었다. 한 방울도 떨어지지 않았다.
“기대하던 대작이 일찍 끝나니 아쉽구나. 하지만 상대가 상대였으니 어쩔 수 없지. 만족할 테니 모시고 가거라.”
“감사합니다.”
루시어스가 정신을 잃은 마왕을 부축하고 자리를 벗어났다. 마왕을 데려가는 루시어스의 입가에 미소가 슬그머니 드리워져 있었다.
‘정말 못 말리신다니까.’
루시어스는 마왕을 미리 설치되어 있던 의료실로 데려갔다. 과음한 것뿐인지라 그냥 침대에 눕혀 놓고는 깨어나는 걸 기다리기로 했다.
간이식으로 쳐진 천막 뒤로 흥겨운 노랫소리가 울렸다.
루시어스는 모두 축제를 즐기라며 천막 밖으로 쫓아내고 나서 마왕이 잠들어 있는 침대 옆에서 차 한 잔을 마시며 요리책이나 슬쩍 넘겨 보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있었을까.
“으음…….”
작게 앓는 소리와 함께 마왕이 눈을 떴다. 주량치고는 거하게 마셨으니 오늘 내로 눈을 뜨기는 할까 걱정스러웠는데, 역시 마왕인지라 회복이 빠른 모양이었다.
마왕은 눈을 꿈뻑거리다가 상황을 파악하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몸을 일으킨 그가 머리를 가볍게 쥐어 잡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태어나서 이렇게 술을 많이 마신 건 처음이었다. 숙취가 불쾌할 정도로 골을 울렸다.
루시어스는 옆에서 조용히 꿀차를 한 잔 타서는 그에게 내밀었다.
마왕이 루시어스를 흘긋 바라보고는 찻잔을 받아 기울였다.
“무리하셨습니다.”
“……이럴 때도 있는 거지. 축제를 즐기는 방법의 하나가 아니겠나.”
그는 굳이 루시어스 때문에 대작을 받아들였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단지 다짐했던 것보다 빨리 취해 쓰러지고 말았다는 사실이 조금 부끄러워했을 뿐이다.
마왕이 찻잔을 한 번 더 기울였다. 연거푸 술을 마셔서 그런지 속이 쓰렸는데, 달달한 차를 마시니 훨씬 속이 편했다.
“그런데 너는 왜 축제는 안 즐기고 여기서 이러고 있어? 대장군은 어디 가고.”
“더미트는 축제를 즐기라고 밖으로 내보냈습니다. 제가 초대한 손님이니까요.”
“그래도…….”
왠지 훼방을 놓은 기분이었다. 마왕이 미안한 듯 루시어스를 응시하다가 한숨을 작게 내쉬었다. 더미트가 같은 생각을 안 했을 리 없었다. 다만 루시어스의 고집을 꺾지 못했을 뿐이겠지.
그래도 눈을 뜰 때까지 곁에 있어 주다니 조금 감동적이기는 하다. 그냥 내버려둬도 괜찮았을 텐데.
“뭔가 드시겠습니까?”
“음……. 그러고 보면 정작 축제 음식은 못 먹었군. 다른 축제도 아니고 루아우인데.”
“스튜는 곧 완성된다고 하니 이것부터 드세요.”
루시어스는 챙겨 두었던 음식을 꺼내 그에게 내밀었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내밀어지는 음식에 마왕이 슬쩍 루시어스를 바라보았다.
루시어스가 뺨을 긁적였다.
“제가 직접 만들었습니다.”
“……네가?”
“정확히는 친구들의 도움을 빌렸지만요. 괜찮으면 드셔 보세요.”
“…….”
마왕이 말을 잃고 루시어스와, 루시어스가 내민 음식을 번갈아서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샌드위치부터 한 번 먹어 보았다.
조금 차가웠지만 먹을 만했다. 아니, 무척 맛있었다. 누가 만든 음식인데, 맛이 없을 리가 없지!
순식간에 샌드위치를 먹어 치운 마왕이 칠면조 다리 구이도 한 번 먹었다. 입가에 실없는 미소가 퍼졌다. 루시어스가 옆에서 뭔가를 기대하듯 눈을 빛내며 저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떤가요? 입에 안 맞으시면…….”
“무슨 말을, 무척 맛있다. 네가 했다고는 못 믿겠어.”
마왕은 이제야 루시어스가 그렇게 제 앞에서 쭈뼛거렸음에도 초대장을 보낸 진짜 이유를 알아챘다.
직접 만든 요리를 먹여 주고 싶었구나. 이렇게 따로 접시까지 준비해놓고, 깨어나기를 기다리면서까지.
얼마 전에 저를 쏙 빼놓고 소풍을 갔다며 심술을 부렸던 자신이 부끄러워질 정도였다.
맛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루시어스가 다시금 조심스럽게 물었다.
“무리해서 맛있다고 말씀해 주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른 음식들도 많으니…….”
“누가 해 준 건데 맛이 없겠니.”
“하지만…….”
“두 번 말하게 하지 말아라.”
마왕이 루시어스의 머리 위에 커다란 손을 턱 얹어서 슥슥 쓰다듬었다. 루시어스가 머리가 헝클어진다며 아주 작은 목소리로 투덜거리며 고개를 푹 숙였다.
고개를 아래로 떨어트려 표정을 숨기기는 했지만, 귀 끝이 붉어지는 것은 도무지 숨길 수가 없는 모양이다.
마왕은 루시어스의 귀가 붉게 달아오르는 걸 지켜보다가 두 손으로 루시어스의 뺨을 잡아 들었다. 루시어스가 조금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저를 노려보았다.
그가 웃음을 삼키며 말했다.
“음식도 맛있고, 덕분에 오래간만에 즐겁게 놀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라. 고맙다.”
“……그러셨다면 다행이에요.”
“괜히 내 옆에 있느라 축제를 못 즐긴 게 아닌지 걱정이구나. 괜찮은 거냐?”
루시어스가 고개를 저었다.
혹시 입에 맞지 않을까, 업무 때문에 바쁜 와중에 괜히 초대한 것이 아닐까 무척 걱정스러웠다. 그런데 그가 이렇게 말해 주니 참 다행이었다.
어깨에서 짐 하나를 내려놓은 기분이다. 몸에 힘이 축 풀리는 것이 느껴졌다. 긴장이 풀린 모양인지, 루시어스는 저조차도 모르도록 헤프게 웃었다.
“즐거우니 걱정하지 마세요.”
“…….”
“……?”
“…….”
“……전하?”
마왕이 갑자기 아무런 말도, 행동도 없이 그대로 굳어 버렸다. 평생 피어나지 않을 것 같았던 꽃봉오리가 조금씩, 아주 조금씩 열리는가 싶더니 어느새 이렇게 만개해 버렸다.
평생 두 번은 보지 못할 것 같은 웃음에 말문이 절로 막혔다.
마왕은 눈을 크게 뜨고 꿈뻑이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성큼성큼 천막을 걷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당장 더미트를 찾았다.
루시어스가 당혹스러워하며 그의 뒤를 따라갔다. 갑자기 왜 저러는지 알 수가 없었다.
“더미트! 더미트!”
“……?”
아이들과 어울리며 축제를 즐기고 있던 더미트가 마왕의 다급한 목소리에 의아해하며 고개를 돌렸다. 마왕이 더미트에게 다가가더니 두 어깨를 붙잡고 말했다.
“국경일이다.”
“……예?”
“오늘을 국경일로 정하자!”
이게 대체 무슨 말인가.
뜬금없는 말이었지만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다. 더미트가 오랜 기간 마왕을 보좌해 오던 대장군다운 침착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잠깐 기다리십시오. 그게 대체 무슨 말씀입니까.”
“명령이다, 더미트! 우선 마왕성 주고를 개방해라. 취하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는 날이다!”
“진정하십시오. 대체 무슨…….”
“루시어스가……. 루시어스가 웃었단 말이다. 그것도 엄청 활짝!”
“……예?”
황급하게 뒤따라오던 루시어스의 발걸음이 우뚝 멈추었다. 지금 자신이 제대로 들은 것이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뭘 정해? 뭘 개방해?
그리고 그 이유가 뭐라고?
아니, 여기까지 와서 이런 식으로 저를 놀릴 심보이신가?
마왕이 눈을 번쩍 빛내며 더미트와 시선을 맞추었다. 더미트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게…… 정말이십니까?”
“그럼 거짓말을 하겠나. 지금껏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완벽한 웃음이었단 말이야. 자네가 그걸 봤어야 했는데. 내 지금까지 본 누구보다 아름다웠어.”
“우선 주고를 개방하겠습니다.”
더미트가 냉큼 대답했다.
멈춰 서 있던 루시어스가 성큼성큼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둘의 어깨에 손을 살포시 올려놓았다.
이야기를 나누던 더미트와 마왕이 루시어스를 바라보았다.
“전하.”
“그래, 루시어스.”
“국경일인지 주고 개방인지 뭔지, 마계의 중대사를 겨우 그런 이유로 정하다니 말도 안 됩니다. 장로의 한 자리를 맡은 마족으로서 명령에 불응합니다.”
“……응?”
“전하께서는 참 상냥하십니다. 제가 몸을 푼 지가 좀 오래되었다는 사실은 또 어떻게 아시고 이런 말씀을 하시는지.”
이런, 화났나?
마왕이 더미트에게 흘긋 눈짓했다. 하지만 이미 한 숟가락을 떴던 더미트는 그 새 모르는 척 고개를 돌리며 마왕의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충신도 자식 앞에서는 아비가 된다니까. 마왕이 난감하게 웃으며 루시어스를 바라보았다.
“간만에 샌드백이 좀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마침 눈앞에 딱 좋은 샌드백이 있는 것 같네요.”
루시어스가 빙긋 미소지으며 말했다.
“그렇게 오늘을 국경일로 정하고 싶으시다면 왕위찬탈이라도 해드리겠습니다. 새로운 마왕의 즉위일이면 명분도 서겠죠?”
“음, 그게 말이야.”
아무래도 단단히 화난 모양이다.
그렇게 웃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들뜬 마음에 소란을 부린 게 잘못이었다.
그냥 조용히 국경일로 선포할걸!
마왕이 그렇게 후회하며 답했다.
“어쩔 수 없나. 알고 있겠지, 루시어스?”
“약한 자는 말이 없다.”
루시어스가 대답했다.
* * *
제대로 화가 난 루시어스는 그대로 마왕에게 덤벼들었다.
물론 결과는 여느 때와 같았지만, 마왕은 루시어스의 성장을 이번에야말로 똑똑히 목도할 수 있었다.
2차 성장을 마치고 난 후의 루시어스는 이미 장로의 한 축을 맡아도 될 만큼 강해져 있었다. 그건 그동안 몇 번이나 상대해 주었던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사뭇 달랐다.
‘성장통 때문이겠지.’
전체적으로는 크게 달라진 부분을 찾기가 힘들었다. 마왕도 직접 맞부딪치고 나서야 알게 되었으니까.
‘육체의 완성도가 달라.’
루시어스의 마기 제어력은 또래는 물론이고 성년이 된 마족들 사이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났다. 2차 성장을 한 몸으로 장로가 되었다는 사실이 그것을 증빙했다.
하지만 그 말은 다시 말하면.
그렇게 마기를 제어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소리와도 같았다.
구스타프에서 성장통을 겪을 때 온갖 물건을 부쉈던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루시어스의 힘은 자기 파괴적일 정도로 강했다.
그런데 성장통을 겪고 난 후이기 때문인지, 루시어스의 제어력에 조금 고삐가 풀린 느낌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고삐를 꽉 잡고 있던 손의 힘을 조금 뺀 것 같다고 해야 하나.
마왕이 턱을 슬며시 매만졌다. 아슬아슬했던 루시어스의 육체, 마기와 혼을 담는 그릇이 성장통을 통해 더 커지고 단단해진 것이 틀림없었다.
대체 얼만큼이나 강해질 생각일까.
어쨌든 루시어스의 성장을 직접 확인할 수 있어 기분이 좋았다.
덕분에 루시어스는 또 사흘은 눈을 뜨지 못하게 된 것 같지만.
루시어스의 친구들에게는 더미트와 레녹스가 적당히 급한 일이 생겨 먼저 가게 되었다고 설명했단다.
그렇게 사정을 변명해야 하는 친구가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뿌듯해 웃음이 나왔다.
“마리, 일어나야지.”
똑똑.
마리엘라의 방에 들어간 마왕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여동생을 깨웠다. 창백한 얼굴로 침대에서 깊은 잠을 자고 있던 그녀의 눈꺼풀이 천천히 뜨였다.
“으음…….”
사락사락.
잠결에 끙끙거리며 뒤척이는 누이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주었다. 마리엘라는 눈을 부비며 겨우 정신을 차렸다.
“오빠……?”
“일주일이나 잤어.”
“그렇구나. 하암…….”
“좋은 아침.”
손가락 끝으로 마리엘라의 앞머리를 슥슥 쓸어 넘겨준 마왕이 그녀의 이마 위에 입을 맞추었다. 그녀가 옅게 웃었다.
“간지러워.”
“몸은 어때?”
“나쁘지 않아. 항상 그렇지 뭐.”
몸을 일으킨 마리엘라가 기지개를 쭉 켰다. 그리고는 마기를 한 번 손바닥 위에 집중시켜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 마리엘라가 방긋 웃으며 마왕을 꼭 끌어안았다.
“자는 동안 무슨 일 없었어?”
“당연히 있었지. 들어볼래?”
“뭐기에 이렇게 기다렸다는 듯이 말하는 거야? 어서 말해 봐.”
마리엘라가 눈을 반짝이며 채근했다. 마왕이 마리엘라가 잠들어 있는 동안 있었던 일들을 자세히 늘어놓기 시작했다.
이렇게 담소를 나누고 있으려니 루시어스의 아기집을 발견했을 때가 떠올랐다.
때는 100년 전.
바하무트의 예언이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