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the Life of a Demon RAW novel - Chapter (120)
마족답게 사는 법-120화(120/385)
마족답게 사는 법 120화
120 카멜르 숲의 아이 (7)
“이, 이럴 수가.”
퓌레를 전부 뱉어낸 루시어스의 눈가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훌쩍, 하고 코 먹는 소리가 나는 걸 보면 눈물이라도 찔끔 흘린 모양이었다.
그렇게까지 먹기 싫었나?
울먹울먹 고개를 푹 숙인 루시어스를 바라보던 더미트가 퓌레를 한 번 먹어보았다.
“으음…….”
“우우, 꼬. 조아.”
“뭔가 문제라도 있나?”
싫어하는 과일이 있었나?
음식 투정을 하지 않고 꽃만 소환해서 먹기에 달리 가리는 게 없는 줄 알았다.
몸에 좋고 맛도 좋은 과일들만 골라 만든 이유식인데 대체 뭐가 문제일까. 더미트가 다시 한 스푼을 먹어보며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어쩔 수 없군. 다른 이유식을 만들어 봐야 하나.”
그렇게 말하자 다시 꽃을 따서 입에 넣던 루시어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마치 또 무슨 이상한 걸 만들려고 하는 거예요! 하고 외치는 듯이.
“우선 재료부터 사러 가야 하는데.”
저택에는 원래 음식 재료들이 많이 쌓여있지 않았다.
요즘 루시어스에게 이유식을 해 주느라 이것저것 쓰기는 했지만, 어린아이가 먹기 좋지 않은 재료들도 많았다.
오랜 기간 내버려 뒀더니 품질이 나빠지기도 했고.
“루시어스. 밖에 나가볼까?”
“바?”
“맘마 사러.”
“으으, 마아마.”
“가자.”
앞치마를 벗어서 한쪽에 걸어 둔 더미트가 루시어스를 안아 들었다. 루시어스는 맘마, 라는 말에 싫은 기색을 보이면서도 더미트의 품에 얌전히 안겨 있었다.
막상 바깥으로 나가자 루시어스는 언제 기분이 안 좋았냐는 듯 휘둥그레한 눈으로 여기저기를 살펴보기 바빴다.
처음으로 보는 저택 밖이 너무나도 신기했다. 다양한 생김새를 사는 마족들이 돌아다니고 있고, 다양한 물건이 전시되어 있었다.
루시어스는 더미트의 어깨너머로 보이는 뭔가를 발견하고는 손을 열심히 뻗었다. 아우, 아우우. 하고 눈을 빛내며 가볍게 칭얼거렸다.
더미트는 가만히 있으라며 아이를 어르고 달랬다. 그리고는 곧장 재료를 사러 이동했다.
처음으로 간 곳은 채소를 파는 상점이었다. 마계 전역의 여러 가지 채소들을 팔고 있었다.
“어서옵…… 이잉? 샤먼이네.”
가게 주인은 더미트를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는 품에 안긴 어린아이를 보고는 조금 안쓰럽게 혀를 쯧쯔 걷어찼다.
샤먼의 아이가 어떤 꼴을 당하는지는 유명한 이야기였으니까.
더미트는 루시어스에게 비술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굳이 그걸 상인에게 입 아프게 설명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저 이유식을 만들 재료를 사러 왔을 뿐이었다.
상인이 잠시 헛기침했다.
“뭘 찾으러 왔나?”
“아이에게 먹일 음식 재료를 사러 왔다. 아이에게 이유식을 먹여야 하는데, 좀처럼 좋아하질 않아서 말이야.”
“으응? 특별히 가리는 거라도?”
“그건 잘 모르겠군.”
더미트는 그렇게 말하며 루시어스의 등을 토닥였다. 생각해보니 루시어스가 먹을 음식이니, 루시어스에게 재료를 선택하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영리해서 어느 정도 말은 알아듣는 것 같으니 재료를 고를 수도 있지 않을까?
드라이어드인 루시어스라면 식물인 채소들을 본능적으로 가려 고를 수 있을 것이다. 시도 때도 없이 꽃을 소환해 먹는 걸 생각하면 가능한 일이었다.
더미트가 안고 있던 루시어스를 내려두었다. 그리고는 채소를 가리키며 말했다.
“자, 루시어스. 골라 봐라.”
“웅?”
“맘마. 먹고 싶은걸로 골라 봐.”
루시어스가 우우, 하고 잠시 입술을 비쭉 내밀며 볼을 부풀렸다. 그리고는 눈치를 한 번 흘금 보다가 채소들을 바라보았다.
본능적으로 꽃을 소환하며 따먹기는 했지만, 식용이 가능한 채소에 대해 아는 것은 거의 없었다. 어떻게든 주린 배를 채웠을 뿐이다.
처음에 더미트는 어린아이는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사실조차 깜빡 잊고 있었을 정도로 육아에 서툴렀으니까.
“우우웅.”
채소와 눈싸움 하던 루시어스는 그나마 가장 꽃처럼 생긴 것들을 골랐다. 오늘 아침에 먹은 과일 퓌레가 초록색이었던 터라, 초록색인 것들은 모두 건너뛰었다.
루시어스는 그나마 색이 다양한 파프리카나 버섯을 골랐고, 더미트는 그것을 대량으로 구매했다.
아이가 선택했으니 우선 많이 사 놓고 어떻게든 마음에 들 만한 이유식을 만들어 줄 생각이었다.
“그럼 이거랑 이거……. 이것도 좀 줬으면 좋겠군.”
“애한테 먹일 거면 이것도 좋지. 고소한 맛이 나거든.”
“그럼 그것도 주게.”
“오랜만에 손이 큰 손님이네! 덤 좀 얹어드리리다!”
“고맙군.”
루시어스는 값을 치르며 물건을 챙기는 더미트를 바라보다가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바쁘게 지나가는 마족들을 지켜보던 루시어스가 슬쩍 걸음을 옮겼다.
“아우.”
저쪽에 지나가는 마족의 어깨 위에 뭔가 자신보다도 작은 생물이 올려져 있다.
저게 뭐지? 무구하게 눈이 반짝였다. 성큼성큼, 두 손을 내밀며 모르는 마족을 따라가려던 루시어스를 계산을 다 치른 더미트가 잡아챘다.
“잠깐 한눈을 팔면 사라지겠어.”
“아웅? 쩌거, 우! 쩌어!”
루시어스가 가리키는 것은 어떤 마족이 계약한 새 마수였다. 어깨 위에 올려놓고 다니는 모양이었다. 더미트는 루시어스의 손짓을 따라 시선을 옮겨보았다.
“전서구인가.”
“구우?”
“연락용으로 쓰는 마수지. 애완용으로도 자주 계약하고. 은밀한 작업을 할 때는 마기를 쓰는 것보다 마수를 이용한 연락이 더 편하……니까.”
어린애한테 무슨 설명을 하는 건지.
줄줄이 읊던 더미트가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는 자꾸 다른 곳으로 시도 때도 없이 시선을 돌리는 루시어스를 바라보다 생각했다.
그간 가만히 앉아있을 땐 몰랐는데, 루시어스도 꽤 호기심이 많고 활달한 것 같았다.
걸어 다닐 수 있게 되었으니 잘못하면 정말 아이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표식을 해 두면 좋을 텐데.’
더미트가 턱을 매만지며 저택으로 돌아가는 길을 걸었다. 마왕성도 넓은 편이라 자칫 잘못하면 루시어스가 길을 잃어버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저택과는 달리 마왕성은 여기저기에 침입자를 대비한 함정이 많이 설치되어 있기 때문에 루시어스에게는 상당히 위험했다.
‘좋아. 그 수가 있군.’
나쁘지 않은 방법이 떠올랐다.
루시어스의 안전을 충분히 확보하면서, 길을 잃어도 금방 찾아낼 방법이.
* * *
“그래서 선택한 게 이건가?”
마왕이 흥미롭게 웃었다. 자신의 무릎 위에 앉은 루시어스의 목에는 방울 하나가 달려 있었다.
딸랑.
아이가 움직일 때마다 청명한 소리를 내는 방울이.
더미트의 말마따나 나쁘지 않은 방법이기는 했다. 루시어스가 어디 있는지 소리로도 알아낼 수 있고, 방울에는 더미트의 사령도 하나 봉인되어 있어 유사시에 루시어스를 지켜 줄 수도 있었다.
사기에 노출되는 것이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사령이 방울 안에만 얌전히 있어 준다면 크게 문제 될 거리는 없었다.
게다가 루시어스의 목에 걸린 방울은 마계에서도 유명했던 쌍둥이 마족의 한쪽이었다. 더미트가 다른 쪽 형제의 방울을 가지고 있으니 찾아가기 훨씬 수월할 것임에 틀림이 없었다.
딸랑딸랑.
마왕이 루시어스의 목에 걸린 방울을 만져보며 웃었다. 손장난을 치고 있던 루시어스가 동그란 눈으로 마왕을 올려다보았다.
“좋은 방법이네. 이러면 만약 루시어스를 잃어버려도 금방 찾을 수 있겠어.”
“네, 위험은 미연에 방지하는 게 좋으니까요.”
루시어스는 목에 걸린 방울이 신기한지 계속 움직이며 딸랑딸랑 소리를 냈다.
그러며 따아, 따, 라, 하고는 소리를 흉내 내고 있었다.
둘이 흐뭇하게 지켜보는데 집무실 문이 벌컥 열렸다.
“우리 루시!!”
마리엘라였다.
여전히 마리엘라는 루시어스가 왔다는 연락이 도착하기만 하면, 그리고 마왕성 안에서 루시어스의 기척이 느껴지기만 하면 잽싸게 달려와 루시어스를 반겼다.
마왕의 무릎 위에 앉아있는 루시어스의 밑으로 손을 집어넣은 마리엘라가 아이를 높게 띄우며 빙글빙글 돌았다.
“꺄아아, 이게 얼마 만이야!”
“마우우웅.”
“그동안 아픈 데는 없었고? 응? 잘 지내고 있었지? 밥은 잘 먹었어?”
마리엘라가 루시어스를 품에 꼬옥 끌어안으며 애정 어린 말들을 늘어놓았다. 그러다가.
딸랑.
들리는 방울 소리에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 이건 또 뭐야?”
더미트가 당당하게 보고했다.
“요즘 루시어스가 걸어 다닐 수 있게 되어, 혹시 분실의 위험이 생길까 봐…….”
“……그래서 방울을?”
“그렇습니다.”
마리엘라는 참 할 말이 많았다.
우선 첫 번째.
아이를 잃어버리는 건 실종이라고 하지 분실이라고 하지 않는다. 루시어스는 물건이 아니니까.
그리고 두 번째.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애 목에 방울을 채워!!
마리엘라가 부글부글 끓는 속을 다스리면서도 침착하게 루시어스의 목에 걸린 방울을 떼어냈다.
그리고 휙 던져 버리며 아이를 안고 소파에 앉았다.
의아한 듯 입을 열려는 더미트의 말을 잘라 버리며 그녀가 입을 열었다.
“루시어스가 무슨 고양이나 강아지도 아니고, 이게 뭐야? 오빠도 이걸 그냥 보고 있었어?”
“아니 마리, 난…….”
“하지만 장로님, 그건…….”
“대답.”
“……알겠습니다.”
둘의 답을 듣고 난 후에야 마리엘라가 빙긋 웃으며 물었다.
방울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그녀의 반응에 마왕은 나 몰라라 입을 꾹 닫고 있었다.
“그래서 밥은 잘 먹고 있었고? 잠은 잘 자든?”
“네, 잠은 잘 자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요즘 이유식을 먹이고 있기는 합니다. 그런데 왠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라…….”
“뭐가 마음에 안 든대?”
“모르겠습니다. 잘 안 먹더라고요.”
먹다가 토하거나 뱉어 버리기도 하고. 뭔가 문제가 생겼다기엔 꽃 같은 건 잘 먹으니 이상했다.
“드라이어드가 채식만 해야 하는 건가 싶어 채소를 위주로 먹여 봤는데도 그렇습니다. 리브레 군단장과 뤼디거 장로님께 자문했지만,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그래?”
마리엘라가 턱을 매만지며 루시어스를 바라보았다. 아이를 잃어버릴 것이 걱정된다며 목에 방울을 건 더미트가 정말 제대로 된 이유식을 먹였는지부터 의문스러웠다.
아이 때에는 많이많이 먹어서 쑥쑥 커야 하는데. 마리엘라가 걱정스럽게 루시어스의 통통한 뺨을 쓸어보았다.
아, 이렇게 보니까 애가 너무 야윈 것 같기도 하잖아! 뭔가 피부도 푸석푸석해지지 않았어?
마리엘라가 더미트를 노려보았다.
“가져와 봐.”
“예?”
“이유식 말이야. 우리 루시가 잘 안 먹는다며. 한번 가져와 보라고. 그냥 네가 싫은 걸지도 몰라.”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낯을 가리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루시어스가 더미트와 시간을 보낸 지 벌써 5년째지만, 사실은 더미트는 별로 좋아하지 않고 자신을 더 많이 좋아하고 있을 수도 있는 일 아닌가.
분명 그럴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더미트가 주던 이유식을 자신이 주면 잘 받아먹을 수도 있었다.
“여기 있습니다.”
더미트는 얼마 전 루시어스에게 먹였던 과일 퓌레를 가져왔다. 루시어스가 얼마 먹지 않아서 남아 있던 것이었다.
마리엘라가 이유식을 스푼으로 떠서 루시어스에게 내밀었다. 잘 안겨 있던 루시어스가 슬금슬금 마리엘라에게서 멀어져갔다.
“우우, 시더어…….”
루시어스에게서는 처음 들어보는 완고한 거절이었다. 마리엘라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싫어? 맘마야, 루시어스. 맘마.”
“우, 우우…….”
“이건 설마.”
대장군이나 자신이나 루시어스에게는 똑같이 싫다는 소리인가?
쿠구구궁.
벼락이 내리치는 듯한 충격에 마리엘라가 이유식을 내려놓고 털썩, 뒤로 넘어가 쓰러지며 눈물을 머금었다.
사태를 지켜보던 마왕이 다가와서는 루시어스에게 다시 숟가락을 내밀어 보았다.
“우우우…….”
“흐음.”
여전히 루시어스는 이유식을 거부하고 있었다. 초록색 이유식을 내려다보던 마왕이 루시어스에게 내밀었던 퓌레를 제 입으로 쏙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콜록!”
털그럭! 땡그랑!
스푼과 그릇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마왕의 어깨가 부르르 떨리더니 비틀비틀 움직였다. 간신히 책상을 짚고 몸을 지탱한 그가 더미트에게 외쳤다.
“맛……없어.”
“……네?”
“맛이 없다!”
“뭐?”
마리엘라가 그 말에 퍼뜩 일어나 떨어진 이유식을 살짝 찍어 먹어보았다. 소파에 쓰러져서 부들부들 떨더니 외쳤다.
“써! 셔! 맛없어! 식감은 대체 왜 이래? 슬라임이라도 갈아 넣었어?”
“하, 하지만 몸에 좋은…….”
“몸에 좋으면 뭐해, 맛이 없는데!! 내가 방울은 참고 넘어가려고 했는데 이건 안 되겠다! 애를 대체 어떻게 키우려는 거야!! 더미트으으!”
“예…… 예?”
“맛없어! 맛없다고!”
마리엘라가 쐐기를 박듯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