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the Life of a Demon RAW novel - Chapter (123)
마족답게 사는 법-123화(123/385)
마족답게 사는 법 123화
123 마리엘라 르완 (3)
키아라 아카데미의 교복은 실용성을 추구함과 동시에 디자인에도 무척 신경을 썼다.
특히 학장이 바뀌면서 개편된 교복 디자인이 꽤 인상적이었다.
키아라의 상징인 붉은 망토는 한쪽 어깨에만 걸쳐 다른 팔을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했다. 셔츠는 활동하기 편하게 품이 큰 퍼프 소매였다.
대신 소맷귀가 팔목을 딱 잡아 주어 소매가 거추장스럽지 않도록 했다.
은사로 엮은 가죽 코르셋은 허리를 단단하게 감싸고 있다.
게다가 장비를 놓치지 않고 손을 보호할 수 있도록 반장갑을 끼게 되어있다.
“사이러스가 단정한 세련미가 있다면, 키아라는 화려하고 유려한 곡선미가 있지. 특히 이 허리부터 발목까지의 라인이 말이야.”
“…….”
“네게는 사이러스가 제일 잘 어울릴 것 같아서 그리 보냈는데…… 루시어스, 듣고 있어?”
“……듣고 있어요.”
루시어스가 한숨을 삼켰다. 짐작하기는 했지만, 사이러스에 마음대로 지원서를 넣은 범인은 바로 마리엘라였다.
그것도 단지 교복이 마음에 든다는 이유로 말이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았다. 어디서 구해온 건지 마리엘라는 키아라 아카데미의 교복을 마네킹에 입혀둔 채로 루시어스에게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레녹스는 뭘 하고 있었냐면.
“다 입고 나왔습니다.”
마리엘라에게 떠밀려 키아라 아카데미의 교복을 입고 나오고 있었다.
레녹스가 반장갑을 고치며 어색하게 제 모습을 한 번 훑어보았다. 루시어스는 옷을 입고 나온 레녹스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마리엘라가 즐겁게 웃었다.
“역시 잘 어울릴 것 같았어.”
“그렇습니까?”
“잘 어울리는군.”
확실히 마리엘라의 말대로 키아라의 교복은 꽤 화려한 곡선미가 있었다. 특히 종아리까지 오는 워커 부츠가 레녹스에게 꽤 잘 어울렸다.
그런데 어울리는 것도 어울리는 거지만, 여기서 키아라의 교복이 그녀의 마음에 얼마나 드는지 알 필요가 있나?
“누님, 어차피 저희는 교류 학생들이라 가서도 사이러스의 교복을 입을 텐데요. 굳이 키아라의 교복을 입어볼 필요가 있습니까?”
“누가 그렇대?”
“……네?”
“아무리 아카데미간의 교류회라고 해도, 최종 승인은 마왕의 권한인 거 알고 있지?”
음흉한 웃음에 루시어스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설마 이런 하찮은 이유로 권력 남용이라도 하실 생각이신 건……!
“키아라 아카데미 교복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이 망토지. 아카데미의 문장이 새겨져 있는 붉은 색 망토 말이야.”
“…….”
“그러니 이걸 이렇게 바꾸면.”
마리엘라가 레녹스의 왼쪽 어깨에 걸쳐 있던 붉은 망토를 벗겨서 내려두더니 어디선가 하얀 망토를 꺼내 걸쳐주었다.
사이러스의 문양이 자수 되어있는 망토였다.
“사이러스의 학생임을 드러낼 수 있으면서도 키아라에 잘 녹아들 수 있는 교복이 완성된단 말이야!”
“그렇군요…….”
루시어스의 미적지근한 반응에 마리엘라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루시어스, 제복이라는 건 중요하단다. 아무리 교류 학생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어도, 다른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아카데미 내에 돌아다니면 반발심을 갖게 될 수도 있어.”
그런 일을 미리 방지하려면 이 방법이 최선이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루시어스에게 마침 다른 아카데미 교복을 입혀보고 싶은 참이기도 했다.
특히 사이러스가 아니라면 키아라가 가장 교복이 예뻐서 언젠가는 입혀 보겠노라 다짐했었다.
물론 루시어스라면 어떤 아카데미의 교복이든 잘 소화하겠지만.
‘아론은 너무 하늘하늘해서 루시어스의 분위기랑 안 맞는걸. 토르벤은 색이 조금 칙칙해서 루시어스의 은발이랑 안 어울리고.’
그걸 생각하면 역시 키아라지.
마리엘라가 흐뭇하게 웃으며 레녹스를 위아래로 훑어보다 말했다.
“자, 이제 루시어스도 입고 나와.”
“누님, 정말 저를 키아라로…….”
“이미 보냈어. 낙장불입이야.”
“……알겠습니다.”
키아라에 유감이 있는 건 아니었다. 단지 그곳이 유난히 ‘힘’을 숭상하는 아카데미라 각종 전투나 사건에 휘말리게 될까 불안한 것뿐이었다.
들려오는 소문으로는 학기 말 성적조차도 힘으로 쟁취한다던데.
그런 고민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리엘라는 루시어스의 품 안에 키아라 아카데미의 교복 한 벌을 안겨 주었다. 루시어스는 어쩔 수 없이 교복을 입으러 들어갔다.
마리엘라가 웃으며 자리에 앉아 찻잔을 기울였다. 여전히 교복을 입을 제 모습을 어색해하던 레녹스가 그녀의 맞은편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소리도 내지 않고 조용히 차를 마신 그녀가 숨을 길게 내쉬었다.
“교복이 많이 불편해? 어쩔 줄을 몰라 하네.”
아니면 내가 불편한 걸까? 마리엘라가 턱을 괴며 느긋하게 웃었다. 레녹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아닙니다. 단지…….”
“단지?”
“……조금 의외라 놀랐습니다. 마리엘라 님과 전하의 이야기는 많이 들었으니까요. 비밀로 해달라는 억지가 통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솔직해서 좋네. 뭐, 무슨 이야기인지는 알겠어. 놀랍기야 하겠지.”
레녹스가 찻잔을 만지작거렸다. 뤼디거에게서는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지 못했지만, 대신 보좌관이나 기사들을 통해 여러 소문을 들었다.
이렇게 눈앞에서 싱글생글 웃고 있는 그녀, 마리엘라 르완이 얼마나 무섭고 잔인한 마족인지.
그 때문에 참관 수업에서 처음 만났을 때는 정말 당황스러웠다. 정체를 숨긴 마왕도 마왕이었지만, 마리엘라의 분위기는 자신이 상상한 것과 아주 달랐으니까.
“그래. 소감은 어때? 소문의 1장로를 직접 본 소감.”
“자애로우십니다. 비록 그 대상이 루시어스와 전하께만 한정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음.”
“누구보다도 따스하십니다.”
잠시 나른하게 시선을 움직이던 마리엘라의 표정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기분 좋게 웃던 모습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무거운 기운이 엄습했다.
레녹스는 테이블 밑으로 손끝이 하얗게 질리도록 손을 꽉 쥐었다. 턱이 아플 만큼 이를 다물었다.
선홍색 눈동자가 마왕의 그것과 닮았다.
한없이 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눈부신 금색 머리카락이 검게 물든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평범한 마족의 힘이 아니었다. 명실상부 마왕의 파편, 그의 피를 취한 자의 힘이었다.
눈짓 한 번과 손짓 하나가 몸을 짓눌렀다. 고혹적인 위압감이었다.
“그래. 하멜이 왜 널 기사로 인정했는지 알겠다. 고집 센 그 녀석 때문에 평생 루시어스에게 기사랑 보좌관이 안 생길 줄 알았는데.”
“…….”
“넌, 네 분수를 참 잘 아는구나.”
마리엘라는 레녹스가 참 마음에 들었다. 그녀의 눈에도 찰 만큼 수려하고 단정한 외모도 외모였지만, 무엇보다 레녹스는 본인의 분수를 잘 알았다.
그들의 호의가 ‘루시어스의 기사’에게 향하는 것뿐이지 ‘레녹스’에게 향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정도로.
그래서 그들에게 자신은 ‘언제든 버릴 수 있는 패’ 취급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을 정도로.
그리고 언제든 스스로 자신을 버릴 준비가 되어있을 정도로.
아주 분수를 잘 알았다.
이 얼마나 충직한 종복인가. 마리엘라가 옅은 웃음을 머금었다.
“사실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그 ‘뤼디거 자카르’의 자식이 이렇게 멀쩡할 리가 없거든. 그것도 막내아들이면 그 녀석이 꽤 특별하게 취급했단 말이지.”
“…….”
“네가 태어났을 때 그 녀석이 뭐라고 말했는지 알아? ‘그 녀석의 성장을 기대하고 있다.’라고 했어.”
보통 보호자였으면 그러려니 했을 발언이었지만, 그 지독한 녀석이라면 사뭇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자기 자신 외의 마족에게는 그 무엇도 기대하지 않는 뤼디거 자카르가 기대할 정도로, 레녹스의 본질은 뤼디거를 닮아 있었다.
“이렇게 보니 왜 그렇게 얘기했는지 알겠다. 확실히 그 녀석의 아들다워. 놀라울 정도로 똑같아.”
“……그런가요.”
“응, 이미 망가졌어.”
그녀의 말에는 악의가 없었다.
단지 애써 부정하고 있던 사실을 확인사살 받은 기분이 되어 조금 불쾌해졌을 뿐이다.
레녹스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녀의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재미있네. 끔찍이 아낀 ‘자기’ 아들이 다른 마족의 밑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알면 뤼디거 녀석이 무슨 표정을 지을까?”
“……아버지라면.”
“다시 돌아올 거라 생각하겠지.”
“그렇죠.”
“돌고 돈다 하더라도 그 저택으로 돌아올 거라고. 결국, 믿을 것은 ‘자기 자신’뿐일 거라면서.”
마리엘라가 의자 등받이에 편히 등을 기대며 다리를 반대로 꼬았다. 그리고는 조소하며 말꼬리를 이었다.
“그게 뤼디거의 끔찍한 나르시시즘이니까. 그렇지? 레녹스.”
“장로님께서는 저희 아버지를 꽤 잘 파악하고 계시네요.”
“싫어하거든. 그것도 엄청 많이.”
설명하자면 길어.
그녀가 어깨를 으쓱이고 위압적이던 분위기를 누그러트렸다. 레녹스는 그제야 숨통이 조금 트이는 걸 느끼며 한 번 크게 심호흡했다.
자리에서 일어난 마리엘라가 루시어스가 들어갔던 탈의실 문고리를 잡으며 속삭였다.
“어쨌든, 루시어스는 너를 기사로 서임했어. 그러니 만약 곁을 떠날 일이 생긴다면…….”
“죽음으로 갚겠습니다.”
“좋은 마음가짐이야.”
마리엘라가 만족스럽게 웃으며 문고리를 돌려 열었다. 마침 교복을 다 입은 루시어스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마리엘라를 돌아보았다.
그녀가 성큼 다가가 옷매무새를 좀 더 다듬어 주었다. 저택에서도 항상 단정한 옷을 입고 있던 루시어스가 소매가 넓은 셔츠를 입고 있으니 참 새로운 느낌이었다.
하멜에게 이런 옷을 좀 더 장만해 놓으라고 할까?
좀처럼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는 마수지만, 패션을 보는 눈 하나는 기가 막히게 정확하니 언질을 줘 놓으면 알아서 잘 준비해 둘 것이다.
마리엘라가 루시어스를 의자에 앉혔다.
“치수는 어때? 불편하진 않아?”
“딱 맞아요. 그런데 생각보다 구두에 굽이 있네요. 신는 것도 조금 번거롭고.”
“그것도 키아라의 꽤 독특한 점 중 하나지. 그 안에 여러 가지를 숨길 수 있다더라. 굽은 알아서 조절해서 신으면 된대.”
키아라도 학생들의 개성이 사이러스 못지않아 이런저런 개조를 많이 했다.
특히 신발은 개조해서 독침을 숨겨놓기도 하고, 아예 킬힐처럼 굽을 높이고 칼날로 이용하기도 했다. 팔과 손이 새의 날개와 비슷한 하피족이 특히 그런 식의 개조를 한다고 한다.
레녹스가 무릎을 꿇고 신발 끈을 다시 묶어 주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루시어스가 작게 헛웃음 지었다.
“처음에 사이러스로 가게 되어서 정말 다행이야. 키아라의 교복은 입기가 너무 불편해.”
“대신 전투가 밥 먹듯이 벌어지는 곳이라 그런지 방어성은 우수한 것 같다.”
“확실히 그건 그래 보여.”
교복에 세공된 방어와 보호 마법이 사이러스보다 한 수 위인 걸 보면 키아라에서 얼마나 대단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는지 얼추 짐작이 갔다.
‘설마 하루하루가 전부 스승의 날 같은 건 아니겠지?’
아무리 루시어스라도 그건 좀 감당하기 힘들 것 같았다.
“선생님들도 연수를 겸해 각 아카데미에 파견된다고 했었지?”
“통신문에는 그렇게 쓰여 있었다.”
“아르놀트가 어디로 가려나.”
들뜬 듯한 목소리에 레녹스가 고민하다가 몸을 일으켰다. 그의 입지나 정황을 생각해 보면 역시.
“키아라 아니겠어?”
“역시 그런가?”
그렇다면 교류회도 꽤 즐겁겠다.
즐거워보이는 루시어스와 레녹스를 흐뭇하게 바라보던 마리엘라가 문득 미간을 찌푸렸다. 계속 뭔가를 잊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는데.
‘생각해 보니 입학 선물을 안 해 줬잖아?’
루시어스의 입학에 들떠서 즐거워하기만 했을 뿐, 입학 선물을 챙겨 주지는 못했다.
세상에, 이런 실책을 범할 수 있나.
마리엘라가 이마를 잠깐 짚었다가 눈을 번뜩 빛냈다. 그리고는 조금 급한 목소리로 루시어스에게 말했다.
“나 잠시 나갔다 올게.”
“어디 가시려고요?”
“그건 비밀.”
찡긋.
마리엘라가 루시어스를 향해 가볍게 눈을 찡긋거렸다.
특별한 선물을 준비해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