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the Life of a Demon RAW novel - Chapter (125)
마족답게 사는 법-125화(125/385)
마족답게 사는 법 125화
125 마리엘라 르완 (5)
지금으로부터 8년쯤 전에, 천년 마수 에피알티스가 레어 근처의 숲에 침입한 적이 있었다.
루시어스 켄드릭은 그때 영역을 어지럽혀서 죄송하다는 말을 전하려고 자신을 찾아왔었다.
당시엔 5장로가 아니었지만, 충분한 힘은 있었다.
루시어스는 마족치고는 참 정중했다. 숲을 복구해 둘 테니 자연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고개를 숙이며 이야기했으니까.
다만, 어린 주제에 꽤 당돌했다.
케렌스타는 당시에 루시어스가 한 말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루시어스는 중간계의 존재인 드래곤이라고는 해도 마계에서 거주하는 이상 마왕의 아래에 있을진대, 어찌 마왕의 명령을 거부했냐고 훈계했다.
후에 같은 일이 벌어지면 책임을 지게 될 거라면서.
‘건방진 놈이기는 하지만, 건방지지는 않았지. 참 인상적인 마족이었는데.’
케렌스타는 맞은편의 빈자리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감사하다고 고개를 숙이고, 그간 있었던 여러 이야기를 하던 아들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오랜만에 얼굴을 보니 좋기는 좋구나.
“드래곤으로 살아온 기나긴 일생을 통틀어 그런 놈은 처음이었어.”
어린아이 특유의 불안정한 그릇에 틈새도 없이 꽉 찬 마력을, 아주 섬세하고 정확하게 다루던 괴물 같은 녀석.
그리고…….
그녀의 눈이 가볍게 감겼다가 뜨였다. 위아래로 쭉 찢어진 금색 눈동자가 먼 곳을 바라보았다.
“어쩌면 그는 이 마계에서 가장 너와 닮은 존재일지도 모르겠구나, 아르놀트.”
마계에서 가장 마족답지 않은, 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마족다운 마족.
그것이 바로 그녀가 본, 5장로 루시어스 켄드릭이었다.
* * *
“루시, 나 왔어!”
잠시 자리를 비우겠다던 마리엘라는 정말 금방 저택으로 돌아왔다. 교복을 계속 입고 있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던 와중이었는데 참 다행이었다.
“어딜 다녀오신 겁니까?”
“으응, 생각해 보니까 우리 루시 아카데미 입학하는데 선물도 못 챙겨줬더라고.”
“네……?”
“그래서 뭔가 챙겨 주고 싶었어. 마침 새 학기도 시작하잖니? 새로운 교복도 입게 되었고.”
마리엘라가 망토를 매만지다가 브로치 하나를 꺼내 달아 주었다. 망토를 고정할 수 있게 핀으로 제작되었는데, 세공이 무척 섬세해 고급스러워 보였다.
게다가 선물해 줄 거라는 말에 케렌스타가 직접 축복의 언어를 뒷면에 새겨 주었다. 마법의 대가인 드래곤이 새겨 주었으니 분명 축복이 깃들 것이다.
이걸 고르려고 얼마나 난리를 쳤는지. 케렌스타의 보물고를 이 잡듯이 뒤지느라 정말 힘들었다. 더 시간을 끌며 헤집어놨으면 케렌스타가 크게 화내지 않았을까?
“이런 걸 어디서…….”
감사하기는 하지만 어디서 난 물건인가 싶어 루시어스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중앙에 박힌 보석에서 마계의 것이 아닌, 이질적인 기운이 풍겼다.
루시어스의 의아함을 눈치챘는지 마리엘라의 눈꼬리가 곱게 휘었다.
“눈치챘어? 이거, 중간계의 정령석이라고 하더라.”
“정령석이요?”
“응. 마계에서는 구할 수 없는 물건이지. 케렌스타에게서 받아 내 온 거야.”
“……마룡에게서요?”
정령석은 정령이 수명을 다해 죽은 자리에 생긴다고 하는 희귀한 보석이었다. 정령의 수명은 마족은 물론이고 드래곤보다도 훨씬 길어 얻기가 힘들었다.
중간계에서도 이런 물건이 나오면 신물 취급을 받게 될 것이다.
게다가 마계의 정령들은 정령석이 아니라 마석을 만들기 때문에 마계에서는 구할 수 없었다.
중간계와의 교류도 거의 끊긴 마당에 이런 희귀한 물건을 어디서 구해왔다 했더니, 마룡 케렌스타의 레어라면 이해가 갔다.
둘이 이렇게 친한 줄은 몰랐지만.
‘……그런 줄 알았으면 좀 더 정중하게 대할 걸 그랬나.’
하멜 때문에 마왕군이 애를 먹을 때, 나서지 않고 관망하기만 한 그녀가 괘씸해 날이 선 말을 하고 온 적이 있었다.
잠시 생각하던 루시어스가 고개를 저었다. 공사는 명백히 구분해야지. 마계에 살면서도 마왕의 명령을 따르지 않은 건 케렌스타의 잘못이 맞았다.
어쨌든 마리엘라가 굳이 케렌스타에게 찾아가 자신의 선물을 챙겨 주었으니 감사를 표해야 했다.
루시어스가 옅게 웃었다.
“감사하게 받겠습니다.”
“그럼, 그럼.”
“저는 누님께 제대로 선물을 드린 적이 없는데. 왠지 부끄럽네요.”
“그런 걸 바라고 주는 게 아니니까 걱정 마.”
“그래도요.”
이렇게까지 자신을 챙겨 주는데 어떻게 모른 척을 하겠나.
성년이 되는 날 더미트에게 줄 선물은 챙겨놨지만……. 이렇게 보니 마리엘라나 전하께 드릴 선물도 챙겨야 할 것 같았다.
필요 없다고 말씀하시기는 해도, 안 드리면 엄청 심술부리실 것 같으니까.
‘천천히 생각해 봐야겠네.’
더미트에게는 졸업을 하며 선물을 주려고 했으니, 겨우 2년이 남은 셈이었다. 그 안에 마리엘라와 전하께 줄 선물을 미리 마련해 놔야 했다.
그렇게 생각하는데.
와르르르.
“자, 우선 하나씩 전부 달아 보자.”
뭔가 번쩍거리는 것이 그녀와 자신 사이에 우르르 쏟아졌다. 루시어스가 조금 당황스러워하며 쏟아진 보물산과 그녀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선물이 브로치 하나가 아니었나?
“이, 이렇게 많이요……?”
“하나뿐일 거라고 생각했니?”
날 뭐로 보고. 그녀가 씨익 웃으며 다른 브로치며 장신구를 들어 보았다. 루시어스가 이마를 짚으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오늘 안에 선물 공세가 끝나지는 않을 것 같았다.
* * *
갑작스러웠지만 즐거웠던 방학이 금방 지나갔다. 새로운 학년이 되며 새로운 신입생들이 들어왔고, 루시어스는 델타 클래스로 진급했다.
앱실론에서 델타 진급은 자동인 만큼 급우들 전부 그대로 델타 네 번째 반이 되었다.
새로운 신입생들은 무사한 별관에서 1년 동안 수업을 받게 되었고, 재학생들은 이전에 가정 통신문으로 공지한 대로 다른 아카데미에 ‘교류 학생’으로서 파견되게 되었다.
마리엘라가 말했던 대로 각 아카데미 간의 융화를 위해 사이러스의 문양을 넣어 개조한 각 아카데미의 교복을 입게 되었다.
덕분에 새 학기를 열고 있는 대강당에 모인 학생들은 제각각 다른 교복을 입고 있었다.
“예상하긴 했지만, 너는 키아라로 가는 모양이네.”
아론 아카데미의 교복을 입은 에스메리다가 다가와 루시어스의 모습을 살피며 말했다. 루시어스가 어깨를 으쓱이며 되물었다.
“보통은 토르벤으로 갈 거라고 생각하지 않나?”
“……네가? 토르벤으로?”
“이래 봬도 드라이어드라서.”
“아, 그랬지.”
에스메리다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루시어스의 선택이 의외라고는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은 것 같았다.
오히려 키아라 아카데미로 가는 게 당연하다는 표정이었다.
덕분에 이 녀석들에게 자신이 어떤 이미지인지 잘 알겠다.
루시어스가 그녀의 교복으로 시선을 주었다. 바다에서 움직이기 편하도록 디자인된 하늘하늘한 교복. 바다에서 헤엄을 치면 아름답게 휘날릴 것 같다.
예티 종족인 에스메리다는 아무래도 아론 아카데미를 선택한 모양이었다.
설원의 마족인 예티에게는 아론도 나쁘지 않은 선택지였다.
“파트너인 레녹스 선배도 키아라로 가겠구나. 혹시 다른 애들은 어떤지 알아?”
“아직 너 말고는 모른다. 애들이 생각보다 늦는군.”
“우리가 좀 이르게 도착한 것 같긴 하지만 말이야.”
에스메리다가 어깨를 으쓱였다.
말하기 무섭게 아이들이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한 명씩 루시어스에게 인사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리누슈카는 주술에 대해 좀 더 공부해 보고 싶다면서, 아이런은 제작 기술에 대해 깊이 있는 연구를 해보고 싶다며 토르벤으로 향한다고 한다.
정말 놀랍게도 정작 토르벤으로 갈 거라고 생각했던 학생 대부분이 다른 아카데미로 향하게 되었다.
특히.
“야호, 루시어스!”
“루시어찌이!”
레이얼과 라타트리아가 키아라를 선택한 것이 참 신기했다. 둘이 방긋방긋 웃으며 이유를 늘어놓았다.
“키안이 키아라를 가고 싶어하는 눈치더라고요. 그래서 따라가려고 했어요. 루시어스도 갈 거라 생각했고.”
“찌! 라티는 좀 더 강해지고 싶어서 키아라를 선택했다찌!”
라타트리아가 콧김을 한 번 훙! 내쉬며 눈을 반짝였다. 매번 보호받기만 하는 게 마음에 걸린 모양이었다.
“좀 더 강해져서 라티도 모두를 지켜주고 싶다, 찌. 루시어찌도!”
“그래? 듬직하네.”
“찌찌, 나만 믿으라찌.”
라타트리아가 제 가슴을 팡팡 때리며 씨익 웃었다. 루시어스가 라타트리아의 머리를 살짝 토닥여 주고는 자리에 섰다.
이만 개학식 겸 교류회 개회식이 시작될 시간이었다.
“주목!”
대강당 안에 아르놀트의 목소리가 울렸다. 웅성거리던 소요가 한 번에 가라앉았다.
“제군 모두 방학은 잘 지내고 왔나? 미리 공지했던 대로, 제군들은 오늘부터 다른 아카데미에 교류 학생으로 파견될 거다.”
학생들을 한 번 훑은 아르놀트가 마저 말을 이었다.
“이제까지 교류회는 아카데미 대표가 된 학생들이 아니면 경험하지 못하는 소극적인 행사였다. 다른 아카데미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채 졸업하는 일도 많았지.”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카데미에서 오래 생활한 학생들은 모두 공감하는 눈치였다.
“그래서 모든 학생이 자신이 원하는 아카데미에 가서 공부할 수 있는 교류회를 준비했다. 선생님들도 각 아카데미에 파견될 테니, 문제가 있다면 담당 선생님을 찾아가도록 해라. 참고로 나는.”
아르놀트가 한 번 숨을 가다듬었다.
그의 시선이 루시어스에게 닿았다.
“키아라로 가게 되었다.”
“…….”
지금 보내는 저 시선에 담긴 의미는 무엇일까. 루시어스는 그를 마주 보다가 피식 웃어 버렸다. 아르놀트가 어깨를 가볍게 으쓱이고는 말했다.
“교류회를 앞두고, 지금부터 학장님의 말씀이 있겠다.”
아르놀트의 말이 끝나자마자 학장이 한쪽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단상에 올라간 학장이 흠흠, 하고 헛기침을 하고 입을 열었다.
“오늘 청명한 맑은 하늘처럼 제군의 앞날이 밝기를 바라며…….”
입학 첫날 경험했던 것처럼 학장의 연설은 마왕의 연설보다도 더 재미없고 지루했다. 전에도 생각했지만 저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었다.
또 시작이군. 쓸데없는 시간 낭비는 좋아하지 않는데. 루시어스가 눈을 살짝 들썩이며 학장을 바라보았다.
시선을 받은 학장이 움칫 몸을 떨고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급하게 연설을 마무리 짓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꿋꿋이 미처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마저 했다.
“나는 우리 사이러스 학생들의 빛나는 재능과 넘치는 끼를 알고 있지. 한 명, 한 명의 재능이 모여 거머쥔 첫 번째 영광이 바로 저번 제전에서의 성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네.”
학장의 커다란 눈망울이 빛났다.
학생들에게 뭔가 아주 큰 기대를 걸고 있는 눈빛이었다.
“제군이 다른 아카데미에서도 본인의 개성을 마음껏 표현하길 바라네! 그래, 아주 마음껏!”
학장의 눈에 곧 불이 붙을 듯 이글거렸다. 학장이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외쳤다.
“다른 아카데미에 사이러스의 저력을 보여 주고 와라!!”
“와아아아아!!”
외침에 학생들이 호응하듯 함성을 질렀다. 루시어스와 아르놀트는 그런 분위기 속에서 그저 조용히 생각했다.
교류회가 끝날쯤이면 다른 아카데미도 건물 하나씩은 무너져있을지도 모른다고.
“다녀와라, 사이러스의 아이들아!”
“다녀오겠습니다!!”
학생들이 씩씩하게 외쳤다.
교류회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