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the Life of a Demon RAW novel - Chapter (127)
마족답게 사는 법-127화(127/385)
마족답게 사는 법 127화
127 키아라 아카데미 (2)
하멜은 주인의 짓궂은 손길을 굳이 마다하지 않았다.
싫다며 고개를 돌리거나 이빨을 세우지도 않았다. 오히려 침대 위에서 몸을 더 노곤하게 녹였을 뿐이다.
하멜은 눈을 꿈뻑꿈뻑거리다가 완전히 감고 얼마 전의 일을 떠올렸다.
‘건방진 마족 같으니. 루시어스 님 앞에서는 그렇게 아양이란 아양을 다 떨더니.’
루시어스가 잠든 지 사흘이 넘었을 때, 하멜은 갈증에 버티다 지쳐 제 방에 완전히 틀어박혔다. 명령도 없이 주인을 물어 배를 채울 순 없었으니, 루시어스가 일어날 때까지 버틸 생각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마리엘라가 방으로 들이닥치더니 제 팔을 베며 이야기하더라. 이 피를 마시고 목을 축이라고.
루시어스는 더 자야 한다고.
그가 쉼 없이 달려왔다는 사실은 하멜도 충분히 알고 있었다. 루시어스는 분명 나이에 비해 많은 일을 하고 있었다. 아카데미에 입학한 이후로는 더욱 바빠졌었다.
그러니 한 번 푹 재우고 싶은 마리엘라의 기분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었다.
하지만.
굳이 허기를 그녀의 피로 달래고 싶지 않았다. 마리엘라의 피는 정말 맛이 없었으니까.
하멜은 당연히 그녀의 피를 마시는 것을 거절했다. 하지만 마리엘라는 마계에서 마왕을 제외하면 첫 번째로 강한 마족이었다. 마리엘라의 채찍이 하멜의 사지를 결박하는 데에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마리엘라는 바닥에 엎어진 자신의 턱을 구두 끝으로 들어 올리며 무정하고 차가운 눈동자로 저를 내려다보았다. 선홍색 눈동자는 마왕의 그것과 똑같았다.
괜히 남매가 아니었다.
결국, 하멜은 그녀의 피를 마셨다. 강제로 입을 벌리게 하고 피가 줄줄 새어 나오는 팔을 들이미니 도리가 없었다.
‘아직도 속이 울렁거려.’
그래, 하다못해 마왕이었으면 좀 더 맛이 괜찮았겠지. 핏속까지 병든 그녀의 피가 아니라.
마리엘라의 피에서는 말라비틀어진 시체에서도 나지 않을 것 같은 냄새가 풍겼다.
사실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였다. ‘마신의 축복’이란 ‘그런 것’도 살릴 힘이 있는 걸까. 마왕의 파편이 혀끝에 알싸하게 맴돌았다.
하멜은 힘없이 눈을 감았다.
루시어스는 하멜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 주었다.
이렇게 어루만지는데도 아무런 반응이 없는 걸 보면 상태가 많이 안 좋은 모양이었다.
하긴 마리 누님의 피 때문인지 하멜의 마기가 완전히 엉켰으니 어쩔 수 없기는 하지만.
툭툭.
루시어스가 하멜의 등을 두드리고 손을 뗐다. 그러고는 자신을 바라보며 고개를 기우뚱 기울이는 나비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었다.
“내가 자리를 비운 동안 하멜을 잘 부탁한다. 잘 할 수 있지?”
“삐이!”
나비는 맡겨달라는 듯 가슴을 쭉 폈다. 그러고는 하멜의 옆에 딱 붙어서 늠름하게 주변을 살폈다. 수상한 마족이 보이면 바로 경계하기라도 할 듯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루시어스는 그런 나비를 바라보다가 만족스럽게 시선을 돌렸다. 시선을 받은 레녹스가 짐을 정리하며 입을 열었다.
“환영이 꽤 거하던데.”
“예상하기는 했지. 키아라니 조용할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지? 사이러스와는 분위기가 달라서 가만히 두지 않을 텐데.”
특히 상대가 너와 나라면 말이야.
레녹스가 짐 정리를 마치고 루시어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루시어스는 레녹스의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학장도 학장이었지만, 제전에서 눈에 띄었던 레녹스와 자신을 호전적인 키아라 학생들이 가만 둘리 없었다.
“키아라에 왔으니 키아라의 법을 따라야겠지. 적당히 봐줬다가는 오히려 더 귀찮게 굴 거야.”
“맞는 말이다.”
“하지만…… 우선은 상황을 지켜보는 게 좋겠다. 저쪽에서 분명 준비한 게 있을 테니까.”
약속이라도 한 듯 별관까지는 아무도 들어오지 않는 게 이상했다. 키아라 학생들이라면 분명 앞뒤 안 가리고 싸움부터 걸 거라고 생각했는데.
잠시 고민하던 레녹스가 입을 열었다. 짚이는 부분이 있는 모양이었다.
“첫째 형님께서 키아라 출신이거든.”
“요리를 잘하신다던 형님 말인가?”
“응, 그래서 여기에 오기 전에 키아라에 대해 여러 가지를 들었지. 그중에 형님께서 가장 강조하던 게 있는데.”
턱을 매만지던 레녹스가 창밖을 바라보았다. 달이 조금씩 떠오르고 있었다.
“승리는 빈틈에서부터.”
키아라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며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
“습격은 항상 어둠을 타야 한다, 고 하더군.”
“……맞는 말이지.”
오늘 밤은 시끄러울 모양이다.
* * *
곤히 잠든 듯 감겨 있던 하멜의 눈이 스르륵 뜨였다. 곱게 누워 있던 귀가 쫑긋 서며 주변의 소리를 따라 꿈질거렸다.
하멜이 고개를 살짝 들며 주변을 살폈다. 등 위에서 새근새근 잠들어 있던 나비가 도르르르 굴러떨어졌다.
“삐이.”
부빗부빗.
나비가 앞발로 제 얼굴을 슥슥 세수하며 작게 하품했다. 하멜은 그런 나비를 툭툭 건드려 품 안쪽으로 좀 더 들어가게 하고는 누워 있는 루시어스를 코끝으로 건드렸다.
루시어스의 눈이 조심스럽게 뜨였다. 몸을 일으킨 그가 잘 자는 나비를 한 번 쓱 쓰다듬어 주고는 주변을 한 번 살폈다.
‘습격은 항상 어둠을 타야 한다더니.’
레녹스의 말이 맞았다. 기숙사 별관에 얼씬도 안 해서 안전한 공간으로 인식하게 만들어 긴장을 풀게 한 다음 한밤중에 습격이라니.
키아라도 제법이지 않은가.
‘지금 내가 움직이면 도망가려나, 아니면 덤벼오려나.’
무서워서 피해 가지는 않을 것 같은데. 루시어스가 턱을 매만졌다.
어느새 일어난 레녹스가 주변을 날카로운 눈빛으로 살피고 있었다.
“직접 나설 건가?”
“……그럼 환영식이 너무 금방 끝나 버리겠지.”
루시어스가 고개를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음만 먹으면 당장 침입자를 솎아내는 건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만한 환영식을 준비한 정성은 헤아려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게다가 사이러스 학생들이 키아라 학생들을 상대로 얼마나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 확인할 기회다.
키아라에 사이러스 학생들의 입성을 선전포고할 기회이기도 하고.
“우선 다른 아이들의 상황을 보러 나가야겠다.”
그런 와중 덤벼오는 학생들이 있다면 처리해 버리고. 말을 덧붙이자 레녹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오필리아를 챙겼다.
루시어스가 방에서 나서기 전 하멜과 나비를 돌아보며 말했다.
“어떤 소란이 생길지 모르니 둘은 돌아가 있는 게 좋겠다. 상황이 끝나면 다시 부를 테니 조금만 기다려라.”
끄덕.
하멜이 고개를 끄덕이며 나비의 뒷덜미를 입에 물었다. 그러고는 스르륵, 루시어스의 명령대로 저택으로 돌아갔다.
루시어스는 하멜과 나비가 물러간 후 단정하게 교복을 챙겨 입었다. 레녹스가 루시어스의 어깨에 망토를 걸쳐 주며 속삭이듯 작게 이야기했다.
“침입자는 대략 서른다섯 정도 되는 것 같다. 한두 반 정도는 들어온 모양이야.”
“바깥은?”
“열 명 정도? 멀어서 제대로 확인하기가 힘들군.”
“맞다. 아마 별관에서 도망친 학생들을 잡아내려고 하는 것 같은데.”
정답이라는 소리에 레녹스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입가에 걸린 옅은 미소에 루시어스가 픽 웃고는 어깨를 툭툭 다독였다.
아직 갈 길이 멀기는 하지만, 레녹스는 확실히 전보다 강해졌다. 특히 시야 공유를 여러 번 했더니 감각이 눈에 띌 정도로 좋아졌다.
이전의 그 같았으면 별관 전체에 어느 정도의 적이 침입했는지, 밖에 몇 명이나 숨어서 대기하고 있는지 몰랐을 텐데.
루시어스가 문을 열며 말했다.
“우선 한 명 정도를 잡아서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정보를 알아내는 게 좋겠다.”
“마침 적당한 놈도 하나 있으니.”
피슉! 파삭!
열린 문틈 사이로 화살이 날아들었다. 레녹스가 오필리아를 꺼내 들어 화살을 반으로 가르며 쳐 냈다. 그의 시선이 화살이 날아온 방향을 향했다.
반짝, 화살촉 끝이 어둠 속에서 빛났다. 다시 몇 개의 화살이 노골적으로 루시어스와 레녹스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이건 속임수고.’
일부러 잘 보이도록 촉이 빛나도록 마법을 걸어 두기까지 했다. 레녹스는 눈동자도 움직이지 않고 화살을 쳐 내는 척 검을 휘둘렀다.
“으왁!!”
촤악!
당황스러운 비명과 함께 그림자 같은 모습이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고 놀랐는지 입을 헙 다물며 물러나기는 했지만.
이미 모습을 제대로 숨기기 힘들 정도로 평정심이 깨져 있었다.
레녹스가 어둠 속으로 검을 죽 그었다. 헉, 하고 숨 들이마시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우당탕.
위에서 묵직한 뭔가가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마족 학생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레녹스가 은색 검신을 그에게 겨누었다.
“우리를 습격한 이유를 말해라.”
* * *
“우와. 갑작스러운 일이라 너무 놀랐네요. 그렇죠?”
탁탁.
밧줄로 침입자를 꽁꽁 묶어 놓은 키안이 손을 탁탁 털며 레이얼을 바라보았다.
레이얼은 조금도 놀라지 않은 표정으로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오히려 이런 상황을 예상하기라도 한 것처럼 무척 차분하기까지 했다.
키안은 묶어 놓은 학생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간밤에 방까지 침입해 덤비기에 실력에 자신이 있나 싶었는데, 생각보다 약해 김이 빠졌다.
“그런데, 이거 괜찮을까?”
레이얼이 습격한 이유를 들어야 하니 살살 상대하라고 했는데, 힘 조절을 못 했는지 주먹 한 방에 상대의 정신이 날아가 버렸다.
이야기를 할 만한 상태가 아니었다.
키안이 레이얼의 눈치를 흘긋흘긋 살폈다. 혼이라도 날까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
“우선 정찰부터 보내고…….”
“…….”
하지만 레이얼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지 실프를 불러 바깥에 정찰부터 보내고 있었다. 그러고 나서야 시선의 의미를 알아챘는지 키안을 마주 보더니 빙긋 웃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조금 기절한 것뿐인걸요.”
죽은 게 아니잖아요. 기절했으면 깨우면 되죠! 레이얼이 밝게 웃으며 묶인 학생 앞에 쪼그려 앉았다. 그러고는 손을 꾸욱 말아 쥐더니 검지와 엄지를 이용해서.
콩!
하고 딱밤을 날렸다.
“자, 일어나세요!”
“크헉!”
정신이 잘 들도록 마력을 실은 덕분인지 학생의 눈이 번뜩 뜨였다.
꽤 아팠는지 이마가 얼얼하게 부풀었다. 학생이 찔끔 눈물을 매달고는 눈을 바쁘게 움직였다.
“뭐, 뭐, 뭐야! 날 이렇게 붙잡아도 알아낼 수 있는 건 없어!”
“빨리 말하지 않으면 괴로울 텐데요?”
“설마 나한테 고문이라도 할 셈이야? 이런 야만적인 놈들 같으니!”
“고문이라면 고문이겠죠?”
레이얼이 방긋 웃으며 주섬주섬 뭔가를 꺼냈다. 키안이 불안한 표정으로 레이얼을 바라보았다.
레이얼이 꺼낸 것은 바로.
“쨘!”
깃털이었다.
학생이 흔들리는 눈동자로 그것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5분만 버티면 놓아 드릴게요. 저희를 왜 습격했는지 바른대로 전부 말해 주시면 지금이라도 그만두고요.”
“그, 그런 거로 나, 나를 협박할 셈이라면…….”
“대답하지 않으면 조금 곤란해지실지도 몰라요, 지펠 씨.”
“너, 너……! 내 이름을 어떻게!”
레이얼은 답하지 않고 방긋 웃으며 깃털을 그의 눈앞에서 살랑거렸다. 학생의 얼굴이 점점 하얗게 질렸다.
그는 간지럼을 정말 잘 탔으니까.
“그럼 5분 버티기 시작!”
“으아악, 살려 줘어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