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the Life of a Demon RAW novel - Chapter (130)
마족답게 사는 법-130화(130/385)
마족답게 사는 법 130화
130 키아라 아카데미 (5)
“으와아악!”
“커억!!”
불쑥 튀어나오는 푸른 불꽃에 훌른이 베른의 멱살을 잡아 흔들며 소리를 질렀다.
한 발 느려 훌른의 멱살을 잡지 못한 베른은 옆에서 켈룩켈룩 기침을 하며 반쯤 몸을 늘어뜨렸다.
제발 살려 줘!
축 늘어진 베른의 무게감이 손으로 느껴지고 나서야 훌른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형제를 바라보았다.
허공을 떠다니는 푸른 불꽃 때문에 놀람과 동시에 훌른 때문에 숨이 막혔는지 혼절하기 직전이었다.
훌른이 헉 숨을 들이마시며 손을 놓았다. 쿵! 베른의 몸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으으으…….”
“야…… 야. 베른! 정신 좀 차려 봐.”
너만 이렇게 가면 어떡해!
“젠장. 가려면 나도 같이 데려갔어야지!”
달빛 한 점 들지 않는 이 깜깜한 복도를 걸어 다닐 바에는 차라리 기절이라도 하고 싶다. 기절이라니, 이 태평하고 부러운 녀석!
화르륵. 스륵…….
바로 옆에서 불이 타오르는 소리가 들렸다. 훌른은 쓰러진 베른을 버려두고 벽에 바짝 붙었다. 그리고 숨을 죽이고 눈을 질끈 감은 채 두 손을 모아 기도했다.
마신님, 저 좀 살려 주세요! 제발 저것 좀 그냥 지나가게 해 주세요!
훌른은 울음소리도 내지 않고 아주 간절히 빌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아무런 기척도, 소리도 나지 않을 때쯤 슬그머니 눈을 떴다.
눈앞에 푸르게 빛나는 얼굴이 떠 있었다. 혈색 없이 도자기처럼 새하얀 얼굴에 푸른빛이 마구 반사되어 눈을 찌른다.
“……! ……!!”
훌른의 몸이 두 손을 모은 채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비명조차도 지를 수 없었다. 눈초리에 눈물이 조금 맺혀 있었다.
“어? 야, 야! 훌른!! 야!”
정신을 잃기 직전, 누군가가 다급히 자신을 부르는 것 같았는데.
모르겠다.
그냥 기절하고 생각하자.
* * *
-아. 아아. 흠, 잘 들리나요?
멀리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믿음직스러운 반장, 레이얼이었다.
훌른은 잘 떠지지 않는 눈꺼풀을 겨우 들어 올렸다. 레이얼이 있으니 기절하기 전에 본 건 헛것일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면서.
눈을 떴는데.
“드디어 일어났네.”
“으아아악!!”
조금 전에 보았던 것과 똑같은 얼굴이 눈앞에 나타났다. 훌른이 비명을 지르며 쏜살같이 뒤로 몸을 뺐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에스프는.
“하아.”
한숨을 푹 내쉬었다.
깊은 한숨 소리에도 훌른은 덜덜 떨리는 시선으로 주변을 살폈다. 베른이 어떻게 된 건지 걱정스러웠기 때문이다.
설마 저 무서운 녀석한테 잡아먹힌 건 아니겠지? 그렇게 생각하는데.
“푸흡, 푸, 흐흐, 흐하하하하!!”
옆에서 호탕한 웃음소리가 퍼졌다.
“베, 베른!”
훌른이 깜짝 놀라며 베른을 바라보았다. 베른은 거의 주저앉아서 배까지 부여잡은 채 웃어젖히고 있었다.
에스프가 성큼, 훌른에게 다가가 얼굴을 들이밀며 말했다.
“너는 그새 내 얼굴도 까먹었냐?”
“으아? 아? ……어?”
“아무리 무서웠어도 그렇지 어떻게 친구 얼굴을 보고 소리 지르면서 기절할 수가 있냐…… 진짜 너무하다.”
에스프가 팔짱을 끼고 훌른을 부루퉁하게 바라보았다.
베른은 옆에서 아직도 끅끅거리며 웃음을 삼키고 있었다. 훌른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평소의 두 배 정도는 크게 뜨인 눈이 끔뻑거렸다.
“그, 그 이상한 불은?”
“그야 당연히 이거지.”
화르륵.
손바닥 위에 푸른색 불꽃이 일렁였다. 훌른의 몸이 긴장이 풀린 듯 무너졌다. 에스프가 혀를 걷어찼다.
“주변을 좀 살피려고 보내 놓았던 거야. 놀랄만한 일이라는 건 알겠는데…… 아니. 친구 중에 위습 일족이 있으면 좀 바로 알아채란 말이야.”
투덜거리던 입술이 삐죽 튀어나왔다. 훌른이 자기를 보고 놀라 기절한 것이 무척 섭섭했던 모양이었다.
훌른을 내려다보던 에스프가 어깨를 으쓱이고 옆에 앉는데, 갑자기 곳곳에서 레이얼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안녕하세요, 델타 네 번째 반의 레이얼 페오입니다. 우선 여러분께 현재 상황을 전달하려고 해요.
“아, 진짜 눈물이 날 만큼 웃겼다. 정말 최고였어, 훌른. 영상석이 있다면 꼭 남겨 뒀을 텐데.”
“제발 입 다물어, 베른.”
“쉿. 반장 목소리 들린다. 뭔가 할 말이 있나 봐. 같이 듣자.”
훌른이 귀 끝까지 붉어진 제 얼굴을 무릎 사이로 푹 숨겼다. 그리고 눈동자만 살짝 움직여 에스프를 바라보았다.
위습이 푸른 불꽃을 다룬다는 건 상식 중의 상식인데. 왜 그 불꽃을 보고 에스프를 떠올리지 못했을까.
‘너무 분위기가 으스스해서 그만.’
베른이 정신을 잃고 쓰러진 참이라 더 불안하기도 했다. 혼자 열심히 변명해 보지만, 친구를 보고 기절했다는 사실이 변하지는 않았다.
끄응. 훌른이 작게 신음했다.
-현재 별관 내부에 38명의 키아라 아카데미 학생들이 침입한 상태랍니다. 키아라에서 사이러스 학생들의 망토를 빼앗아 오면 가산점을 준다고 했대요.
나중에 사과해야지, 그렇게 생각하며 레이얼의 말을 듣던 와중이었다.
-사실 키아라 학생들이 워낙 강하니까 망토를 빼앗기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 약하니 어쩔 수 없죠. 하지만…… 망토를 빼앗기면 앞으로 저희가 어떻게 될지 너무 걱정스러워요.
왠지 등골이 오싹 솟아오른다. 벌게졌던 얼굴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오히려 창백해 보일 정도였다.
훌른과 베른, 그리고 에스프가 동시에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아주 특별한 훈련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특별한 훈련이라면.”
“아니, 에이, 설마…….”
“…….”
왜 누군가의 웃는 얼굴이 뇌리에 스쳐 지나가는 걸까?
설마, 아니겠지. 그렇게 서로 시선을 나누며 어색하게 웃는데.
-으, 으앗! 알았어요! 아무것도, 으, 으으으!!
파스슥!
레이얼의 짧은 비명과 함께 목소리가 끊겼다.
고요한 정적에 오한이 일었다.
훌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지금 키아라 놈들이 문제가 아니야.”
“특별 훈련이라니. 혹시 루시어스는 아니겠지……?”
“하지만 반장이 저럴 정도면.”
모두 동시에 입을 합 다물었다.
왜 지금 여기서 화사하게 웃는 루시어스의 모습이 떠오르는지 알 수가 없었다.
루프 열매가 가득한 길을 따라 아카데미를 몇 바퀴나 돌게 하고, 그림자 언데드와 사령이 돌아다니는 체육관에 저흴 던져 넣던 그 미소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턱을 조용히 매만지던 에스프가 진지하게 말문을 텄다.
“생각해 봐. 루시어스가 어떤 놈이냐? 수업 듣고 시험 준비하기도 바쁜 와중에 시간 내서 우리를 훈련 시켜 주었던 놈이잖아.”
“그, 그렇지.”
“저번 학기 말엔 대련 시간에 우리 반을 전부 상대해 주기도 했지. 그런데 그렇게 1년 동안 키워 놨더니 키아라 놈들한테 망토를 뺏기면 루시어스가 뭐라고 생각하겠어?”
“…….”
“이건 루시어스의 자존심과 직결되는 문제가 아닐까? 만약 정말 그렇다면, 루시어스가 화를 낼지도 몰라.”
루시어스의 자존심.
그리고 루시어스의 분노.
그들이 마른침을 꿀꺽 삼키더니 동시에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주저앉아 있을 시간이 없었다.
“루시어스를 화나게 해선 안 돼.”
“가자, 얘들아!!”
훌른과 베른이 씩씩하게 에스프의 뒤를 따랐다. 복도에 내려앉은 어둠의 무서움은 잊은 지 오래였다.
그들은 복도의 어둠보다도.
환하게 웃는 루시어스가 더 무서웠다.
* * *
“레이얼, 저 녀석이 내 이름을 파는군.”
갑자기 목소리가 곳곳에 울리기에 무슨 일인가 싶더니, 이렇게 노골적으로 자신의 이름을 팔 줄은 몰랐다.
루시어스가 기가 찬 듯 헛웃음을 흘렸다.
악동 같은 미소가 슬그머니 떠오르는 건 기분 탓일까. 레이얼이 원래 이런 녀석이었던가?
아니었던 것 같은데.
레녹스의 화려한 말재간도 그렇고, 이 녀석도 그렇고.
왠지 속은 기분이다.
‘그래도 사기는 어느 정도 북돋아졌겠어.’
레이얼이 학생들을 고취하기 위해 적당히 지어낸 말이긴 하지만, 완전히 틀린 말이라고 볼 수는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렇게 열심히 훈련 시켜 놨는데 타 아카데미 학생들에게 부질없이 당해 버리면 지금껏 그들을 위해 시간을 할애하고 정성을 들인 보람이 없지 않은가.
쉽게 당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만일의 일을 상정하지 않을 수는 없다.
만약 정말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아이들의 실력 향상을 위해 조금 더 자신이 힘써 줄 생각이었다. 무슨 훈련을 할지는 더미트나 레녹스와 좀 상의해 봐야겠지만.
“으읍……!!”
“흐!”
옆에서 앓는 소리가 들렸다. 루시어스는 나무 넝쿨에 묶여 있는 학생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벌써 몇 명째인지 모르겠다.
별관이 던전화가 된 와중에 자신이 어디 있는지는 어떻게 알았는지, 키아라 학생들이 정말 득달같이 달려들더라.
루시어스가 미간을 살짝 일그러트리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시끄럽다. 지금 애가 자는 거 안 보이나.”
“욱!”
꽈아아악.
넝쿨이 억세게 그들의 몸을 조였다. 숨이 막히는지 울그락불그락 달아오르는 얼굴을 응시하던 루시어스가 힘을 조금 뺐다.
라타트리아가 품 안에서 살짝 꿈틀거렸다. 루시어스가 잠시 라타트리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겨우 긴장을 풀고 잠들었으니 좀 더 자게 해 주고 싶었다.
버둥버둥.
힘을 풀어 주니 또 달려들려고 난리를 친다. 루시어스가 질린 기색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힘의 차이를 보여 줬는데도 포기는커녕 눈을 반짝반짝 빛내고 있는 걸 보니.
과연 키아라의 학생들답다.
우지끈!
소리를 내지 못하도록 입을 꽉 막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그 정도로는 저들의 기세를 꺾기 부족했나 보다.
학생 하나가 날카로운 이빨을 내밀며 넝쿨을 갈기갈기 찢어 냈다.
그러고는 퉤, 하고 입안에 남은 식물 찌꺼기를 뱉어내며 루시어스를 바라보았다.
무척이나 도전적인, 치기와 자신감이 한데 어우러져 꽤 봐줄 만한 눈빛이었다.
우리 애들이 저만큼의 반이라도 자신감이 있으면 좋을 텐데. 루시어스가 속으로 아쉬워하며 그와 시선을 맞췄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모양이었다.
“히히, 역시 소문대로 강하구나. 어떻게 손가락 까딱도 안 하고 이렇게 싸울 수 있는 거지? 이쪽으로 오길 잘했어. 가위바위보에서 이긴 보람이 있다니까? 응?”
“…….”
“거참. 싸우기엔 엄청 재미있는데, 대화하기엔 재미없는 녀석이네.”
그렇게 핀잔을 주면서도 학생의 입가가 흥미롭게 위로 올라갔다.
“너, 설마 우리를 모두 제압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하고 싶은 말은 그게 전부인가?”
“설마 그럴 리가.”
톡톡.
루시어스가 발끝으로 바닥을 가볍게 두드렸다. 그곳을 중심으로 수면 식물인 프난이 한껏 피어나기 시작했다.
무엇인지 알아본 학생이 윽, 신음하며 발버둥 쳤다. 코와 입을 막을 요량이었겠지만, 루시어스의 넝쿨 때문에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녀석의 눈이 꿈뻑꿈뻑 감겼다. 그가 졸음에 빠져들며 느린 목소리로 더듬더듬 말을 늘어놓았다.
“너는 우리가 우습겠지만…….”
“…….”
“네 친구도, 그럴 거라고 생각하지는…… 마라. 우리도, 꽤, 강하거든…….”
씨이익.
장난스러운 웃음이 입술에 번졌다. 그렇게 말한 후에야 녀석이 축 늘어지며 잠에 빠져들었다.
루시어스는 잠든 학생들을 가지런히 늘어놓으며 레녹스를 돌아봤다.
“가자, 레녹스. 슬슬 애들과 합류해야겠다.”
“걱정되나?”
“걱정될 리가. 알잖아, 레녹스.”
키아라가 강한 건 사실이지만, 이 녀석들보다 우리 애들이 더 강해.
루시어스가 피식 웃었다.
“애들이 힘 조절 못 하고 일내기 전에 가야겠다. 한동안 내가 상대해 줘서, 고삐가 풀려 있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