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the Life of a Demon RAW novel - Chapter (132)
마족답게 사는 법-132화(132/385)
마족답게 사는 법 132화
132 키아라 아카데미 (7)
“왠지 생각보다 쉽지 않아?”
에스프가 허탈하게 웃으며 몸을 돌렸다. 훌른과 베른이 서로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그러게, 왠지 좀.”
“생각보다 약한데.”
키아라 학생들이 우르르 덤비기에 긴장한 것도 잠시였다. 눈을 질끈 감고 어떻게든 휙휙 움직이고 나니 금방 상황이 끝나 있었다.
쌍둥이가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키아라 학생의 옆구리를 콕콕 찔러 보며 의아해했다.
움찔, 움찔.
일부러 져 준 척해 주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진짜 이게 끝인가? 설마 키아라에서 일부러 약한 놈만 골라서 보냈나?
에스프도 고개를 기울였다. 설마 몇 합도 버티지 못하고 금방 나자빠질 줄은 예상하지 못했던 탓이다.
“루시어스보다 한 10배는 느려서 그런가, 할 만한 것 같기도 해.”
“루시어스는 움직임 따라가기도 벅차. 그냥 손 놓고 싶다고.”
“애들이 시야 봐 달라고 붙잡지만 않았으면 몇 번이나 도망갔을 거야.”
“이렇게 있으려니 루시어스를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나네.”
에스프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다시 생각하니 절로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래도 어떻게 힘을 합치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리누슈카가 쏙 몸을 빼 버리는 바람에 저도 함께 도망쳤었지.
지금 생각해 보면 이리누슈카도 참 대단한 눈썰미였다. 어떻게 그렇게 정확한 판단을 내렸는지 알 수가 없는 노릇이다.
“여기에 이리누슈카가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주술을 좀 더 탐구해 보고 싶다며 토르벤으로 갔으니 아깝기만 한 노릇이었다. 이리누슈카는 네 번째 반의 큰 전력 중 한 명이었으니까.
뭐, 그렇다고 함께 가자고 매달릴 수도 없는 노릇이지. 토르벤에서 나름대로 많은 것을 얻고 돌아왔으면 좋겠다.
“다시 움직이자. 적어도 다른 동료들이랑 만나기는 해야지. 이대로 있다간 망토를 빼앗기겠어.”
몇 명이나 상대하느라 힘이 많이 빠지긴 했다.
훌른과 베른이 고개를 끄덕였다. 주변이 어두컴컴했지만, 전혀 무섭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갑자기 학생 하나가 튀어나온다고 해도 사령이나 언데드, 특히 듀라한보다는 낫지 않은가.
목 잘린 기사가 무서운 속도로 자신들을 향해 “원망스럽다!!”하고 쫓아오는 걸 마주했을 때의 그 기분은 죽을 때까지 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여기 ‘입구’가 있는지 한 번만 찾아보고 가자.”
그들이 벽을 더듬었을 때였다.
드르륵.
벽이 스르륵 열리며 숨겨진 복도가 하나 더 나왔다. 훌른이 손을 뻗어 랜턴을 안으로 들여보냈다. 에스프가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하아, 드디어 찾았다.”
“별관이 던전이 되면서 비밀통로도 사라졌나 싶었는데, 그건 아닌가 봐.”
키아라 학생들이 안 들키고 민첩하게 이동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터다. 예를 들면, 이 비밀통로 같은 거 말이다.
기숙사라며 별관을 소개해 주었을 때부터 어느 정도 이상함을 느끼기는 했다. 겉에서 보는 별관의 구조와 안쪽의 구조에 약간의 차이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밀통로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설마 이런 식으로 사용할 줄은 몰랐다.
훌른과 베른이 쑥스럽게 웃었다.
“그 동굴을 줄기차게 돌아다니면서 미로에 익숙해진 게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은 몰랐네.”
“아르놀트 선생님한테는 못 이긴다니까.”
“맞아, 맞아.”
무슨 수업이든 실전에서 써먹을 수 있도록 몸에 콱콱 박아 버리는 게 아르놀트의 특기였다.
그들이 키득키득 웃었다.
“그런데 다른 애들은 괜찮을까?”
베른의 말에 에스프가 콧잔등을 찡긋였다.
“당연하지. 우리 반 애들이잖아.”
“……그건 그래.”
“음, 괜한 걱정인 것 같네.”
그들이 서로 시선을 나누더니 허허로이 웃어 버렸다. 에스프의 말대로, 다른 아이들은 분명 제각기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훌른과 베른이 머쓱하게 뺨을 긁적였다.
* * *
다른 학생과 만나는 데에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물론 바람과는 달리 키아라의 학생과 만났지만.
루시어스는 제 앞을 가로막은 학생을 지그시 응시했다. 저 녀석이라면 알고 있었다. 키아라에 도착했을 때부터 느꼈던 시선 중 하나였으니까.
“휴우, 드디어 만났네.”
“……포르비 벨라트릭스.”
“오, 날 알고 있어?”
“알고 있지. 유명하니까.”
“너보다 더할까.”
막상 마주하니 가슴이 떨렸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한 데에도 빈틈을 찾아볼 수가 없다. 당장 달려들어 싸움판을 벌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눈이 마주친 순간 숨이 턱 멎고 오금이 찌르르 저렸다. 몸이 덜덜 떨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차디찬 금색 눈동자가 유난히 어둠 속에서 빛나는 것 같다.
내려다보는 눈빛이 명실상부.
포식자의 시선이었다.
‘저게 드라이어드라고?’
말도 안 돼.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쿵쿵 뛰는 심장 소리가 귓가에서 울리는 듯 선명했다. 한 합 만에 드러누워도 좋으니, 한 번 실력을 재보고 싶었다.
결과가 어떻게 될지 알고 있지만.
그래도 붙어 보고 싶다.
“…….”
“……안 덤비나?”
한참 동안 움직이질 않는 포르비를 가만히 기다려 주던 루시어스가 말을 걸었다.
다른 학생들처럼 당장이라도 덤벼들 줄 알았는데 대치한 상태로 그저 가만히 서 있기만 하니 참 신기했다.
지금껏 만났던 어떤 학생보다 더 호전적으로 빛나는 눈을 가지고 있으면서.
“…….”
“덤빌 생각이 없다면 비켜 줬으면 좋겠는데, 이쪽은 친구들을 찾아야 하거든.”
상태를 보니 레이얼이 건 마법이 슬슬 풀릴 때가 되었다. 마법이 풀리기 전에 다른 학생들과 만나 바깥으로 나가야 했다.
꿀꺽. 포르비가 마른침을 삼켰다.
루시어스는 마치 귀찮은 벌레가 하나 꼬인 듯, 심기가 불편해 보이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눈앞의 자신은 마음만 먹으면 휙 치워 버릴 수 있다는 것처럼.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사실 너를 만나고 싶어서 안으로 들어왔거든. 그런데…….”
“그런데?”
“……주어진 시간이 너무 없는 걸 보니 아무래도 오늘은 날이 아닌 것 같다. 다음을 기약하고 싶어졌어.”
“보름달이라도 기다리나?”
“그 반대다. 달이 없는 밤에 보자.”
포르비가 옅게 웃으며 물러 나갔다. 우선 별관 여기저기에 있는 키아라 학생들을 찾을 생각이었다.
생각보다 피해가 막심하더라.
루시어스는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그를 바라보다가 다시 걸음을 옮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레이얼이나 다른 학생들과 만날 수 있었다.
망토를 빼앗긴 학생들도 있었고, 역으로 망토를 빼앗은 학생들도 많았다.
루시어스를 발견한 학생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러고는 한걸음에 다가와 쟁취한 망토를 보여 주었다.
에스프가 시작이었다.
“이것 봐, 루시어스! 우리 셋이서 꽤 많이 처리했다고? 게다가 이 미로 같은 곳을 돌아다니는 데에도 쌍둥이가 힘을 좀 써 줬지.”
“그래?”
“흠흠, 우리도 나름 성장했다고.”
훌른과 베른이 어깨를 쭉 펴며 으쓱거렸다. 루시어스가 잘했다고 치안해 주자 그들이 쑥스럽게 웃었다.
“그래도 무사히 만나서 다행이다.”
“저기, 루시어스. 그, 훈련은…… 안 하는 거지?”
아이들이 불안한 시선을 루시어스에게 보냈다. 시선을 한 몸에 받던 루시어스가 느긋하게 이리저리 그들을 돌아보고는 어깨를 으쓱였다.
“아직 안 끝났으니 혹시 모르지. 무서운 훈련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픽 웃으며 이야기하자 그들의 안색이 새하얗게 변했다
“자, 우선 밖으로 나가자. 이 환영회를 끝내야지.”
“으응……!”
마지막까지 긴장을 놓으면 안 되겠다며 뒤에서 아이들이 수군거렸다.
“도착했다.”
“드디어 끝이네요.”
별관 정문에 도착해 조금 기다리자 특유의 마력이 물러가며 분위기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마정석을 엄청 챙겨 온 보람이 있어요, 하고 레이얼이 흐르지도 않는 땀을 닦는 시늉을 했다.
루시어스가 레이얼을 바라보다가 머리를 슥 쓰다듬어 주었다. 제 이름을 마음대로 판 건 괘씸하지만, 결과가 좋으니 아무렴 상관없었다.
“루시어스. 잊지 않았죠?”
“아, 그거?”
“후후후. 네, 꼭 해 주세요.”
루시어스가 레이얼이 했던 말을 속으로 되새겨보았다.
레이얼이 부탁한 것은 정말 어렵지 않고 간단했지만, 동시에 무척이나 중요한 일이었다.
키아라의 속을 박박 긁어 놓기에는.
딱 적당한 일.
문을 열자마자 희끄무레한 동이 터오는 광경이 보였다. 석양이 질 때와는 다르게 진한 보랏빛 하늘이 서슴서슴 물러가는 모습이 상당히 환상적으로 다가왔다.
밖에는 별관의 상황 때문에 몰려온 선생들과 대기 중이던 학생들이 있었다.
루시어스가 레이얼에게 살짝 눈짓했다. 레이얼이 긍정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레이얼이 구호를 외쳤다.
“하나, 둘!”
셋! 하는 소리와 함께.
펄럭!!
붉은 망토들이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그 사이에서 루시어스가 손가락을 한 번 튕겼다.
우드드득, 쿠구궁.
그와 동시에 무서운 속도로 나무 한 그루가 자라기 시작했다. 나뭇가지 하나하나에 키아라 아카데미의 망토가 걸렸다.
건물보다도 크게 자라난 나무에 붉은 망토가 바람에 펄럭펄럭 휘날렸다.
루시어스가 작지만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동이 터 오는군.”
이 게임은 우리의 승리다.
* * *
“세상에.”
키론 학장은 아이들의 보고를 받자마자 상황을 확인하러 뛰어나왔다.
학생들의 보고처럼 별관의 상태는 무척 기괴하고 이상하고 신기했다! 밖에서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고, 안에서 밖으로 나올 수도 없었다.
안과 연결된 모든 연락 수단이 끊겼다.
아카데미의 선생들이 모두 모였지만, 대체 저게 무슨 술식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짐작도 못하고 있었다.
마법학부 선생들이 다 같이 모여 눈을 빛내고 있었다.
“저게 대체 어느 선생님의 작품입니까?”
“우선 저는 아닙니다.”
서로 자신이 벌인 일은 아니라며 고개를 젓고 있었다. 일개 학생이 벌인 일이라고는 믿을 수 없어, 그들이 몇 번이나 서로를 확인했다.
“대단하네요. 당장 마법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어떤 학생인지 궁금한데…… 물어보면 알려 줄까요?”
“혹시 모르죠. 꼭꼭 숨길지도. 그나저나 저건 어떨까요? 조금 만져 보고 싶은데, 으으!”
“가서 조금만 살펴볼까요?”
선생들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술식을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며 열띤 토론의 장을 펼치고 싶었다.
키론 학장에게 흘긋흘긋 눈치를 줬으나 그는 허락하지 않았다. 학생들이 즐기는 ‘환영회’에 선생들이 손대서는 안 된다는 이유였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다. 조금씩 동이 터 오며, 차가운 바람 사이로 따스한 햇볕이 내려앉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누군가 크게 외쳤다.
“문이 열렸습니다!”
그때, 갑자기 별관의 분위기가 변했다.
정확히는 원래대로 돌아왔다고 하는 편이 맞았다.
문이 열리고 사이러스 학생들이 안에서 줄줄이 나왔다. 그리고 하늘 위로 붉은 망토가 쏟아졌다. 높이 자라난 나무에 걸린 붉은색 망토가 지는 달빛을 받으며 펄럭펄럭 날렸다.
사이러스의 하얀색 망토는 유난히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마치 승전고를 울리는 군단의 행렬을 보는 듯 웅장하고 당당하게.
자신들의 승리를 알리고 있었다.
“세상에. 우리 학생들은?”
“어떻게 된 거죠? 분명 우리 뽀삐…… 흠흠, 포르비가 들어갔다고 하지 않았나요?”
다들 믿기지 않는 듯 웅성거렸다. 별관이 이상하게 변하든 어쨌든, 키아라 아카데미의 승리를 의심하지는 않았던 선생들이었다.
상대는 사이러스가 아닌가.
이번엔 운 좋게 제전에서 좋은 성적을 냈다지만, 항상 꼴찌나 겨우 하던 그 사이러스 아카데미가 아니던가!
우리 학생들이 질 리가 없다.
소수정예로 침입했기에 더더욱.
하지만 나무에 걸려 있는 붉은 망토들을 명실상부 키아라의 패배를 의미하고 있었다. 키론 학장의 무릎이 털썩 꺾였다.
그리고 마치 경배하듯, 두 눈으로 그 광경을 올려다보았다.
“인정할 수밖에 없군…….”
그래.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키아라는 사이러스를 상대하기 위해 50명의 실력자를 모았고, 환영식을 열었다. 밤을 틈타 별관에 38명의 침입자를 보냈다.
포르비 벨라트릭스까지 합하면 총 39명이었다.
그리고 결과는 저것이었다. 나무에 걸린 망토의 숫자는 한눈에 봐도 스물이 넘어 보였다.
사이러스의 학생들이 키아라 학생들을 이기고 저렇게 많은 망토를 손에 넣은 것이다.
키론 학장의 안색에 혈기가 돌았다.
키아라 아카데미의 패배에 불쾌함 따위는 없었다. 오히려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마치 흙더미에서 예상치 못하게 다이아몬드를 발견한 것 같은, 그런 고양감이 그의 마음을 꽉 채웠다.
아, 보라! 그리고 경탄하라!
저 아름다운 광경을!
키론 학장이 그렇게 예찬할 때.
우득, 쿠드득.
어디선가 흙먼지가 휘날리며 굉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의 눈동자는 그제야 당황스러움에 크게 뜨였다.
쿠구구구구궁!!
그리고 거대한 소리와 함께.
쿠과가가가강!!
별관이 무너졌다.
푸스스스.
아주 폭삭.
“………히힝?”
학장은 저도 모르게 말소리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