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the Life of a Demon RAW novel - Chapter (133)
마족답게 사는 법-133화(133/385)
마족답게 사는 법 133화
133 발푸르기스의 밤 (1)
레이얼은 바로 뒤에 있는 별관 건물이 우수수 무너지고 있는 데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시종일관 웃는 낯으로 승리를 기뻐하고 있었을 뿐이다.
루시어스가 레이얼을 슬쩍 내려다보았다.
별관은 무너질 정도의 타격을 받지 않았다. 오히려 레이얼이 별관 자체를 던전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별관이 받은 충격이 거의 없었다.
그러니 이렇게 갑자기 무너진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렇다는 말은…….
“후후, 왜 그렇게 보세요?”
“…….”
이렇게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웃음 짓고 있는 이 녀석이 바로 별관 파괴범이란 소리렷다.
레이얼은 루시어스의 시선에도 슬쩍 발을 뺐다.
“아무래도 건물이 마법진의 마력을 버티기 힘들었나 봐요.”
“…….”
“힛.”
저는 아무것도 몰라요.
그렇게 주장하는 것 같은 상큼한 웃음이었다. 루시어스는 힘차게 무너지고 있는 별관 건물을 보며 잠시 숨을 삼켰다.
‘설마 이것도 시말서를 써야 하는 건 아니겠지……?’
갑자기 골이 아파지는 것 같았다. 차라리 모른 척하고 싶어 고개를 돌렸다.
나는 모르는 일이다.
나는, 나는 모르는 일이야.
게다가 여긴 키아라 아카데미가 아니던가. 키아라는 학생들이 호전적이라 워낙 자주 무너진다. 애초에 루시어스는 키아라가 아니라 사이러스 소속이었다.
이 사태에 대해 져야 할 책임은 무엇도…….
“루시어스, 그거 기억나요?”
레이얼이 옆으로 스윽 다가와 붙더니 비밀 이야기라도 하듯이 귓가에 속닥였다.
“학장님이 사이러스 학생들의 저력을 보여 주고 오라고 하셨잖아요.”
“……그래서 이런 짓을?”
“그럼요. 환영회를 열어 주었으니 보답을 충분히 해야 하지 않겠어요? 그게 마족의 예의잖아요.”
레이얼이 빙그레 웃었다.
루시어스는 속으로 욕을 곱씹었다.
‘젠장.’
또 시말서 써야 하게 생겼어.
* * *
“이 녀석들아. 아무리 그래도 건물을 무너뜨리면 대체 뒷수습을 어떻게 하라는 거냐.”
아르놀트가 우는소리를 하며 미간을 짚었다. 하필 건물을 무너뜨려도 기숙사로 쓰라며 내준 별관을 무너뜨렸다.
당장 기숙사로 쓸 만한 곳이 없다는 소리였다.
물론 키아라에서도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사이러스에게 묻지는 않는다고 했다.
오히려 기숙사를 망가뜨려서 미안하다고 이야기를 전해 오기도 했다.
오늘 내로 기숙사를 새로 단장해 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도 하더라.
키론 학장이 그렇게 마음이 넓은 위인이 아닌데 말이지.
‘분명 꿍꿍이가 있어.’
한숨이 몇 번이나 푹푹 나왔다. 그 인재욕 많은 학장이 누굴 타겟으로 잡을지. 말릴 생각을 하니 벌써 머리가 아파지는 것 같았다.
레이얼은 그런 아르놀트를 바라보며 해실해실 웃었다. 그러고는 뻔뻔하게 헛기침하고는 말을 이었다.
“사이러스 건물이었다면 오히려 괜찮았을 거예요. 이건 키아라의 시공 문제예요.”
“끄응…….”
“매번 무너지니까 적당히 수리만 해 놓는 바람에 견고함이 부족하던데요? 마법진을 발동한 순간 알았어요. 건축 방법이 잘못되었다는 걸요. 재료 구성비가 엉망이었어요.”
레이얼이 입술을 빼죽 내밀며 볼멘소리를 했다. 아르놀트는 여전히 한숨을 땅이 꺼져라, 내뱉고 있었다.
루시어스는 꽤 피곤한 표정으로 레이얼을 노려보다가 시선을 거두었다. 레이얼의 말이 사실이라면.
‘상당히 큰일 날 문제인데.’
키아라 아카데미인 만큼 마왕성에서도 곧잘 감찰을 오고는 한다.
그런데 건물을 그렇게 엉망으로 지어 놨다고?
루시어스가 턱을 매만졌다.
별관이 무너진 건 순전히 레이얼의 마법 탓이었지만, 어쨌든 원인이 사이러스 학생에게 있다면 루시어스도 해명을 위해 보고서든 시말서든 올려야 했다.
하지만 키아라의 공사가 미흡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이번 ‘키아라 아카데미 붕괴 사건’문제를 키아라 쪽에 완전히 책임을 전가할 수 있었다.
완전히 뒤를 캐내려면 좀 더 정확한 자료가 필요하겠지만.
‘권력 좋다는 게 뭐겠어.’
자료가 없으면 만들면 된다.
아예 키아라 아카데미의 건축과 관련된 예산 비리 의혹 보고서를 작성해 제출하면 된다.
5장로의 직함을 이용하면 바로 그에 대한 감찰이 내려올 것이다. 굳이 제가 증빙 자료를 찾으러 제 발로 뛰어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그렇게 학장을 정신없게 만들어 놓으면 인재욕이고 뭐고 신경 쓸 겨를도 없겠지.’
루시어스의 입가가 비죽 올라갔다.
이건 꽤 재미있는 일이 될 것 같았다.
아르놀트는 그런 루시어스를 보며 등에 소름이 오소소 돋는 걸 느꼈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기에 저렇게 음침하게 웃는지 불안했다.
‘평소에는 미소 한 번 엿보기도 어려운 놈인데…….’
겨우 웃음 한 번 봤다 싶으면 이렇게 무서우니.
“흠흠.”
아르놀트가 헛기침을 한 번 하며 주의를 환기했다.
“어쨌든, 다들 크게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다. 오히려 한 방 먹여 줬으니, 참 잘 했어. 새벽부터 고생했다. 오늘은 우선 푹 쉬어라.”
“선생님! 저희는 이제 키아라에서 어떤 수업을 하게 되나요?”
레이얼이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물었다. 아르놀트가 턱을 매만지다가 아이들을 둘러보다 어깨를 으쓱였다.
“글쎄.”
“네?”
“짐작 가는 부분은 있다만, 아직 나도 전달받은 게 없어서 말이야.”
장난스러운 미소가 아르놀트의 얼굴에 가득 퍼졌다. 루시어스는 그가 어떤 때 이런 표정을 짓는지 잘 알고 있었다.
‘골탕 먹일 생각에 신났군.’
대체 무슨 일이기에 그러나.
“자, 우선 해산! 다들 쉬어라!”
아르놀트의 말에 학생들이 자리에서 기지개를 켜며 일어났다.
네 번째 반을 포함한 몇몇 학생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휴게실에 보여 빙글빙글 둘러앉았다. 조금 전 아르놀트 선생의 웃음이 머릿속에서 떠나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에스프가 고개를 이리저리 기울이다가 답을 구하기라도 하듯 레이얼을 바라보았다.
“앞으로 수업이 어떻게 될까?”
“으음.”
레이얼이라면 뭐든 알고 있을 것만 같았다.
기대와는 달리 레이얼도 고개를 저었다. 키아라에 온다며 이것저것 챙겨 오기는 했지만, 아르놀트 선생님의 속셈까지는 그도 알 수 없었다.
대신 레이얼이 말했다.
“아르놀트 선생님이 짐작 가는 부분은 있다고 하셨으니, 여기저기 단서를 찾으러 다니면 뭔가 알 수 있게 될지도 몰라요.”
“그럴 수도 있겠네.”
학생들이 수군수군 이야기를 나누었다. 루시어스는 가만히 그들을 바라보다가 눈을 내리깔았다. 루시어스로서도 딱히 짚이는 게 없었다.
키아라의 커리큘럼은 대장군인 더미트를 통해 미리 확인해 두었다. 하지만 사이러스의 교류회가 갑작스러웠기 때문인지 공동 수업에 대해서는 적혀 있는 바가 없었다.
‘아니면 아르놀트의 수업이 그들에게도 갑작스러운 일이 될 수도 있지.’
거창한 환영회를 사이러스 측에 알리지 않은 것처럼, 아르놀트가 키아라를 상대로 뭔가를 꾸미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쨌든 이곳에 글렌 학장이 없는 지금, 사이러스의 대표는 아르놀트니까.
찾으러 다니는 편이 좋을까, 아니면 가만히 내일을 기다리는 편이 좋을까. 고민하던 사이 아이들의 의견은 하나로 통일되고 있었다.
“그럼 한번 돌아다녀 보자.”
“그래, 그 김에 키아라 구경도 좀 하면 좋을 것 같아.”
“뭔가 알게 되면 서로 말해 주고.”
정보 수집이라기보다는 수학여행이라도 온 것 같은 분위기였다. 눈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걸 보니 어지간히도 돌아다녀 보고 싶었나 보다.
어제 키아라의 습격도 물리쳐서 자신감도 붙은 모양이다. 나쁘지는 않은 분위기였다.
“레녹스, 그럼 우리도 가자.”
“그게 좋겠군.”
지금 사이러스 학생들은 키아라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가 너무 적었다.
아이들의 말마따나 이 기회에 교내를 한번 돌아보며 정보를 수집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게다가 건물 시공과 관련해서도 여기저기를 확인해 봐야 하니까.
“그럼 잠시 해산!”
* * *
포르비와 마주친 건 본관을 여유롭게 거닐고 있을 때였다.
“아, 너는!”
“포르비 벨라트릭스.”
루시어스가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루시어스의 시선이 저를 향하자 방긋 웃었다.
귀가 쫑긋 섰다. 귀에 나와 있는 늑대 꼬리가 꽤 빠른 템포로 살랑살랑 움직이는 것 같기도 했다.
감정을 숨길 줄 모르는 천진난만한 녀석이었다. 포르비가 씨익 눈웃음 지었다.
“마침 네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타이밍이 좋네.”
“내 생각?”
“제대로 인사를 못 했던 게 아쉬웠거든. 다시 자기 소개할게. 포르비 벨라트릭스다. 네 소문은 익히 들었어.”
“루시어스 켄드릭이다.”
포르비가 불쑥 손을 내밀었다.
무슨 의미인지 흘긋 바라보자, 악수! 하는 시선으로 방긋방긋 웃고 있었다.
악의가 없어 보이는 웃음에 루시어스가 어깨를 으쓱이고는 손을 맞잡았다.
그가 위아래로 몇 번인가 흔들며 반갑게 인사하더니 손을 뗐다. 그러고는 눈을 빛내며 루시어스에게 바짝 다가와 눈을 위아래로 굴렸다.
“하루 만에 다시 만날 줄은 몰랐는데, 만나니 엄청 반갑네. 우리 아카데미 구경하고 있었어?”
“그런 셈이지.”
“볼 게 있을까 모르겠다. 우리가 좀 황폐해야지. 맨날 건물이 부서지기나 하니까.”
그가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이며 어깨를 으쓱였다. 키아라 아카데미 건물이 남아나지 않는다는 소문은 들어서 알고 있긴 했다.
그래서 그런지 어제 별관이 무너졌을 때도 학장이 크게 슬퍼하지는 않더라.
글렌 학장은 정말 아카데미가 떠나가라 울부짖던데.
그저 히히힝, 하고 조금 당황한 듯 자리를 한 바퀴 돌았을 뿐이다.
돈이 많은 아카데미는 다르긴 달랐다. 그 여유가 돈이 많아서인지, 아니면 정말 ‘부실 공사’를 하고 있는지는 캐봐야 알겠지만 말이지.
생각하는데 불쑥 포르비가 물었다.
“그런데 그 소문은 진짜냐?”
“나에 대해서 무슨 소문이 떠도는지는 나도 잘 모르는데.”
“뭐랬더라. 사이러스가 무너진 게 사실은 네가 화나서 그런 거라고 했나?”
“……?”
“사실은 네가 마왕의 아들이라 엄청 건방진데, 그걸 보다 못한 아르놀트 선생님이 콧대를 눌러 주겠다고 훈계했다가 보복으로 아카데미를 날려 먹었다는 소문이었던 것 같다.”
“…….”
“그래서 교류회가 갑자기 이렇게 변했고, 전하께서는 어쩔 수 없이 그걸 승인해 줬다던데. 아, 그것 때문에 아르놀트 선생님이 감봉까지 당했다더라고. 진짜냐?”
말문을 잃었다.
포르비는 그런 루시어스의 반응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덧붙였다.
“아무리 대단한 전하라도 아들한테는 지고 산다던데. 물론 모욕죄로 잡혀갈까 봐 학생들 사이에서나 은근하게 돌고 있는 소문이지만.”
“헛소문이다.”
“아, 역시 그렇지?”
그가 씨익 웃었고, 루시어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호사가들이 무슨 말을 못 할까 싶긴 하지만, 대체 어떤 경위로 그런 소문이 돌게 된 건지 모르겠다.
고개를 설레설레 젓던 루시어스가 흘긋 포르비를 바라보았다. 키아라의 학생들 사이에서는 ‘대장’이라고 불릴 정도로 인망이 좋은 모양이던데.
‘이 녀석이라면 꽤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으려나.’
교류회가 어떻게 진행될지 학장에게 들은 게 있을지도 모르고, 루시어스가 모를 ‘소문’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마주쳤는데 차라도 한 잔 함께 하겠나?”
“차?”
“이야기를 좀 더 나누고 싶거든.”
“음, 좋아! 그럼 내 방으로 가자. 거기가 제일 조용하거든.”
“그런가?”
콰앙!
조용하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무섭게 멀리서 굉음이 울렸다. 살짝 창밖을 바라보자 푸스스 잿빛 연기가 나며 건물 구석이 부서져 있었다.
그 사이로 시끄러운 목소리들이 마구 울렸다. 꽤 즐거운 표정으로 싸우고 있는 학생들과 편을 나눠서 응원하며 지켜보는 학생들.
심지어 선생님들까지 훈수를 두며 상황을 즐기고 있다.
말릴 생각은 조금도 없어 보였다.
과연 키아라다.
‘이런 의미로 조용하다는 건가.’
하긴 기숙사에 있는 그의 방까지 쫓아가 난리를 비울 학생은 없을 테니까.
루시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