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the Life of a Demon RAW novel - Chapter (138)
마족답게 사는 법-138화(138/385)
마족답게 사는 법 138화
138 발푸르기스의 밤 (6)
어둠이 내렸다.
두 달빛이 마계의 하늘에서 모습을 숨겼다. 마왕은 유난히 어두운 길을 따라 루시어스가 오라고 했던 장소에 도착했다.
약속 시각보다 조금 이르게 도착했지만, 달 대신 별이 반짝이는 하늘을 보고 있으니 그리 따분하지도 않았다.
루시어스가 무슨 생각으로 저를 불러냈는지 고민해 보는 것도 꽤 재미있었고.
‘결투장을 받고 얼마나 이날을 기다렸는지 모르겠네.’
더미트에게도 마리에게도 말하지 않고 여기까지 왔다. 루시어스가 둘만의 시간을 갖길 원했으니 응당 그리해 줄 생각이었다.
마왕은 얼마 후 어둠 속에서 등장하는 루시어스에게 시선을 던졌다.
금색 눈동자는 어두운 밤하늘 아래에서도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마계의 달을 오롯이 담은 색이었다.
마왕은 루시어스를 잠시 가만히 훑어보았다. 루시어스는 ‘공적’인 일에는 항상 정복을 입고는 했다.
하지만 오늘 루시어스가 입고 나온 옷은 키아라 아카데미의 교복일 뿐이었다. 마왕이 핏 웃으며 루시어스에게로 걸음을 옮겼다.
‘마왕인 루겔 르완을 원하지 않는다면.’
대체 제게 무엇을 원하고 있을까.
인사도 없이 그저 서로 시선을 나누기만 하던 루시어스가 입을 열었다. 조용한 목소리가 울렸다.
“발푸르기스의 밤입니다.”
“알지. 아니까 이리 나왔지.”
“키아라에서는 이렇게도 발푸르기스의 밤을 챙긴다 해서요.”
“더미트에게 듣기는 했었어. 진 사람이 이기는 사람의 소원을 들어준다고.”
루시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부러 소원을 들어주려고 자신을 불러내지는 않았을 테니. 마왕은 잠시 눈을 굴리다 웃었다.
“자신 있나 봐?”
“……네.”
“호오.”
마왕이 작게 감탄했다.
72년간 루시어스를 봐 왔지만, 이렇게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저를 이길 수 있다고 단언하는 루시어스는 처음이었다.
“전하께 빌고 싶은 소원이 있어요.”
“그래?”
“이럴 때가 아니면 평생 말씀드릴 수 없을 것 같아서…….”
마왕이 고개를 기울였다.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기에 이렇게 뜸을 들일까?
말을 잇던 루시어스가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는 답지 않게 말끝을 길게 내빼며 흐렸다.
루시어스의 의도를 헤아려 보느라 바쁘던 마왕은 루시어스의 목소리가 더 들리지 않자 시선을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루시어스의 안색이 퍽 좋지 않았다.
답지 않게 뜸을 들이며 이따금 심호흡하고 있었다. 우물우물 움직이는 입에 걱정이 참 많아 보였다.
눈 밑에 짙은 그늘이 가득했다.
대체 무슨 이유일까.
차마 더 말을 잇지 못하는 루시어스를 마왕이 사뭇 심각하게 바라보았다.
“…….”
기대하며 즐겁게 나왔지만 루시어스를 만나니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마왕의 입이 절로 다물렸다.
대체 무슨 일이기에 이러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한 번도 제 앞에서 이런 모습을 보인 적이 없지 않았는가.
저렇게 표정이 안 좋아질 정도로 못할 말을 하러 왔나?
그것이 대관절 무엇이기에.
‘설마.’
키아라에 간 사이에 애인이라도 만들었나? 설마 결혼 허락이라도 받으려고 찾아왔나? 상견례라도 하자는 걸까? 대체 어떤 마족이기에 루시어스의 마음을 쏙 빼앗아 갔을까?
루시어스가 좋다고 하면 허락해 줘야겠지만 마음에 안 들면 어떡하지?
아, 혹시 그래서 자신을 이기고 애인을 소개하려고?
아직 결혼은 안 된다, 아들아!
100살도 안 된 미성년인데 벌써!
루시어스는 마왕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옆으로 내려온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뜸을 들이고 있었다.
마왕이 벌컥 소리쳤다.
“이, 인정 못 해!!”
“……예?”
“이 결혼, 나는 인정 못 한다!!”
“……?”
갑작스러운 외침에 루시어스가 흐릿한 시선으로 그를 응시했다.
저건 또 뭔 말이야.
“……이게 아니니?”
“…….”
시선을 받은 마왕이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대체 어떻게 생각의 흐름이 저기까지 닿을 수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흠흠.”
마왕이 머쓱하게 헛기침했다.
그러고는 옆을 흘금 쳐다보았다.
“조금 오해가 있었나 보다. 어쨌든 알겠으니 거기 숨어 있지 말고 나와라.”
“에이, 재미없게.”
기척을 숨기고 있던 마리엘라가 스르륵 나타나며 입술을 삐죽였다. 잘 숨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빨리 들킬 줄이야.
기습이라도 해 보려고 했는데 아쉽게 되었다. 마리엘라는 몸을 드러내자마자 가뿐한 발걸음으로 루시어스의 뒤에 섰다.
그러고는 뒤에서 꼭 끌어안았다.
“난 이번엔 루시어스 편이야.”
“……그래?”
“응, 루시어스 편.”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굳이 조용히 제게만 초대장을 보낸 이유가 마리엘라를 몰래 꾀어내기 위함이었다니.
아무튼, 제 여동생은 루시어스를 너무 좋아해서 탈이었다. 이러다 오빠와 남동생이 동시에 낭떠러지에 매달리면 남동생만 구해 내게 생겼다.
……아니지, 그게 맞긴 하지.
자신과 루시어스가 낭떠러지에 매달리면 루시어스부터 구해 내야지. 나는 날개가 있으니 어떻게든 살 수 있겠지만 루시어스는 아니지 않나.
마왕이 생각을 이으며 고개를 끄덕이는데 마리엘라가 덧붙였다.
“그러니까 여동생 얼굴을 봐서라도 순순히 항복해 주라. 아니면 쓴맛을 보게 될지도 몰라.”
“쓴맛? 내가?”
“응, 오빠가.”
마리엘라가 살살 약 올리듯 이야기하며 씨익 웃었다. 루시어스는 그녀의 품에 안긴 채 둘의 시선이 살벌하게 오가는 것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일부러 화를 돋울 거라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저렇게 ‘마왕’의 자존심을 건드려도 괜찮은 걸까.
불안한 시선이 마왕에게 닿았다. 마왕은 시선이 마주치자 루시어스를 향해 가볍게 웃음 지어 주었다.
화나지 않은 건가. 생각하는데.
쾅!
강력한 마기의 파동과 함께 조금 멀리 있던 바윗덩이가 사라졌다. 바위 속과 틈새에 심어 두었던 식물들도 모두 흔적도 없어졌다.
꿀꺽.
루시어스가 마른침을 삼켰다.
목에 둘러 있던 마리엘라의 팔이 스르륵 풀렸다. 그녀의 손에 애용하는 채찍이 들렸다.
“둘이서 이것저것 준비를 한 모양이니 응당 받아 줘야겠지.”
“오빠는 너무 눈치가 빠르다니까.”
“누구 오빠인데 당연하지 않겠니? 자, 오늘은 봐주지 않을 거란다. 얘들아.”
마왕이 말했다.
“둘이 한꺼번에 덤비렴.”
검붉은 기운이 넘실거린다.
* * *
승산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마신의 축복은 절대적이지 않다. 강력한 힘이었으나 그렇다고 영원불변의 것은 아니었다.
마왕의 계승이 죽음으로써 이루어지는 것만 봐도 그랬다.
지금껏 모든 마왕은 그렇게 대를 이었고, 아마 역대 최강이라고 불리는 현 마왕 또한 그럴 것이다. 누군가에게 죽고 축복을 이어 준 후 떠나가겠지.
그건 마족들 사이의 약속이나 다름이 없었다. 마신의 축복을 지키기 위한, 마계의 지배자를 계속해서 탄생시키기 위한 약속.
“하아, 하…… 후.”
어쨌든 말하고 싶은 건 하나였다.
1장로와 5장로가 동시에 덤비면 그에게 생채기 하나쯤은 날 줄 알았다.
‘어림도 없지.’
그래,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루시어스는 자신의 소망이 얼마나 크고 헛된 일인지 뼈저리게 알았다. 지금까지 저를 상대해 주며 그가 얼마나 손속을 많이 봐줬는지 다시금 느꼈다.
수많이 준비해놨던 함정을, 마리엘라와 자신을 상대하며 이렇게 쉽게 전부 회피할 수가 있다니.
“아, 정말 너무하네.”
마리엘라가 작은 목소리로 불평했다. 혀끝에 비릿한 혈향이 감돌았다. 턱밑까지 간질간질 피 한 방울이 뚝 떨어졌다.
당장 손등으로 닦아내고 싶었지만 여의치 않았다. 마왕의 사슬이 루시어스와 마리엘라의 몸을 꽉 옥죄고 있었다.
잘그락.
그녀가 몸을 한 번 비틀어 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사슬이 꽤 단단해서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한 번쯤은 순순히 져 줘도 되잖아.”
“마리, 그러기에는 내 어깨 위에 짊어진 게 너무 많단다.”
마왕이 묶여 있는 루시어스에게 성큼 다가갔다. 그러고는 조금 토라진 듯 시선을 마주치지 않는 루시어스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 주었다.
둘이 작은 머리를 모아서 무슨 작당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호락호락하게 당하기에는 제 어깨에 지고 있는 짐들이 너무 많다.
이걸 내려 둘 수 있다면 모를까.
“자, 내가 이겼으니 소원은…….”
“……직 …… 났습니다.”
“응?”
“아직 안 끝났다고요.”
이겼다고 방심하고 있을 때가 반격하기 제일 좋은 타이밍이다.
루시어스가 입을 꾹 다물고 마기를 끌어 올렸다. 바닥에 뚝 떨어져 있던 창이 스르륵 떠올랐다.
발아래에서 조금씩 가느다란 식물 줄기가 솟아났다. 몸을 묶은 사슬을 따라 식물이 자라났다.
사슬 사이사이로 파고 들어간 줄기가 조금씩 사슬을 벌려 틈을 만들었다. 루시어스는 사슬이 느슨해지자마자 바로 창을 휘둘렀다.
휘리리릭.
움직임에 따라 몸에 걸쳐진 사슬이 휘며 검은 안개로 흩어졌다. 마왕은 크게 한 발자국을 뒤로 물러나며 미간을 살짝 일그러트렸다.
‘안 풀릴 만큼 힘을 줬는데.’
마리엘라를 흘금 곁눈질하자 여전히 사슬에 묶여 있는 그녀가 보였다. 몇 번인가 다시 몸을 움직여 봐도 꿈쩍하지 않는 것이 영 마음대로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마리는 힘을 다 쓸 때가 되긴 했지만, 루시어스가 이걸 이렇게 쉽게 풀다니.’
그새 또 실력이 좋아졌나?
촤르륵.
허공에서 다시 사슬이 휘몰아쳤다. 두 번 당해 줄 생각은 없어, 루시어스가 과감하게 발자국을 디디며 더욱더 깊이 파고 들어갔다.
창을 마기로 날카롭게 벼려 휘두르자 사슬들이 서걱서걱 썰렸다. 마왕이 손을 뻗자 마리엘라의 발치에 떨어져 있던 채찍이 날아들었다.
채앵!
이것도 참관수업에서 한 번 했던 일이지.
마리엘라와 계약 마수를 공유하기 때문에 마왕은 언제든 저 채찍을 불러오거나, 주도권을 빼앗아 올 수 있었다.
루시어스가 입술을 가볍게 깨물었다. 마왕은 자신을 봐줄 마음이 조금도 없는 것 같았다.
한 번만, 제발 딱 한 번만.
“한 대만 맞아 주세요, 제발.”
“……!”
금색 눈이 간절하게 일렁이는 것도 잠시, 곧 섬짓하도록 번뜩 빛났다. 마왕은 정말 오랜만에 몸이 굳는 불쾌한 감각을 느꼈다.
당장이라도 날카로운 창끝이 목을 뚫고 목숨을 거두어 갈 것 같았다. 루시어스는 어느 때보다 진심으로 자신을 상대하고 있었다.
하얗게 흩날리는 은발 위에 밤의 그늘이 내려앉았다.
마치 제 목숨을 거둬가려고 온.
신의 사자 같았다.
파앗!
쿠구구구구궁!
밤바람이 흙먼지와 함께 일었다. 마왕이 디디고 있던 발밑이 푹 꺼지며 거대한 크레이터가 생겼다.
일어나는 흙먼지 속에서도 루시어스의 표정은 여전히 덤덤했다. 마왕은 잠시 제 손에 들린 물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언젠가부터 고이 보관해 두었던, 그가 가장 애용했던 무기.
케인이었다.
날렵하고 긴 지팡이는 블랙 드래곤인 케렌스타의 비늘과 아다만티움을 녹여 만들어 무척 차갑지만 부드러운 검은빛을 띠었다.
축복을 받은 자신의 힘을 견딜 수 있도록 견고하게 만들어졌다.
두껍고 거대한 바스타드 소드보다 무겁고 레이피어 보다도 날렵하다.
그의 마력을 오롯이 담을 수 있기에 그저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흉기가 된다.
바람이 가르는 소리가 스친다.
루시어스는 그가 케인을 꺼내든 모습을 응시하다가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이러면 안 되는데.
결투장을 보낸 건 자신이니 어떻게든 그를 이겨서 소원을 빌 궁리를 해야 하는데.
이 싸움에 집중해야 하는데.
“…….”
왜 이렇게 속이 답답할까.
여느 때보다도 더 진지하게 무기를 들고, 뼛속까지 시리는 싸늘한 시선을 보내는 저 마족이 왜 이렇게 실망스러울까.
“이것까지는 안 쓰려고 했는데.”
“…….”
“이왕 꺼냈으니 각오하는 게…….”
“…….”
“좋을…… 거야?”
말을 잇던 마왕이 조금 당황스러워하며 말을 더듬었다. 말끝을 길게 늘이며 여전히 묶여 있는 마리엘라를 흘긋흘긋 쳐다보다가, 그녀를 속박한 사슬을 풀어 주었다.
마왕은 영문을 모르고 무척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둘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마리엘라에게 필사적으로 도와달라는 사인을 보내기도 했다.
마리엘라는 루시어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어휴, 하고 고개를 젓고 있었다.
그리고 루시어스는…….
뚝. 투둑.
“…….”
루시어스는.
“루시어스…… 우니?”
“……몰라요.”
고개를 돌리는 것으로 벌게진 눈가를 감추려 할 뿐이었다.
마왕은 그 자리에 우뚝 섰다.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루시어스를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었다.
마계를 제패하며 최강의 자리에 오른 그였지만.
“훌쩍.”
우는 아이를 달래는 법은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