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the Life of a Demon RAW novel - Chapter (142)
마족답게 사는 법-142화(142/385)
마족답게 사는 법 142화
142 발령 (3)
아르놀트는 그 웃음을 가만히 바라보며, 작게 심호흡했다.
“묻겠습니다.”
“네, 물으시죠.”
“그때의 일과 관련이 있으십니까?”
“음…….”
타리크는 작게 신음하며 아르놀트의 목을 슥슥 매만졌다. 이대로 부러트릴지 말지 퍽 고민스러웠다.
물음에 대답해 주면 날 믿어 줄까?
시작된 의심은 멈출 수 없다.
사이러스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선생인 그가 자신을 이런 시각으로 바라보는 건 명령을 수행하는 데에 상당히 불리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쉽게 쓱싹 처리할 순 없었다.
여전히 아르놀트의 몸은 긴장한 채 굳어 있었다. 그러면서도 언제든 바로 움직일 수 있도록 충분히 저를 경계하고 있기도 했다.
타리크가 어깨를 으쓱이며 손을 뗐다.
“누가 보면 제가 아르놀트 선생님을 협박하는 줄 알겠습니다. 긴장 푸시지요.”
“말 돌리지 마십시오. 질문에 대해 제대로 대답해 주셨으면 합니다.”
“첨탑이 무너진 자리에 아름다운 나무가 자라난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거기까지입니다.”
“…….”
“저와는 관련 없는 이야기입니다.”
사이러스의 학생이 납치되었건 말건, 첨탑이 무너졌건 말건 저는 관계가 없는 이야기였다.
애초에 그 녀석들에게 사이러스의 학생들을 납치하라는 명령을 내린 적이 없지 않았는가.
그저…….
식물을 잘 돌볼 만한 종족의 마족들을 데려와 나무를 관리하라고 했지.
능력이 안 되면 죽여서 거름이라도 주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을 뿐이고.
그러니 자신은 관계가 없었다.
“저를 상당히 경계하고 계시네요.”
“……네, 맞습니다.”
“나쁘지 않은 판단입니다. 당신의 우려처럼 저는 당장이라도 당신의 목숨을 취해갈 수 있고 아카데미에 있는 학생과 선생님들을 죽일 수 있죠. 시간이 허락된다면, 꽤 많이.”
정확히는 루시어스에게 들키기 전까지 제 눈에 닿는 모든 마족을 죽일 수 있다.
“저는 그런 행위에 스스럼이 없는 녀석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
“그럴 생각은 없으니 경계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여전히 날 선 시선이 느껴진다.
타리크는 어떻게 이야기를 덧붙일까 고민하다가 말을 이었다.
“가능하면 당신에게 미움을 사고 싶지 않거든요.”
“……제게, 말씀입니까?”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제가 여기 온 건 토르벤으로 진학했던 일의 연장선이라고. 사이러스의 총책임자와 척을 져서 좋을 게 없습니다.”
“…….”
“그러니 적어도 이곳에서는 당신을 죽이지 않습니다. 학생들을 죽일 생각도 없습니다. 답이 되었습니까?”
아르놀트가 손을 꽉 말아쥐었다.
손끝이 새하얗게 질렸다.
이렇게밖에 하지 못하는 제 능력에 화가 났다. 그가 여기서 날뛰기 시작해도 제압할 힘이 제게 없었다.
물론 일이 어떻게 흐르든 최악의 상황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루시어스 켄드릭이 있으니까.
하지만 최후의 보루를 학생으로 두는 것이 정말 바람직할까?
학생이 강하다는 이유로 선생의 의무를 학생에게 전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선생 일을 하며 이렇게까지 무력감을 느낀 적이 있던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답이 되었습니다.”
상한 자존심을 치켜세우며 그에게 계속 날을 세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걱정하는 일은 벌이지 않겠다 했으니 믿어 보는 수밖에 없었다.
아르놀트가 눈을 가볍게 감았다가 떴다. 입안이 진흙을 가득 머금은 듯 껄끄러웠다.
하지만 여전히 수상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처음 만나는 사이에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해 줄 이유는 또 어디에 있는가.
그런 시선을 느꼈는지 그가 흐음, 신음하더니 덧붙였다.
“속내를 숨기는 쪽이 더 무서운 법이죠. 신뢰를 사기 위한 정보 값이라고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그렇게 알도록 하죠.”
눈치가 빠르니 편하군.
타리크가 픽 웃었다.
“……그럼 마지막으로 하나 묻겠습니다.”
아르놀트가 타리크를 응시했다.
선천적인 시력이 문제가 될 만큼의 스콜피온 마족이라면 역시 그를 의심해 볼 수밖에 없다.
저를 앞에 두고도 이렇게 당당하게 협박할 수 있는 마족이라면.
단 하나뿐이다.
“당신은 ‘타리크 라하위스’입니까?”
타리크는 그 물음에 잠시 웃음을 머금었다. 여기서 제가 정체를 들켰다고 당장 목을 조르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저런 물음을 할까.
“저는 사이러스 소속인 ‘리크 선생님’입니다. 적어도 여기에 있는 동안만큼은 그럴 겁니다.”
“…….”
“가시죠, 아르놀트 선생님.”
타리크는 끝까지 아르놀트에게 경칭하며 걸음을 옮겼다. 타리크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아르놀트가 조금 뒤늦게 그를 따라갔다.
‘하멜 선생도 만만치 않게 수상하긴 했지만, 새로운 선생님이 더하군.’
하멜이 그리워질 때가 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아르놀트가 심란하게 한숨을 내쉬며 그를 교실로 인도했다.
교실 문 앞에 선 타리크는 싱그럽게 불어오는 마기의 바람에 기분 좋은 웃음을 흘렸다.
너머에 루시어스가 있다는 게 피부로 느껴졌다. 타리크는 문을 열고 들어가며 옛날에 있던 일을 되새겼다.
‘조용히 기다리자.’
자세를 낮추고 가만히 기다리자.
놀라지 않도록 조금씩, 아주 천천히 다가가자.
그때의 빛을 볼 수만 있으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으니까.
그 빛에 닿을 수만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 수 있으니까.
*
“아무리 생각해도 학장님은 정말 희대의 능구렁이라니까.”
“그런가?”
“당연하지. 누가 알았겠냐. 설마 발푸르기스의 밤을 이용해서 반을 새로 배정할 줄이야.”
포르비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학장은 발푸르기스의 밤에 사이러스 학생들과 결투해 이기거나 무승부가 난 학생들만 합동 수업을 치르게 했다.
사흘 내내 결투를 하다 보니 그 수는 상당히 많았는데 그중에서도 같이 수업을 들을 학생들을 적당히 추리느라 꽤 고생했다고 한다.
“사이러스와의 무용담들을 뽐내면 상을 준대서 열심히 자랑했더니 설마 합반을 시킬 줄은.”
“그래서 합반은 마음에 안 들고?”
“설마! 엄청 마음에 들지!”
루시어스는 자신의 앞자리에서 몸을 뒤쪽으로 돌리고 한쪽 손으로 턱을 받친 채 생글생글 웃고 있는 포르비를 바라보았다.
루시어스의 물음에 포르비가 다시 이빨이 보이도록 씨익 웃었다.
“대체 언제 또 기회가 오나 했다. 특히 너, 레녹스 자카르!”
“하아.”
레녹스는 한숨과 함께 토라진 듯 고개를 돌렸다.
포르비가 퉁명스레 불평했다.
“야. 너는 나랑 인사도 안 해 주냐? 언제까지 승부에 연연할 거야?”
“그런 거 아니다.”
“아쉬우면 오늘 방과 후에 함 더 붙던가.”
“싫다.”
“매정해라. 우리 지금 1승 1패 1무인 거 알잖아. 결판을 내야 하지 않겠냐, 응?”
“필요 없다.”
“따악 함만 더 붙자니까!”
“거절한다.”
“쳇.”
포르비가 툴툴거리며 입술을 빼죽 내밀었다. 옆에서 보던 학생 하나가 포르비의 소매 끝을 살짝 잡아당겼다.
루시어스는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포르비. 그러고 보니 네 친구가 옆에 있는 것 같은데, 소개해 주겠나?”
“아, 그랬지.”
포르비가 눈을 동그랗게 뜨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루시어스와 레녹스에게 옆에 있는 친구들을 소개해 주지 않았다.
포르비가 옆에 있던 마족을 가리켰다.
“이쪽은 로샨. 내성적이라 말을 안 하지만 좋은 녀석이니까 잘 대해 줘.”
“잘 부탁하지.”
루시어스가 잠시 로샨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로샨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있었다.
피닉스 일족과 천사 사이의 하프.
로샨은 특히 둘의 특징을 고루고루 가진 아주 드문 케이스였다. 머리카락은 불새의 날개처럼 가볍게 일렁이며, 귀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천사들처럼 작은 날개가 돋아 있었다.
다만 하얀색이 아니라 무척 아름다운 붉은색으로.
정화의 불꽃이라고 불리는 피닉스라 천사와의 결합이 가능했다고 학자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하게 갈리고는 했다.
“…….”
로샨은 루시어스와 가만히 시선을 맞추다가 고개를 살짝 까딱였다.
“얘도 네가 마음에 들었나 봐.”
“그런가?”
“그럼. 로샨은 쑥스러움이 많다니까. 원래 눈도 잘 안 마주치려고 해.”
포르비가 뺨을 긁적이며 로샨을 흘긋 보았다.
말한 대로 로샨은 태생 때문인지 항상 움츠러들어 있었다. 아직도 제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할 정도니까.
그런데 설마 이렇게 루시어스를 볼 줄은 몰랐다. 드라이어드의 깨끗한 기운 때문에 이끌리는 일인지도 몰랐다.
“잘 부탁한다.”
“…….”
루시어스의 인사에 로샨의 고개가 다시 위아래로 가볍게 흔들렸다.
그 후 포르비가 옆에 있는 다른 마족을 소개해 주었다.
“얘는 포톤. 날 잘 도와주는 고마운 친구지.”
“그렇게라도 생각해 주니 고오맙구나.”
포톤이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루시어스가 포톤을 살폈다. 회색 머리카락이 무척 익숙했다.
“이쪽은 샤먼이군.”
“잘 아네, 맞아. 샤먼답지는 않지만 좋은 놈이야.”
“샤먼답지 않아서 미안하다.”
포톤이 어이없다는 듯 톡 쏘아붙이며 포르비를 바라보았다. 확실히 샤먼이라고 하기엔 감정 표현이 무척 풍부한 편이었다.
루시어스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샤먼답지 않다니. 네가 그걸로 만족한다면 하등 상관없는 일이다.”
“……그렇게 생각해?”
“물론이지. 내 아버지도 샤먼이시거든. 요즘 곧잘 웃으셔서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
포톤의 안색이 조금 밝아졌다. 그러고는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이며 시선을 휙 피했다. 그런 말을 들을 줄은 몰랐다는 표정이었다.
“그렇게 말해 주니 기분이 좋네. 고마워.”
“이 정도로 뭘.”
루시어스가 흐뭇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요즘 유난히 감정 표현에 솔직한 더미트가 생각나 기분이 좋았다.
드르륵.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열리고 선생님이 들어왔다. 학생들이 우르르 자리에 앉아 선생님을 맞이했다.
그런데 아르놀트의 뒤편으로 선생 하나가 더 따라 들어왔다.
“흠흠, 소개하겠다. 오늘부터 마법학을 가르쳐 주실.”
루시어스의 미간이 살풋 좁아졌다.
“리크 라하위스 선생님이시다.”
리크 라하위스라니.
가명을 쓸 거면 좀 성의 있는 가명을 쓰기라도 하던가. 글자 하나 빼면 눈치채지 못할 줄 아나.
안대에 무슨 마법이라도 걸어 뒀는지 기척이 희미하고 존재감이 옅지만.
그는 확실히 타리크 라하위스였다.
‘대체 무슨 꿍꿍이지?’
새롭게 등장한 낯선 얼굴에 학생들이 웅성거렸다. 학생들의 표정이 호기심과 호승심에 상기되었다.
“누구야?”
“처음 보는 얼굴이네.”
“스콜피온 같은데.”
아르놀트는 그런 학생들을 지켜보다가 머리를 긁적였다. 선호하는 방법은 아니지만, 키아라에 왔으니 키아라의 문화를 따라야지 어떡하겠나.
게다가 키아라 학생뿐 아니라 사이러스 학생들까지 신이 나서 금방이라도 뛰쳐나올 것처럼 엉덩이를 들썩이고 있었다.
“그래, 새로운 선생님이 어떤 선생님인지는 부딪혀 봐야 알겠지.”
아르놀트가 말을 이었다.
“리크 선생님의 수업에 앞서, 마음껏 환영해 주도록 해라.”
그의 말에 학생들이 기다렸다는 듯 타리크를 향해 달려들었다. 순진무구한 얼굴에 화색이 가득했다.
“선생님 허락이 떨어졌다! 가자!”
“우선 밟아!!”
“우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