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the Life of a Demon RAW novel - Chapter (144)
마족답게 사는 법-144화(144/385)
마족답게 사는 법 144화
144 발령 (5)
예상은 했지만 적지 않게 의외인 터라 한숨이 절로 나왔다. 타리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마왕에게서 받은 칙서를 보여 주었다.
칙서를 확인한 루시어스가 이마를 짚으며 고개를 작게 저었다.
마왕의 인장까지 찍혀 있는 걸 보면 타리크가 허튼소리를 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타리크의 능력은 잘 알고 있다. 사막에서 살며 여러 마법에 해박하니 이번 일을 확인하기엔 적격이었다.
하지만 정말 그가 정말 감찰관으로 파견되었을 줄은 몰랐다.
이런 일을 할 만한 서열이 아니기도 했고, 전하께서 굳이 이 녀석을 보내리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내 정체를 알고 있으니 오히려 일이 편해지기는 하지만.’
오늘 하루는 얌전히 지내긴 했어도 매번 상상치 못한 일을 벌여대던 녀석이 아닌가. 이번에도 무슨 큰일을 벌일까 걱정스럽다.
루시어스의 근심을 알았는지 타리크가 어깨를 으쓱이며 덧붙였다.
“걱정하지 마세요. 이번에는 얌전히 있을 생각이거든요. 우려하는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내가 그걸 어떻게 믿나.”
“음, 그럼 다르게 말씀드릴까요?”
“…….”
“그 누구의 피도 보지 않겠습니다. 제 행동이 도를 넘는다 생각하면 ‘리크’라고 이름을 불러 주세요. 무엇이든 바로 멈출 테니까요.”
루시어스는 타리크가 이렇게 순순히 나온다는 사실이 퍽 의심스러웠다.
말로는 뭔들 못할까.
이러다가 저번처럼 모두 죽이려고 드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아니지, 이 녀석도 가끔은.’
가끔은 좀 조용히 지낼 수도.
그가 ‘선생’으로 지내는 걸 눈으로 확인하긴 했지만, 쉽사리 믿음이 가질 않는다. 이제껏 그가 얼마나 제 속을 썩였던가.
생각해 보면 당장 서임해 달라며 교실 안에서 난리를 피우지 않은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기는 했지만.
‘우선은 상황을 좀 지켜보는 게 좋긴 하겠지.’
한 가지 다행인 건 하멜이 한 학기 동안 아카데미를 쉬도록 조치해놨기 때문에 타리크를 곁에서 주시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본인이 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기도 하니.
‘정말 조용히 지낼지도 모르지.’
한 번쯤은 믿어 줘도 괜찮을까.
타리크는 고민에 빠진 루시어스를 가만히 기다려 주었다. 마왕의 칙서까지 들이밀며 조용히 있겠다고 어필한 보람이 있는지 루시어스도 지켜보기로 결론을 내린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나저나.
“그놈은 어디 있습니까? 듣자 하니 한 학기 동안 쉬겠다고 했다 하던데.”
“집에 놓고 왔다.”
“명령이라고 해도 당신을 과보호하는 그 녀석이 순순히 저택에 남아 있을 리 없을 텐데요.”
“보고 싶으면 곁에 붙여놔 줄까?”
“그건 좀 반갑지 않은 제안이네요.”
그렇게 말하기는 하지만 딱히 크게 곤란한 표정은 아니었다.
타리크는 들추고 있던 안대를 내리며 장난스럽게 물었다.
“그나저나 이번에 일을 잘 처리하면 상이라도 주시렵니까?”
“왜? 또 차라도 같이 하자고?”
“그것도 나쁘진 않겠지만, 역시 서임이라던가…….”
“시끄럽다.”
아니나 다를까 방심하니 바로 치고 들어온다.
단호한 대답에 안대 밑으로 눈매가 살짝 가늘어졌다. 루시어스의 반응을 보니 조바심을 낸 것 같기는 했다.
하지만 미적거리다가 그 자리를 다른 놈에게 뺏길까 걱정스러운데.
‘괜찮을까.’
어차피 루시어스의 곁에 어울릴 만한 마족은 많이 없다.
애초에 기사로 인정받으려면 하멜인지 하벨인지 하는 건방진 마수의 견제부터 견뎌야 하지 않나.
생각하던 타리크의 머릿속에 제전에서 봤던 몽마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루시어스의 파트너라던 레녹스 자카르. 저를 보는 시선에 적대감이 가득했지.
단순히 파트너를 챙기는 모습이라고 생각하기엔 조금 과하긴 했는데.
타리크가 고개를 저어 생각을 털어 냈다. 아무리 그래도 새파란 어린애를 기사로 서임할 리는 없었다.
장로의 기사가 어떤 자리던가.
장로를 대신해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해야 하는, 장로의 얼굴이 되는 막중한 자리가 아닌가.
그런 자리에 아직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송이를 앉혀놔 봤자 얹는 게 없다. 공사 구분이 확실한 루시어스가 그런 실수를 저지를 리는 없었다.
녀석이 좀 거슬리긴 하지만 루시어스가 자신을 적대적으로 대하는 것도 많이 줄었으니 장기적으로 보면 노려볼 만할 것이다.
‘흐음.’
역시 이겨서 5장로가 될 수는 없으려나. 차라리 그렇게 옆에 두면.
루시어스를 바라보던 타리크가 어깨를 으쓱였다.
아직 성년도 되지 못한 소년이 대체 뭐라고 이렇게 매달리는지.
이길 자신도 없어 기사로 삼아달라고 간청까지 해야 하다니 참 기분이 미묘하다.
어쨌든.
기회가 없는 건 아니니 기다리자.
*
“자자, 다들 받아. 먹어야 다음 수업도 듣고, 나랑 놀기도 하지!”
점심시간.
마주 앉은 포르비가 학생들의 식판에 오늘 쟁취한 급식인 베이컨말이를 하나씩 올려놓았다.
베이컨이 열 겹은 말려 있는지 두툼한 고깃덩어리가 식판으로 뚝 떨어졌다. 루시어스가 픽 웃었다.
“고맙군.”
“키아라에 왔는데 특식 한 번 못 먹어 보면 안 되잖아. 당연하지.”
루시어스는 점심을 거르거나 느지막이 식당으로 가 남은 음식으로 적당히 배를 채우곤 했다.
오늘도 별다르지는 않았다.
사실 음식이야 먹어도 그만, 안 먹어도 그만이니 별생각은 없었다. 굳이 어린아이들을 제치고 음식을 사수할 만큼 옹졸하진 않았다.
하지만 포르비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것 같았다. 순 채소뿐인 루시어스의 식판을 보고 질린 듯 혀를 내두르며 정색했다.
“대체 이것만 먹고 어떻게 사냐.”
“섭식이 필수적인 건 아니잖아.”
“그건 그렇지만 그렇게 넘기기엔 세상에 맛있는 음식들이 너무 많아.”
포르비는 루시어스와 식판을 한 번씩 번갈아서 쳐다보더니 어휴, 하고 한숨을 푹 내쉬곤 베이컨말이를 하나 더 루시어스의 식판에 올렸다.
그러고는 레녹스의 식판에도 하나를 더 챙겨 주었다.
“루시어스, 너는 채식일지 몰라도 얘는 엄연히 육식이야.”
“……그런가?”
“그래. 레녹스가 불쌍하지도 않냐. 자, 파트너를 위해서라도 이걸 먹고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길 바란다.”
“음…….”
“설마 드라이어드는 육식을 못 하나? 엘프들은 채식만 하는 놈들이 있다고 들은 것 같긴 한데.”
“아니, 그런 건 아니다.”
루시어스가 그가 준 베이컨말이를 나이프로 잘라 먹으며 옆에 앉은 레녹스를 흘긋 바라봤다.
차분하고 조용히 음식을 먹던 레녹스가 시선을 느끼고는 고개를 기울였다.
루시어스는 레녹스를 한 번 위아래로 훑어보고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레녹스는 아직 성장기니 많이 먹어야겠지. 내가 너무 무심했군.’
레이얼이나 키안도 그렇다.
저 어린아이들이 계속 저와 어울려 주느라 제대로 식사도 못 챙겨 먹었다고 생각하니 괜히 마음에 걸렸다.
반성하는 한숨을 삼킨 루시어스가 포르비를 바라보았다. 식사도 식사지만, 어쨌든 그와 어울리는 것에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그러고 보니 궁금한 게 있는데.”
“우움?”
루시어스가 은근슬쩍 운을 띄웠다. 정말 지나가는 말이라는 듯 숨소리 나 행동거지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키아라 건물 말이야. 매일같이 무너지는 것 같은데 다음 날이 되면 말끔하게 수리되는 게 신기해.”
“아아, 그거?”
“알다시피 우리 아카데미는 수리에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아서 여기 오게 된 거나 마찬가지잖아.”
“그건 그렇지.”
“마법인가?”
포르비가 우물우물 베이컨을 먹으며 눈을 깜빡였다. 그러고는 꿀꺽, 음식을 삼켰다.
“업자들이 오는 걸로 알고 있어.”
“업자?”
“마법으로 수복하기도 하는데, 워낙 크게 무너지면 마법에도 한계가 있으니까. 아카데미 뒷문으로 업자들이 자주 왔다 갔다 해.”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규모가 큰 건물에는 그런 ‘업자’들과 꼭 계약을 맺어 두니까.
레이얼이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키아라 학생들이 대단하긴 대단한가 봐요. 사이러스는 아무리 용써도 제대로 부서지는 법이 없거든요.”
눈치가 좋은 건지, 아닌 건지.
먼저 건축이 이상하다고 한 건 본인이면서 잽싸게 말을 덧붙여 주며 살살 털어 내는 저 입담을 보라.
“체육관도 그렇고, 참관수업에 어른들이 와서 난리를 쳐도 끄떡없을 정도니까요. 그래서 얼마나 놀랐는지!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나나요? 네?”
“으음.”
포르비가 눈을 굴렸다.
레이얼이 계속해서 학생들을 치켜세워 주는 게 조금 민망한 모양이었다.
그러던 그가 포크를 문 채 입술을 우물거리다 말했다.
“사실 그렇지만도 않아.”
“그게 무슨 소리예요?”
“열심히 공들여서 수리해 놔도 여기저기 구멍 나는 건 비슷하거든. 나는 별 차이를 못 느끼겠더라.”
“으음. 이상하네요.”
“그래서 그거에 대해서도 말이 많긴 했어. 그쪽 사람들이…….”
“포르비.”
옆에서 식사하던 포톤이 포르비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 포르비가 입을 꾹 다물고 머리를 긁적였다.
“가십을 굳이 사이러스 친구들에게 말할 필요는 없잖아. 잘 보여도 모자란 친구들인데.”
“그건…… 그렇지. 내가 너무 재미없는 이야기만 했나? 다른 건? 궁금한 거 없어?”
아무래도 뭔가 더 있는 모양인데.
루시어스의 눈매가 가느다랗게 내리 접혔다. 키아라의 추문이나 마찬가지일 테니 포톤이 말을 아끼는 것도 이해하긴 하지만.
아무래도 학생들 사이에서 떠도는 이야기들을 좀 더 들어 둘 필요성은 있는 것 같다.
루시어스가 말을 꺼냈다.
“나는 재미있는데. 더 얘기해 봐.”
“그, 그래?”
“키아라에 대해서는 워낙 모르는 게 많아서 뭐든 들으면 신기하고 재미있거든. 그래서? 그쪽 사람들이 뭘 어쨌는데?”
“뒤에서 돈 좀 빼돌리고 있는 것 아니냐는 거지.”
포르비가 조그마하게 속닥거리며 엄지와 검지를 구부려 동전 모양을 만들었다.
루시어스가 그렇구나, 하고 웃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몸이 흥미롭다는 듯 포르비와 포톤 쪽으로 슬그머니 기울었다. 더 말해 보라는 듯한 시선은 덤이었다.
“너희도 정말 시도 때도 없이 부서지는 거 봤잖아. 업자들이 와서 열심히 고쳐 줘도 어차피 금방 무너지니까 그런 말이 나온 거야.”
“그만큼 우리 학생들이 시끄러운 것도 있고.”
“그건 그렇지.”
포톤의 덧붙임에 포르비가 긍정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학생들도 건물이 남아날 수 없을 정도로 소란을 피우는 게 일상이었으니까.
포르비는 그렇게 얘기하다가 한숨을 쉬며 어깨를 으쓱였다.
“덕분에 부수는 맛이 있긴 한데.”
“실상 그런 일이 일어나진 않고 있을 거야. 애초에 키아라는 대장군께서 주기적으로 방문하시잖아.”
포톤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대장군인 더미트를 생각하는 그의 눈에 동경과 경외가 가득했다.
“아무리 그래도 대장군께서 수시로 드나드는 아카데미에서 그런 짓을 할 간 큰 놈이 어디 있겠냐?”
“그건 그렇긴 하지.”
“잘못했다간 마왕님께 슥삭, 목이 달아날 텐데.”
포르비가 제 목을 슥 긋는 시늉을 한 번 하고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마왕이 얼마나 무서울지, 상상만 해도 오금이 저리는 느낌이라면서.
“지금 대장군께서도 키아라 출신이시라며. 그래서 전에도 한 번 대대적으로 검사를 한 적이 있었다나 봐.”
20년 전쯤 그런 검사를 하긴 했었지. 하지만 결과는 깨끗했다. 어디도 흠잡을 곳 없을 정도로 완벽했다.
하지만 키아라는 매일같이 건물이 부서지는 곳이다. 만약 평소에는 대충 지어 놓고 검사를 받을 때쯤 정상적으로 건축한 거라면 어떨까?
사이러스라면 수리한 곳이 부서지지 않을 테니 금방 들켰겠지만, 키아라는 혈기왕성한 아이들이 죄다 우르르 무너뜨려 놨을 테니 속이기도 쉬웠을 터다.
‘심증뿐이지만.’
확실한 물증은 잡을 수가 없군.
루시어스가 턱을 매만지다가 아이들에게 제안했다.
“얘들아. 지내면서 궁금한 게 많아져서 그런데 내일 다 같이 모여서 대화라도 나누는 건 어때?”
“난 좋지. 포톤, 너도 같이 가자.”
“좋아. 나도 당연히…….”
포톤이 루시어스를 흘긋하고는 기분 좋게 고개를 끄덕였다.
샤먼에 대해 그렇게 말해 주는 건 루시어스가 처음이었던 터라 그의 아버지라는 마족이 누군지 무척 궁금한 참이었다.
“그럼 내일 내 방으로 모이자. 맛있는 걸 준비해 놓을게.”
“좋아. 어디 한번 대접 한 번 받아보실까? 나 입맛 까다로운 편이니까 맛있는 걸로 많이 준비해 달라고.”
“저도 가도 괜찮죠, 루시어스?”
“물론이지.”
루시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