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the Life of a Demon RAW novel - Chapter (15)
마족답게 사는 법-15화(15/385)
마족답게 사는 법 15화
015 사공이 많으면 (5)
아르놀트는 처음부터 워런 숲 중앙에 은신하고 숲의 상황을 계속 주시하고 있었다.
학생들이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싸우다가 크게 다치는 등의 돌발 상황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올해에도 비슷하겠지. 항상 전투력이 강한 학생들이 서로 치고받고 싸우며 카드를 모았으니까.’
그는 숲을 돌아다니고 동료를 모으며, 결국 어떤 학생은 패배하고, 어떤 학생은 승리하는 일련의 과정들을 매번 실망스럽게 지켜봐 왔다.
아르놀트는 이번에도 별다를 것 없는 결과를 예상했다.
초반은 예상대로였다.
그나마 이전과는 달리 에스프가 어설프나마 수업의 맥락을 짚어 내며 그의 기대치를 상승시켰지만, 에스프에게는 반 아이들을 설득할 만한 힘이 없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흐름이 완전히 한 가지의 물결을 타기 시작했다.
루시어스 켄드릭이라는 난폭하고 거대한 물결을.
“저 녀석은 대체 지금까지 어디 있다가 나타난 거야?”
초반까지만 해도 루시어스가 에스프와 이리누슈카의 충돌에 끼어들었을 때는 객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저게 무슨.”
루시어스의 힘을 보고는 생각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만만치 않은 파괴력이야. 성년식이 끝난 드라이어드들도 보면 감탄하겠어.”
단순하고 직선적인 공격이 많은 게 조금 아쉽지만, 전체적인 완성도는 무척 훌륭한 수준이었다. 의외로 근접전에서는 오히려 기본기가 충실함을 보여주기도 했다.
소환할 수 있는 식물의 폭만 조금 더 늘리고, 다양한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른다면 거물이 되는 것도 불가능하진 않아 보였다.
무엇보다도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처럼 보였던 루시어스의 행동이 사실은 의도된 것이었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었다.
수업의 의도를 정확히 짚어 내고 자기 자신을 모두가 함께 토벌해야 하는 적으로 만듦으로써 자연스러운 협력 관계가 구축되도록 유도했다.
스스로의 실력에 자신이 없다면 상상하지도, 시도하지도 않았을 방법이었다.
이번 수업은 완전히 루시어스의 손바닥 위에 있었다.
“대단하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군. 건방진 놈이야.”
아르놀트는 카드를 많이 모으면 모을수록 카드에서 강한 그림자 마수가 나타나도록 장치해 두었다.
5장을 모아도 현재 학생들 수준에서는 혼자 상대하기 벅찬 마수가 나오는데, 루시어스는 기어이 50장을 전부 모아 드래곤을 소환했다.
혹시나 싶어 공들여 준비한 케렌스타의 그림자를 소환하는 걸 보니 감개가 무량하기까지 했다.
“소환한 것까진 좋지만 쓰러트려야 수업이 끝나는데, 좋은 사령관이 없으면 힘들 거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의 예상과는 다른 상황이 전개되었다.
반장인 레이얼이 기대 이상으로 능숙하게 학생들을 지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혼비백산하던 학생들의 전열이 빠르게 가다듬어졌다.
레이얼은 그림자 드래곤에게 가장 먼저 노려지고 있는 약한 친구들을 보호하면서, 전원이 각자의 장점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정확한 명령을 내렸다.
조금 전까지 으르렁거리며 싸우던 루시어스도 자연스럽게 학생들과 협력하며 적절히 서포트하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키안의 손톱이 마룡의 가죽을 찢고 심부로 파고들었다.
카드에 그의 손끝이 닿자 드래곤이 빛을 내뿜더니, 검은 안개가 되어 모습을 감추었다.
믿기지 않는 듯 서로 시선을 나누던 학생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승리를 만끽했다.
“이, 이긴 거지?”
“이겼다, 이겼어!”
승리의 여운을 느끼도록 잠시 시간을 준 아르놀트가 느긋하게 아래로 내려갔다.
학생들은 자잘한 상처며 타박상을 주렁주렁 달고 있음에도 그를 보자마자 활짝 웃었다.
“첫 수업 고생했다, 제군. 싸움도 잦았고,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나름대로 해답을 잘 찾아냈구나.”
“흐, 흐헤헤.”
“크흠.”
칭찬을 좀 해 주니 사족을 못 쓰고 좋아하는 게 어린애다워서 그의 잇새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아르놀트가 한 번 헛기침을 한 후 학생들의 면면을 하나하나 훑었다.
“아마 길게 말하지 않아도 이번 수업이 어떤 내용이었는지는 잘 이해하리라 생각한다. 그러니 제군들은 이번 수업에 대한 레포트를 작성하여 다음 주 이 시간까지 반장에게 제출하도록. 내용은 수업과 관련된 어떤 것이어도 상관없다. 단순 감상문이어도 좋고, 나름대로 분석을 해도 좋겠지. 자유롭게 하도록 해라.”
그렇게 말한 그가 손가락을 한 번 튕겼다.
학생들의 손목에 있던 주박이 모두 사라지며 재로 화했다.
가벼운 해방감 때문인지 학생들 몇몇이 완전히 바닥에 드러누웠다.
아르놀트가 혀를 쯧쯧 차며 그들을 타박했다.
“녀석들. 여기서 자면 입 돌아간다.”
“으으, 선생님. 못 움직이겠습니다.”
“너무 힘들어요……. 가짜라고는 해도 드래곤인데, 어떻게 이긴 건지.”
“온몸이 쑤셔. 이렇게 마기를 많이 쓴 건 처음이야.”
루시어스를 제외한 모든 학생이 땅에 주저앉거나 아예 누워 버렸다.
심지어 몇몇 학생은 그대로 곯아떨어져 자기 시작했다.
아르놀트가 거참 엄살이 심하다고 투덜거리면서도 이내 선생답게 학생들의 상태를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그러다 루시어스를 보고 대수롭지 않게 물었다.
“루시어스, 넌 몸 상태가 괜찮나 보지?”
“제가 주로 한 건 전투 보조니까요. 피로도가 덜 할 수밖에 없죠.”
“그러냐? 그럼 보건실에 가서 립톤 선생을 좀 불러와라. 그렇게 전하고, 너는 들어가도 된다.”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 * *
루시어스는 숲을 나와 학교 본관에 있는 보건실로 향했다.
보건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안색으로 업무를 보고 있는 립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다크서클이 가득한 안색의 그는 루시어스를 바라보더니 가볍게 탄성을 질렀다.
“혹시, 루시어스 켄드릭 학생인가?”
그에 대해서는 아르놀트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아르놀트가 공을 들여 관찰하고 있는 요주의 학생이었다.
거기에 립톤은 가끔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상담을 해 주기도 했는데, 그를 가장 자주 찾는 학생 중 하나가 바로 레녹스였다.
마침 어제 레녹스가 찾아와 루시어스에 대해 이야기한 탓에 더 흥미로웠다.
“……그렇습니다. 아르놀트 선생님께서 워런 숲으로 와 달라고 부탁하셔서 말씀 전하러 왔어요.”
다만 루시어스는 그의 생각보다 더 뻣뻣한 태도로 립톤에게 말했다.
“수업 끝나고 애들이 탈진했나 보네. 다행히 넌 괜찮아 보이는구나.”
“전 괜찮습니다. 그럼, 말 전했으니 돌아가 볼게요.”
립톤이 워런 숲으로 가기 위해 이것저것 필요한 물품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길게 머물 필요는 없겠지.’
루시어스가 보건실에서 나와 기숙사로 향했다.
오늘 레녹스의 수업이 늦게 끝나니 여유가 생긴 김에 하멜에게 마력을 공급해 줄 생각이었다.
루시어스는 기숙사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힘을 실으며 입을 열었다.
“하멜.”
하멜이 기다렸다는 듯 모습을 드러냈다. 미간을 찌푸리는 것이 불만이 많은 표정이었다.
“드디어 좀 한가해지셨나 봅니다, 루시어스 님.”
“며칠 늦었다고 재촉이 심하군. 인내심 좀 기르도록 해라.”
교사 연수로 하멜이 자리를 비우기도 했고, 입학식 준비도 있던 터라 꽤 긴 시간 동안 그에게 마력 공급을 해주지 못했다.
게다가 명령 때문에 금식까지 겹치자 짜증이 한계에 달한 것도 한몫했다.
그래서 루시어스는 그를 타박하면서도 긴말 않고 소매를 걷었다.
하멜이 재촉하며 빼어 든 단도를 받아 팔뚝을 깊게 베어 내자 피가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곧 하멜이 무릎을 꿇고 루시어스의 자상에 입을 대어 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굶주리긴 했나 보군.’
그답지 않게 성급히 식사하는 모습을 바라보던 루시어스가 피 냄새가 남지 않도록 냄새를 빨아들이는 식물을 하나 소환해두었다.
미식에 심취한 하멜의 이빨이 점점 날카롭게 서며 상처 상처를 깊게 파고들기 시작했다.
식사 시간이 조금 늦었다고 항의할 생각인지 당장이라도 물어뜯을 것 같은 기세에 루시어스가 차가운 목소리로 경고했다.
“이빨 세우지 마라.”
으르릉.
목울음을 내는 하멜의 눈꼬리가 사납게 치켜떠졌다.
그러나 루시어스의 눈빛은 얼음장같이 싸늘하기 짝이 없었다.
식사 시간에 방해를 받은 맹수처럼 거칠게 숨을 몰아쉬던 하멜이 어렵사리 이빨을 빼내며 떨어졌다.
“……죄송합니다.”
루시어스의 팔에서는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도 상처가 아물어 더 이상 피가 나지 않고 있었다.
그는 상처가 있던 팔뚝을 아쉬움이 역력한 기색으로 바라보다가 손수건을 꺼내 주변을 정리했다.
부드러운 실크에 붉은 핏물이 스며들었다.
사실 하멜은 뱀파이어가 아닌지라 굳이 피를 먹을 필요가 없었다.
단순한 마력 공급이 목적이라면 가벼운 접촉으로도 충분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미각 또한 충족시켜야 한다며 굳이 피로 허기를 달래곤 했다.
어느새 얼굴 가득했던 짜증스러움이 사라지고, 한결 편안한 표정을 하고 있는 걸 보면 충분히 만족스러운 모양이었다.
하멜이 다시 특유의 눈웃음을 지으며 그에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저택에는 언제쯤 들리실 겁니까?”
“무슨 문제라도 생겼나?”
“그런 건 아닙니다. 루시어스 님이 돌아가시는 날짜에 맞춰서 업무 계획을 짤 생각이라 물었습니다.”
“늦어도 나흘 내로는 한번 가 볼 생각이다. 확인할 것도 몇 가지 있고, 더미트에게도 한번 얼굴을 비추는 게 좋을 테니까.”
“그럼 그렇게 알고 있겠습니다.”
“그래. 아, 수업은 할 만한가?”
수업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부드럽게 휘어 있던 눈썹이 내려갔다.
여전히 마족들과 어울리는 게 싫은 모양이었다.
“업무적으로 힘든 건 없습니다. 그러고 보니 루시어스 님 반 수업이 내일이네요.”
“달리 입수한 정보는 없나? 레녹스에 대해서라든지.”
“가볍게 화제가 오가긴 했지만, 의미는 없었습니다. 모두 아시는 정보일 겁니다.”
기억을 되짚던 하멜이 턱을 매만지며 말을 이었다.
“그러고 보면 넌지시 레녹스에 대한 화제를 꺼낼 때마다 등 뒤에서 아르놀트 선생의 기척이 느껴지곤 했습니다.”
“아르놀트가?”
“이야기가 거론되는 것 자체를 불편해하더군요.”
“레녹스가 죽였다는 그 학생이 아르놀트 선생의 반이었으니까. 뭔가를 알고 있다면 아르놀트겠지.”
정보를 쥐고 있는 선생이 아르놀트뿐이라면 저쪽에서는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없다고 봐야 할 터.
그에게서 쉽게 정보를 빼내는 것에도 한계가 있거니와, 무리하게 들쑤시다가 괜한 의심을 살 필요는 없었다.
우웅, 구우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구석에 있는 오필리아에서 공명음이 들렸다.
피와 정기를 빨아들이는 마검인지라 방 안에 퍼진 루시어스의 기운과 피 냄새에 반응한 것 같았다.
하멜이 불쾌한 듯 미간을 찌푸리며 이빨을 드러냈다.
“루시어스 님.”
“레녹스가 돌보지 않은 동안 저쪽도 굶은 모양이군.”
루시어스가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자, 하멜이 불만 가득한 시선을 오필리아에게 던졌다.
만약 주인이 저 검에게 피를 내어 줄 생각이었다면, 무슨 수를 써서든 제 기능을 하지 못하도록 조각내 놓았을 것이다.
그들에게서 반응을 끌어내지 못했기 때문인지, 오필리아의 울림이 점차 멎어 들었다.
루시어스가 시간을 한번 확인하고는 축객령을 내렸다.
“걱정하지 말고 이제 돌아가 봐라. 곧 레녹스가 올 시간이니까.”
“알겠습니다.”
하멜이 오필리아를 마지막으로 쏘아보았다.
그런 후, 루시어스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이곤 순식간에 모습을 감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