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the Life of a Demon RAW novel - Chapter (151)
마족답게 사는 법-151화(151/385)
마족답게 사는 법 151화
151 마물 실습 (3)
“루시어스가 있어서 다행이에요. 저 혼자 있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요.”
“……그러게. 참 다행이야.”
루시어스가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체육관은 조금 전의 흔들림과 함께 여기저기가 무너진 상태였다.
레이얼이 무너지는 파편에 다치지 않았던 건 순전히 루시어스가 곁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그 혼자 복도에 있었다면 수많은 돌무더기에 깔려 죽었으리라.
레이얼의 눈을 피해 루시어스는 전언을 담은 나뭇잎을 날려 보냈다.
타리크에게 경고하기 위함이었다.
네게 실망했다고. 더 허투루 행동한다면 죗값을 치르게 하겠노라고.
근래 제게 보였던 태도의 타리크 라하위스라면 무슨 변명이라도 할 줄 알았다. 사정이 이랬다, 어쩔 수가 없었다 설명해 줄 줄 알았다.
그런데 고작 온 메시지가.
「당신을 위해서입니다.」
당신을 위해서라는 말뿐이었다.
‘나를 위해서라고?’
루시어스가 허, 하고 숨을 내뱉었다. 세상에 어디 할 말이 없어서 이런 변명을 늘어놓는단 말인가.
그 후로 몇 번이나 전언을 보냈다.
「나를 위해서라고?」
「아무래도 내가 얕보인 모양이야. 그렇게 이야기하면, 이대로 묻어 두고 넘어가 줄 것 같았나?」
「타리크 라하위스, 대답해라.」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타리크는 그저 침묵할 뿐이었다.
“루시어스, 다음엔 이쪽을 지탱해 주세요. 조금만 더 가면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심란한 마음을 다스리는데 레이얼이 조심스럽게 말을 붙였다. 루시어스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식물을 소환해 천장을 떠받치고 벽을 지탱했다.
그리고 레이얼이 가리킨 방향에 쌓인 건물의 잔해들을 조심스럽게 치웠다.
레이얼은 바람의 정령을 소환해 이리저리 보내며 건물이 얼마나 손상되었는지 파악하고 있었다.
“…….”
“…….”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그동안 타리크를 닦달하느라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레이얼과 자신 사이에 꽤 깊은 정적이 오가고 있다는 걸.
루시어스는 새삼스럽게 뺨을 매만졌다. 타리크에게 화가 났을 뿐인데 괜히 레이얼에게 화풀이를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레이얼은 식물을 도와 잔해를 치우다 흘긋, 루시어스를 곁눈질했다. 그러고는 머쓱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좀 진정하셨어요?”
“티가 많이 났나?”
“꽤 많이요.”
레이얼이 어깨를 으쓱이며 허리를 쭉 켰다. 마침 돌아온 정령과 뭔가 이야기를 나눈 레이얼이 이번엔 반대편으로 정령을 내보냈다.
작은 정령이 작은 틈 사이로 쏙 파고 들어가며 자취를 감추었다. 루시어스가 레이얼의 옷에 앉은 먼지를 털어 주며 말했다.
“괜한 일로 걱정하게 해서 미안하다. 이제 괜찮아.”
“알고 계시면 됐어요. 그나저나 현재 상황에 대해 조금 짚어 보고 싶은데요. 아무리 생각해도 마물이 갑자기 돌변한 이유를 모르겠어서요.”
“…….”
“정확히 말하자면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겠어요. 리크 선생님은 도대체 ‘왜’ 이런 일을 벌인 걸까요?”
“……알고 있었어?”
“뭐를요?”
“리크 선생이 수상하다는 것.”
“아, 그럼요. 물론이죠.”
“언제부터?”
레이얼이 고개를 갸웃 기울이며 루시어스를 바라보았다.
무슨 말이 나올지 몰라 조금 긴장하는데 레이얼에게서 예상외의 대답이 나왔다.
“루시어스가 보고 있었잖아요.”
“……그것도 많이 티가 났어?”
“제가 루시어스를 만난 지도 벌써 1년이 넘었으니까요.”
루시어스가 온종일 경계하고 있으니 저도 괜히 리크 선생님을 주시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일부러 말도 많이 걸고, 대화도 많이 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학생처럼 구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레이얼이 툴툴거리며 불평했다.
지금까지 레이얼이 타리크에게 보이던 관심들이 쉽게 접근하려는 방법이었을 뿐이라니 놀라웠다.
그저 타리크의 마법학 지식에 반해 졸졸 따라다니며 계속 말을 붙이는 줄 알았는데.
“언젠가 일이 터지지 않을까, 의심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큰일이 날 줄은 몰랐어요. 덕분에 바로 범인을 색출할 수는 있었지만요.”
레이얼이 뺨을 긁적이며 웃었다.
루시어스는 그런 레이얼에게서 시선을 뗐다. 레이얼은 여전히 재잘재잘 신이 나서 늘어놓았다.
“루시어스는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보면 볼수록 존경스러워요.”
“…….”
“리크 선생님을 눈여겨보신 것도 그래요. 사이러스가 나뉘어 있는 시점에 갑작스럽게 등장한 마족이 수상하다고 생각하셨던 거죠?”
“아니, 그런 건…….”
“그렇게 부끄러워하실 필요 없어요. 덕분에 제가 배우는 점이 얼마나 많은데요.”
그런 거창한 이유가 있을 리 없잖아.
루시어스가 리크 선생님을 의심한 이유는 단순히 그가 타리크 라하위스였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이러스의 사정이나 현재 상황을 두루두루 살펴 얻어 낸 결론이 아니라 그저 그 자체를 의심했을 뿐이다.
레이얼은 그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눈을 반짝반짝 빛내고 있었다.
하지만 루시어스는 레이얼의 칭찬을 순순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오히려 몸에 맞지 않은 음식을 먹은 것처럼 속이 상했다.
진흙이 입속에 가득 들어 있는 것처럼 껄끄러웠다. 입을 열면 진흙이 그대로 흘러나올 것만 같았다.
토기가 스멀스멀 올라와 입을 손으로 막았다.
“…….”
속이 복잡해진다.
“그래도 아직 확실치 않은 부분이 많기는 해요. 리크 선생님이 왜 이런 일을 벌였는지는 모르니까요.”
“……그건.”
“대체 이유가 뭘까요?”
고개가 옆으로 기울어졌다.
루시어스는 벌어지던 입을 닫았다.
치열에 아랫입술이 짓이겨졌다.
“나도, 모르겠어.”
겨우 입을 열어 대답했다.
그 말대로였다.
일이 터지기 전까지만 해도 루시어스는 타리크가 어떤 명령을 받고 아카데미에 파견되었는지 알고 있었다. 무엇이 시발점인지도 정확히 알았다.
하지만 지금에서는 도무지 그를 헤아릴 수가 없다. 그 녀석에 대해서라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왜 이러는지, 대체 무엇 때문인지.
알 수가 없다.
‘나를 위해서라고…….’
그 말의 진의도 파악하지 못했으니 레이얼에게 해 줄 말이 무엇도 없었다.
추리에 도움이 되는 실마리를 제공할 수도, 이번 일에 대해 곧이곧대로 설명해 줄 수도 없다.
줄 수 있는 것이. 없다.
시선을 살짝 돌리자 큼직한 녹빛 눈동자가 바쁘게 굴러가는 게 보였다.
쿵, 쿵.
심장이 크게 뛰었다.
머리가 좋고 눈치도 빠른 레이얼이 이렇게나 허술한 거짓말을 순순히 받아들여 줄 리가 없었다.
정말 알고 있는 게 없냐 물으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어디서부터 말해야 그가 이해해 줄까.
이번 일의 원인이 제게 있다고 화를 내는 건 아닐까.
‘어떡하지.’
아, 정말 어떡하지.
표정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초조해할 때가 아닌데, 아이들을 위험에 빠뜨린 원인이 제게 있다고 생각하니 끝없이 추락하는 기분을 붙잡을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이런 기분을 느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무슨 일이 닥쳐도 의연하게 대처했고, 앞으로도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왜 생각만큼 머리가 굴러가지 않고 몸이 움직이지 않을까.
답답해, 숨이 막히는 것 같아.
“우음, 어쩔 수 없네요.”
상념을 깨는 맑은 목소리에 정신이 조금 들었다. 루시어스가 무척이나 조심스럽게 물었다.
“……괜찮아?”
“뭐가요?”
“그, 얻은 정보가 없잖아.”
“그럴 수도 있죠. 루시어스가 신도 아닌데 어떻게 모두 알고 있겠어요? 혹시 모르니 물어본 거예요. 그나저나 정말 단서가 없네요.”
어떡한다?
레이얼은 정말 조금의 의심도 담기지 않은 눈으로 그렇게 답하고는 턱을 매만지며 이리저리 고개를 기울였다.
그러면서도 부지런하게 정령들을 움직이며 잔해를 치우고 있기도 했다.
‘비겁하네.’
루시어스는 아주 조용히 자신에게 그런 평을 내렸다. 레이얼의 호의에 숨어 상황을 모면하려고 하는 비겁한 놈이었다.
“아, 갈림길이네요. 아마 이쪽이 지하 훈련실 방향일 거고 저쪽이 밖이랑 연결되어 있을 거예요.”
“……그렇구나.”
레이얼은 잠시 표정이 좋지 않아 보이는 루시어스를 올려다보다가 눈동자를 한 번 굴렸다.
왠지 남모를 고민을 하는 것 같다.
루시어스는 뭐든 혼자 짊어지려고 하는 버릇이 있으니까.
“제가 바깥으로 길이 충분히 이어져 있는지 잠깐 확인하고 올 테니 여기 작업을 부탁드려도 괜찮을까요?”
“…….”
“부탁드릴게요.”
“알았어.”
루시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레이얼이 빙긋 웃고는 폴짝폴짝, 조심스럽게 뛰어갔다.
‘혼자 있는 시간도 필요한 법이지.’
상황이 꽤 급박하게 돌아가는 와중이다. 워낙 의연하게 행동해 깜빡 잊고 있었지만 루시어스도 어린 학생이었다.
분명 저만큼 놀랐을 것이다.
다른 학생들은 루시어스의 일사불란한 지휘 때문에 금방 침착해졌으니 괜찮다. 하지만 루시어스는 아무도 돌봐주지 않지 않았나.
‘루시어스도 여유가 없을 거야. 잠깐 시간을 주는 게 좋겠어.’
다시 돌아올 때쯤엔 루시어스가 평소대로 웃어 주었으면 좋겠다. 레이얼은 그런 생각을 하며 빠르게 자리를 비워 주었다.
다만 레이얼은 알지 못했다.
저를 잡으려는 루시어스의 손이, 아쉽도록 자신의 등 뒤를 스쳐 지나갔다는 걸.
“……하아.”
공중에 멈춰있던 손이 아래로 툭 힘없이 떨어졌다. 루시어스는 멀어져 가는 레이얼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떨구고 이마를 짚었다.
잡지 않으면 그대로 놓칠 것만 같았다. 레이얼이 다시 돌아오지 않겠다 말한 것도 아닌데 괜한 불안함에 손끝이 떨렸다.
하지만 동시에 가지 말라며 잡을 자신도, 그럴 자격도 없었다.
결국, 레이얼을 보내야 했다.
‘이런 무력감은 또 처음이야.’
쓸모도 없는 머리가 오늘따라 참 무겁게만 느껴진다.
“멍청이.”
잇새로 그렇게 중얼거린 루시어스가 속으로 제게 욕을 퍼부었다.
마계의 온갖 상스러운 욕까지 전부 쏟았다. 그렇게 말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다.
“네 안이함 때문에 이 사달이 났지.”
왜 진즉 의심하지 않았을까.
이유는 알고 있었다.
자신은 아카데미에 있는 마족 중 누구보다 타리크를 잘 알고 있었고, 위치상 그의 상사나 다름이 없었다.
명령이라는 말에 그를 경계하면서도 크게 의심하지 않았다.
타리크가 멀쩡하게 임무와 앞으로의 계획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기에 더더욱 그랬다.
무슨 일을 벌이든 그 전에 발견할 수 있을 거라고. 제게 조짐을 보일 거라고 생각했다.
‘상황 굴러가는 꼴도 모르고.’
이렇게 될 줄도 모르고.
너무나도 오만했다.
루시어스가 슬쩍 지하 훈련실로 향하는 복도를 바라보았다. 레이얼이 이쪽의 처리를 맡기고 갔지만, 몸이 쉽사리 움직이지 않았다.
‘겨우 그 정도 일인데.’
손가락 한 번 까딱하면 끝날 무척이나 쉬운 일이었는데 그게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다.
헤어나올 수 없는 늪에 빠진 기분이다.
이런 일을 벌인 타리크도, 이런 일을 승인해 준 전하도, 그리고 빌미를 제공한 자신도 전부 원망스럽다.
숨이 답답하다. 시야가 일그러졌다.
그쯤이었다.
마침 주저앉고 싶을 때 멀리서 레이얼의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놀란 표정을 하는 레이얼이 흐릿한 시야 너머로 보였다.
뺨이 간지러웠다.
턱 끝에서 뭔가가 툭 떨어졌다.
“루, 루시어스?”
“……레이얼.”
나는 대체.
지금껏 무슨 짓을 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