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the Life of a Demon RAW novel - Chapter (152)
마족답게 사는 법-152화(152/385)
마족답게 사는 법 152화
152 마물 실습 (4)
“무, 무슨 일이에요? 왜 그래요?”
레이얼은 당혹스러움을 숨기지 못한 채 뛰어들듯 루시어스에게 다가왔다. 루시어스는 흐린 시야 너머로 보이는 레이얼의 눈동자를 마주하다 고개를 한쪽으로 휙 돌렸다.
가만히 루시어스를 바라보던 레이얼이 손을 뻗었다.
두 손으로 루시어스의 뺨을 잡아 천천히 돌리고 시선을 마주했다. 작은 손길이 볼을 어루만졌다.
“혼자 있어서 무서웠어요? 제가 괜히 자리를 비워 드렸나. 아니, 키안도 아니고 루시어스가 그럴 리가…….”
“…….”
이게 무슨 일이람.
레이얼이 루시어스의 눈물길을 닦았다. 저 금색 눈동자가 이렇게 슬퍼 보이는 건 처음이라 괜히 마음이 저몄다.
왠지 아까부터 유난히 분위기가 좋지 않더라. 평소에도 차분한 성격이라 조금 고민이 있는 것 같다고,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주어야 할 것 같다고 넘겨짚은 게 잘못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혼자 두지 않는 건데.
“제가 너무 무신경했어요. 저희 조금 쉬었다 갈까요?”
“……괜찮아.”
그럴 시간이 없잖아.
울음기에 떨리는 목소리가 흘렀다.
지금 그런 걸 걱정할 때인가. 레이얼이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없긴 왜 없어요? 지금 루시어스가 울고 있는데.”
“울어……? 아, 그렇구나.”
울고 있었구나.
루시어스가 제 눈을 손으로 가볍게 눌러 비볐다. 레이얼이 옅은 한숨을 내쉬며 손목을 잡았다.
여기저기 먼지가 많이 일어났는데, 저렇게 비볐다가 눈이 상하기라도 하면 어쩌려 그러나.
“눈 비비지 마세요. 제가 닦아 드릴 테니까.”
“…….”
레이얼이 교복 안주머니에서 하얀 손수건을 꺼내 루시어스의 눈가를 톡톡 두드려 주었다. 그러며 어휴,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키안이 자주 다쳐 와서 손수건이랑 붕대를 챙겨 다니거든요. 루시어스에게도 도움이 되어서 다행이에요.”
“…….”
“코라도 흥! 하고 푸실래요?”
“……괜찮아, 정말.”
“제가 안 괜찮아요. 어쨌든 쉬었다가 가요. 지금 루시어스 얼굴이 사색이에요. 곧 픽 쓰러질 것 같다고요.”
따박따박 몰아붙이는 목소리에 애정이 가득하다.
터울 있는 사랑스러운 동생을 혼내듯 짐짓 엄하게 혼을 내던 레이얼이 속으로 작게 탄식했다.
‘조금 더 의지해 줘도 좋을 텐데.’
그러기엔 제가 너무 작게 느껴지나?
항상 루시어스를 올려다보는 제 키가 이렇게 원망스러워진 적은 없다.
키 때문이 아님을 알면서도 레이얼은 괜히 제 키를 탓했다.
그러다 루시어스가 등지고 선 반대편 돌무더기에 시선을 두었다. 저쪽을 부탁한다고 말하고 갔는데 정리가 하나도 되어 있지 않았다.
혼자 놔둔 그동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걸까.
저걸 치울 생각도 못 하고 그저 소리 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었을까.
역시 좀 쉬게 해야겠다. 레이얼이 루시어스를 벽으로 끌고 가 앉혔다.
제대로 등이라도 기대라면서.
“…….”
“…….”
레이얼은 옆에 가만히 자리를 잡아 앉았다. 그 모습에 괜히 더 눈물이 흘렀지만, 레이얼은 아무런 말도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저 옆에 앉아 가만히 복도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을 뿐이다.
옆에서 울고 있는 루시어스를 달래 주고 싶기도 하고, 왜 그러는지 물어보고 싶기도 했지만 레이얼은 꾹 참았다. 그런 행동들이 오히려 루시어스가 마음을 삭이는 데에 걸림돌이 될 것 같았으니까.
다만 다 울고 나면, 그러고 나면.
생각을 정리한 루시어스가 스스로 말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자 가느다랗게 떨리던 어깨도 계속해서 흐르던 눈물도 멎어 들었다. 눈가가 조금 붉기는 했지만, 확실히 진정된 것 같았다.
레이얼은 루시어스의 옆모습을 흘금 훔쳐보며 생각에 빠졌다.
그러다 입을 우물거리곤 얼굴을 푹 무릎에 묻었다. 기다리겠다고 생각했지만 마음먹은 만큼 쉽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루시어스는 참 이상하고 신기했지.’
루시어스의 눈동자는 항상 고요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무슨 일에도 흔들림이 없고 차분했다.
그저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야 루시어스를 조금 이해한 것 같다.
분명 루시어스는 이 세상을 자신들과는 퍽 다르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은 지금껏 루시어스를 어른스러운 어린아이가 아니라 완전한 어른으로 보이게 했다.
자신의 선택에 본인이 직접 책임을 져야만 하는 어른. 보호자의 보호를 더는 받을 수 없는 어른.
그리고 지킬 것이 많은 어른.
아이가 어른스러워 보이는 것과 아이가 이미 어른이 되어 있는 것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레이얼이 고민하며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뜰 때쯤, 옆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이렇게 답답한 적이 또 없었던 것 같아. 정말 단 한 번도.”
“…….”
“지금껏 마음먹은 대로 안 된 적이 없었어. 그게 아버지의 힘이었든, 나 자신의 힘이었든. 어쨌든 내게는 넘칠 만큼의 힘이 있었으니까.”
“…….”
“그래서 단 한 번도 나 자신이 걸림돌이 된 적이 없었어. 그런 상황을 생각한 적도 없지.”
“…….”
“하지만 지금은.”
“…….”
“지금은…… 너무 걸리적거려.”
타리크 라하위스도.
5장로라는 이 신분도.
정체를 들키지 말라는 명령도.
아버지와 마리 누님, 그리고 마왕의 관심 모두가 너무 거추장스럽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
“내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
어떻게 해야 내 일에 말려든 너희에게 용서를 빌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이 상황을 모면할 수 있을까.
“생각하고, 생각하고, 생각해 봤는데도 모르겠어. 너무나도 답답해. 무력감에 몸이 굳어가.”
“…….”
“눈물…… 그래, 눈물이 나.”
잘 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없어.
루시어스는 그렇게 이야기한 후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가만히 침묵으로 일관하던 레이얼이 슬며시 루시어스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혹시 루시어스는 거울을 자주 보시는 편인가요?”
“……거울?”
“네, 아침마다 씻거나 머리를 손질하려고 보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을 보기 위해 거울을 보신 적 있나요?”
루시어스가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
레이얼이 말을 덧붙였다.
“저는 루시어스가 가만히 한 번 거울을 봐보았으면 좋겠어요. 거울 속에는 분명, 루시어스가 모르는 루시어스가 서 있을 테니까요.”
“……내가 모르는?”
“네, 루시어스가 모르는 루시어스.”
어쩌면 남들은 다 알고 있을지도 모르는, 그런 당신의 모습이요.
레이얼이 옅게 웃었다.
“혹시 어깨가 너무 무겁고, 뻣뻣하고, 힘이 들어가 있지는 않은지.”
“나는…….”
“조금 힘을 빼보세요.”
루시어스의 입이 꾸욱 다물었다.
레이얼의 말이 어떤 의미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저도 꽤 어른스럽다는 말을 많이 듣는 편이지만요, 루시어스는 저보다 더한 것 같아요.”
“…….”
“가끔은 루시어스가 제 또래 친구인지, 아니면 한 1000살은 먹은 할아버지인지 모르겠어요. 아, 조금 과장해서 2000살 부르려다가 그건 선 넘는 것 같아서 관둔 거예요.”
“…….”
“루시어스.”
친구가 힘들어하는 짐을 같이 짊어지고 싶다. 레이얼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루시어스의 앞에 포르르 자리를 옮겨선 쪼그려 앉았다.
“1년은 루시어스를 관찰하는 데에는 충분했고, 루시어스를 이해하는 데에는 부족했어요.”
“…….”
“맞아요, 저는 항상 뭐든 다 아는 것처럼 행동했어요. 그렇게 보이도록요. 상대와의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요.”
약하면 그렇게라도 해야죠.
얼핏 짓는 웃음이 조금 슬퍼 보였다. 레이얼이 잠시 말을 고르는 듯 입을 우물거리다가 힘없이 루시어스를 올려다보았다.
그 눈빛이 무척이나 익숙했다.
“전 루시어스가 왜 지금 힘들어하는지 저는 몰라요. 무엇이 그렇게 친구를 힘들게 만드는지 모르겠어요.”
“…….”
“이런저런 이유를 짚으면서도 확신할 수는 없죠. 저는 아직도 루시어스를 잘 모르겠어요. 그도 그럴 게.”
루시어스는 문득 레이얼에게서 느끼던 기시감이 무엇인지 알아냈다.
“루시어스는 비밀이 많으니까요.”
“…….”
“저는 루시어스가 제게 많은 걸 말해 줬으면 좋겠어요. 욕심이겠지만.”
레이얼은 지금.
“적어도 힘들면 힘들다고, 슬프면 슬프다고 말해 주었으면 해요.”
“…….”
“어깨의 짐이 무거우면 잠시 내려놓으셨으면 좋겠어요.”
자신을 걱정하고 있다.
“혼자 지내지 말아요.”
“…….”
“제가 아니라도 좋아요. 누군가에게 조금만 기대어 주세요.”
“…….”
“루시어스.”
“…….”
“지금, 힘드신가요?”
왠지 속이 울렁거린다.
레이얼은 더는 아무것도 흐르지 않는 뺨 위에 손을 올리고, 소중하게 엄지로 눈가를 매만졌다.
곧 눈물이라도 흐를 것 같았다.
루시어스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는 것으로 넘치려는 감정을 다스렸다.
“……모르겠어.”
목소리가 작았다. 저도 모르게 가늘게 떨리는 것 같기도 했다.
“아니면, 슬프신가요?”
“모르겠어.”
조곤조곤 이야기하며 시선을 한참 마주하던 레이얼이 부드럽게 웃었다.
“그럼 질문을 바꿔 볼게요.”
손바닥 온기가 따뜻하다.
경직되어 있던 어깨가 천천히 무너졌다.
아주 천천히, 마치 녹아 버리듯이.
“루시어스, 저를 포함한 친구들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계시나요?”
“……응.”
“믿을 만하긴 한가요?”
“응.”
“그럼 루시어스의 고민에 친구들의 도움이 필요하지는 않아요?”
“…….”
“……걱정되시나요?”
레이얼이 조심스럽게 재차 물었다.
“루시어스가 도움을 청한 친구들이 잘못될까 걱정되시나요?”
“……생각해 본 적 없어.”
“왜요?”
“그야…….”
간단했다.
그들은 친구인 동시에 루시어스가 지켜야 할 대상이었으니까.
“제가 고민이 있으니 도와달라고 하면 루시어스는 도와주실 거죠?”
“……아마 그렇겠지.”
“저도 그럴 거라고 믿어요. 그런데 왜 반대는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머뭇거리는 루시어스에게 레이얼 입술을 빼죽 내밀며 이야기했다.
“저 섭섭해요.”
“…….”
“전에 고민이 있으면 말해 달라고 그랬잖아요, 제가.”
“……그랬지.”
“저는 제가 위험에 빠지면 루시어스가 도와줄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동료이고 친구니까요.”
“…….”
“그러니까 루시어스도 똑같이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똑같이.
그 말이 머릿속을 떠다녔다.
“루시어스가 위험에 빠지면 네 번째 반 누구든 루시어스를 도울 거예요. 물론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하지만……?”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짐의 무게는 조금씩 줄어드는 법이에요.”
짐의 무게.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제 어깨 위에 뭔가가 많이 올라가 있었으니까.
5장로인 것이 당연했고, 다른 마족을 지키는 게 당연했다. 마계를 위해 일하는 게 너무나도 자연스러웠다.
레이얼의 말을 알 것 같았다.
내가 못 보는 거울 속의 나는.
남들에게 나는 힘들어 보였구나.
힘들었구나, 나.
사실은 많이, 힘들었구나.
“루시어스 혼자 힘들다면 모두 함께 짊어져 줄게요.”
“…….”
“레녹스 선배도, 키안도 힘이 세니까 더 가벼워질 거예요. 듬직한 담임인 아르놀트 선생님도 계시잖아요.”
“…….”
“다시 물을게요, 루시어스.”
“…….”
“루시어스의 소중한 친구들이 루시어스를 도와드려도 괜찮을까요?”
루시어스가 레이얼의 두 손목을 잡아 제 얼굴에서 떼어 냈다.
“그 전에.”
레이얼의 고개가 옆으로 살풋 꺾였다.
“네게 말해 주고 싶은 게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