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the Life of a Demon RAW novel - Chapter (158)
마족답게 사는 법-158화(158/385)
마족답게 사는 법 158화
158 나무를 숨기는 방법 (5)
‘어쩔 수 없이 조금 떨리네요.’
아래에서 실프들을 움직이며 마물을 기다리던 레이얼이 몸을 떨었다.
첫 실전을 이렇게 치를 줄은 몰랐던 터라 괜히 긴장됐다. 무엇보다 루시어스에게 정말 자신이 도움이 될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다.
자신 있게 도와주겠다 말했는데.
손을 쥐락펴락 움직이던 레이얼이 자신의 손등을 쓱 쓸었다. 문장에서 느껴지는 긴밀한 유대감이 옅은 안도감을 선물했다.
괜찮을 거야.
후, 하. 심호흡하는데 키안이 조심스럽게 레이얼을 불렀다.
레이얼이 그를 올려다보았다.
“……레이얼.”
“네, 키안.”
“무슨 일…… 있었어?”
키안이 레이얼의 손등을 가만히 응시했다.
레이얼은 긴장하면 크게 한번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쉰 후, 한번 까치발을 하며 발을 구르는 습관이 있다.
그때 레이얼의 양손은 꾹 말아쥐기만 한 상태다.
이렇게 손등을 쓰다듬는 버릇은.
없었는데.
“…….”
키안의 미간이 살풋 일그러졌다.
레이얼이 누구와 함께 있다가 지하 훈련실에 나타났는지 생각해 보면 이 변화가 껄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걱정했던 것처럼 혹 루시어스의 사정에 레이얼이 말려든 건 아닌지. 만약 말려들었다면, 그 결정에 레이얼의 자율이 있었는지.
“나중에 말해 줄게요.”
“정말 말해 줄 건가?”
“제가 언제 거짓말한 적 있나요.”
“……많지.”
레이얼이 입술을 빼죽 내밀었다.
말해 주지 않은 적은 있어도 거짓말을 한 적은 없는 것 같은데. 진짜 나중에 말해 줄 건데. 한두 번 그랬냐는 듯한 시선이 억울했다.
키안의 걱정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어쨌든, 지금은 집중해요. 보아하니 마물이 도착한 것 같으니까요.”
멀리서 신호가 터졌다.
키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든 달려나갈 수 있도록 너클을 단단히 장비하고 자체를 낮췄다.
쩌억!
한 번 더 하늘에 불꽃이 피었다.
꽃잎의 수는 다섯 개.
뜻은, 최소 마물 10마리 이상.
“전원 전투 준비!”
* * *
자, 이제 어떻게 할까.
선생들이 전부를 막는 건 역시 역부족이었는지 생각보다 많은 마물이 아카데미로 넘어오고 있다.
루시어스가 날개 식물을 소환했다.
단단하지만 가벼운 네 개의 줄기가 날갯죽지로부터 시작해 쭉 뻗어 나갔다. 줄기를 따라 잎사귀가 깃털처럼 자랐다.
등 뒤에 순식간에 두 쌍의 날개가 생겼다. 나뭇잎이 바람을 타고 느릿느릿 흔들렸다.
하늘에서 가만히 몰려오는 마물을 바라보았다. 수를 헤아려 보니 선생들이 상대하고 있는 마물의 수가 얼마나 많을지 대충 감이 왔다.
‘괜히 번식기에 이레네 장로님이 나서는 게 아니긴 하지.’
그녀는 항상 번식기에 혼자 이만한 규모의 마물떼를 상대하곤 했다.
루시어스 또한 마물을 상대할 수는 있었다. 다만 이레네처럼 주변에 피해를 주지 않고 완벽하게 제압할 자신이 없어서 문제지.
‘그나저나 그 녀석 짓이니 예상하기는 했지만 뭔가 이상하긴 해.’
루시어스가 혀를 쯧 걷어찼다.
무슨 이유인지 마물의 번식기에 그들의 요람 안으로 들어갈 때나 볼 수 있을 정도로 마물이 흥분한 상태였다.
수만 많을 뿐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드니 상대하기는 오히려 편할 테지만, 이쯤 되니 대체 무슨 짓을 한 건지 궁금해질 지경이었다.
애초에 왜 굳이 마물들이 ‘아카데미’를 목표로 삼았는지도 불분명하고.
“후우…….”
루시어스가 창대를 잡은 손에 좀 더 힘을 주었다.
은색 창대 위로 햇빛이 부서지듯 미끄러졌다. 창끝에 있는 보석이 루시어스의 마력을 머금고 일렁였다.
어쨌든, 적어도 눈앞에 있는 이 녀석들은 절대 죽게 할 생각이 없다.
‘만약 한 명이라도 죽으면.’
전하의 명령이 있다 하더라도 그 얄팍한 목숨을 거두어,
죽은 자를 위한 제를 올리겠다.
펄럭, 펄럭.
“크어어어어!”
쿵! 쿵! 우두두두!
얼마 지나지 않아 마물의 포효가 울렸다. 지상에서는 마물들이 발을 구르며 달려오고 하늘에서는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왔다.
점처럼 작게 보였던 녀석들이 이제는 어떤 마물인지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레녹스가 허리춤에 걸린 오필리아를 꽉 쥐고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학생들도 각자의 무기를 잡았다.
루시어스는 바람을 타고 조금 더 위로 올라가 손가락을 튕겼다.
타이밍 맞춰 폭발식물이 소환되었고 마치 폭죽처럼 여기저기서 폭발음이 들렸다.
전투의 시작을 알리는 소리였다.
학생들이 서로 시선을 나눈 후 주어진 임무를 다하기 위해 움직였다.
루시어스는 위에서 학생들의 움직임을 눈에 담았다. 움직임은 좋지만, 경험이 없기 때문인지 요령이 없다.
마물의 특성을 파악하지 않고 무작정 달려들기만 해서는 절대 이 전투에서 이길 수 없다.
‘가이드라인은 주는 게 낫겠지.’
날개 식물이 흩어지며 등 뒤에서 떨어졌다. 그에 따라 루시어스의 몸이 위에서 아래로 몸이 추락했다.
푸욱.
“끼에에엑!”
은색 창이 정확히 마물의 머리에 꽂히며 진득한 피가 튀었다.
마물 한 마리가 절명하는 건 한순간이었다. 사정없이 창을 빼낸 루시어스가 마물과의 힘 싸움에서 밀려 주저앉아 있는 학생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빠르게 말을 전했다.
“두개골이 단단한 놈이지만 미간 사이에 작은 틈이 있는 마물이다. 그곳으로 뭐든 찔러라.”
“조, 좋아! 알겠어!”
“날 수 있는 녀석들은 위로 몰려든 아즈달을 상대해라. 입안에 마법 공격을 부으면 치명타를 입을 거야.”
방어력이 높아서 그냥 무기를 휘두르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바로 움직였다. 루시어스가 학생들 하나하나를 확인하며 바쁘게 움직였다.
“거기, 힘이 빠졌으면 뒤로!”
“미, 미안하다. 부탁할게!”
“체력 회복하고 바로 복귀해.”
휘리릭. 꽈악!
땅에서 솟아난 넝쿨이 마물의 움직임을 막았다. 학생들은 그럴 때마다 안도하며 숨을 한 번 돌리고 마물을 죽였다.
푹신.
“으헉?”
심지어 아즈달을 상대하다 팽개쳐지듯 추락한 학생들의 몸을 받아주기도 했다. 푹신한 솜 덩어리에 몸이 파묻힌 학생이 얼떨떨하게 일어났다.
그러고는 루시어스를 흘긋 곁눈질하고는 다시 위로 올라갔다.
“정신 꽉 잡아. 상공은 유독 전열이 흐트러지기 쉬워. 바로 복귀해.”
“알았어! 고마워!”
올라가는 학생을 바라보던 루시어스가 아인을 힘껏 잡아 던졌다.
슬슬 기운이 빠지나 본데. 조금 멀리서 가느다란 신음이 들렸다.
“으, 으아아……!”
푸우욱!
옆에서 빠르게 날아온 창이 마물의 머리를 그대로 뚫었다.
스르륵 쓰러지는 마물을 멍하니 바라보던 학생이 눈을 끔뻑거렸다.
“마기 소모가 심하다. 뒤로 천천히 빠지면서 후열과 교체해.”
“으응.”
아니 근데 저 마물, 미간이 약점이라며? 왜 가로로 창이 꽂히는데?
두개골이 단단하다고 하지 않았어?
학생이 조금 의심스럽게 사체를 바라보다가 루시어스의 말대로 후열과 천천히 자리를 바꿨다.
대체 눈이 몇 개가 달렸는지 누군가 열세에 몰릴 때마다 쏜살같이 그가 나타났다. 고개를 돌리면 금방 루시어스를 찾을 수 있었다.
“거기, 지쳤나?”
“아, 으, 아아니! 더 싸울 수 있어.”
“그래. 장하다.”
있는 힘껏 외치자 루시어스가 옅게 웃으며 다시 자리를 떴다.
얼굴이 화악 달아올랐다.
놓치지 않도록 무기를 더 세게 그러쥔 학생이 마른침을 삼켰다.
조금만 더, 조금 더 싸울 수 있다.
모두 함께 지칠 때까지.
싸우고 싶다.
투두두둑.
한편 루시어스는 분수처럼 솟아오르는 핏줄기에 살짝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다. 비린내가 사방에 자욱하니 기분이 영 좋지 않았다.
뺨에 묻은 피를 손등으로 닦아내며 눈을 굴렸다.
일이 끝나려면 아직 멀었다.
‘그래도 다들 생각보다는 잘 버티는군.’
루시어스가 숨을 고르며 주변을 살폈다. 전투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는지 다들 움직임이 그새 더 좋아졌다.
눈에 띄는 건 역시 레녹스였다.
‘오필리아의 힘이 대단하긴 하네.’
피를 흡수해 제힘으로 만드는 명검.
오필리아 덕분인지 레녹스도 루시어스 못지않게 많이 움직였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여력이 충분히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유려한 검술이 어느 때는 날카롭게, 그리고 어느 때는 무척이나 거칠게 파고든다.
검로를 따라 핏줄기가 채찍처럼 흩어졌다. 희미하게 푸른빛이 도는 검날은 붉은 핏방울 앞에서도 색을 잃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찬란하게 빛났다.
루시어스는 잠시 레녹스를 지켜보았다. 군더더기 없고 깔끔해서 무척이나 마음에 드는 움직임이라고 생각했는데.
‘쌍둥이 사령 때문인지 움직임이 나와 아주 비슷해졌어.’
호흡하는 방법, 움직이는 순간, 시선을 두는 버릇 모두.
저와 상당히 비슷해졌다.
그런데도 창과 검의 차이만큼 움직임에 차이점이 있다는 사실이 루시어스를 더 놀라게 했다. 배워야 할 점을 충분히 배운 후 본인의 것으로 소화했다는 소리가 아닌가.
정말 많이 강해졌다.
괜히 흐뭇해 기분이 좋아졌다.
옅은 웃음을 입가에 걸며 감상을 방해하는 마물들을 손봐주었다.
“키아아악!”
“후우, 젠장.”
마물의 절명 소리를 들으니 다시 기분이 가라앉았다. 정신없이 싸우느라 잊고 있던 사실이 떠올랐다.
‘전하께서 이런 짓을 승인했단 말이지? 내게 연락도 없이?’
생각하니 헛웃음이 나온다.
이런 허무맹랑한 계획이 계획서라고 도착했는데 제게는 아무런 언질도 없이 그러라 승인했다는 사실에 무척 화가 났다.
타리크는 그렇다 쳐 줘도 어떻게 더미트와 마왕이 이럴 수 있는지.
타리크 녀석의 심문이 끝나고 나면 그들에게도 전후 사정을 따져 물을 필요성이 있겠다.
뒷감당할 자신이 넘쳐서.
이런 일을 벌이셨겠지요, 전하.
손으로 머리를 스윽 쓸어넘겼다.
오랜만에 참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러는 와중에도 전열이 유지되도록 힘을 충분히 받쳐주는데, 위에서 전체적으로 상황을 살피던 레이얼이 포르르 밑으로 내려왔다.
“루시어스, 마물 무리가 또 다가오고 있어요. 하지만 다들 체력 소모가 심해요. 전투 속행은…….”
“얼마나 버틸 것 같지?”
“……길어도 30분. 그 후에는 전열이 무너지기 시작할 거예요.”
“30분이라…….”
평범한 방법으로는 저 군단을 감당할 수 없겠지. 학생들은 이미 본인의 능력 이상으로 잘 움직여 주고 있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다.
‘강화 마법을 써야 하나?’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상태다.
더 이상의 강화 마법도 소용없을 것이다. 오히려 마법이 극심한 탈진 상태를 초래할지도 모른다.
이제 정말 마지막이다.
조금만 더 하면 마물의 범람이 끝날 것이다.
주저앉기엔 아깝다.
“다들 여력이 얼마나 더 남았지?”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지. 마지막까지 남을 거야!”
“나도 아직 버틸 만하다.”
포르비와 레녹스가 외쳤다.
루시어스가 숨을 후우, 내쉬었다.
“조직을 아예 재편성해라. 전력이 안 되는 인원은 후열로 모두 빠진다.”
레이얼이 마른침을 삼켰다. 이대로 버틸 수 있는 시간은 30분이겠지만.
모두 효율적으로 움직여 준다면 시간을 배로 늘리는 것도 가능하다.
“최대한 노력해 볼게요. 루시어스는 하던 대로 움직여 주세요.”
“얼마나 버티겠어?”
“길어야 1시간.”
“좋아, 그거면 충분해.”
후방 지원이 가능한 학생들은 모두 후열로 이동시키고 전력이 뛰어난 학생들을 모두 전열로 몰아넣었다.
후열은 최대한 체력을 보존하면서, 정확한 순간에 전투를 지원한다.
전열 유지는 앞에 나선 이들과 루시어스에게 맡긴다.
“전원 자리로! 아직 안 끝났어. 마지막까지 정신 바짝 붙들어!”
“이쪽 지원 부탁해.”
“발 묶인 것부터 빠르게 해치워!”
학생들이 너도나도 필사적으로 외치며 움직였다.
그리고 10분, 20분. 버틴 시간이 1시간이 되어 갈 때.
“흐아아압!”
쿠웅!
이윽고 마지막으로 버티던 마물의 목이 떨어졌고,
길었던 전투가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