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the Life of a Demon RAW novel - Chapter (16)
마족답게 사는 법-16화(16/385)
마족답게 사는 법 16화
016 몽마의 꿈 (1)
아침의 교실은 무척이나 소란스러웠으나, 이전까지와는 분위기가 달랐다.
편을 가르듯 무리 지어서 놀던 학생들이 모두 다 같이 수업에 대해 웃고 떠들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드래곤이 튀어나올 줄은 몰랐지. 정말 간담이 서늘하더라. 설마 카드에 그런 기능이 있을 줄은.”
“맞아.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드래곤이랑 싸우고 있더라. 루시어스에 대해선 완전히 잊고 있었어.”
“아. 그 녀석, 어느샌가 우리랑 같이 싸우고 있더라. 어떻게 그렇게 낯이 두꺼운지 모르겠다니까. 킥킥. 진짜 대단해.”
“나도 도움을 받긴 했지. 실력도 대단하고…… 같은 편이라고 생각하니 엄청 든든하더라.”
베른이 어제의 일을 회상했다.
드래곤한테 맞고 튕겨 나갔을 때 그대로 땅에 처박히는 줄 알았는데, 정신을 차려 보니 웬 그물이 몸을 받쳐 주고 있었다.
그땐 정신이 없어 바로 전선에 복귀했었는데 생각해 보니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건 한 명뿐이었다.
“봐, 내 말이 맞잖아. 이번 수업의 주제는 협동이었어. 아르놀트 선생님 표정 봤지?”
에스프가 의기양양하게 가슴을 쭉 펴며 으스댔다. 옆에 서 있던 에스메리다가 콧방귀를 뀌었다.
“네 말대로 했으면 본전도 못 건졌을걸.”
앞자리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다른 학생들 또한 그녀의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처음에 생각했던 것처럼 어떻게든 카드를 모아 수업을 마치려 했으면 이렇게 좋은 결과를 거둘 순 없었을 거다.
특히 마지막에 나온 그림자 드래곤은 절대 처치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이런은 루시어스와 만났을 당시를 회상했다.
“수업을 최고 평가로 마칠 수 있는 기회다. 어떤가?”
사이러스 아카데미의 구조상 전투 실력이 뒤처지면 점수가 낮게 나올 수밖에 없었다.
드워프인 그는 다른 학생들을 이길 수 없었기 때문에 다른 학생들의 카드를 몰래 훔치고 다녔다.
그러던 와중 루시어스와 만났다.
“지금으로부터 10분쯤 후 레이얼이 너흴 발견할 거다. 잘 말해 주기만 하면 돼. 그러고 나면 레이얼이 하자는 대로 해라.”
무척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넝쿨에 묶여 있다가 다른 학생들이 와서 자초지종을 물으면 루시어스 켄드릭에게 당했다고 울분을 토하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일.
카드를 모두 빼앗겨 다른 선택지도 없던 그들은 진담이든 농담이든 어차피 잃을 건 똑같으니, 한번 해 보자며 뜻을 하나로 모았다.
루시어스의 말대로 그가 자리를 비운 지 10분이 지나자 레이얼이 나타났다.
그들은 루시어스가 시킨 대로 열심히 그를 욕했고, 레이얼이 다 같이 힘을 합치자는 말을 했다.
아이런은 루시어스의 말대로 레이얼이 하자는 대로 의견을 보태며 도왔다.
그 결과, 첫 수업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
아이런은 오늘 기회가 된다면 루시어스와 제대로 통성명을 하고 인사하고 싶었다.
드르륵.
시간이 지나고 기다리던 마족이 등장했다.
* * *
첫 수업은 그의 생각보다 얻은 것이 많았다.
레이얼의 실력은 물론이고, 동급생들의 전반적인 수준도 확인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아르놀트에 대해서도 재평가하며, 앞으로 사이러스에서 어떻게 움직일지에 대한 방침을 더 면밀하게 수립했다.
상쾌한 기분으로 아침을 맞이한 루시어스는 등굣길을 걸으며 새로운 고민에 빠졌다.
수업 때문에 잠시 미뤄뒀던 문제가 하나 있었다.
레녹스에 대해서였다.
마음의 준비를 할 때까지 기다려줄 생각이었으나 상태를 보아하니 시간을 준다고 될 일이 아닐 것 같았다.
게다가.
‘날이 갈수록 악몽이 심해지고 있어. 아마 오필리아 때문인 것 같은데, 밤마다 손을 봐주는 데에도 한계가 있으니.’
적어도 악몽에 대한 문제를 수습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고민하던 그가 반의 미닫이문 앞에 섰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아침 시간 특유의 소란스러운 분위기가 순간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
잠시 의아해하는 루시어스에게 한 학생이 다가왔다.
뭔가를 크게 결심한 것처럼 비장한 목소리였다.
“루시어스 켄드릭, 인사가 늦었다. 나는 드워프 일족의 아이런이다. 화기를 만드는 데에 주력하고 있지. 앞으로 잘 부탁한다. 뭔가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해라.”
루시어스가 한번 주변을 훑었다. 반 아이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모두 집중되어 있었다.
개중 적의를 가진 시선은 단 하나도 없었다. 모두 금방이라도 달려와 말을 섞고 싶은 눈치였다. 어제 수업에서 강제로 카드를 뺏은 것에 대해서는 별 신경 쓰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는 우선 눈앞에 있는 이들에게 자기소개를 한 번 더 해 주었다.
“루시어스 켄드릭, 드라이어드다. 어젠 고생이 많았다.”
아이런과의 인사가 끝나고 나자 학생들이 하나둘씩 몰려들어 자신의 이름과 종족을 말하며 잘 부탁한다는 말을 건넸다.
드르륵.
그때, 다시 교실 문이 열렸다.
조례를 위해 들어온 아르놀트가 루시어스의 주변으로 우글우글 몰려 있는 학생들을 보고는 문을 몇 번 두드렸다.
“조례 시간이다, 제군. 제자리로 돌아가도록.”
학생들이 일제히 빠르게 자리로 돌아가며 숨을 죽였지만, 첫 수업을 성공적으로 마쳤기 때문인지 분위기가 조금 들떠 있었다.
아르놀트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오늘은 다들 알다시피 마수학 수업이 있는 날이다. 마침 내가 시간이 비어서, 담당인 하멜 선생님과 같이 수업에 들어오기로 했다.”
사전에 하멜에게서 언질을 듣지 못한 루시어스가 턱을 긁었다.
‘하멜이 먼저 합동 수업을 제안할 리는 없으니, 아르놀트가 원했다는 건데.’
어제의 수업 때문에 반에 거는 기대가 커진 모양이지.
잠깐의 쉬는 시간 후 수업이 시작되었다.
단정한 차림새의 하멜이 눈을 가늘게 접어 웃으며 반으로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1년 동안 마수학을 가르치게 된 하멜입니다. 오늘은 아르놀트 선생님께 조금 도움을 받기로 했습니다.”
본인이 들으면 치를 떨겠지만, 교탁 앞에 저렇게 서 있으니 나름대로 제대로 된 선생님처럼 보였다.
루시어스가 피식 웃자 하멜의 눈가가 움찔 떨렸다. 아무래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눈치챈 것 같았다.
그를 잠시 불만스럽게 응시하던 하멜이 수업을 시작했다.
첫 수업이라 기본적인 정보를 전달하는 수준이었지만, 학생들은 그마저도 즐겁게 수업을 들었다.
무엇보다도 도플갱어인 아르놀트가 그림자 마수를 모형으로 만들어 준 것이 학생들의 흥미를 돋우었다.
“지금 보고 계시는 마수는 ‘그레이하운드’입니다. 마수 중에서는 최고 수준의 민첩함을 가지고 있죠. 시력이 발달해 멀리서도 먹이를 포착할 수 있습니다.”
그가 수업하며 아르놀트의 그림자 마수를 손으로 한 번 쓰다듬었다. 그레이하운드는 하멜의 종족이기도 했다.
“그림자 마수이기 때문에 이렇게 얌전히 있지만, 실제로는 한 번 노린 먹이는 절대 놓치지 않고 사냥하는 집요함을 가지고 있답니다.”
가늘게 웃는 모습에 문득 옛날 생각이 났다.
계약하기 전의 하멜은 그가 말하는 것처럼 무척 집요하고 악독했다.
극심한 굶주림 때문에 이지를 상실해 주변에 보이는 것들을 가리지 않고 먹어치웠다.
그것이 마수이건, 마족이건 전부.
“나중에 여러분들도 외부 실습을 나가게 될 겁니다. 거기서 운이 좋다면 마수 계약을 하기도 하겠죠. 생각보다 상당히 애를 먹을 겁니다. 마수들은 이렇게 고분고분하지 않거든요. 아. 만약, 지성이 있는 마수를 만난다면 도망치세요.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그런 마수도 있나요?”
“마수가 사는 지역엔, 그곳 특유의 사기와 마기를 양분으로 성장한 마수들이 하나씩 있습니다. 보통 마수들과는 달리 의사소통이 되지요. 하나같이 성격이 괴팍하니 도망치는 게 좋습니다.”
루시어스와의 만남은 그에게 있어서 다행인 일이었다.
그와 마수 계약을 하지 않았으면 늦든 빠르든 출진한 마왕군에게 토벌당했을 테니까.
“나름대로 즐거운 경험이 될 겁니다. 요즘엔 애완 목적으로 계약을 하는 경우도 있다 하더군요. 각자 잘 생각해 보시고 결정하세요.”
“선생님께서도 마수 계약을 하셨나요?”
누군가의 물음에 하멜이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어찌 계약을 하긴 했네요.”
“어떤 마수인가요?”
“글쎄요…….”
말끝을 흐리던 그가 루시어스에게로 시선을 잠시 주다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놀라울 정도로 강하지만 제멋대로라 감당하기 벅찰 정도입니다.”
다른 아이들이 하멜의 마수에 대해 궁금해하며 눈을 빛냈다. 루시어스가 하멜에게 삐딱한 눈초리를 보냈다.
하멜은 그의 시선을 받으면서도 아무것도 모르는 척 수업을 진행했다.
* * *
‘……벌써 아침인가.’
눈꺼풀을 찌르는 아침 햇살에 절로 눈이 떠졌다.
무거운 몸을 일으켜 커튼을 걷자 오늘따라 유난히 화창한 바깥 풍경이 눈에 담겼다.
높은 하늘과 보기 좋게 손질된 정원, 날아다니는 작은 새들과 활기찬 학생들.
“…….”
이유 모르게 스며드는 불쾌함.
나는 곧 다시 커튼을 쳤다. 별세계 같은 풍경을 뒤로한 후 등교를 위한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옷매무새를 단정하게 하고, 약간 짧은 머리카락을 끝으로 낮게 묶어 두고.
모난 곳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거울 앞에 선다.
아침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치고 나면 나는 매번 거울 안의 나에게 같은 평을 내렸다.
‘한심한 녀석.’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헛된 웃음이 흘러나왔다.
죽은 그 녀석이 이 꼴을 보면 뭐라고 할까.
‘에디온.’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다며 혼내겠지.
실없는 생각을 하며 고개를 돌리면, 매번 거울 앞에서 난감한 표정으로 머리를 묶고 있는 파트너를 볼 수 있었다.
루시어스 켄드릭.
올해 입학한 신입생이자, 임시 파트너.
저를 모르는 순진한 학생보단 뭐라도 꿍꿍이가 있는 것 같은 쪽이 상대하기 편할 것 같아 임시 파트너 요청을 수락하긴 했는데.
좋은 선택이었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아, 레녹스. 좋은 아침이다.”
거울 너머로 눈이 마주친 루시어스가 반가운 인사를 건넸다. 나는 차마 ‘좋은 아침.’이라고 말할 수 없어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휙 돌렸다.
‘좋은 아침일 리가 없지.’
지난 2년간 악몽을 꿔 왔다.
파트너인 에디온을 살리기 위해 필사적으로 고군분투하다가, 매번 처참한 결과를 맞이하며 끝나는 꿈을.
개운하게 일어난 게 언제 적 일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는데 문득 한 가지 사실이 머릿속을 스쳤다.
오늘 내가 그 꿈을 꿨던가?
“…….”
꾸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언제부터인가 꿈을 꾸지 않고 있었다.
잠을 자도 기력이 회복되지 않는 건 여전했지만, 적어도 악몽에 몸부림치며 새벽에 깨는 일이 없어졌다.
언제부터였더라. 헤아리는데 절로 시선이 루시어스에게로 갔다.
“루시어스, 혹시…….”
“음?”
“아니, 아니다.”
나는 하려던 말을 멈췄다.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 걸까.
혹시 내가 밤마다 악몽을 꾸는 걸 봤냐고? 언제부터 꿈을 꾸지 않았는지 알고 있느냐고?
순간 말문을 잃은 내게 그가 웃으며 말했다.
“거의 다 준비했으니 조금만 기다려라.”
“……알겠다.”
나는 그렇게 답한 후 손목으로 시선을 내렸다.
아르놀트 선생님의 주박이 아니었다면 절대 루시어스와 함께 다니지 않았을 터다. 나쁜 의미로 눈에 띄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 루시어스가 준비를 마치고 나왔다. 나는 발걸음을 재촉하며, 이 시간이 빨리 지나기를 바랐다.
그렇게 로비에 다다랐을 즈음, 갈라서려던 나를 루시어스가 붙잡았다.
“레녹스. 오늘 방과 후에 대화를 좀 나눴으면 하는데.”
“대화?”
“우린 아직 할 얘기가 많이 남아 있지 않았나?”
루시어스는 그렇게 말하며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고.
나는 본능적으로 그가 말하는 바를 알아들었다.
올 것이 왔구나.
눈앞이 어지러워졌다. 잔잔해진 줄 알았던 감정이 요동치고, 이윽고 높은 파도가 되어 밀려 들어온다.
루시어스가 말을 이었다. 여전히 숲을 닮아 맑고 깨끗한 눈동자로 날 바라보면서.
대체 이 녀석은 내게 뭘 바라는 걸까.
모든 걸 알고 있다며 위협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러니 걱정하지 말라며 위로하는 것 같기도 하다.
바라보는 시선에 적대감이 없다.
“하고 싶은 말을 정리할 시간을 주는 거다. 그러니 곰곰이 생각해오도록 해.”
“……그러도록 하지.”
그렇게 답하면서도 난 확신할 수 없었다.
정말, 말해도 괜찮은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