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the Life of a Demon RAW novel - Chapter (160)
마족답게 사는 법-160화(160/385)
마족답게 사는 법 160화
160 나무를 숨기는 방법 (7)
“경은 내가 우습나?”
얼음송곳이 살을 에는 듯한 한기가 등허리를 탔다. 루시어스의 목소리를 듣는 타리크의 목울대가 꿀꺽, 움직였다.
입을 막은 재갈이 조금씩 젖었다. 불편하게 벌어진 턱으로 타액이 주르륵 흘렀다.
제 잘못을 알긴 알고 있으니 하멜이 저를 어떻게 다루든 신경 쓰지 않고 순순히 잡혀 왔다.
그걸로 루시어스의 화가 풀어질 거라고는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불난 데에 기름을 붓는 꼴이 되지는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기름을 부어도 별 차이가 없을 만큼 화가 나셨군.’
그에게서 느껴지는 온갖 감정들이 천천히 타리크를 압박했다.
보이지 않는 손이 목을 조르고 네 죄를 정녕 모르겠냐는 목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것만 같다. 수없이 많은 가시가 돋친 넝쿨이 심장을 옭아맨다.
조금만 더 심장 고동이 거세어지면 그대로 찔려 죽을 것만 같은.
그런 감각.
루시어스가 손을 한 번 들었다.
“재갈 풀어. 안대도.”
“알겠습니다.”
벌써 풀어 주는 게 못내 아쉬운지 하멜의 시선이 가늘어졌다. 그가 기다란 손톱으로 입을 막은 재갈과 눈을 가린 안대를 풀었다.
툭.
천 자락이 맥없이 떨어졌다. 타리크가 꽉 물고 있던 천을 놓아주었다.
“자, 타리크 라하위스 경. 경이 이번 일에 대해 내게 뭐라고 했더라?”
“루시어스 님을 위해서라고 했죠.”
“그래. 그렇게 날 위하는 경이니.”
루시어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터벅, 터벅.
타리크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이번에 경이 내가 용서할 수 있는 선을 넘었다는 사실도.”
검은색 구두 끝이 그의 턱을 들어 올렸다. 타리크가 희미한 시야로 루시어스를 응시했다.
“잘 알고 있겠지.”
“……루시어스 님.”
“타리크 경. 입이 뚫렸으니 변명이라도 내놓아보게. 다만, 그 입으로 나오는 말에 거짓이 있어서는 안 될 거야. 대답 여하에 따라서.”
오로지 금색으로 빛나는 시선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다.
“편하게 죽여 주도록 하지.”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타리크는 정말 맥이 빠질 정도로 순순히 제 잘못을 인정했다.
차라리 전처럼 이게 다 당신 때문이라는 미친 소리라도 지껄이면 편하게 죽여 놓든 말든 할 텐데.
저를 위한 일이라고 해 놓고.
제 잘못이라며 고개를 숙인다.
루시어스가 한숨을 작게 내쉬곤 짜증스럽게 머리를 쓸어넘겼다.
그가 지금 보여야 할 행동은 고개를 숙이는 게 아니라 ‘왜’ 이런 짓을 벌였는지 제게 타당한 이유를 들어 설명하는 것이었다.
고개만 조아리기만 하는 건 이유를 말하지 않겠다는 뜻과도 같다.
타리크가 묶인 몸을 겨우 일으켰다. 두 무릎을 꿇은 채 루시어스를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당신께선 참 상냥하십니다.”
입가에 걸쳐진 웃음이 인상이 찌푸려질 정도로 교태롭다.
“저는 당신과의 약속을 저버렸고, 가장 싫어할 만한 일을 했습니다.”
“…….”
“이리 싫어할 걸 알고 있으면서도.”
“알고 있으면서도 했다?”
“했지요.”
그런데도 이리 이야기를 들어 줄 마음이 생기시던가요.
작은 웃음이 흘렀다. 장난스럽기도, 저를 놀리는 것 같기도 한 웃음이.
“체벌해 주십시오.”
“…….”
“당신의 기분이 풀릴 때까지.”
“그대가 아무래도 오늘 초상을 치르고 싶은 모양이야. 그게 아니면.”
루시어스가 하멜에게 손을 내밀었다. 하멜이 검은색 장갑을 건넸다.
“이렇게 나올 리가 없지.”
살려 달라고 무릎을 꿇고 구차하게 빌기라도 했으면 동정심이라도 동할 것이 아닌가.
이렇게 건방지게 제 속을 헤아리고 있다는 듯 지껄이는 것보다는.
루시어스가 장갑을 쭉 잡아당겼다.
가죽 장갑이 손에 남김없이 착 달라붙었다.
“경. 혀를 깨물고 싶지 않다면 이를 꽉 다무는 게 좋을 걸세.”
“…….”
“나는 경의 생각보다 훨씬 손이 매우니까 말이야.”
* * *
“하아…… 하아, 하. 하하하.”
“…….”
“지독한 놈.”
루시어스가 바닥에 널브러진 타리크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타리크의 이번 행동은 심히 실망스러웠다. 그간 조금씩 주었던 신뢰마저도 와르르 무너질 정도였지.
그래서 루시어스는 정말 손속에 자비를 두지 않고 그를 때렸다. 그리고 타리크가 신음 한 번이라도 내며 잘못했다 이야기할 줄 알았다.
하다못해 반항이라도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정말 타리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마치 분이 풀릴 때까지 때리라고 했던 말을 지키려는 듯이.
탁!
루시어스가 장갑을 벗어 바닥으로 집어 던지며 의자에 다시 앉았다.
“하멜.”
“벌써 끝나셨습니까?”
“…….”
쪼르르륵.
하멜이 여상히 웃으며 찻잔을 채웠다. 따뜻한 차를 한 잔 기울이자 심신이 조금 편안해지는 기분이었다.
달그락.
루시어스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가늘고 긴 숨을 내쉬었다.
바닥에 팽개쳐 있던 타리크가 작게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그제야 입을 열었다.
마치 어리광이라도 부리듯 아주 조용하게 속살였다.
“많이 화나셨습니까?”
“…….”
“기분은 풀리셨고요?”
“…….”
“경은 정말이지, 나를 화나게 하는 재주가 있어.”
“그건 참 아쉬운 재주네요.”
속은 여전히 뒤집혔지만, 몸이라도 움직였기 때문인지 그의 말을 들어 줄 여유는 생긴 것 같았다.
타리크 또한 그걸 아는 눈치였다.
“저는 가능하면 루시어스 님을 기쁘게 하는 재주를 가지고 싶은데.”
“평생을 노력해도 안 되겠군. 재능이 없어.”
“배움에 끝이 어디 있겠습니까.”
“배움에 끝은 없지만 시기는 있지. 그대가 날 기쁘게 하고 싶었다면 적어도 이래서는 안 됐어.”
누가 그대에게 학생들의 목숨을 저울질하며 내게 협박을 할 권리를 쥐여 주었지?
내가 언제 나를 위해 다른 이들을 희생하는 걸 허락해 주었지?
나를 위해서라고?
“내가 대체 언제!”
“…….”
“그대에게 그런 도움을 청했어?”
이를 가는 듯한 분노였다. 타리크는 가만히 루시어스를 바라보다가 조금씩 그의 앞까지 기어갔다.
그러고는 가만히 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어떠셨습니까.”
“거지 같았지.”
“그거야 당연하겠지요. 제가 묻는 건 다른 겁니다. 루시어스 님.”
“…….”
“친구들과 치른 첫 전투는 어땠습니까. 도와달라고 할 때, 그리고 그들이 기꺼이 그대를 도와줄 때.”
“…….”
“기분이 어떠셨습니까.”
루시어스는 그의 말에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분명 타리크의 행동 때문에 기분이 상했고 분노했다.
하지만…… 분명.
“개소리입니다.”
“…….”
“어디선가 개 짖는 소리가 들리네요. 제가 죽이고 올까요? 조용히 처리하고 오겠습니다. 뼈도 남기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다.”
루시어스의 정적에 하멜이 끼어들며 짐승을 들어 올리듯 타리크의 뒷목을 잡아당겼다.
타리크의 초점 없는 눈동자가 자신에게 똑바로 향해 있는 것 같았다.
루시어스가 그만하라는 뜻으로 손을 들었다. 하멜이 쯧, 혀를 걷어차며 타리크를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잠시 주인의 눈치를 살피다 스르륵, 모습을 감추며 물러났다.
톡, 톡, 톡.
루시어스는 턱을 괴고 한참이나 테이블을 검지로 두드렸다.
그러다 흘긋, 타리크를 바라보았다.
“루시어스 님.”
“……계속 지껄여봐라.”
“짐은 조금 가벼워지셨습니까?”
“…….”
“당신께서 가지고 있던 고민은 잘 해결되었습니까? 장로라는 직책이 모든 상황을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이제 아셨습니까?”
루시어스가 이마를 짚었다.
가느다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고작 그런 것 때문에 이 난리를.”
“고작이 아닙니다.”
“…….”
“마왕 전하께서도, 더미트 대장군도. 당신이 그저 ‘고작’일 뿐인 존재였다면 이런 일을 벌이지 않았을 겁니다.”
타리크가 자신을 속박하고 있던 밧줄을 풀고 몸을 일으켰다. 흠씬 두들겨 맞은 탓인지 몸이 잠시 기우뚱 기울었다.
“순전히 당신을 위해서입니다.”
“궤변이다.”
“아뇨. 진심이죠. 그리고 저 또한.”
그가 루시어스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당신께서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입에 발린 말을 하는구나.”
손길이 뺨으로 다가왔지만, 루시어스는 구태여 쳐 내지 않았다.
“5장로가 아니게 되었을 때.”
“…….”
“혹 무력감을 느끼셨습니까.”
“…….”
“눈물을 흘리셨습니까.”
루시어스 님.
그가 낮은 목소리로 루시어스를 불렀다. 고개를 돌려 시선을 다시 맞추자 타리크가 말을 이었다.
“당신은 5장로입니다. 누구도 넘보지 못할 마계의 마지막 기둥입니다.”
“그런 말을 할 낯이라도 있다니 다행이군. 타리크 경.”
“하지만 그 전에.”
루시어스는 타리크가 무슨 말을 이을지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었다.
“당신께서는 마계의 미성년이며 아카데미의 학생입니다.”
“…….”
“5장로직은 학생일 뿐인 당신에게는 너무 거추장스러운 허울이고요.”
체온보다 조금 더 높은 온도를 가진 손길이 뺨에 닿았다.
그 손길이 타리크 라하위스의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도 없을 정도로 다정했다. 그래서인지 지금만큼은.
그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카데미에서는 오롯이 학생이 되십시오. 괜히 건축 비리니 뭐니 걱정하며 발로 뛰지 마시고요.”
“경. 장로라는 자리의 무게와 학생의 신분을 저울질해 보게. 분명 장로라는 자리의 무게가 더 무겁겠지.”
“루시어스 님. 우리는 1천 년 이상을 살아가는 종족이고 아카데미 생활은 그중 길어야 10년입니다.”
“그런데 어찌 내가 장로임을 잊는단 말이야.”
“당신께서는 앞으로 천 년은 더 장로로서 살아가야 하지만 학생으로서 살아갈 날은 앞으로 길어야 몇 년이 남았지요. 그러니 그 둘의 무게는 어쩌면 정반대일지도 모릅니다.”
타리크가 피식 웃었다.
루시어스가 본 그의 웃음 중에서는 제일 깨끗하고 유려한 미소였다.
“직설적으로 말씀해 드리겠습니다.”
“…….”
“일 할 생각 말고, 그냥 좀 놀아.”
곧 그의 얼굴이 장난스러워졌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꼬맹아.”
하!
뒤통수를 치는 듯한 타리크의 발언에 루시어스의 눈이 동그랗게 뜨이고 입이 뻐끔였다. 한참을 어이없는 듯 타리크를 바라보던 루시어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금 전 같았으면 듣자마자 오늘 맞은 만큼 더 때려 줬겠지만.
“…….”
왠지 전처럼 그렇게 얄밉지 않다.
그래도 장로를 앞에 두고 입을 함부로 놀렸으니 응징은 해 줘야지. 루시어스가 그렇게 말하며 몸을 돌렸다.
퍼억!
그리고 깔끔하게 그의 복부에 한 방을 꽂아 넣은 후 손을 거뒀다.
“어윽!”
타리크가 아픈 듯 복부를 감싸 쥐고 쓰러지듯 무릎을 꿇었다.
“너무하십니다. 저는 정말 루시어스 님을 위한 죄밖에…….”
“아직도 입이 살아 있군. 한참 봐줘서 여기서 끝내는 거니 입 다물어.”
“…….”
타리크가 입을 꾹 다물었다.
루시어스가 머리를 헝클었다.
“변명은 잘 들었다. 네가 왜 그런 일을 벌였는지, 그 철부지 같은 사고의 흐름은 이해했어.”
“그럼……!”
“근신 1개월. 내게 말도 붙이지 마라. 눈에 띄지도 말고.”
“……네?”
“죽이지 않는 걸 다행으로 생각해.”
죽일 각오로 왔으니까.
루시어스가 가볍게 손을 털고는 인사도 남기지 않은 채 자리를 떴다.
타리크는 바닥에 주저앉아 루시어스가 사라진 장소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후읍, 하고 숨을 삼켰다.
“푸흐, 흐하하하! 하하핫! 윽!”
미친 듯이 웃던 타리크가 제 몸을 어루만지며 고통을 다시금 삼켰다.
“흐후후. 아, 진짜 아프다.”
맞는 동안 신음 한 번 내지 않으려 얼마나 노력했는지. 소리를 내면 더 분노할 테니 얼마나 이를 악물었는지.
전하와 대련을 곧잘 하고는 한다던데 그 때문일까. 손속이 맵다고 호언장담하더니 정말 딱 죽기 직전만큼 아프더라.
얌전한 외모로 정말 샌드백을 때리듯 자신을 쥐어패던 그의 모습이 머릿속에 계속해서 맴돌았다.
고통에 온몸이 저릿저릿하다.
근신 1개월은커녕 3년을 틀어박혀 있어도 회복하기 벅차겠다.
근신이라면서 ‘말도 붙이지 마’라는 명령을 내리는 건 뭔지.
“아…… 루시어스 님.”
타리크가 입가에 가득한 핏덩이를 혀로 핥았다. 이러면 안 되는 걸 저도 잘 알고 있는데.
오늘따라 참 입맛이 달다.